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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육현경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늘은 원래 소나은의 취임식이었는데 소이연 씨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어서 소나은이 아주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해요."

이명진은 계속 보고했다.

"하지만 소승영과 소나은이 은하를 지켜온 만큼 소이연 씨가 은하를 성공적으로 승계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육현경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사무용 책상을 톡톡 쳤다.

‘대표님은 확실히 소이연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네.

그렇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소이연 씨를 화재 현장에서 구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여자라면 질색하던 대표님이 장안시에 돌아오자마자 생각이 바뀌셨다고?!’

이명진은 의아했지만 육현경에게 직접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표님, 조용히 뒤에서 도와드릴까요?"

육현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자신 있으니 혼자 갔겠지. 소이연 씨를 믿어보자고."

"네."

이명진은 공손히 대답했다.

이명진은 소이연이 아무래도 육현경의 눈에 든 여자이기에 대단한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

소이연은 은하 그룹에서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소이연은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다가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연아, 너 왜 나은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문서인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사이는 나은이랑 상관없으니 나은이 난처하게 하지 말고 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보나 마나 소나은이 그새를 못 참고 문서인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그녀는 소나은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익숙했다.

"문서인, 착각하지 마. 나는 단지 내 것을 되찾으려고 한 것뿐이야."

문서인은 가증스럽게 말했다.

"이연아, 돈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우리는 단지 헤어졌을 뿐이지 내가 너한테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잖아? 난 널 해고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 일만 잘하면 월급 서운하게 안 줄 테니까."

소이연은 정말 문서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문서인,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니까 잘 들어! 우선 은하 그룹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거야. 소나은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하지 않아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해도 소나은한테는 한 푼도 못 줘! 다음, 나는 문씨로 다시 안나가. 시간 나면 내 물건 정리하러 갈 테니 만약 거슬린다면 그냥 버려도 돼. 남겨둘 필요조차 없는 물건이니까. 마지막으로, 돈으로 나를 모욕하지 마. 넌 날 모욕할 능력이 안 돼!"

말을 끝내고,

소이연은 문서인에게 대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문서인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이연은 가차 없이 그의 전화를 끊었으며 그의 호의를 비웃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패를 가지고 있기에 감히 나한테 이러는 거지?!’

문서인은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이연은 번마다 가차 없이 수신 거부를 눌렀다!

문서인은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

수신 거부를 했지만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소이연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그런데 이때 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상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전화를 받아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너 얼굴 들고 다니고 싶으면 다신 나한테 전화하지 마."

"......"

상대방은 침묵했다.

소이연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낯선 번호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기 저편에서 나지막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안 들고 다녀도 되니까 계속 통화할 수 있어요?"

소이연은 심쿵했다.

그녀는 육현경에게서 연락이 올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이내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죄송해요, 대표님인 줄 몰랐어요. 대표님에게 한 말 아니에요."

"그럼 누구한테 한 말이에요?"

육현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소이연은 몇 초 동안 침묵한 후 천천히 말했다.

"대표님은 아실 텐데요?"

육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사무용 책상 위에 놓인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리며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

"도와 드릴까요?"

"아니요."

소이연은 바로 거절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저한테는 무슨 일로?"

"별일 없어요."

육현경이 대답했다.

소이연은 미간을 찡그렸다.

"민이에게 준 번호로 연락이 되는지 확인해본거에요.”

"...... 저는 아이를 속이지 않아요"

소이연은 약간 화가 났다.

번호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를 복구해 준 사람이 육현경인데 그가 모를 리가 있을까?!

"저녁에 시간 있어요?"

육현경이 불쑥 물었다.

화제를 너무 빨리 돌렸다.

소이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저녁 같이 먹어요."

육현경이 말했다.

"데리러 갈게요."

"죄송해요......"

"첫 출근 축하해 줘요."

소이연은, 그녀와 육현경은 절대 같은 채널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여섯 시에 봐요."

이렇게 육현경은 전화를 끊었다.

소이연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육현경의 강세는 정말 당해 낼 수 없다.

그녀는 고민 끝에 육현경에게 카톡을 보냈다.

"죄송해요, 대표님.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같이 축하 못 해 드려요. 그러니 대신 문자로 축하해 드릴게요."

카톡 전송 후.

소이연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계좌이체를 했다.

소이연은 나름대로 축복의 의미를 담아 보낸 것이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최선의 거절이다.

전화기 너머.

육현경은 계좌이체 알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명진은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했다.

‘해가 서쪽에서 떴어?

대표님이 웃다니.

게다가 저렇게 요상하게 웃다니.’

"이명진."

육현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네, 대표님."

"여자가 남자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명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현경은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명진은 눈알을 빠르게 굴려보았지만 불확실하게 말했다.

"스폰...... 일가요?"

육현경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이명진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소이연 씨가 얼마를 줬으면 우리 대표님이 이렇게 만족스러워하시는 거야?!’

때마침.

누군가 예의 있게 노크했다.

비서가 공손히 말했다.

"대표님, 문씨 그룹 문서인 대표가 직접 찾아오셨는데 들여보내도 될까요?"

‘문서인?’

이명진이 갑자기 흥분했다.

‘우리 대표님의 라이벌?!’

"시간 없어요."

육현경은 거절했다.

"그러면 언제 편하실까요......"

"언제든 불편해요."

육현경은 말투는 매우 차가웠다.

비서는 가슴이 떨렸다.

"그러면 문서인 대표님한테 먼저 돌아가시라고 할게요."

육현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묵인한 셈이다.

비서는 두려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비서는 처음으로 육현경을 접촉하는지라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잠깐만요."

육현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비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이사회 끝나면 괜찮을 것 같아요."

"네, 그럼 문서인 대표님에게 전할게요."

이명진은 비서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더니 다시 머리를 돌려 육현경을 살펴보았다.

‘문서인은 모욕당하고 싶어서 직접 찾아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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