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가 살인자라고?요리가 차려져 나오는데 하나같이 가정식 반찬으로 황제의 수라라는 웅장함은 없고 아주 정교하고 야무지다.반찬 5개, 탕 하나, 김이 모락모락 난다.명원제가 아무 말이 없으니 원경릉도 말없이 궁녀가 곁에서 요리를 놓는 것을 보는데 명원제가 들자고 한 마디 하자 원경릉도 먹기 시작했다.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다 보니 음식이 먹히지 않았다.명원제와 식사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원경릉은 지난번과 정반대로 많이 먹을 생각조차 감히 품지 못했다. 태도가 상당히 공손해 져서 오히려 지난번이 훨씬 편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몰래 쓴 웃음을 지으며 과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구나 싶다.명원제는 혼자서 수라를 들어 왔기 때문에 밥 먹을 때 얘기하지 않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같이 앉은 원경릉도 말이 없다.다섯 종류의 요리를 거진 다 먹었는데 이는 두 사람 식욕이 왕성해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요리 하나 당 몇 젓가락밖에 되지 않도록 특별히 앙증맞게 만들었기 때문이다.탕은 약간 남겨서 명원제는 목여태감에게 내려 주었다.목여태감이 성은에 감사하며 받쳐들고 한쪽에 치워 둔 뒤 사람들에게 남은 죽과 접시를 치우게 했다.다 치운 뒤 두 사람에게 차를 내오는데 원경릉이 한 모금 마시니 산사 맥아차로 소화와 체기에 도움이 되었다. 산사차를 마신 뒤 목여태감은 자리를 정리하더니 궁녀를 전부 물러가게 하고 자신은 남쪽 문 앞에 서 있었다.원경릉은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두었는데 사실 이 동작이 상당히 힘든 것이 배가 비교적 많이 나와서 다리를 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명원제가 원경릉에게: “다섯째는 매일 초왕부에서 뭘 하느냐?”원경릉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바마마께 아룁니다, 왕야는 초왕부에서 검술을 연마하시고 글을 쓰시느라 매일 충실하게 지내고 있습니다.”“짐을 원망하지 않더냐?”원경릉이 당황하며, 충성되고 정직하게: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야는 아바마마께 대한 마음은 존경 그 자체입니다.”명원제가 비웃음을
후궁이냐 감옥이냐명원제가 냉소를 띠고, “자진? 아마 아닐 걸,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짐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주명취는 주재상이 배후에서 지시했다고 옥중에서 자백했고, 다섯째는 주명취가 조당에서 심리를 받을 때 주재상에 대해 자백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죽였지.”원경릉은 두 손으로 소매를 쥐고 약지에 핏기가 가지며, “아바마마, 그걸 믿으세요? 진짜 재상대인이 지시했다고 믿으십니까?”“짐이 믿고 안 믿고 하는 것과 주명취가 자백한 것은 별개야. 얘기를 섞지 마라, 주명취가 뭐라고 했든 다섯째가 그녀를 죽인 것은 사실이야.”원경릉은 명원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속으로 눈치챘다.황제는 다섯째가 황제의 의중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 자신도 주재상 짓이 아니란 것을 믿지만, 황제는 이것을 빌미로 원경릉 혹은 다섯째에게 어떤 일을 협박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원경릉은 숨을 삼키고: “아바마마, 다섯째는 폐하의 아들이며 범인을 죽였는지 여부도 폐하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가 한 행동은 모두 조정과 이 강산을 위해서 였으며 어떠한 사심도 없었음을 며느리는 확신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원경릉의 맑고 과단성 있는 눈빛을 들여다보고: “흠, 이 일은 일단 차치하고, 또 하나 짐이 일단 너에게 얘기할 것이 있는데 네 의견을 구하고 있어. 만약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짐도 강요하지는 않으마.”원경릉은 핵심으로 들어가는 구나 싶어 자세를 바로 하고: “말씀하세요.”명원제가 대놓고 심하게 온화하고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된 건데 말이야, 호 대장군(扈大將軍)이 계속 진북(鎮北)에 주둔하며 조정에 공을 세운데다 진북 일대 떠돌이 도둑을 전부 섬멸했다는 급보가 와서 짐이 호 대장군을 진북후(鎮北侯)로 책봉하고 상을 내리고자 하는데 말이야, 진북후가 상은 필요 없다며 짐에게 한 가지 근심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 뭐냐.”원경릉이 눈을 반짝이며, ‘진북후가 딸이 하나 있는데’는 아니겠지 설마…….이윽고 명원제가 실실 웃으
명원제에게 대든 결과명원제는 냉담한 표정으로, “가봐.”목여태감이 대답하고 원경릉을 쳐다봤다.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아바마마, 이렇게 하시는 것은 저에게 강요하시는 겁니다. 다섯째의 목숨을 가지고 저를 압박하시는 거예요.”명원제가 돌연 안색을 바꾸며, “무엄하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자 자기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을 알고 식탁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 다시 천천히 무릎을 꿇었으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리며, “아바마마 고정 하소서.”명원제가 성난 목소리로: “원경릉, 후궁을 들이는 일에 짐이 너를 존중하여 상의까지 했거늘 네가 동의하지 않으니 짐도 널 강요하지 않았어. 너는 그런데도 고마움을 모르고 감히 짐에게 불손한 말을 해? 너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었느니라!”원경릉이 마음이 불편하고 숨이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바마마, 만약 폐하께서 정말 며느리를 존중하셨으면 며느리가 회임 했을 때 또 다시 후궁을 맞아들이는 일을 거론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섯째가 왜 주명취를 죽여야 했는지, 폐하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다섯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섯째가 조정을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게 아니란 말씀이신 가요? 만약 주명취가 정말 조당에서 자백해서 주재상에 대해 얘기했어도 결국에 가서는 주재상이 벌을 받을 리 없었을 겁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내겠지요, 하지만 주재상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실마리를 더듬어 진상에 다다르면, 배후의 사람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러면 아바마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다섯째는 그것을 고민했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왜 연달아 다섯째를 괴롭히세요? 다섯째가 받은 서러움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아바마마는 정말 너무 편애하세요!”“무엄하다!” 명원제는 분노가 폭발해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 위에 찻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목여태감이 겁에 질려 얼른 무릎을 꿇고, “황제 폐하 고정 하소서, 왕비마마께서 잠시 분을 낸 것입니다. 폐하 고정 하소서!”명원
소박 맞는 원경릉이 식사는 최후의 만찬이었군.목여태감은 천천히 원경릉을 부축하는데, 원경릉은 발 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며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명원제의 말은 구구절절이 동기가 사악하다.다섯째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건 전부 원경릉 탓이라는 것이다.맞는 말이다.원래 몸의 주인인 그 원경릉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금 그녀가 질 수밖에 없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공주부 일을 끌어들일 것이다.원경릉은 명원제의 옷에 수 놓아진 운해 그림과 그 위에 도사리고 있는 발톱이 다섯개인 진짜 용을 바라봤다. 한 땀 한 땀 세밀하고 정교하게 수를 놓아 용이 살아서 명원제의 몸에서 날아오를 것 같다.원경릉은 눈에서 불꽃이 일어 예를 취하고 힘겹게: “아바마마 옥체 보중 하소서. 원경릉 작별인사 드립니다!”명원제는 원경릉에게 등을 돌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우울한 얼굴이다. 넘쳐 흐르던 고귀한 자태는 사라지고 냉정하고 고집스럽게 보였다.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부축해 내려가니 만아와 사식이가 밖에서 기다리는데 바람에 몸이 꽁꽁 얼었다.원경릉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부축하고 목여태감은 작은 소리로 탄식하며, “왕비마마 왜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이렇게 하시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고작 호 아가씨가 아닙니까? 시집을 와도 후궁인데 마마와 초왕 전하의 깊은 사랑엔 영향을 못 미칩니다.”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뭐요? 아직도 후궁이 있어요?”원경릉이 손을 꼭 누르며, 지친 기색으로: “가자.”목여태감이 금군 하나를 부르더니 의례태감(司禮太監)을 데리고 가서 초왕에게 입궁을 전하게 시켰다.밖으로 나가서도 만아와 사식이는 감히 묻지 못하는 것이 원경릉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목여태감도 따라 나와 원경릉이 깊은 침묵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왕비마마 폐하를 원망하지 마세요, 절박해서 어쩔 수 없으셨습니다.”“알아, 만약 부득이한 게 아니라면 폐하께서 날 이렇게 대하지 않으시겠지.” 원
만아와 사식이의 결심“태감, 아바마마는 아바마마대로의 고충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은혜도 모르고 아바마마께 반기를 드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아바마마께서 나를 위해 골라 주신 길이 가장 좋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왕야는 호 아가씨를 좋아할 리가 없으니 시집을 온다고 해도 저한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죠,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니까요.”목여태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왕비께서는 그렇게 다 알고 계시면서 왜 폐하를 거역하셨습니까? 폐하께서 정말 마마를 괴롭히고 싶으시면 이렇게 특별히 궁으로 불러 식사를 하며 마마께 살뜰하게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바로 성지만 내리셔도 마마는 성지를 거역하실 수 없으니까요.”원경릉이 쓴 웃음을 지으며, “아바마마께서 저를 존중해 주시는데 어떻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잊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제가 계속 어려움에 빠지다 보니 왕야가 혼비백산 했어요, 저를 생각하는 왕야는 분명 호 아가씨와 혼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야가 성지를 거역하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제가 오늘밤 아바마마께 말대꾸 하는 게 낫습니까? 태감께서 찬찬히 생각해보시면 바로 아실 것입니다. 저는 제 꾀에 제가 빠져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저와 복중의 아이에게 모두 잘 된 일입니다. 적어도 얼마간 굳이 폐비를 해치러 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목여태감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왕비마마는 어찌 그리 치밀하십니까,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마마의 이런 생각을 아시면 분명 마마를 선처하실 겁니다.”원경릉이: “선처 여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야가 평생 순탄하게 지내실 수만 있으면.”목여태감에게 한 이 말은 황제가 앞으로 선처해주시길 바라며 원경릉이 일부러 신경 쓴 말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두 걸음 나가기 위해 한걸음 물러나는 전법을 쓴 것은 원경릉이 혼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다.원경릉이 혼인관계를 똑바로 유지하지 못하면 아이를 낳자마자 빼앗길 텐데 절대로 일가족이 헤어져서는 안된다.초왕부에서
원경릉과 우문호의 작별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가 함께 하겠다는 뜻에 감격했다. 친정으로 돌아가면 적지 않은 풍파가 일어날 텐데 이 두 사람이 함께 해주면 적어도 억울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때 우문호는 초왕부에서 계속 원경릉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입궁하라는 황제의 성지를 받았다.말을 달려 입궁하는데, 원경릉의 마차를 보고 고삐를 잡아 멈춰서 마차를 막았다.목여태감은 두 사람이 만나게 하려고 일부러 마부에게 다른 길로 못 가게 했다.마차를 세운 뒤 목여태감은 얼른 원경릉에게: “왕비마마, 궁에서 일은 절대로 언급하시면 안됩니다. 왕야 성정에 분을 참지 못하시고 궁에서 대역무도한 죄를 지을까 두렵습니다.”원경릉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마차에서 내렸다.우문호기 막 말에서 내려 다가와: “내려오지 마, 굉장히 추워.”우문호는 바람같이 원경릉을 가슴에 품더니 바람막이로 그녀를 싸매고: “아바마마께서 뭐라고 하셨어?”원경릉이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에 묻고 익숙하고도 안정감을 주는 체취에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스르륵 풀어졌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우문호의 등을 껴안고 손가락 끝으로 옷에 놓인 자수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하더니: “별 말씀 없으셨어, 왕야가 매일 초왕부에서 뭘 하는지 묻기만 하시고.”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고작 그거야? 아바마마도 진짜 할 일 없나 보네, 나한테 들어오라고 어명을 내리셨다 길래 무슨 일이 났는 줄 알았지. 널 보니 안심이 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먹빛 눈썹, 그 주변의 흉터를 매만졌다. 흉터는 이제 옅은 붉은 색 줄만 남아 잘 보이지 않아서 잘생긴 얼굴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고 오히려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원경릉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가봐, 아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 게.”이 말을 하고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얼른 심호흡을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미간에 뽀뽀하며: “날이 차, 얼른
원경릉이 친정에 쫓겨가는데희상궁이 안으로 들어와 원경릉이 장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두 손을 배위에 올리고 얼굴은 약간 창백하다.사식이가 희상궁이 온 것을 보고 얼른 그녀의 손을 끌고 가, “희상궁, 얼른 가서 좀 봐줘요. 왕비마마께서 배가 불편하신 거 같아요.”“무슨 일이 생겼나요?” 희상궁이 원경릉 앞에 작은 걸상에 앉아 배를 쓰다듬어 주며, “아프신가요?”원경릉이 심호흡을 하더니,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약간 시큰거리는 정도예요.”희상궁이 조금 당황해서, “절대 무리하시면 안됩니다.”원경릉이 손을 내저으며, “괜찮아요, 내가 너무 긴장했나 봐요, 좀 쉬면 좋아질 거예요.”희상궁이 원경릉에게, “왜 친정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겁니까? 폐하의 뜻인가요?”“제 뜻이에요, 친정에 좀 있고 싶어서요. 희상궁, 질문은 나중에. 시간이 없어서.” 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이 나가서 목여태감을 붙잡고 한 켠으로 데려가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왕비마마는 아직 회임 하신 몸인데, 어떻게 마마를 친정으로 보낼 수가 있나? 정후부 상황을 폐하께서 모르시는 게 아닌데.”목여태감이 가볍게 탄식하며, “왕비마마께서 스스로 원하셨으니 어쩌나, 폐하께서 호 아가씨를 초왕 전하 후궁으로 맞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왕비마마께서 거절 하셨어.”“무슨 또 후궁이야? 설사 혼인을 시키신다고 해도 왕비마마께서 아이를 낳고 하셔도 돼잖아?” 희상궁이 얼른 말했다.목여태감은 희상궁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폐하께서도 절박해서 어쩔 수 없으신 거지, 진북후가 병사를 데리고 세력을 넓혔으니 폐하께서도 반드시 진북후를 누를 구실이 있어야지 않겠나.”“다른 왕야면 안돼?” 희상궁이 눈살을 찌푸렸다.목여태감이 쓴웃음을 삼키며, “초왕 전하보다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어? 진북후가 초왕 전하를 눈여겨본 모양이야, 만약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혼사를 명하신다면, 반드시 진북후가 만족할 인물이어야 해, 안 그러면 진북후가 역심을 품고 농간을 부릴 지 어찌 아는가?”희상궁은 이런 조정
명원제와 우문호의 일전우문호는 진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명원제가 자신에게 무슨 호박 아가씨인지 호 아가씨인지와 혼인하라는 말을 듣고 지붕에 기왓장을 전부 날려버릴 만큼 열이 받았다.우문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완강하게: “아뇨,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호박 아가씨든 수박 아가씨든 일절 혼인하지 않겠습니다.”“이런 몹쓸 자식, 무엄한 지고!” 명원제는 이럴 줄 알았지만 역시 화가 치밀어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어째 시름을 덜어주는 놈이 하나도 없다.“소신 이 생에 ‘원경릉’이란 왕비 하나만 둘 뿐 후궁은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문호가 말했다.명원제는 홧김에 우문호의 머리를 한 대 갈기고, “이 못난 놈아, 그냥 여자 하나가 아니냐? 혼인하고 데려가서 싫으면 건드리지 말고 초왕부에 두면 그만이지, 너희 부부한테 방해 될 게 뭐가 있어?”우문호 머리가 단단해서 오히려 때린 명원제 손만 아팠다.우문호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불끈하며, “아바마마 만약 그러실 거라면 굳이 그녀와 혼인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녀와 잘 될 리도 없는데 혼인해서 초왕부에 데려가는 건 그녀의 일생을 망치는 일이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음흉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음흉해? 뭐 음흉하다고!” 명원제가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대를 연거푸 때리고, “이건 권력에 대한 계책이고 견제와 균형이야, 그래도 모르겠어? 짐은 널 위해 앞길을 터주려 는데 너는 감사는 고사하고, 짐을 분통이 터져서 죽이려는 작정이냐.”명원제가 열 받아서 몹쓸 자식이라고 연거푸 욕을 해댔다.우문호 얼굴이 창백해 지며, “어쨌든 소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자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명원제가 화가 나서: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해야만 할 것이다. 진북후가 이미 조정으로 개선하고 있으니 딸도 같이 올 거다. 부녀가 경성에 다다르면 혼례를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고, 만약 싫거든 감옥에 가라, 짐이 네가 주명취를 죽인 사실을 엄밀하게 조사하도록 하지.”“그럼 아바마마께서 조사하시지요, 제 목이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