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아가씨 눈빛은 오히려 고요해졌다. “전 조금도 겁나지 않아요. 오히려 평생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게 두렵죠.”잠시 후 주지가 물었다. “그 여자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만나볼 수 있나요?”“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녀가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할지는 더더욱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아가씨와 위왕 전하의 일이지 그 여자분과는 무관하니 그녀를 더는 괴롭히지 말았으면 해요.”주지는 그 여자가 고의로 심술궂게 군다고 생각해 비웃는 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가 복을 걷어찼네요.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마다하다니. 앞으로 후회할 거예요. 우리 강북부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위왕 전하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위왕 전하를 한 번 보겠다고 비바람이 불든 눈보라가 치든 종일 자리를 지키며 위왕 전하께서 군영이나 산에서 돌아오시는 걸 기다렸다가 한번 보는 것으로 한 달은 행복해해요. 이런 마음을 당신네 경성 귀부인들은 모르시겠군요.”이 말은 적의로 가득 차서 원경릉도 담담하게 웃을 뿐이였다. “어쩌면 전 이해 못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제가 드리는 말은 같아요. 정화 군주를 찾아가지 마세요. 두 분 일은 그녀와 무관해요. 제가 원래 아가씨를 설득하려고 했는데 아가씨에게 이미 결심이 섰으면 제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겠군요. 가세요!”주지는 여전히 노여움을 띤 얼굴로 비꼬았다.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뭐든 당신들이 다 보호해 줘야 하고, 그런 사람이 위왕 전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나요?”그러자 원경릉의 낫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가씨가 위왕 전하를 좋아하고, 그녀는 자기 삶을 살면 되지 아가씨가 그 사람을 공격해서 어쩌자는 건가요? 됐으니까 이만 가시지요!”주지가 벌떡 일어나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경성 사람들은 다 이렇군요. 희로애락을 모르고 체면만 차릴 줄 알지,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네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그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성큼성큼 나갔다.녹주는
위왕이 말했다. “내가 뭘 한다는 것이냐? 물건 남겨봤자 소용없어. 그리고 계속 강북부에 있을 거라 앞으로 일 년에 한 번도 경성에 오기 힘들 것이야. 식구도 없고 봉양할 노인도 없으니 봉록만으로 나 하나 먹고살기는 충분해.”“정화 군주도 원할까요?” 원경릉이 물었다.“모르죠. 일곱째 시켰으니까 잘하면 술 한잔 사주고 못 하면 한 대 패주면 됩니다. 술이냐 주먹이냐는 일곱째 능력에 달렸지요.” 말을 마치고 위왕은 방으로 들어갔고, 우문호는 원경릉을 마차에 태우고 가리개를 내린 뒤 말했다. “셋째 형은 강북부에서 늙어 죽을 생각인가 봐.”원경릉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위왕이 가산을 처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마음이였다.하지만, 이 일은 주변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일로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입궐할 때 명원제는 막 안정제를 먹고 졸음이 온 상태였는데, 우문호 부부를 보더니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두 사람이 예를 취하고 명원제에게 물었다. “아바마마, 무슨 일이십니까?”명원제가 손짓을 하자 목여 태감이 비단 상자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비단 상자를 열고 명원제가 잠시 들여다보고 몇 장 꺼낸 뒤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 “태자한테 줘!”그러자 목여 태감이 안고 와서 우문호에게 건네었다. “전하, 받으시지요!”우문호가 받아 들고 잠시 보더니 할 말을 잊고 멍해졌다. 상자안에는 두꺼운 지폐 더미와 보관증이 있었다.“아바마마, 이….” 우문호가 고개를 들어 의혹에 가득 찬 낯으로 명원제를 바라봤다. ‘이게 아바마마의 개인 재산인가?’“이 은자는 짐이 너에게 주는 것이긴 하나, 너한테 쓰라고 주는 게 아니니 잘 보관하도록 해. 짐이 여기에 총 삼백 만 냥을 넣었고, 그중 일부는 이자를 불리는 중이라 보관증으로 넣어두었어. 이 은자는 네가 써서는 안 돼. 황실의 급한 일을 위해 남겨두어라. 전부 짐이 아낀 것으로 꼭 짐에게 약속하거라. 만일의 상황이 아닐 때 이 돈을 쓰지 않기로.”
우문호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감동 받은 말투로 말했다. “아바마마, 원하시면 소자 매일 수라 드실 때 함께 하겠습니다.”명원제가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넌 정무로 바쁠 거라 자기 밥때도 못 챙기지 싶구나. 황제란 것이 그렇단다. 숨 돌릴 시간도 없어. 네 효심은 알지….”명원제가 지폐를 손으로 만지막거리며 말했다. “짐이 삼만 냥을 자신을 위한 용도로 둔 게 작다면 작지만 짐은 아들들이 각자 효심을 발휘하면 몇십만 냥은 더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네. 짐이 쓰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은자가 곁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단 말이야. 너희들은 그렇지 않니?”우문호가 감동한 참이라 아바마마의 이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명원제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거 잘 됐구나, 짐은 오십만 냥만 있어도 든든하겠어.”오십만 냥은 명원제가 매화장을 살 때 쓴 돈으로 그 돈을 되찾기만 한다면 만족한다는 뜻이었다.우문호는 곧바로 감동이 없어졌다. 그리고 잠시 곱씹어 보다가 깜짝 놀라 상자의 지폐와 원경릉을 번갈아 보았는데, 상자에 지폐는 사용할 수 없는데 아바마마께서 오십 만 냥을 원하시니 우문호에게 일부를 내라고 하는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넌 이 얘기를 어서 형제들에게 전하고 돈이 준비되면 궁으로 가져오너라.” 명원제는 우문호의 대답을 듣고 정신이 맑아진 모양이었다. 매화장 때문에 본 손해는 본전을 찾았지 싶었다.원경릉은 모든 과정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몇만 냥은 쓰게 됐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이 돈을 모아서 우문호 손에 쥐여준 그 마음만은 정말 귀하고 귀해서 돈으로 측량할 수 없었다.몇만 냥은 긁어모으면 어떻게든 낼 수 있었다.집으로 돌아와 세보니 이자를 받으려고 돈놀이한 차용증이 있어 확실하게 삼백만 냥은 족히 되었다. 전부 조정에서 발행한 지폐로 아주 안정적이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은자로 바꿔 땅에 묻어도 되었다.“이건 아바마마께서 십몇 년을
“본인이 온다고?” 안왕이 화가 치밀어 올라 탕양에게 눈을 부라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연아와 아이를 건드렸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그럼 너도 절대 멀쩡하지 못할 거다.’안왕의 화에 탕양은 화들짝 놀랐다. “왕야 그 말씀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왜 태자 전하께서 못 오시는 지요..?”탕양은 안왕이 이미 태자의 의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호통을 쳤다.그런데 안왕은 탕양이 반어법으로 비아냥거리는 줄 알고 귀까지 빨개지며, “좋아, 내가 가주지. 우문호가 어쩔 거야, 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들어가 왕비에게 얘기하고 올 테니까.”탕양이 말했다. “예, 그럼 소인은 먼저 가 있겠습니다!”안왕은 탕양이 먼저 간 것을 보고 자신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안왕은 더욱 분노해 씩씩거리며 옷자락을 떨치고 안 왕비를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안 왕비에게 짐을 꾸리라고 하고 말을 준비시켜 만약 자신이 초왕부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모녀는 바로 경성을 떠나 강북부로 돌아가라고 했다.그러자 안 왕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당황햇다. “태자 전하께서 왕야께 뭔가 상의하러 오시라는 것 뿐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니십니까?”안왕이 답했다. “다섯째가 나랑 얘기할 게 뭐가 있어? 지금 대관식 날짜도 정해졌고 당장 황위가 손에 잡힐 상황인데 이런 중대한 시점에 다섯째는 모든 장애를 없애버리고 싶을 게 틀림없다고. 내가 전에 자기와 태자 자리를 놓고 다퉜으니 날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 전에 잘 지낸 건 아마 어질다는 명성을 가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이제 모든 게 다 결정된 상황이니 절대로 날 용납하지 못할 거야. 이건 일부러 당신을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말만 들으면 돼.”안 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태자 전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세요.”“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떻게 잘 아느냐?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모험을 해서도 사람을 너무 믿어서도 안 돼. 다섯째가 이러는 걸 그렇게 뭐라고 할 수도
손왕은 가끔 넷째를 들쑤셨지만 집요하게 그런 것도 아니라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또 의견 분열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 인사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바마마 병문안을 갔었는데 매화장 일로 괴로워하시고 영 불쾌해하시다가 쓰러지신 게 확실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몇십만 냥을 모아 아바마마께 드리고 마음의 병을 없애 드리는 건 어떨까요?”손왕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그건 물론 아무 문제 없어. 얼마를 모아야 하든지 우리 형제들이 나누면 되니까.”회왕도 문제없고, 제왕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아홉째도 좀 힘들지만 알았다고 했고 위왕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더니 응했다. “내가 지금 탈탈 털어서 50냥밖에 없지만 전부 내긴 할게.”위왕은 정말 전 재산을 정화 군주에게 주었다. 일곱째 쪽에서 제대로 했는지는 아직 확답이 없지만 위왕은 이미 빈털터리로, 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넷째 너는?” 손왕이 안왕에게 물었다.안왕은 마음속으로 주판을 굴리더니, 은자를 줘서 아바마마께서 좋아지시면 반드시 퇴위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안왕이 얼른 대답했다. “전 당연히 문제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나으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우문호는 한시름 놨다. 원래는 상당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들 이렇게 호탕했다니 오히려 자신이 소심해서 다들 와서 상의하자고 불렀구나 싶었다.하지만 방금 둘째 형 말을 떠올리고, 넷째가 아마도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위로했다. “앞으로 우리 형제가 좀 자주 모여서 이렇게 같이 얘기도 하고 해야겠어요. 감정이 너무 소원하지 않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들 잘 아시겠지만, 한 마음으로 북당을 위한다면 절대로 적이 될 리 없습니다. 평생 말이죠.”이 말은 분명 안왕을 상대로 한 것으로 안왕도 알아듣고 순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태자였으면 절대로 저렇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안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째가 어질다는 명성은 만들어낸 게 아니라 떳떳한 평가라는 사실을
원경릉마저 상당히 감동했다. 이 힘든 길을 걸어온 본인들이 참 뿌듯해졌다. 80만 냥 지폐를 명원제 수중에 전하자 명원제가 30만 냥만 꺼내고 나머지는 전부 우문호에게 돌려줬다. “가져가, 보위에 오를 때 혼사를 치를 테니 체면을 살려야지. 국고나 내탕고의 은자 쓰지 말고.”황제의 황후 책봉례이므로 국고에서 은자를 지출해도 되지만 명원제는 황실 일은 국고의 은자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고, 우문호도 그러길 바랐다.우문호는 50만 냥 지폐를 들고 엉거주춤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의 효심을 아바마마께 표현한 것으로 소자는 받을 수 없습니다.”명원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져가서 아내에게 좀 좋은 걸 사줘. 그동안 솔직히 너무 홀대했어. 태자비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원래 내가 자식들에게 50만 냥을 모아오라고 시킨 건 그중 일부를 네 혼사에 쓰고 싶어서였어. 전에 너한테 준 돈은 쓸 수 없으니까. 알겠느냐?”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 “소자 받을 수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이 은자가 필요 없으시면 소자가 형제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명원제가 기각 막혀 냅다 화를 냈다. “넌 머리에 두부만 들었냐? 저들은 은자가 안 부족해. 은자가 없는 건 너라고. 이건 내가 널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야. 넌 그냥 가져가면 돼. 네가 필요 없으면 짐도 며느리에게 내리도록 하지. 태자비를 더는 초라하게 하지 마라. 황실의 왕비가 누려야 할 부귀영화를 태자비는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어. 오히려 매일 걱정 근심에 종종거리며 집안일과 나랏일을 생각해 왔지. 근데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우문호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꿇어앉아 감사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 손자 원 선생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명원제 얼굴이 그제서야 화색이 돌며 우문호를 일으켰다. “그럴 필요 없다네. 우리 우문씨 집안이 태자비에게 빚을 졌지. 태자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거라. 태상황 폐하를 구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우문씨 집안의 역량이 비로소 하나도 응집되기 시작했어. 짐도 태자비 영향을 받았
우문호가 이 일을 형제들에게 얘기하자 다들 은자는 이미 내놓은 것이니 아바마마께서 누구에게 주시든 자신들은 다시 가져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명원제 말대로 안왕은 오히려 안색이 상당히 밝아진 것이 전에 근심하던 얼굴은 거의 없어졌다.그리고 우문호와 원경릉은 장모님 일행을 어떻게 데리고 올지 상의했다. 사실 경호로 편지를 보내 물어보면 되지만 우문호는 역시 직접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 일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서일은 믿음이 안 가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됐다. 그래서 탕양에게 만두를 데리고 다녀오라고 했는데, 만두가 경호를 통해 현대로 간 뒤 원경릉 가족 일행을 모시고 같이 오면 된다. 대관식까지는 아직 보름 남짓이나 남았지만, 휴가를 낼 수 있으면 좀 일찍 오고 만약 안 되면 만두가 거기서 며칠 더 머무루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여러 차례 사람을 시켜 집을 정리하고, 가구와 이불을 새것으로 바꾸고, 옷도 몇 벌 맞춰야 했기에 우문호는 요 며칠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다. 다행히 원경릉이 가족들의 치수를 대략 알아서 미리 사람을 시켜 만들도록 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경릉은 직접 숙왕부에 찾아가 태상황 일행에게 알렸는데, 태상황이 특히나 기뻐했다.전부터 그들이 혼례에 참석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곧 다가오니 상당히 기대되는 모양이었다.태상황이 소요공과 주 재상에게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우리도 주인의 도리를 다 해야지. 잘 먹고 마시고 우리 북당의 자연과 인정, 신선한 문화에 견문을 좀 넓혀 드려야겠어.”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잘 준비할게요.”그러자 태상황이 고개를 연신 저었다. “네가 할 필요 없다. 이 일은 우리 셋이 하도록 하지. 어쨌든 너도 혼자 낯선 곳에 떨어져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을까. 너희들은 나중에 바쁠 테니 그분들과 동행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거라.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말이다.”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제
“당연히 좋죠, 먹고 마시고 노는 거 전부 평남왕 은자로 쓰는 거니까요.” 주 재상이 웃으며 말했다.주 재상의 말에 이해하는 사람들 모두 듣자마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샥!바로 그때 제왕이 초왕부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위왕을 찾았다. “셋째 형, 동생 술 한잔 사셔야겠어요!”제왕의 목소리를 듣고 위왕이 복도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답했다. “잘 됐느냐? 정화가 뭐라 하였느냐?”“정화 군주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처리 수속에 협조해 주셨습니다. 이제 정화 군주는 경성에서 제법 돈 많은 부인이 되실 겁니다. 하하하!” 제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위왕이 살짝 안도하더니 이내 안색이 환해졌다. “그거 잘됐네, 잘된 일이야!”위왕은 순간 눈물을 글썽일 뻔했다. 정화가 받아줬으니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진 듯 했다.“다섯째 형!” 제왕이 뒤를 돌아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서 소리쳤다. “셋째 형이 우리 술 사준데요. 어디로 갈까요?”우문호가 눈을 치켜뜨더니 퉁명스럽게 답했다. “안 가!”“안 간다고요?” 제왕이 팔꿈치로 우문호를 쓱 치며 유혹했다. “셋째 형이 사주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데, 너무 체면을 무시하시는 거 아녜요?”우문호가 웃는 둥 마는 둥 하고 제왕에게 말했다. “그날 못 들었어? 탈탈 털어서 이제 50냥밖에 없다고 했잖아, 술값을 누가 계산할지 모른다고!”그러자 위왕이 화를 냈다. “이 쩨쩨하고 인색한 놈아, 공으로 몇십만 냥이나 벌었으면서 우리 술 한 잔도 못 사주는 것이냐?!”우문호는 쩨쩨하고 인색한 본색을 발휘했다. “그건 아바마마께서 제게 황후 책봉례 하는 데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전 못 써요.”“어디 그렇게 궁상떨어 봐라, 책봉례를 할 때 대체 누가 너한테 축의금을 주겠느냐!” 위왕이 씩씩거렸다.제왕이 대범하게 상황을 중단 시켰다. “제가 살 테니 싸우지들 마세요. 한동안 같이 술 마신 적 없으니깐 둘째 형들도 부르고, 냉 대인이랑 홍엽, 구사도 부르지요.”안에서 원경릉이 이 말을 듣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