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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잠시 후.

이명진은 육현경을 이사회에 초대했다.

이내 육현경은 회의실을 나섰다.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문서인은 휴게실 통유리 너머로 지나가는 일행을 보았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이 혹시 육현경 대표님인가요?"

문서인이 물었다.

비서는 바로 대답했다.

"네. 지금 이사회 때문에 회의실을 옮기고 계십니다."

문서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

때마침 이명진이 고개를 돌렸다.

문서인은 이명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예의상 턱을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는 재빨리 육현경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이명진은 문서인의 각도에서는 육현경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단지 모든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문서인은 다시 의자에 앉아, 육현경을 기다렸다.

육씨 그룹은 조만간 장안시에 전국 최대의 국제 상류 상권을 건설할 계획이다. 문씨의 주업은 고급 의류이므로 상권에 입점해야 했다. 그러니 일찍 관계를 맺으면 황금 위치를 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서인은 오전 내내 기다렸고 육현경은 계속 이사회를 열고 있었다.

점심에 물어보니 육현경은 협력사와 함께 식사 중이니 오후에 돌아올 거라고 했다.

오후에 다시 물어보니 육현경은 공사장에 가서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올 거라고 했다.

어느덧 회사 모든 직원이 퇴근했다. 육현경을 포함해서 말이다!

문서인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찌 되었든 그도 장안시 상층 그룹의 문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자 대표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육현경에게 바람을 맞았다니. 비서는 연신 사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육형경에게 한바탕 농락당한 것 같았다!

그는 육현경과 원한이 없다….

문서인은 분노하여 육씨 그룹을 떠났다.

"나은아."

차에 타자마자 소나은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빠, 하루 종일 육씨 그룹에 있었네. 대화는 즐겁게 나눴어?"

소나은이 애교를 부렸다.

문서인은 안색이 더 나빠졌다.

"나 지금 서아랑 밥 먹으러 나왔는데 여기로 올래? 설마 육현경 대표님이랑 식사 같이하기로 한 거야?"

"맛있게 먹어, 난 신경 안 써도 돼."

문서인은 당연히 소나은에게 육현경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를 상대할 기분도 아니었다.

"왜 그래? 기분 별로 안 좋아?"

소나은은 이상함을 느꼈다.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어."

"그러면 푹 쉬어."

소나은은 나긋한 말투로 말했다.

"맞다, 육현경 대표님 어떻게 생겼어? 중년 아저씨처럼 생겼지?"

"그 정도는 아니야."

문서인이 평가했다.

"그냥 평범해."

"내가 생각해도 그래."

소나은이 웃었다.

"그럼 오빠, 더 얘기 안 할게. 나 곧 도착할 거야."

전화를 끊은 문서인의 안색은 계속 일그러져 있었다.

오전에는 소이연에게 반쯤 화가 났고, 오후에는 육현경에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문서인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답답했다!

......

노스타운.

소이연은 배달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오전에 연락이 왔던 낯선 번호다. 번호에는 숫자 8이 여섯 개나 들어있어 쉽게 기억에 남았다.

소이연은 깊은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늘 밤 그의 초대를 거절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엄마!"

전화기 저편에서 육민의 상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은 이내 준비했던 말을 삼켜버렸다.

"엄마, 나 엄마 보고 싶어. 아빠랑 지금 데리러 갈 테니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십 분 뒤면 도착할 거야."

육민은 매우 흥분했다.

“......”

육현경은 정말 간사하고 교활했다.

......

소이연은 결국 목발을 짚고 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입구.

육현경은 그의 눈에 띄는 마이바흐에 기대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차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행인들은 멍한 표정으로 눈이 빠지게 육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시선은 마치 혼이 빠진 것처럼 육현경을 향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가 나타나자 비로소 동공에 초점이 맞춰진 듯, 긴 다리로 걸어와 목발을 가로챘다.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육현경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고 한순간에 번쩍 들어 차로 향했다.

왠지 주위의 시선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소이연은 깊은 심호흡 하고는 묵인을 선택했다.

차에 오른 뒤.

"엄마."

육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로 그녀를 달콤하게 불렀다.

매번 육민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소이연은 마음이 약해진다.

사실 그들도 불과 사흘 동안 밖에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육민은 소이연에게 안기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빠가 오늘 엄청 맛있는 거 사준데. 엄마 안 배고파?"

"배고파."

소이연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배고프니까 이따가 우리 많이 먹자."

"좋아."

목적지로 가는 내내, 차 안에는 온통 육민과 소이연의 유쾌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옆에 앉은 육현경은 두 사람의 대화에 참견은 안 했지만 입꼬리가 선명하게 올라갔다.

식당에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로 그들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소이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육현경은 비록 메뉴판을 보고 있었지만 소이연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그는 머리를 돌려 주위를 한 번 보았다.

옆 테이블에 소나은이 보였다.

소나은은 지금 문서아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서아는 문서인의 친여동생인데, 그녀가 문서인을 소이연에게서 빼앗아 온 데에는 문서아의 공이 컸다.

"너 곧 촬영 시작하지?"

소나은이 물었다.

문서아의 직업은 연예인이며 비록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팬덤은 있었다.

"맞아, 다행히도 촬영지가 장안시야. 만약 멀리에서 촬영하면 나 안 갔을 거야."

문서아가 콧대 높게 대답했다.

"촬영장 자주 놀러 갈게."

소나은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맞다, 이번 영화 육씨 그룹에서 투자했다며?"

"육씨만 언급하면 짜증 나."

문서아는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번에 육현경 귀국했잖아. 근데 내가 맘에 드나 봐. 나랑 글쎄 맞선을 보겠다는 거야."

"진짜야?"

소나은은 깜짝 놀랐다.

육현경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했다.

수시로 소이연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으면서 말이다.

"짜증 나 죽겠어."

문서아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만나?! 얼굴도 못난 데다가 애까지 딸렸는데 누가 중고를 원해."

"맞는 말이야. 네가 얼마나 예쁜데. 네가 훨씬 아까워."

소나은은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이러다 육현경이 나 좋다고 매달릴까 봐 겁나. 너도 알다시피 그 집안이 장안시에서는 최상층에 있잖아. 우리 아빠가 나한테 그 집안으로 시집가라고 강요할 게 뻔해."

문서아가 서글프게 말했다.

"예쁜 게 죄라니까."

소나은은 계속 꼬리를 흔들어 댔다.

문서아는 으쓱한 표정을 지으며 소나은이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즐겼다.

소나은은 남의 비위를 잘 맞춰준다.

"됐어, 그만 얘기하자. 그나저나 우리 오빠랑은 어때? 왜 아직도 소이연과의 파혼을 공개하지 않은 거야?

"오빠랑 우리 언니가 오랫동안 만났으니 오빠도 우리 언니의 체면을 생각해 줘야지."

소나은이 친근하게 대답했다.

"소이연의 체면?!"

문서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년이 무슨 체면이 있다고, 열여덟에 원나잇도 모자라 미혼모가 되었는데. 내가 그년이라면 창피해서 확 죽어버렸을 거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소이연은 못 들은 척하며 육민과 함께 그가 먹고 싶은 디저트를 골라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육현경이 벌떡 일어났다.

소이연은 가볍게 대답했다.

한참 뒤, 육현경이 돌아왔다.

한편, 레스토랑 남자 종업원들이 소나은과 문서아에게 다가갔다.

"죄송해요. 이만 마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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