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듣자 원경릉은 약간 긴장됐다. 원경릉이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기억 상실이었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주진의 손을 꽉 잡고 처량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기억을 잃지난 않는 거지?회복하는 데는 얼마나 오래 걸려?”“15일 정도요. 선배의 대뇌엔 선배가 원래 주사한 약품이 있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이식 수술이 성공하기만 하면 선배의 모든 기억은 천천히 응집될 거예요. 심지어 어릴 때의 사소한 일이라 전에는 완전히 잊혔던 사실까지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되죠.”기억을 잃지 않는다는 말에 원경릉은 그제서야 안심했다. ‘기억이 없어져 남편과 아이들, 북당에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겠나...’잠시 후 마취약을 주사하자 원경릉은 금세 마치가 된 듯 눈을 감았다.주진은 원경릉을 들여보내기 전에 원경릉 엄마에게 전화해서 수술이 곧 시작된다고 알렸다.원경릉 엄마는 안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양여혜가 의사와 간호사가 노출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원경릉 엄마는 그저 연구실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기화는 주진이 원경릉을 수술실로 밀고 들어가는 걸 도와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진은 비록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병원에 있는 세 노인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해 어쩔 수 없었다. 주진은 지금 이 세계에서 그들을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주진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한편, 소요공은 다리를 깁스로 고정하고 있었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사람이 땅을 밟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태상황은 다행히 가벼운 뇌진탕으로 약을 먹은 뒤 두통이 그렇게 심하지 않고 구토도 하지 않았으나 조금 더 관찰이 필요한 상태이다.주재상의 수술도 준비 중이었다.원경주는 엄마가 연구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원경릉 엄마는 심장이 너무 뛰고 걱정이 되어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원경주는 그녀가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할 게 더
원경주는 이쪽에 지식이 없었기에 주 재상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괜찮을 겁니다. 절 믿고 이쪽으로 오세요. 머리 밀어 드릴게요.”주 재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경주의 부축을 받아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태상황과 소요공 또한 미심쩍어했다. ‘머리통을 열었는데 살아 있을 수가 있다고? 전에 전장에서 적의 머리통을 깼을 때 바로 죽었는데 주 재상은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다는 거야?’머리를 다 밀자 동글동글한 것이 딱 볼링공 같은 게 오히려 젊어 보였다.하지만 태상황과 소요공은 주 재상의 상태가 영 이상하게 보였다.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없어졌다니..!원경주가 나가자마자 주 재상은 입을 삐죽 내밀며 태상황과 소요공에게 물었다. “정후 집안에 큰 조카 수염 나 있었어?”태상황과 소요공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수염은 없었어.”주 재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더러 자꾸 믿으라는데 정후 집안에 믿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수염도 안 났다면서. 옛 어른들이 수염도 안 난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미덥지 못하다고 했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을 지금 어떻게 믿어?”“그러니까!” 소요공은 주 재상을 아무리 쳐다봐도 익숙해 지지가 않았다. 특히 이 동글동글한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아이고 무서워!하지만 곧 닥칠 일이고, 수술하지 않으면 주 재상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고 하니 소요공은 그저 격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큰 조카, 그래도 꽤 성실해 보였어. 태자비도 그 사람을 아주 믿고 있고. 그러니까 우리 한번 믿어보는 게 어때?”셋이 같이 손을 맞잡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태상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 재상의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주었다. “이마가 춥겠어!”“조금..” 주 재상이 대답하고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다. “십팔매 말이 맞아. 태자비가 저 사람을 믿는다는 건 저 사람이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게 틀림없어. 그리고 전에 그 사람이 태자 전하를 치료했잖아. 말 안 했지만, 만
원경주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보세요, 뭐라고요? 늙어 보인다고요?!”소요공도 말을 보탰다. “맞아, 늙어 보여. 인자해 보인달까? 비록 수염은 나지 않았지만 딱 봐도 5~60세는 돼 보이는 게 경험이 많아 보이군.”주 재상의 둘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온화한 목소리로 원경주에게 집안 내력을 물었다. “자네 몇 살에 의원이 됐는가? 손자는 몇 살이고? 집안 사람들은 다 여기 있지? 북당으로 돌아간 적은 없고?”원경주는 많은 질문에 그만 슬퍼졌다.손자는 고사하고 원경주에게는 와이프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원경주는 얼른 몇 마디 얼버무리고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수술 전에 주진도 다가와 원경주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수술하려고 주 재상을 데리고 나갈 때 검사하러 간다고만 하세요. 다들 걱정하시게 수술 시작한다고 하지 마시고. 저분들은 걱정하면 가만히 앉아계시지 않고 나가서 난리를 치실 것 같아서요.”원경주도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경릉의 상태를 묻자 주진이 답했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걱정은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양 닥터는 이런 수술 경험이 많아요. 선배 수술은 당신이 주 재상 수술하는 것과 난이도는 같지만,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뿐이에요.”원경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심하고 양 닥터에게 맡긴다고 해도 동생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기전까지는 안심이 안 되네요.”“안심이 안 돼도 그 생각하실 틈이 있나요! 얼른 수술 준비하셔야죠!”“예! 알겠습니다!”간호사에게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 오는데 다시 검사를 받는 것으로 검사 시간이 어쩌면 약간 걸릴 수도 있으니, 검사를 마치면 곧 수술할 수 있도록 했다.세 사람은 믿겠다는 듯 고개글 끄덕였고, 간호사는 조심히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서 나왔다.두 사람한테 주 재상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주진이 특별히 들어와 배달 음식을 먹이고 티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병실엔 이미 티비가 있었지만 세 사람이 들어와서 그동안 줄곧
한편, 북당.우문호는 아이들과 이미 경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만두는 가는 길 내내 거의 잠들어 있었다. 우문호는 고생한 만두를 안고 때때로 혹여나 만두가 깼는지 잘 살폈다.만두가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우문호를 들었다 놨다 했기에 더 잘 보호해야 했다. 다른 아이들도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한참 뒤 만두가 깨어나 눈을 비비자, 아이들이 전부 둘러싸고 만두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러자 만두가 입을 열었다. “재상과 엄마는 수술 중이고 엄마 이번 수술은 6시진동안 지속될 거래요. 이제 외할머니 곁에 있어 드려야 해서 제가 계속 이 곳에 있을 수 없어요. 외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거든요. 걱정돼요.”“그래, 우리 만두 효자네!” 우문호는 대견하다는 듯 만두를 꼭 안고 목이 메어 말했다.만두가 다시 자려고 하자 우문호가 한 마디 먼저 물었다. “수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어? 그 사람들 다 실력 좋은거지?”“그 얘기는 따로 없었어요, 하지만 주진이 우리보고 안심하랬어요. 엄마한테는 반드시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만두가 말했다.우문호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손을 뻗어 만두의 볼을 만졌다. “알겠어, 이제 자러 가자.”“아빠, 좀 쉬세요. 눈이 너무 빨개요!” 만두는 우문호의 눈이 온통 붉은 실핏줄로 가득한 것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다른 아이들도 우문호에게 달라붙었다. 엄마가 없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아빠는 괜찮아. 얘들아, 자 자!” 우문호는 만두 등을 톡톡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만두는 외할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에 눈을 감자마자 곧 바로 잠에 들었다.서일과 나 장군은 밖에서 마차를 모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커 안에서 하는 얘기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궁금해 미쳐버리겠는 서일이 가끔 가리개를 젖히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문호를 쳐다봤다. 소식이 오면 우문호가 얘기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 가리개를 젖히자 우문호가 드디어 작은 소리로 얘기해 주었다. “원 선생과 재상은 수술 중이고,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
태상황과 소요공이 티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식사를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검사하러 간 주 재상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태상황과 소요공은 걱정돼서 티비 속에 소인이나 주진의 흥미 있는 얘기 따위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연신 밖을 내다보며 주 재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러고는 불안한 마음에 주진에게 말했다. “너희들 몰래 재상 머리를 열기만 해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곁이 있어야 해. 그 녀석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심지어 늙은 데다 눈도 멀어서 무서울 거라고.”주진이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같이 계실 수 있도록 꼭 얘기해 드릴 테니까요.”사실 태상황은 주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 교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항상 그런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무서운 말투로 소리쳤다. “네가 감히 과인을 속인다면 과인이 네 목을 칠 것이다!”태상황은 주진에게 자신의 위엄을 알려야지, 그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서 아무도 자기한테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몰래 자신들을 비웃는 것이 영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속일 리가 있나요. 누가 감히 여러분들을 속이겠어요?” 주진이 달래며 속으로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이 두 사람이 주 재상이 개두술 하는 걸 보면 깜짝 놀랄 건 말할 것도 없고 피를 보는 순간 원경주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게 뻔했다. 직접 보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태상황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서 티비로 눈을 돌렸다. 주진은 그들을 오래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몰래 메시지를 보내 로양에게 응급실에 사정 청취하는 교통경찰에게 전화하도록 했다. 그들이 빨리 와서 두 사람에게 질문을 유도하도록 말이다.역시 주진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태상황은 수도 없이 문밖에 주 재상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결국 이불을 걷어차 버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주진에게 물었다. “어떻
교통경찰은 오기 전에 상부로부터 미리 통지를 받았는데, 상해자 두 사람이 경증 혹은 중증도의 망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도 경찰은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했지만 아무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저들 상태는 이미 중도를 넘어 심각한 중증으로 보였다.경찰이 이름과 직업을 물을 때 소요공은 원경릉의 분부를 받들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원경릉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하면 유효한 신분증을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교통경찰은 점점 미간을 찡그리며 이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나 있겠어?’그들이 상황을 서술하자 경찰은 말없이 주요한 단어들을 기록했다. 말 없는 마차 2대가 전후로 그들을 쳤는데, 첫 번째 마차와 부딪혔을 때는 허리와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고 했다. 두 번째 마차가 쳤을 때는 경공을 사용했으나 실패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으나 놀라서 일어날 수 없었으며, 또 마차에 치일까 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 뒤로 또 세 번째 말이 없는 큰 마차가 자기들에게 왔다고 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남녀가 다 있고 자신들을 들어서 차로 옮겼고 상대가 공격성 무기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에게 낯선 길이라 이곳엔 엄호할 근위병도 없어서 참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흰옷을 입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다는 것을 듣고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교통경찰은 한마디로 정하기 어려운 기록을 마치고 물었다. “두 분을 친 기사는 당신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지 않고 도망갔어요. 그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정산하고 돌아오겠다고 설명한 적이 있나요?”“없어. 그 두 사람은 아주 쓸데없이 말이 많아. 마차로 따라오는 내내 쓸데없는 소리만 지꺼렸다고! 그들은 돈이 없어 보였어.” 소요공이 옆에서 발굽 모양 금을 꺼내서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돈이 없지
교통경찰이 질문할 동안 의료진과 원경주가 주 재상을 데리고 병실로 돌아왔다.태상황과 소요공은 이제서야 주 재상 혼자 개두술을 받고 온 것을 확인하고는 화가 나서 뚜껑이 열렸다. 태상황은 원경주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교통경찰이 얼른 말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냥 교통사고 따위 조사하러 와서 어쩌다가 도굴 사건과 의료진 폭행 건을 대처해야 하는 거냐고?’결국 원경주를 때리지는 못했지만, 태상황과 소요공 앞에서 원경주는 신용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주진도 같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게다가 주 재상이 수술 후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비록 정상적으로 호흡 했지만, 몸에 이렇게 많은 물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너무 두려워서 태상황은 주 재상을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여기 남아있을 수 없다고 했다.원경주는 하는 수 없이 결국 원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쨌든 나이 많은 노인이고 원 교수가 원경릉의 할머니 사진을 꺼내왔는데, 두 사람에게 자신이 사진 속에 이 나이 든 여자분의 아들이라고 하자 태상황이 그제서야 진정됐다. 태상황은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는데 비록 복식이 다르고 머리모양이 달라도 아무리 봐도 생긴 건 똑같았다.“자네가 주디 아들이라고? 그런데 자네는 대흥 사람이 아닌데? 여기가 설마 대흥인가?” 태상황이 의혹을 느끼며 물었다.“아니요, 대흥은 아닙니다. 사실 제 어머니도 원래는 이곳사람입니다.” 원 교수는 두 사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이 일은두 분께 자세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어쨌든 경릉이가 수술을 마치면 두 분은 돌아가실 테고, 여기서 오래 머무실 필요가 없으시니까요.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경릉이 수술이 끝난 뒤 연구실에서 15일은 있어야 하고 15일 후에 반드시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세 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여기서 적어도 두세 달은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제 생각에 감춰서 좋을 게 없지, 싶어 얘기 드리는 겁니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원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긴장한 듯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예, 우리 곁에서 자랐죠.”“그러니까 태자비는 정후부와 자네 곁에서 동시에 자랐다? 그런가?” 태상황이 원 교수에게 말했다.원 교수가 땀을 닦으며 답했다. “에…. 예, 하지만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원 교수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딸이 얘기 안 했더라니, 이건 단박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모를 땐 상식에 어긋난다며 오해하기 쉽고, 자신도 쉽게 상대를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둘은 사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후부에서 자란 것은 원경릉이고 제 곁에서 자란 아이는….”“자란 아이는.. 뭐?” 두 사람이 원 교수를 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그러자 원 교수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역시 원경릉입니다. 하지만 정후부의 원경릉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자네 말은 원경릉이 두 명이란 소리군. 그러면 어떤 원경릉이 태자비인가?”원 교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둘다 입니다.”“그러니까 태자비가 둘이다?”원 교수가 당황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소요공과 태상황이 원 교수를 한동안 보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아셨다고요?”“응!” 태상황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원 교수를 바라봤다. 태상황은 주디의 아들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눈치챈 것이다.원 교수는 약간 마음이 급해졌다. “정말 아시겠습니까?” ‘설명을 제대로 못 했는데 어떻게 바로 안다는 거지?’태상황이 원 교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해했다는 듯 답했다. “이해했네. 우리가 자네와 주디 관계를 얘기해 보도록 하지. 자네는 주디의 아들이야? 주디는 대흥국 사람이 아니고. 주디는 여기 사람이지. 나중에 고향을 등지고 대흥으로 갔어. 이렇게 된 거 맞지?”원 교수는 어리둥절했으나 듣고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된 겁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
사건은 결국 크게 번져지고 말았다. 의도가 불순한 사람들이 소요공 일행에게 해명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신시의 유명한 목호에 도착한 뒤였다. 목호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댓글이나 메시지를 볼 시간조차 없었다.지금 추 어르신은 노인이 시를 읊고 글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려, 어디를 가든 꼭 한 편의 시를 남긴 후, 돌아가서 희 상궁에게 보여주려고 했다.그들에게 있어 인생은 이미 반 이상 지나온 것이었다. 과거에 300년을 살겠다고 다짐한 만큼, 수많은 일을 겪고 수많은 적을 마주했기에, 이번에 만난 유아독존은 그냥 한 번 겨루었을 뿐이기에 바로 잊혀졌다.목호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차로 독고 도로로 향했다.그들은 캠핑카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가며 길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편집할 시간이 없어 업로드는 하지 못 했다. 편집으로 추 어르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었다 보니, 그가 그동안 풍경을 놓치는 일도 많았었다. 눈도, 손도 한 쌍뿐인 데다, 다른 두사람은 편집을 전혀 몰랐기에 북당의 수보인 추 어르신 혼자 애써야 했다.그래서 영상 업데이트는 잠시 미루고, 길가의 풍경을 잘 감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짧은 영상 제작에 정신을 빼앗겨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초심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들과 여행 중인 배낭 여행객, 캠핑카 족들이 줄줄이 따라붙으며 영상을 빨리 올리라며 재촉했다.댓글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쫓아와서 소리치며 재촉하는 모습에 추 어르신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내심 이렇게 자신들을 좋아해 주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추 어르신은 무상황과 십팔매에게 대결을 시켰다. 그리고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해,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바로 영상을 올렸다.영상에 무상황이 처음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무상황의 무공은 소요공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술이 다양해서
유아독존은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그는 링 위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고, 평생 이렇게 큰 공포를 느낀 적 없었다. 눈앞의 이 노인은 공격할 때,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었던 데다가,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장군과도 같은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어, 그저 한 번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그는 다시는 이런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아졌다.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속에서 그는 자신의 거만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비열함 때문에 앞으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소요공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살려달라고 빌지 않겠다면, 그냥 일어나거라. 난 어린애랑 진지하게 겨룰 생각이 없으니."처음에는 소요공도 유아독존이 꽤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밥이나 축내는 무능한 자였다. 이런 사람이 수백만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팔로워 수가 그보다 적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괜히 기분까지 상했다.유아독존은 수치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소요공의 표정에 갑자기 불쾌한 기색이 드러나자, 다시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벅터벅 무대를 내려갈 뿐이었다.소요공은 이번 대결로 엄청난 스타가 된 반면, 유아독존은 몰아치는 욕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더 이상 아무런 영상도 올리지 않았다. 팬들은 그의 이전 영상이나 D을 통해 사과를 요구했다. 유아독존은 과거 소요공의 영상에 댓글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며칠 동안 여러 매체가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보내 방송 출연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DM도 보지 않고, 어떤 연락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인기를 이용하지 않았다.게다가, 이 일로 일정을 늦추지도 않았다.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보고 나서야, 팬들은 그들이 이미 새로운 도시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영상에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