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을 해친 자는 누구인가원경릉이,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혼수상태였기 때문에 어쩌면 단기 기억에 공백이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해요 서두르지 마시고.”“살아나기만 하면 됩니다.” 박씨 부인이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기억하던 못 하던 살아나기만 하면 돼요.”사람들이 여러 조로 나뉘어 들어가는데 일단 박대인 부부가 들어가 침대 곁에 앉아 박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한없이 바라봤다.그들이 나오고 박씨 집안 다른 사람도 들어가더니 마지막에 원용의와 제왕만 남았는데 둘이 마주보더니 제왕이 작은 소리로, “난 안 들어가니, 들어 가요.”원용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원용의가 들어간 뒤 침대가에 앉아 박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웃더니, “아직 날 기억해요? 저 원용의예요, 우리 전에 같이 사냥하고 낚시도 하고 싸우기도 했죠. 기억나요?”박원이 원용의를 보고 눈가가 촉촉해 진다.원용의는 순간 입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제왕이 문밖에서 보다가 묵묵히 돌아서서 갔다.박씨 집안 사람들은 아무도 만류하지 않는데 다들 기쁨에 휩싸여 그가 가는지 조차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저녁에 우문호가 돌아와 박원이 깨어났다는 애기를 듣고 너무 기뻐서 바로 그를 보러 가는 김에 몇 마디 말도 물어보겠다고 했다.원경릉이, “자기는 우선 가지 마, 지금 그에게 물어도 아무것도 당신에게 대답하지 못해.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기억한다고 할 수는 없어. 뇌에 산소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뇌 신경 세포가 손상을 입었거든, 시간이 좀 지나면 어쩌면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우문호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어서, “그러니까 기억을 잃었다는 말이야? 앞으로 기억해 낼 수 있을까?”원경릉이, “예상할 수 없어. 무과 장원은 확실히 무과 장원이야, 투철한 의지에 감탄 했어.”우문호가 한숨을 쉬며, “지금도 기쁜 일이긴 한데 기억할 수 있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 보친왕이 자신은 박원에게 중상을 입히지 않았다고 했거든. 바꿔 말해
깨어난 박원, 찾아온 홍엽“푸른 옷을 입은 자는 조사해도 별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홍엽은 분명 당신이 사람을 보내 자기를 지켜본다는 걸 알고 있어. 그자가 나타나서 홍엽을 만났다는 건 아무 일에도 관련이 없을 게 틀림없어.”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가 생각에 잠기더니, “홍엽이 이번에 직접 온 건 아마도 병여도 때문일 거 같아. 병여도의 관건은 보친왕이라 홍엽이 안풍친왕비를 찾아간 거지, 안풍친왕비가 그의 말을 거절했으니 다음 단계로 그가 누구를 찾을까?”“어쨌든 우리 초왕부 사람일 리는 없어.” 원경릉이 돌아와서, “좀 나아졌어?”“많이 좋아졌어!” 우문호가 한손으로 원경릉을 끌어안고 가슴에 품더니 제멋대로, “확실히 좀 느슨하게 해야 겠어.”원경릉이 다음날 계속 박씨 집으로 갔다. 박원의 진전은 크지 않았지만 시선과 표정으로 그와 이 세계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원경릉이 박씨 집안에 한의사를 찾아보라고 건의하며, 박원에게 침이나 뜸을 뜨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추천했다. 한의학 각도에서 침이나 뜸으로 혈자리를 자극하는 게 일정한 작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다시 이틀이 지나고 박원은 삼키는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건 엄청난 진보로 계속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박원은 드디어 콧줄로 연명하던 삶에서 벗어났다.이날 원경릉의 마차는 박원 집에서 나와 곧 초왕부로 돌아오기 전에 골목에서 저지당했다.마차를 모는 건 만아로, 가리개를 젖히고 원경릉에게, “홍엽공자라는 사람인데요.”원경릉이 놀라서 만아가 젖힌 가리개 틈으로 내다보니 과연 붉은 옷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홍엽이 마차 앞에서 예를 취하고 잘 생긴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우더니, “지난 번 헤어진 뒤로 태자비께서는 안녕하십니까?”“잘 지냅니다!” 원경릉이 답하고, “제가 좀 바빠서 마차에서 내려 공자와 인사를 나누지 못합니다.”말 뜻은 분명했다. 길 막지 말고 얼른 비키라는 것이다.홍엽공자는 전혀 파악을 못한 체하며, “전에 댁에
초왕부를 구경하는 홍엽할머니는 원경릉의 암시를 알아 듣고,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홍엽공자가 만나자고 하는 걸 거절했다. 그리고 만아에게 홍엽공자에게 다음에 몸이 좀 좋아지면 직접 홍엽공자를 찾아가서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전하게 했다.만아가 나와서 보고하니 원경릉이 상당히 유감이라며,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노마님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나와서 만나 뵙기 어렵다고 하시니 공자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홍엽공자가 친절한 눈빛으로, “노마님은 괜찮으십니까? 제가 의술을 약간 압니다만 제가 직접 가서 노마님 진맥을 해 드리는 게 어떤 지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공자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노마님 본인이 의원이십니다. 공자를 번거롭게 할 필요 없으니 나중에 노마님께서 쾌유하시면 찾아 봬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엽공자가, “그러는 수 밖에요.”홍엽공자가 일어나 예를 취하고, “초왕부는 처음 와봤는데, 듣자 하니 초왕부의 경치가 아름답다면서요? 여기저기 둘러봐도 될까요?”원경릉은 홍엽이 일어서자 헤어질 줄 알았는데 초왕부를 돌아다니겠다고 할 줄 상상도 못했다. 살짝 놀라 홍엽을 보는데, 속으로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선물을 가져온 손님이고 두 나라가 지금 관계가 나쁘지 않아서 밖으로 쫓아내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게 뻔하다. ”그거 좋군요, 사람을 시켜 공자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둘러보시게 하겠습니다.”홍엽이, “태자비 마마께서 함께 하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인의 도리를 다할 겸 저에게 인정을 베푸시는 것으로, 저에 대한 노마님의 마음의 빛을 갚으시는 셈 치고 어떠십니까.”홍엽의 목소리가 부드러운데, 원래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기 마련인데 원경릉은 오히려 아주 불편했다. 홍엽의 말은 반박할 수 없게 강요하는 말투로 거의 납치당하는 수준이다.주인의 도리 어쩌고, 마음의 빚이 저쩌고 하면 거절할 수 없다.원경릉은 원래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강요하는데 숨으면
홍엽의 회상홍엽의 아름다운 얼굴이 시름으로 살짝 덮여 경건하고 엄숙하다. 붉은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고 머리에는 관을 쓰지 않아 검고 긴 머리를 등 뒤에서 질끈 묶어 한층 소탈해 보였다.홍엽은 인공 산을 보다가 갑자기 원경릉에게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어릴 때 걸핏하면 인공산에서 뛰어내려서 호수에 잠수하곤 했죠. 물고기와 웃고 노는 거보다 즐거운 게 없거든요.”원경릉이 천천히 걸어가 인공산을 보니 물이 호수로 떨어지며 하얀 물거품을 튀기는데 아주 멀리 있다 보니 물고기가 거기서 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 별 생각없이, “그래요? 선비족도 정원에 인공산과 폭포를 만드는 걸 좋아했군요?”“전 북당에서 자랐어요.” 홍엽공자가 돌아서서 인공산을 뒤로 하고 원경릉을 바라보더니, 눈동자가 적갈색에 가느다란 남색 줄이 있는 호박 보석처럼 빛을 내며, “제가 처음 태자비 마마를 봤을 때는 궁중 연회였습니다.”원경릉이, “그래요, 우리는 궁중 연회에서 처음 만났죠.” 홍엽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뜬금없는 게 마치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 같지만 하여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 한번 이후로 태자비 마마를 다시 만나고 싶었죠, 그래서 북당에 잠시 머무르며 태자비 마마와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기억 못 하시겠죠?”원경릉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가요?”홍엽공자가 원경릉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밝지 않은 표정으로, “태자비 마마,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전 태자비 마마께 헛된 마음 품지 않았고 그저 마마의 생김새가 제 옛 친구를 매우 닮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거죠.”“보고싶으신 거면 왜 직접 그 분을 찾아가 보지 않으시나요?” 원경릉이 물었다.홍엽공자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제 친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생에 다시는 볼 수 없죠.”원경릉이 놀라 홍엽을 쳐다봤다.홍엽의 눈에서 슬픔과 애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그 얘기는 진실이며 조금도 연기 같지 않았다. 게다가 눈가가 촉촉
홍엽과 원경릉이?홍엽공자가 팔걸이를 잡고 작은 소리로,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기억날까요?”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봤으나 인공산은 작은 폭포 2개가 호수로 떨어져 수면에 부딪힌 물방울이 금빛으로 부셔졌다. 부서지는 물거품이 기억의 한 부분을 담당하듯 공중에서 맴을 돌며 원경릉의 눈에 들어와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원경릉은 눈을 감고 자신의 기억이 아닌 것을 열심히 떠올려 그에 관한 한 가닥 기억이라도 있는지 살폈다.하지만 홍엽과 과거에 우정을 쌓았을 리 없고, 있다고 해도 원래 몸 주인인 원경릉일 것이다.하지만 원래 몸 주인이 남긴 오래된 기억은 대부분 모호해서 몸의 원래 주인이 아직 살아있어도 자신이 겪었던 사건이나 만났던 사람을 완전히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단주(端州)에서의 나날을 기억 못하는 군요.” 홍엽의 차디찬 목소리는 마음을 뚫고 들어와 순간 원경릉이 골똘히 생각했던 단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원경릉은 눈을 뜨고 홍엽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보고, “당신…… 제가 당신을 알고 있었나요?”홍엽의 눈에 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원래의 평정을 되찾아 담담하게, “모릅니다. 전부 제가 지어낸 얘기예요. 태자비 마마 그만 귀찮게 하고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홍엽이 한걸음 물러나 외로운 얼굴로 예를 취하고 고개를 들더니 더는 원경릉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서 갔다.붉은 옷자락이 원경릉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늦가을 바람의 싸늘함이 번져 있어 원경릉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아리게 만들었다.홍엽공자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잔상으로 남은 붉은 느낌마저 서서히 퇴색하자 원경릉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만아는 바닥에 앉아 졸고 있는게 아닌가.“만아야!” 원경릉이 불렀다.만아가 퍼뜩 깨어나서 고개를 들더니 당황하는 눈빛으로, “쇤네가……쇤네가 어떻게 잠이 들었죠?”“피곤해?” 원경릉이 본관에서 나올 때 만아는 원경릉과 같이 나왔는데 어떻게 자신을 계속 따라오다가 갑자기 잠들 수가 있지?
할머니를 떠보는 원경릉원씨 집안의 오빠는 지금 조정 일을 맡아 새벽같이 나가 밤중에 들어오다 보니 저녁 수라는 할머니와 손녀 둘 뿐이다.노마님은 몸이 좋지 않아 담백하게 드시는데 원경릉이 돌아왔다고 사람을 시켜 고기요리와 탕을 두어 개 더 하라고 시켰다.할머니는 원경릉의 얼굴을 보고 애처로워서, “세상에 빼짝 마른 것 좀 봐, 몸보신 좀 해야겠구나.”원경릉이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오늘밤은 세 그릇 도전!”“너무 많이 먹어도 안돼, 세끼를 균형 있게 몸을 보해야 예뻐져서 태자 전하께 딸을 또 안겨드리지.” 할머니가 은근 바라고 계시는 눈치다.원경릉이 듣고 순간 멈칫하며, “아뇨, 할머니. 저와 태자는 더이상 낳지 않기로 했어요. 세 아이만 해도 데리고 다니기 힘들어요. 더는 소화 못해요.”“네가 데리고 다닐 것도 아니고 낳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널 위해 데리고 다닐 텐데, 낳고 안 낳고는 너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결정하시는 거지. 넌 태자 전하의 정비인데 설마 계속 피임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며 원경릉에게,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지났는데 왜 뱃속에 아직 소식이 없어? 정말 피임약을 먹은 건 아니지?”원경릉이 기침을 하더니, “아……아뇨, 할머니 말씀대로 하늘이 아직 주실 마음이 없으신 가봐요.”“태자 전하의 몸이 안 좋으신 건 아니고? 종일 바쁘시니 참. 그래도 밤일은 거르면 안된다. 태자 전하께 넌지시 알려드려. 아들이 있어도 딸이 또 있어야 한다고. 아들 딸이 다 있어야 자식복이 있는 거라고.”“예예예,” 원경릉이 얼른 말꼬리를 돌려, “돌아가서 전하와 상의할 게요.”노마님이 째려보며, “전하와 상의하긴 뭘 상의해? 어의랑 상의 해야지. 어의에게 처방을 내려 달라고 하렴. 둘 다 체질이 좋지 않으니 일단 몸 상태를 만들어야 돼, 올해 가지는 게 제일 좋아. 이제 늦가을이니 겨울 지나면 봄 아니냐, 한여름에 낳게 되니 아이가 한달이 됐을 때 감기 걸릴 일도 없고 딱 좋구나.”원경릉이 옆에서
홍엽의 과거원씨 집안 노마님은 나중에 더 생각해 보더니, “굳이 널 특별히 좋아한 소년을 얘기하라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지만 네가 그때 몰래 나갔다가 강에 빠졌는데 어떤 소년이 널 구해줬지. 네 생명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중에 네 외종 할아버지가 그 소년을 집으로 불러 며칠 머물게 하고 갈 때 은자와 옷을 줘서 널 구한 은혜에 보답한 셈 쳤었다.”“그 소년이 몇 살이었어요? 이름은요?”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대략 열 대여섯살 정도 됐을 거야. 가엾은 아이였지. 아버지가 죽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데려와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거든.” 노마님은 머리를 쥐어짜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이런 건 뭐 하게? 중요한 거냐?”원경릉이 천진하게, “약간 중요해요. 할머니, 단주에 서신을 써서 외종조부님께 그 소년의 이름, 내력을 좀 여쭤봐 주세요. 어쨌든 그 남자아이와 관련된 거면 뭐든 알아야 겠어요.”노마님은 원경릉이 이렇게 급하게 구는 것을 보고, “그래, 내일 서신을 보내마. 단주는 멀지 않으니 빠른 말로 달려갔다 오면 며칠이면 돌아올 게야. 넌 기다리기만 하면 돼.”원경릉이, “예, 고마워요 할머니.”초왕부로 돌아와 이 일을 우문호에게 얘기했다.우문호가 다 듣고, “그렇게 말하니 정말 가능성이 있는 듯해. 우리가 홍엽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릴 때 북당에서 산 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어머니가 북당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 아니면 선비족인데 북당에 자리를 잡고 살았을 수도 있고. 당시 홍엽을 데리고 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살해당했지.”“누구한테?” 원경릉이 물었다.“소홍천의 조사에 따르면 홍엽공자의 아버지 즉 독고 대장군이 보낸 사람이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원경릉이 질겁해서, “자기 말은 홍엽의 아버지가 홍엽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거야?”“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커.”“그럼 홍엽은 몇 살 때 독고 가문으로 간 거야?”“조사해 낼 수 없었어. 홍매문 사람이 조사해보
홍엽과 북당“무슨 일이야?” 원경릉은 손에 식은땀에 나며 미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완전 상상을 초월하는 얘기가 펼쳐졌다.“우리 북당을 연 황제인 문제 폐하는 사실 절반 선비족의 혈통이 흐르고 있어. 문제께서는 선비의 지난 왕조였던 성제의 손자와 당시 녹나라(鹿國)여자 사이에서 태어나셨는데, 나중에 선비족에 내분이 생겨 문제 폐하의 부친을 죽이고 문제 폐하는 어머니를 따라 녹나라로 돌아갔지. 그런데 하필이면 녹나라의 황제는 어리석고 잔인해서 백성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봉기하게 된 거야. 문제 폐하도 뜻을 세워 대군에 가담해 결국 이 북당 천하를 안정화 시키게 되었지. 그런데 당시 내분으로 문제 폐하의 부친을 죽인 사람이 바로 독고 가문 사람이거든. 독고 가문 사람들은 줄곧 우리 북당이 문제 폐하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선비를 멸하고 선비족을 북당의 판도 안에 넣을 거라고 믿고 있어.”원경릉은 어이없는 게 이토록 난리를 쳤것만, 선비와 북당은 결국 같은 조상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비록 문제부터 지금까지 선비의 혈통은 거의 남아있지 않겠지만.“그래서 지금 선비 황제도 성이 우문씨야?”우문호가 고개를 흔들고, “아니, 우문씨 집안은 벌써 멸족 당했고 선비는 원래 하나의 씨족으로 한 때 중원을 주름잡으며 중원을 깔보고 ‘선비’를 계속 국호로 쓰고 있어. 단씨(段氏)가 우문씨를 멸족 시킨 후 계속 선비라는 국호로 나라를 세우고 강산을 지배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 하지만 단씨 집안의 강산은 조만간 독고 집안의 강산이라고 불러야 할 거야.”원경릉이 문득 깨닫고, “그래서 단황제와 독고 가문 사람이 전부 우문씨 가문이 복수하러 와서 선비를 빼앗아 갈 거라 생각 하는구나? 자기 말대로면 선비가 가장 중점으로 맞서는게 아마도 진짜 북당일 거야.”“홍엽은……” 우문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태도가 굉장히 애매해. 보기엔 절대적으로 독고 대장군에게 충성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성을 바꾸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많은 움직임을 보이는데 독고 가
안왕은 깜짝 놀랐다.“그가 꿈을 꿨다고? 셋째 형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예!”“언제 꾼 꿈이더냐?”원경릉은 많이 지친탓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아마 저녁 해시쯤 인 것 같습니다.”안왕이 물었다.“저녁 해시? 강북부에 있던 것이냐? 해시에 꿈을 꿨는데, 어떻게 자시가 되어 도착한 것이냐?”원경릉은 멈칫하다가, 그제야 무심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며칠 전에 꾼 꿈이라고 수습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다섯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왔기 때문이다.안왕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그는 황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황후에 관한 일은 늘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안왕은 셋째 형님의 일로 마음이 무거운 터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 사실, 더 캐묻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황후가 대단하다 해도, 그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해칠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는 다만 셋째가 위험에 빠진 것을 다섯째가 꿈에서 알았다는 것이 놀라왔다. 게다가 그 꿈 하나로 황후를 먼저 급히 보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꿈을 꾸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교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황후를 심야에 먼저 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는 예전에도 다섯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그들의 형제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원경릉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주사를 놓았다.큰 상처들은 처리했지만, 얼굴과 손에 있는 작은 상처들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원경릉은 생리식염수를 꺼내 천천히 상처를 닦아주었다.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에 특히 많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강북부에서 병사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며 텃
수술실은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고, 원경릉은 직접 소독했다. 소독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그 후 위왕을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사람들도 전부 소독을 마쳤다.문이 닫히는 순간, 본격적인 대수술이 시작되었다.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과거 사생활은 그렇다 해도, 그는 정말 훌륭한 신하였고, 뛰어난 장군이자 좋은 형제였다.수년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그가 속죄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속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속죄의 방법은 다양하다. 1년, 2년 정도 고생하면 본인과 타인에게도 속죄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십여 년 동안 매일 이 춥고 황량한 변경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속죄하려는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원경릉은 북당의 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비록 예전엔 그에게 화가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존경과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수술 중 그의 옛 상처와 새로운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안왕의 도움도 컸다. 변경의 바람과 모래가 그들 형제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이끌었다.그때 태상황이 그를 변경으로 보낸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기회였고, 북당에도 십 수년의 안정을 가져다 준 일이었다.위왕의 복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어깨와 등에도 칼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부상 당시 출혈도 심각해 생명이 위태로웠다.수술이 끝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원경릉은 혼자 수술을 집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 수술은 유난히 위험했다. 그녀는 행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위왕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가 이번에도 버텨내길 바
위왕의 병사들이 저택 문 앞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위왕은 오랜 세월 병사를 이끈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의 모든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일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모습과 안왕비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려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병사들도 애타는 마음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주변의 백성들 역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저택 밖에 몰려들었다. 위왕은 평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친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사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러 몰락한 왕인 척했고, 그런 모습 덕에 백성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한편, 저택 안에서는 안왕이 위왕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심맥을 지키고 있었는데, 곧바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원경릉은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다섯째의 꿈이 사실인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큰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위왕의 이름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이가 정말 셋째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위왕이 북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도 절실히 느꼈다.그녀는 워낙 빠르게 달려온 터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말을 세우고, 서둘러 가려고 했지만 가득 찬 인파에 가로막힌 탓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의원입니다, 비켜주세요!”그 외침에 사람들은 바로 길을 내주었고, 원경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사는 안왕과 함께 경성에서 온 사람이라 원경릉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기쁨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황후마마께서 오셨다니…! 위왕은 무탈할 것입니다.”병사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직접 뛰어오셨다니? 그리고 다들 그제야 마음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