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2609화

Author: 유애
태상황이 명원제의 말을 다 듣고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천천히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감도는 연기 틈으로 명원제를 보며 말했다. “황제가 이렇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 과인은 위로가 되고 또 황제의 생각이 맞아. 단지 두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황제가 그렇다니 더는 묻지 않겠네.”

명원제가 말했다. “물어보세요!”

명원제는 이것도 상당히 멀리 내다본 생각이라 여기고 태상황이 분명 동의할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건 고려해 보지도 않았다.

태상황이 물었다. “십황자의 나이가 다섯째와 스무 살 정도 나서 형제의 감정이 깊지 않다고 했는데, 일단 황제의 말이 맞는다고 쳐도 황귀비도 아이를 뱄으니 만약 십일황자를 낳으면 그때는 또 어떤 준비할 거지? 호비의 복중에도 용종이 있는데 황자라고 한다면 그건 또 어떻게 대비할 건가?”

“그건……” 명원제는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어 대답했다. “다섯째가 지금 황귀비 슬하로 적을 옮겼으니 황귀비가 황자를 낳으면 다섯째와 자연스럽게 가까울 것이고, 황자가 자라면 다섯째 형을 도와 정무를 볼 거라 그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죠. 호비 복중의 아이는……짐도 당장 계획은 없지만 태어난 아이가 황자면 앞으로 다른 곳을 분봉하죠.”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황귀비 마음에 황제가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할 텐데!” 태상황의 이 말은 사실 기분이 나쁘다는 걸 내포하고 있었지만 명원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명원제가 덧붙여 말했다. “황귀비는 천성이 현숙한 여자로 품행이 고결해 그런 생각을 할 리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좋아, 첫 번째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아무 문제도 없구나. 태상황이 소요공에게 담뱃대에 담뱃잎을 채워 넣게 하고 계속 물었다. “두번 째 문제는 호후의 재능으로 그 다섯 도시 치리를 담당하는 게 가장 최적이야. 호후를 택한 점은 찬성하는 바야. 호후가 좀 시건방지고 전에는 무공이 뛰어나다고 설쳤지만 한번 경각심을 심어준 뒤로 조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신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2610화

    진북후는 나라에 공을 세워 북방 영토를 정돈했지만, 그 정도 꼬물거림으로 대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삼대 거두와 아예 비교되지 않았다. 이번 전장의 상황은 생사가 몇 번이나 오가며 전투마다 치열하기에 그지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둘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명원제는 반쯤 농담, 반쯤 진심으로 말했다. “그럼, 어르신은 가실 의향이 있으신지요?”소요공이 흠칫 놀라 물었다. “폐하 진심이십니까?”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르신께서 가신다고 하시면 짐은 가능하다고 봅니다!”소요공은 웃으며 침묵하더니 같이 침묵을 고수하는 주재상을 힐끔 봤다.태상황이 웃음을 흘리며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소요공이 원하고 말고가 어딨어. 성지가 내리면 가는 거지. 가봐, 가서 짐 싸. 어차피 과인은 평생 고독하게 지내는 게 익숙하니까 어릴 때 친구가 곁에 있는 거 안 어울려. 황제의 막내를 위해 애쓰는 편이 중요하지. 평생 고생만 해왔는데 마지막 몇 년 더 고생하는 게 뭐라고. 북당을 위해 온몸 바치고 죽으면 그만이야. 말년치고는 충실한 셈 아닌가!”이 말에 명원제는 등골이 서늘해져서 얼른 사죄했다. “아바마마 오해하지 마세요. 짐은 그저 농담이었습니다. 어르신을 어찌 고향 땅을 등지고 그런 변방의 척박한 땅으로 가시라 하겠습니까? 짐도 모진 인간이 아닙니다. 어르신은 아바마마 곁에서 만년을 보내셔야지요!”태상황이 웃으며 담뱃대에 연이어 불을 붙이더니 이번엔 좀 오래 빨며 말했다. “황제가 농담하는지 과인도 알지. 소요공이 저 나이인데 변방 도시를 안정화시키러 보내는 건 각박하고 박정한 짓이지 암.”명원제는 태상황이 화가 난 걸 알았다. 웃고 있지만 미소가 냉담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잠시 소요공 얘기는 그만두고 말을 돌렸다. “아바마마께서는 다섯 도시를 하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짐이 이미 성지를 내려 호비도 감사 인사를 올렸사옵니다!”태상황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과인이 황제와 일일이 까발려서 분석해 보도록 하세.

  • 명의 왕비   제 2611화

    명원제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더니 퍼뜩 ‘태상황이 자신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건 이미 뭔가 생각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그래서 은근슬쩍 떠보았다. “아바마마, 어떻게 처리하면 가장 적당하겠습니까?”태상황이 담뱃대를 내려놓고 명원제에게 말했다. “어제 과인이 이미 생각한 게 5개 도시를 태자의 아들들에게 분봉하는 것으로 태손 말고 배 속에 아이도 받을 부분을 남겨두는 거야. 5개 도시에 호후와 셋째를 주둔시켜 서로 견제하고 끌어 주기도 하며 한쪽만 일방적으로 커지지 않게 하는 거야. 넷째는 계속 강북부에 주둔해서 조정의 눈이 되어 이 다섯 도시를 지켜본다면 우리 변경의 국토를 보다 잘 지켜낼 수 있어. 이게 제일 타당한 방안이지.”명원제가 놀라서 말했다. “아바마마,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황자에게도 분봉하지 않았는데 황손에게 먼저 분봉하는 예가 어딨습니까? 그리고 아바마마 말씀대로면 이 다섯 도시는 열째에게 분봉해도 통하는 얘기가 아닙니까? 똑같이 셋째를 먼저 파견해 호후를 잡도리해서 날뛰지 못하게 하면 뭐 문제될 게 있나요?”태상황이 바로 꾸짖으며 말했다. “그 차이를 방금 얘기했잖아. 만약 열째에게 나눠주면 호후는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어 셋째는 안중에도 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태자의 아들이란 같은 처지에 놓이면 야심이 생기기 쉽지 않아. 15년 후 아이가 자라 봉지로 가면 그들이 각각 도시를 하나씩 점할 것이고, 같은 배에서 난 형제가 서로를 지키고 도울 뿐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상의해 협력을 도모할 거야. 그들은 우리 북당을 위해 흔들림 없는 나라의 관문을 공고하게 구축할 거야. 다섯이 힘을 합하면 다섯보다 큰 법이거든. 네가 다섯 도시를 한 사람에게 분봉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다.”태상황의 이 말을 다 듣고 명원제는 마음으로 설복당했다. 확실히 자신이 세운 계획보다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하지만 문제가 바로 그 점이었다. 명원제는 이미 십황자에게 성지를 내렸는데 황제라는 사람이 어찌 자신이 내린 명을 이랬다저랬다

  • 명의 왕비   제 2612화

    주재상이 소리쳐 막았지만, 명원제는 영 달갑지 않아서 사죄하고 싶지 않았다. 태상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뱃대를 들더니 옆에서 담뱃잎을 끌어와 안에 채워 넣었다. 이번 친정은 북쪽 사막의 모래바람이 거세서 개월 수로는 2달 남짓이었지만 얼굴과 손의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건조해졌다. 매일 직접 도검을 닦아서 손톱 끝에 칼에 생긴 거스러미가 무수하고 거스러미를 뜯어낸 작은 상처로 손가락 마디 두 개가 갈라져 있었는데 상처는 아물었지만 딱지가 남아서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담배를 채우면서 손가락 마디 딱지가 담뱃대에 부딪혀 상처가 다시 벌어져 붉은 속살이 나왔다.태상황이 흘끔 보더니 두 손가락으로 담뱃대를 끼우고 바로 딱지를 뜯어버렸는데 딱지 가운데 약간의 피가 베어 나와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눈을 내리깔고 있으니 눈가의 주름이 더욱 서명해 보였다. 머리에 희끗희끗한 백발이 은빛으로 빛나고 몇 가닥 누렇게 마른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처진 입꼬리 부근에는 자잘한 흉터가 있어 고개를 드니 그 흉터가 반사된 빛으로 사라져 보였다.태상황은 담배에 불을 붙여 뻑뻑 피우더니 산전수전 다 겪은 얼굴은 연기 뒤에 감춰져 있고 목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응, 그만 가봐!”명원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채로 일어나 인사하고 나가는데, 마음이 여전히 욱하고 치받쳐 올라 그만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열째의 이름은 우문규로 아바마마께서 직접 지어 주셨고 열째에게 두터운 기대를 품으셨습니다. 짐은 이미 태자라는 가장 좋은 지위를 다섯째에게 주었는데 아바마마께서는 다섯 도시까지 다섯째의 아들들에게 주신다면, 편애가 지나치다고 사람들이 뒤에서 숙덕거리게 될 것이고 도리어 태자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짐이 열째를 위해 향후 계획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지나침이 없습니다. 법도에 따라 짐은 사실 호비의 신분을 높여 귀비로 책봉할 수 있으나 아바마마께서 호비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짐이 그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호비를 서운하게 할

  • 명의 왕비   제 2613화

    건곤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내의원 어의가 전부 소집되었고 태상황과 주재상이 같은 전에 모셔졌다. 이는 소요공이 고집한 것으로 소요공은 눈이 벌게져서 소리 질렀다. “내가 반드시 둘을 지킬 테니 하나도 내 시선에서 사라지게 하지 마라!”소요공이 그간 보여준 성격은 상당히 평화로워서 이렇게 미친 듯이 울부짖는 것은 역시 처음으로 건곤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정신이 쏙 빠졌다.희상궁이 상황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희상궁은 주방에서 오늘 탕을 준비하고 있다가 주재상과 태상황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심하게 당황해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건곤전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태상황과 주재상을 보고 희상궁의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전신에 경련이 일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어의가 다가와 진맥하더니 태상황은 격노해서 기혈이 치솟아 피를 토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 체질이 좋지 않은데 전투를 치르고 피곤이 쌓여 정신력과 기쁨으로 간신히 버티다가, 이제 분노와 절망으로 전신이 모래시계처럼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어의가 이마의 땀을 닦더니 중풍이 아닌지 걱정했으나 다행히 아니라고 했다.주재상의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했다.앞쪽 이마를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며 이마가 함몰되었는데 피는 멈췄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숨소리도 미약하고, 조금 뒤에는 귀와 코에서도 피가 나서 어의가 얼른 지혈했으나 지혈한 뒤에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원판과 어의 몇 명은 명원제의 지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명원제는 의자에 앉아 사람이 완전 넋이 나가 있었다. 공허한 시선으로 어의가 지시를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힘껏 의자 손잡이를 움켜쥐며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태자비를 불러라, 어서!”빠른 말 한 필이 궁에서 달려 나가 목여태감이 직접 초왕부로 갔다. 다른 말 없이 태자비에게 약상자를 챙겨 바로 입궐하자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만 했다.원경릉은 목여태감의 이런 당황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잠시도 시간을

  • 명의 왕비   제 2614화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해 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얼른 다가갔다. 주재상의 이마가 함몰된 것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상황을 물어봤다. 부딪힌 뒤로 귀와 코에서 피가 났다는 말에 놀라서 주재상의 귀를 보니 안이 솜으로 막혀 있어 얼른 꺼냈다.“태자비 마마 겨우 지혈해 놓은 것입니다.” 어의가 서둘러 말했다.원경릉이 고개를 홱 돌려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귀에 출혈이 있는데 누가 지혈하라고 했느냐? 그러면 뇌압이 상승하게 되고……”원경릉은 하던 말을 멈췄다. 희상궁을 놀라게 할지 걱정돼서였다.하지만 희상궁은 이미 놀라서 허물어진 상태로 만약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지 않으면 혼절했을 것이다.원경릉은 약상자를 열어 산소호흡기를 꺼내고 청진기로 심박을 쟀다. 심박이 상당히 미약해서 약상자에서 혈압계를 끄집어낸 뒤 주재상의 팔에 고정하고 재 보더니 원경릉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주재상은 혈압이 심각하게 낮고 쇼크 지수가 높았다. 얼른 수액을 걸고 다시 다른 검사를 진행했다.이런 일은 다른 사람들은 도울 수 없어 그저 비켜서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우문호는 아바마마도 한쪽에 앉아 계신 것을 봤으나 눈이 완전히 풀려서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위로했다. “아바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원 선생이 있으니 황조부와 주재상은 괜찮을 겁니다.”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우문호를 흘깃 보고 정이 가득한 눈을 보고 깊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렸는데 목젖이 조금 울렸다.우문호는 묵묵히 태상황 곁에 앉아 태상황의 손을 잡았다. 비록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태상황이 피를 토하고 주재상이 부딪혀서 다쳤다는 건 건곤전에서 뭔가 다툼이 일어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이 누구랑 다툴 수가 있지?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는 비록 가까이 앉아 계셨지만 심지어 눈도 맞추지 않았다.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께서 싸우셨나? 그럼, 주재상은 왜 부딪혔지? 우문호는 이번에 소요공을 봤다. 소요공은 건곤전 가운데 태사의에 앉아

  • 명의 왕비   제 2615화

    계속 관찰하자는 한 마디를 들은 사람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언제나 살려 낼 거라는 안도감을 줬던 태자비이기에 희망적인 말 한마디 없는 것을 보니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았다.태상황은 순간 가슴에 피가 솟구쳐 올랐다. 평생 주대유와 함께 겪어온 일이 두성없이 떠올랐고 별이 총총하던 밤, 속삭이던 어린 대유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평생 너랑 같이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어리고 학문이 뛰어나던 그 소년은 마침내 자신의 일생, 심지어는 목숨마저 북당을 위해 다 바쳤다.원경릉의 한 마디에 슬픔이 온몸을 타고 흘러 태상황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한 맺힌 한 마디를 내뱉았다. “황제를 나가시라고 해라!”이 말은 사람들에게 원경릉의 한마디에 못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아무도 고개를 들어 명원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목여태감이 조용히 다가가 전신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명원제를 부축해 일으켰다. 하지만 명원제는 헛발을 디디며 휘청거렸다..“아바마마!” 우문호가 얼른 달려가 목여태감과 같이 붙잡았다.명원제는 우문호가 붙잡는 것을 보고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비통함, 망설임, 당황스러움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분노가 그 사이에 있었다.명원제는 우문호의 손을 쳐내고 걸어갔는데, 뒷모습은 매우 쓸쓸해보였다.우문호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소요공을 쳐다봤다. 일련의 사태를 소요공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나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소요공은 반평생 용맹을 떨쳤지만 당장 지금은 뭘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그랬어, 먼저 죽는 편이 낫다고!”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도 무슨 예언 같은 건가? 그렇다면 하지 마. 싫어!’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세 늙은이의 마지막은 바람 앞의 등잔처럼 위태로웠다. 그들은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거 다 누린 뒤에 조용히 침대에 누워 사람들과 작별을 고한 뒤 남은 사람들의 아쉬움 속에 이 세상을 하직해야 했다. 절대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니다.소

  • 명의 왕비   제 2616화

    그러자 우문호가 상황을 보더니 물었다. “전에 받았던 충격으로 이번에 부딪힌 상처가 더욱 심각해 진 거 아냐?”원경릉이 목소리 낮춰 말했다. “전장에서 가벼운 뇌출혈이나 뇌진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 약을 복용하고 조리하면 출혈을 흡수시킬 수는 있었어. 그런데 오늘 부딪히면서 원래 상처가 터져 출혈량이 많아진 것 같아. 지금 뇌압이…… 그러니까 출혈이 일종의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어서 좀 심각한 상황이야.”희상궁이 입술을 덜덜 떨며 비통하고 초조한 눈빛으로 원경릉에게 물었다. “그럼… 죽나요? 그런 건가요?!”이 말에 원경릉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희상궁을 꽉 잡았는데 그제서야 희상궁의 손이 쇠붙이처럼 차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건곤전 안은 미동도 없었고 공기마저 거의 질식할 것 같이 답답했다. 하지만 희상궁은 오히려 평온해지더니 손을 빼고 조금의 생기도 없는 주재상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음속으로 이미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살아서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죽어서는 그 사람이 혼자 외롭지 않도록 뒤를 따라 가겠다고 말하는 듯 했다. 우문호는 갑갑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의혹들이 이미 많이 쌓였기에 오늘 건곤전에서 발생한 일을 반드시 알아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건곤전 안에서는 알아보기 뭐하니 옷깃을 여미고 걸어 나와 밖에서 시중 드는 자부터 편전으로 불러냈다.궁인은 자신은 아는 게 별로 없고 상선이 안에서 들었다고 하며 어쩌면 상선에게 묻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싸움이 일어났을 때 상선은 안에서 태상황의 새 담뱃잎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이 터졌을 때 상선은 다른 사람을 통해 얼른 밖으로 옮겨졌다. 태상황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보면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상성은 태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기에 그저 벽력같이 호통을 치실 때 다른 사람에 의해 방에 옮겨진 걱정만 하고 있었다. 마음 뿐이지 스스로 걸어서 건곤전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 명의 왕비   제 2617화

    명원제는 건곤전을 나와 침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종묘로 향했다.역대 제왕의 초상화 앞에 꿇어 앉은 명원제의 마음은 차가운 쇠붙이처럼 굳어 있었다. 주재상의 중태가 하나하나 눈 앞에서 펼쳐지며 태상황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태자를 폐하라는 고함을 치는 순간이 떠오르자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왜 태상황 폐하께서 이렇게나 격분하시는 건데?’한 마디도 하지 않고 30분간 꿇어 앉아 있으니 결국 목여태감이 다가와 말했다.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그만 일어나세요. 벌써 반 시진이 꿇어앉아 계셨습니다. 폐하.”“짐이 도대체 뭘 잘못한 거지?” 명원제는 무뚝뚝한 눈빛으로 침통함을 억눌러지만 의문이 자꾸만 떠올랐다. “짐은 보위에 오른 뒤로 선조의 가르침을 준수하며 조금도 해이해 지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심지어는 물난리를 진압하고, 북방의 전란을 수습했으며, 관계수리를 진작시켜 농업과 상업을 발전시켰어. 수년간 거의 아침 조회를 거른 적이 없고, 자축년 회강에 홍수가 났을 때 짐이 직접 회강으로 가 막힌 물을 트게 지휘했다네. 그때 삼일 밤낮을 눈 한번 붙이지 않고 관군들과 같이 홍수와 싸우다가, 며칠을 고열로 앓는 바람에 밤에 급히 경성으로 돌아왔으나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이재민을 구제할 방법을 논의했네. 짐이 비록 태상황 폐하와 비교할 수 없지만 아무리 자문해 봐도 선조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3년에 한 번 있는 수녀 선발조차 짐은 가능한 하지 않은 게 후궁의 암투가 화근이 되어 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색을 멀리했네. 국본 건은 짐이 우문군을 잘못 봤지만 그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실수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엔 적합한 사람을 뽑았으니 말이다.”“짐은 어진 인재를 기용해 상업을 진흥 시키고, 신예를 중용해 각 지역의 상인 연합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대주와 군사적, 상업적으로 동맹을 맺어 공동 발전을 추진해서 성과를 거뒀네. 이건 찾아보면 다 알 일이야. 짐이 계획했던 모든 일들은 태평성대의 군왕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397화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 명의 왕비   제3396화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 명의 왕비   제3395화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 명의 왕비   제3394화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 명의 왕비   제3393화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 명의 왕비   제3392화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 명의 왕비   제3391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 명의 왕비   제3390화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 명의 왕비   제3389화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