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2819화

Author: 유애
“아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태상황이 손을 휘휘 저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당시 안풍 친왕이 저한테 그랬어요. 저를 황제로 등극시키는 건 조정의 모든 중신이 상의한 결과였다고, 상의에 참여한 조정 신하는 모두 80명이었는데 반대하는 사람 하나 없이 전원이 지지했다고 했단 말입니다.”

건종 태자와 휘종제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둘 다 당혹스러워했다. ‘당시에 그랬다고?’

휘종제가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결정된 뒤 확실히 조정의 신하들을 부르긴 했지. 하지만 모든 조정 대신이 다 반대했어. 지지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거든. 그러자 안풍 친왕이 신하들에게 한마디 했지. 우문호가 보위에 오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관직을 사임하고 돌아가 고구마나 심어 먹고 살아라, 대대손손 벼슬은 할 수 없다고 했더니 신하들이 전부 동의했지.”

태상황이 안색이 확 변했다. 절대 생각도 못 한 일이였다. ‘그런 상황이었을 줄이야.’

태상황은 이를 갈며 새로운 학문인 영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오 마이 갓!”

당시 휘형이 돌아와서 그들에게 한 말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섯째가 보위에 오르게 하는데 십팔매와 주 꼬맹이가 보조를 맞춰야 하고, 너희들 셋은 특출난 인재로 북당의 정치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할 운명이라며 장장 반 시진 동안이나 입에 침을 튀겼었다.

그 말이 그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고, 북당이 패권 대국이 되는데 자신들이 운명적으로 선택된 존재라고 느끼게 했다.

태상황이 보위에 오른 뒤 북당은 온통 엉망진창이었고 전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백성은 피폐했다. 가장 비참했던 건 바로 가난으로,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 시기를 정말 힘들게 지났다. 사방이 곤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때마다 휘형의 말을 떠올렸고, 모든 대신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세 사람을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진짜 말처럼 됐다.

그때 대충 명단에서 아무나 짚은 게 마침 우문호였을 뿐이지, 누구든 황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풍 친왕이 아마 다른 사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2820화

    자기가 생각하고도 화들짝 놀랐다. 이 일은 너무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다.하긴 자신이 겪어왔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가 뭐?태상황을 생각하니 기뻤다. ‘그 나이에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다니 얼마나 행복하겠어.’원 교수도 안심이 됐다. 여기 올 때 딸이 상대가 물건을 물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머릿속으로 환불금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말발굽 금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말발굽 금은 제 가치로 팔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속인 게 아니라 안심이다.한참 뒤 문을 열고 소요공이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가세요, 우린 내일 가도록 하겠습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죠?” 원경릉이 소요공의 붉어진 두 눈을 보고 묻자 소요공이 고개를 흔들었다. “있을 리가 없죠. 있다고 하면 경사죠. 태상황 폐하 입장에서는 이번에 온 최대 수확이 바로 이걸 겁니다!”이 말로 원경릉의 추측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거 잘됐네요. 우리 먼저 돌아갈게요. 잠시 계시다가 돌아오고 싶으시면 전화하세요, 제가 모시러 올 게요. 전화하실 줄 아시죠?”소요공이 안심하라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당연히 가능하지요, 전화를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가봐요, 어서. 주저하지 마시고!”“알았어요. 저희 갈게요!”원경릉이 얼른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 태상황은 삼 선생님 곁에 앉아 계속 삼 선생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원 교수와 같이 나오는데 우 회장이 어리둥절해하며 오늘 아마도 그에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같이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돌아가 주진을 찾아 지난 일을 물었다.주진도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가만있었다. “아마도 정말 하늘은 뜻이 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나 봅니다!”주진이 이전 일을 들추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진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들추면 가슴이 몹시 아플 것이다. 돌아가는 것과 돌아가지 않는 것 사이에서 현실과 미래 중에 버리기 힘든

  • 명의 왕비   제 2821화

    휘종제 대 저택 안에 군신과 부자는 여전히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중이었다.예전에 휘형이 그들을 데리고 상처를 치료하러 왔다는 말에 태상황은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휘형은 나중에 어떻게 돌아갔어요?”휘종제가 말했다. “돌아가서 지켜보겠다고, 북당이 태평성대를 이루면 꼭 돌아오겠다고 했지.”태상황이 경건한 마음이 들어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휘형은 북당을 위해 정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이에요.”휘종제가 콧방귀를 뀌었다. “원래 돌아가기 싫었는데 장인이 돌아가라고 해서 간 거야. 안 돌아가면 아내를 아프리카에 수박 농사 보내고 부부는 10년에 8년은 떨어져 지내게 할 거라니까 방법이 있나, 돌아가야지.”태상황이 큰 결심한듯 이를 갈았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죠, 업보를 제대로 갚아주지 못했군요!”모두 깊이 공감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안풍 친왕 때문에 가슴이 철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소요공의 관심사는 평생 백성들과 다른 엉뚱한 부분일 것이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던 소요공이 의문을 제기했다. “휘종제 어르신은 왜 건종 태자 폐하보다 이렇게 젊어 보이십니까?”휘종제 안색이 순간 미세하게 변하며 횡설수설했다. “이게…. 무예가 고강하면 신체가 보양 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건조에 태자가 건조하고 매정하게 한마디 했다. “쟨 보톡스 했어!”소요공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보톡....스요?” ‘그 작업을 하면 영원히 청춘을 간직할 수 있는 건가?’주 재상이 소요공을 발로 툭 찼다. “보톡스. 네가 여기 지식이 없어서 그러는데, 미용 수술의 하나로 태자비 마마께서 과학 상식 설명할 때 얘기해 주셨어.”소요공이 공부가 젬병인 사람 특유의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얘기하셨다고? 난 못 들었는데...”주 재상이 신경 쓰지 않고 휘종제에게 물었다. “왜 보톡스를 하셨나요? 젊어 보이기 위해서요? 기왕 그러실 거면 머리는 왜 염색 안 하셨나요?”“두피가 예민해서 염색하면 머리에 계속 딱지가 앉거든!” 건종

  • 명의 왕비   제 2822화

    전화를 걸고 소요공이 말했다. “삼 선생님께서 태자비 마마를 좀 뵙자고 하십니다. 선물 챙겨오시는 거 잊지 마세요, 삼 선생님이 손위 어른이십니다.” 손을 꽉 쥐고 고개를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엄청난 비밀이 있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엄청난 비밀입니다!”전화를 마치고 열띤 모습으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모습이 흡사 늘 전화하던 사람처럼 경쾌했다!소요공은 속으론 좀 떨렸지만, 자신이 정말 이 세계에 융화된 느낌이 들었다.원경릉은 주진과 같이 있다가 소요공의 전화에 웃음을 터뜨리자 주진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소요공이 저더러 오래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원경릉이 웃었다. 소위 날벼락 같은 거대 비밀이 뭔지 원경릉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그런데 소요공의 흥분한 말투를 듣고 있으려니 어찌나 웃기는지! “그들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엄청난 비밀이죠. 누가 꿈이나 꿨겠어요? 북당의 건종 태자와 첫 번째 황제가 기꺼이 권력을 내려놓고 여기 와서 은거하고 있을 줄을? 사실, 휘종제 폐하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하는 일을 이뤘잖아요. 곤룡포를 몸에 둘렀다는 건 절대적인 권력을 지녔다는 말인데, 인간이 가장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바로 권력 아니겠어요. 휘종제 폐하는 정말 대단하세요!”원경릉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북당의 우문군과 안왕은 그 황위를 빼앗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지 않았던가? 하지만 휘종제는 반대로 황위에서 손을 뗐다. 내려놓겠다고 말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내려놨다. 얼마나 도량이 넓은가? 얼마나 담담하고 욕심이 없냔 말이다.선물을 사서 차를 몰고 저택으로 갔다. 정정당당하게 진짜 조상님을 알현하러 가는 것이다.그리고 휘종제는 증손주 며느리를 보자 기쁨에 겨워했는데 특히 아들 5명에 딸 하나를 낳았다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놀라며 그 자리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좋아, 우리 우문 가문의 사람은 역시 달라. 태자는 아주

  • 명의 왕비   제 2823화

    남강에서 서신이 왔다. 아홉째와 만아가 태자비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경성으로 돌아와 당장이라도 축하하고 싶다며, 강북의 못난이도 경성으로 와서 홍엽을 보겠다는 내용이었다.남강이 평정된 뒤로 소소한 전투가 있었으나 이제는 다 해결되어 지금 강북과 강남은 아직 완전한 평화는 이루지 못했지만,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남강이 진정 하나로 통일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믿음이 생겼다.이날 어서방에서는 모두가 냉대인의 혼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태부는 그전까지 매우 한가한 상태였다. 지금 조정에는 신경 써야 할 만큼 큰일이 없고, 태자가 원래 태부를 찾아가 수업을 받았으나 지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핑계로 안 간 지 꽤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일 할 일이 없다 보니 재상의 혼사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위 태부 생각에 남자는 생업이 있은 다음엔 가정을 이루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한가로운 삶이 좋아도 꼭 혼사는 치르셔야 합니다. 남자는 70~80이 되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해도 자기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으면 결국 한으로 남아요. 재상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역시 혼인을 좀 서두르시죠. 제가 몇 명 소개해 드릴까요?”냉정언이 손을 내 저으며 막았다. “아뇨, 나랏일이 중요하지요!”위 태부가 우문호에게 소리쳤다. “전하, 재상의 일에 신경을 좀 써주세요!”우문호는 턱을 받치고 저녁에 딸을 데리고 나가 놀 궁리 중에 갑자기 위 태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건성으로, “신경 쓰라고? 그래, 신경 쓰도록 하지.”태자가 신경 쓰겠다는 말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집 아가씨가 곱고 지혜롭다더라, 어느 집 아가씨가 덕과 재능을 겸비했다더라, 어느 집 아가씨가 맏며느릿감이라더라.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녀 품평이 이어지는데 문득 보니 주 재상이 없다.우문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재상이 낯을 가리지!”서른 몇 살짜리에 낯 가리는 남자아이라니!냉정언은 궁정 복도에 서서 봄볕에 만발한 꽃을 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복사꽃이 피었는

  • 명의 왕비   제 2824화

    “그러니까 혼인해서 자식을 낳으라는 겁니다.” 냉정언이 말했다.홍엽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분간은 생각 없습니다. 전 딸이 있으니까요.”“태자 전하께서 인정하지 않아요!” 냉정언이 말했다.홍엽이 껄껄 웃었다. “전하는 결정권자가 아니시죠.”하지만 냉정언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군주를 좋아하십니까? 전에 황태손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시더니.”“황태손들…. 도 좋긴 하지만.. 막 태어났을 때 기억 나시나요? 제가 처음 군주를 직접 봤을 때 그렇게 똘망똘망하게 저를 볼 수가 없었어요. 눈도 감지 않고 군주의 눈동자에 비친 제 모습이 보였어요. 그 순수하고 깨끗하면서 티끌 하나 없는 모습이라니.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도 군주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원숭이도 비교할 수 없나요?”“달라요, 달라.” 홍엽의 눈에 어색한 눈빛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제가 내려놔야 하는 거죠. 원숭이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데 계속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입니다.”냉정언이 홍엽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사람은 하상 가슴에 희망 하나는 꼭 품는 법이지요!”냉정언은 일어나 나가더니 산더미 같은 국사에 다시 파묻혔다.홍엽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기 어깨를 보고 피식 웃더니 검을 차고 나갔다.명원제는 남순하는 길에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갔다. 보위에 오른 뒤로 경성을 떠나본 적이 없어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그저 상소문 속에나 있고 세상 시인 묵객들의 작품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 상상에 불과했지만, 이제 직접 나가게 되니 세상이 크고 넓다는 게 실감이 났다. 궁이란 한쪽 구석에 있던 거에 비하면 세상은 아주 널찍해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회왕을 따라 내려가는 때가 마침 모내기가 한창이라 눈에 보이는 건 전부 파릇파릇한 못자리였다. 이곳은 부요한 남방이고 역시 북당의 곡창지대라 할만했다. 전에 상소문에서 보던 것이 이렇게 눈앞에 직접 펼쳐지자 명 원제는 심호흡하며 가마에서 내려 호비와 같

  • 명의 왕비   제 2825화

    태상황이 전에 혼례를 치를 거면 너무 초라하게 하지 말고 반드시 성대하게 하라고 했지만, 원 교수 집에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혼례에 돈 쓰는 게 아까워서가 아닌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모두가 알다시피 원 교수가 시집을 보내는 건 수양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보낸다고 해도 결혼식장에 얼굴을 비추는 건 아마 병원 관계자 정도로 집안 친지들이 올 거란 보장이 없었다.그리고 두 번째는 신랑 쪽 친척이나 친구가 없는데 헛돈 쓰면서 피로연을 성대하게 하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 교수와 그의 아내는 상의 끝에 태상황에게 다시 한번 고려해 보라고 하기로 했다. 피로연은 예약하지 않으면 좋은 호텔을 찾기 어렵다.하지만 태상황은 삼 선생님 저택에서 놀고 있는 모양으로, 삼 선생님은 세 사람을 각별히 생각했다. 골동품을 하는 사람 눈은 어떻게 된 건지 사람까지 골동품이면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세 골동품이라!원 교수가 태상황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번 알림이 울리자 받기는 했는데 전화 너머에서는 소음만 들리고 서로 소리치고 난리였다. 소요공은 태상황에게 전화기에 손가락을 대고 동쪽으로 밀라고 하고, 주 재상은 동쪽은 오른쪽이라고 했다. ‘아니 뜬금없이 동쪽은 뭔데?’ 태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성질을 부렸다. “과인은 손가락 살이 벗겨져서 못 민다고. 어라, 됐네.”“여보세요!” 마침내 태상황이 전화기에 대고 말할 수 있었다.원 교수가 얼른 말했다. “여보세요, 여섯째 어르신이십니까? 어르신. 애들 혼사 문제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그…. 전에 성대하게 치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와 아내가 상의 한 결과 성대하게 치를 경우 손님이 많지 않을 수 있어서 말이죠. 어쨌든 사위 쪽에서 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어르신들 몇 분이 다인 데다가, 저희 쪽도….”“기다려 봐, 과인이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까.” 태상황이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소리치자, 옆에서 소요공이 얼른 말했다. “다 들리니깐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 없

  • 명의 왕비   제 2826화

    태상황이 응했다. “좋아요, 오세요. 우리 얘기 좀 합시다!”원 교수는 전화를 끊고 아픈듯 귀 안을 만지작거렸다. 만 년 묵은 귀지도 전화 소리에 울려서 떨어져 나올 판이었다.그리고 원 교수는 태상황이 이번에 논의하자고 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양가 가장이 아이들의 혼사를 놓고 결정을 내리는 자리란 것을 깨달았기에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원경릉은 엄마와 자신의 아들에게 전화해서 가급적 이쪽 덩치를 키우기로 했다. 무조건 오늘 결판을 내리겠다는 생각이였다. 원경주가 차를 몰고 부모님을 태웠는데, 대저택으로 가는 길에 원경릉 엄마가 물었다. “벌써 계산 다 해봤는데 우리 쪽은 많아 봤자 병원 동료들이랑 친구 일부뿐이에요. 집안 친척들에게 전화해 봤는데 딸이 결혼한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친딸도 아니고 오가다가 알게 된 수양딸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진짜 피붙이도 아닌데 크게 할 필요 없다며. 아무래도 집안에서는 별로 안 올 거 같아요.”“지금 태상황이 그러시는데 그쪽은 올 사람이 있다는군.” 원 교수가 말했다.원경주가 웃음을 터트리며, “북당 사람을 전부 데리고 오시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 경호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뛰어내리면 금방이라도 올 수 있다고.”“아니냐?” 원 교수가 당황하며 묻자 원경릉이 답했다.“당연히 아니죠. 주진에게 물어보니 경호를 통한다고 해도 정확하게 오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을 잘못 들어가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해요. 제가 한번 거기 들어갔을 때는 아직 법칙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성이 분명하지 않았어요. 오락가락했다가는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기 쉽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가는 광원의 길을 잘못 봐서 실수하게 되는 거죠. 어쨌든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에요.”“시공간 터널로 대규모로 사람이 올 수는 없을 거야. 아니면 이 세계가 엉망이 되지 않겠어?” 원 교수가 말했다.“누가 아니래요?” 원경주가 자기 입으로 이유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주진이 쉽

  • 명의 왕비   제 2827화

    저택에 도착해 전에 왔던 본관으로 들어가자, 태상황이 한마디 했다. “어쨌든 혼례는 성대해야 합니다, 초라해서는 안 돼요. 피로연을 하는데 사람이 별로 없으면 전문 바람잡이 꾼들이라도 불러다 먹으라고 합시다. 백성과 기쁨을 나누는 거죠!”원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으십니다. 친척이나 친구 관계로 청첩장을 받지 않으면 누가 와서 밥을 먹겠습니까?”태상황은 고집이 상당한 사람으로 젊을 때 싸움 좀 해본 사람이었다.삼 선생님이 원 교수에게 말했다. “하객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피로연은 두 집안이 한데 어울리는 자리니 반드시 성대하게 치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나요? 날짜가 정해졌으면 호텔을 정하면 되겠군요. 저는 리젠트 호텔을 통째로 빌렸으면 합니다!”주 재상이 물었다. “리젠트 호텔은 식탁이 몇 개죠?”“리젠트 한식당이 3층으로 돼 있고, 한 층에 테이블이 80개는 너끈하니까 전부 합쳐서 대략 200개 정도 되겠군.” 삼 선생님이 말했다.주 재상이 놀라며 물었다. “탁자 200개요? 그렇게나 올 사람이 많습니까?”‘어째 오늘 삼 선생님께서 이렇게나 배포가 크시지? 낯설다 낯설어.’“사람 수는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까지 국내외를 망라한 정·재계 인사들과 적지 않은 사귐이 있어서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 자리를 채울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결혼식에 필요한 돈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내겠습니다.” 삼 선생님이 호기롭게 기꺼이 거액을 투척하기로 했다.원 교수가 당황해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건 안됩니다. 어떻게 제가 선생님께서 다 내시게 할 수가 있습니까?”“왜 제가 낼 수 없죠? 제가 신랑 쪽 가장이니 제가 내는 게 마땅하죠!” 삼 선생님이 말했다.원 교수 가족은 이해가 안가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봤다. ‘삼 선생님께서 어떻게 우문호 집안의 가장이 되는 겁니까?’ 원 교수 가족이 의문의 눈길로 태상황을 바라봤는데, 태상황은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대충 주워 삼켰다. “삼 선생님은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397화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 명의 왕비   제3396화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 명의 왕비   제3395화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 명의 왕비   제3394화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 명의 왕비   제3393화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 명의 왕비   제3392화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 명의 왕비   제3391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 명의 왕비   제3390화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 명의 왕비   제3389화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