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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양산노귀
그 위에 무릎을 꿇으라니.

바닥 위 유리 조각들을 본 서미래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 위에 무릎을 꿇는다면 몹시 아플 것이다.

서미래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소란을 들은 고나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백시우 씨, 무슨 일로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

고나린이 웃는 얼굴로 백시우에게 물었다.

백시우는 화가 난 얼굴로 그들을 가리키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린 씨, 저는 오늘 나린 씨 체면을 생각해 여기로 온 겁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가짜 술로 저한테 사과를 하겠다지 뭐예요?”

‘가짜 술?’

고나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잔에 담긴 술을 살짝 맛보았다.

그리고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미래는 두려움에 떨면서 고나린을 향해 살려달라는 눈빛을 해 보였다.

“이 일은 여러분이 알아서 해결하세요.”

고나린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쉰 뒤 백시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시우 씨, 제 규칙은 잘 아시죠? 알아서 처리하시면 돼요.”

말을 마친 뒤 고나린은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서미래를 위해 백시우를 여기로 데려오기까지 했는데, 서미래 본인이 멍청한 짓을 해서 화를 불러왔으니 결국엔 서미래의 탓이었다.

고나린이 떠나가자 백시우의 얼굴에 약간 경련이 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서미래를 혼쭐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갈등이 생겨도 피를 흘리게 하거나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룸살롱만의 규칙이었다.

고나린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 백정호도 여러 차례 고나린과 충돌하지 말라고 그에게 경고했었다.

“서미래,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따라 나와. 내가 사람을 불러 너를 끌고 나오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백시우는 험악한 눈빛으로 서미래를 힐끗 보더니 노기등등하게 밖으로 나갔다.

서미래는 겁이 나서 울먹거리며 손희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희섭 씨, 아버지에게 연락 한 통 해서 백정호 씨에게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해줘...”

고나린이 그녀의 편을 들지 않았으니 지금으로서는 손희섭의 아버지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손희섭은 흠칫했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되어 서미래를 도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짜 술이라는 사실로 그는 이미 한 번 체면을 구겼다.

만약 그의 아버지와 백정호가 아는 사이라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는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연락해 볼게.”

손희섭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했다. 그는 휴대폰을 챙겨 옆으로 걸어간 뒤 연락하는 척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잠시 뒤 손희섭은 절망 어린 표정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휴대폰을 꺼놨어...”

손희섭의 말을 들은 서미래는 절망에 빠져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손희섭은 잠깐 망설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미래에게 말했다.

“일단 백시우 씨가 시킨 대로 해. 내가 병원까지 데려다줄게.”

“희섭 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최효민이 씩씩대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뭘 어쩌겠어? 나는 마음이 아프지 않은 줄 알아?”

손희섭은 최효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다들 봤다시피 백시우 씨는 지금 단단히 화가 난 상태야. 오래 기다리게 했다가는 더 화를 낼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미래는 더욱 비참한 꼴을 보게 될 거고...”

백시우를 오래 기다리게 하면 그들까지 험한 꼴을 볼지도 몰랐다.

“맞아.”

“그래. 미래야, 조금만 참아.”

손희섭의 말을 들은 다른 두 사람은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최효민은 화가 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미래의 편을 들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래? 우리도 미래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맞아. 굳이 상황을 더 악화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미래가 안타까우면 네가 대신 무릎 꿇지 그래?”

그들이 반박하자 최효민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나가서 무릎 꿇을 테니까 다들 조용히 해!”

서미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친 뒤 덜덜 떨리는 다리를 뻗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최효민은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

서미래의 모습을 본 주원우는 속으로 욕을 했다.

그는 서미래에게 그 술이 가짜 술이라고 언질을 주었지만 서미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 탓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친구들은 서미래를 도와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주원우는 속으로 그들을 욕한 뒤 몰래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잠시 뒤 큰소리만 치던 손희섭의 뒤통수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 안 되면 백시우와 싸울 생각이었다.

회사에서는 매년 퇴역 군인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간단한 싸움 기술을 가르쳤다. 주원우는 꽤 빨리 배웠고 재능도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주원우는 그 재능이 잠시 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최소한 서미래가 유리 조각 위에 무릎 꿇는 일은 없어야 했다.

“걱정하지 마. 백시우 씨 화가 풀리면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손희섭은 서미래의 뒤에서 그녀를 위로했다.

밖에서 백시우가 사람들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백시우도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도망칠 수 없게 미리 사람들을 시켜 룸살롱을 에워싸게 했다.

그리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있었다.

“서미래 씨는 어쩌다가 백시우 씨 심기를 건드렸대?”

“가짜 술로 백시우 씨에게 사과를 하다가 들통났다던데?”

“미친 거 아니야? 사과하겠다면서 가짜 술을 먹여?”

“그건 사과하려는 게 아니라 백시우 씨를 모욕하는 거잖아!”

구경꾼들은 수군대면서 서미래의 무릎을 힐끔댔다.

저렇게 아름다운 무릎에 흉터가 생길 걸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무릎 꿇어!”

백시우는 서미래를 보자마자 화가 난 얼굴로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미래는 두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고 무릎을 꿇기 전부터 벌써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잠깐만요!”

주원우가 백시우를 말렸다. 그는 손희섭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그 가짜 술은 저 사람이 가져온 거예요.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무릎을 꿇리려면 저 사람을 꿇려야죠.”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백시우는 주원우가 한 말의 내용은 무시하고 싸늘한 얼굴로 화를 냈다.

“백시우 씨, 저 사람은 미래네 회사의 경비원입니다.”

손희섭이 곧바로 나서서 경멸에 찬 표정으로 주원우를 힐끔대며 말했다.

“그래? 서씨 가문 참 대단하네! 이젠 경비원까지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백시우는 점점 더 분노가 솟구쳐 주원우를 가리키며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날이 밝을 때까지 저 자식이 유리 조각 위에 무릎 꿇고 있게 해! 내가 오늘 저 버르장머리를 완벽히 고쳐줄 거야!”

백시우의 말을 들은 손희섭은 속 시원해했다.

‘멍청한 놈, 백시우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아. 백시우는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하하,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네. 쌤통이다!’

백시우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부하들은 곧바로 기세등등하게 주원우를 향해 걸어갔다.

주원우는 백시우가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이젠 정말로 그들과 싸워야 할 듯싶었다.

백시우의 부하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주원우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들을 향해 힘껏 다리를 뻗었다.

그 힘이 얼마나 셌는지 백시우의 부하들이 유리 조각 위로 쓰러지게 되었다.

“끄악...”

백시우의 부하는 아파서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그 발차기에 구경꾼들뿐만 아니라 주원우 본인도 놀랐다.

‘내 힘이 이렇게 세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주원우가 잠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네다섯 명이 노기등등하게 달려들어 주원우를 둘러쌌다. 그들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제야 구경꾼들은 정신을 차렸다.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경비원 따위가 감히 백시우 씨 부하를 다치게 해?”

“백시우 씨 부하들 중에 사람을 죽인 사람도 여럿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백시우 씨는 엄청 화가 난 상태니까 저 자식을 반쯤 죽여놓겠네.”

“뒤로 물러나자. 우리한테 피가 튈지도 모르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손희섭은 기뻐서 하마터면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백시우는 원래 화가 난 상태였는데 주원우의 행동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한낱 경비원 따위가 감히 사람들 앞에서 그의 부하를 때렸으니 그냥 넘어간다면 앞으로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백시우의 눈빛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고함을 질렀다.

“일단 저 자식을 흠씬 두들겨 패고 옷을 다 벗겨서 유리 조각 위에 던져 놔.”

백시우의 부하들은 망설임 없이 기세등등하게 주원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위기일발의 순간, 주원우의 본능이 또 한 번 발휘되었다.

퍽퍽...

주원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을 뻗었다. 심지어 그는 상대방의 급소만 정확히 노렸고, 그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만큼 빨랐다.

다른 이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백시우의 부하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은 적막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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