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이 계속되자 우문호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만아는 원경릉 옆에서 수건 짜는 것을 도왔고, 서일은 우문호를 들어서 외풍이 들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링거를 맞은 우문호는 한참 후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경릉아, 나 못 참겠어.”온몸에 상처 투성이인 우문호는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도 힘들었다. 서일이 요강을 들고 오자 우문호는 화를 내며 “그런 건 필요 없다! 본왕을 화장실로 옮겨줘.”라고 말했다.“안돼, 움직이면 많이 아플 거야. 오늘은 이거 쓰고 내일부터는 화장실로 데려다줄게.”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고집을 부리며 화장실로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한 걸음 걷기도 힘든 우문호에게는 무리였다. 서일은 요강을 들고 어쩔 수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 “왕비, 저와 탕대인이 부축해서 다녀오겠습니다.”원경릉은 만아를 시켜 탕양을 불러오라고 했다. 탕양과 서일은 우문호를 부축해서 나갔다가 잠시 후 들어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우문호는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원경릉이 다시 체온을 재자 39.3도 해열제를 먹어도 체온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약을 추가했고 링거도 바꿨다. ‘체온이 너무 높은데……’원경릉은 원래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우문호의 고열이 계속되자 정후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식이를 정후부로 보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하라고 했다. 원경릉의 말에 사식이가 급히 정후부로 갔다. 점심쯤이 지나서야 우문호가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더니 열이 내리기 시작해다. 원경릉은 안도감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원경릉은 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차를 준비해 바로 정후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저 멀리서 사식이가 급히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원누이! 사고가 났습니다! 위왕이 정화군주를 때렸습니다!”그 말을 듣고 원경릉이 놀라서 쓰러질 뻔한 것을 만아가 붙잡았다. “어떻
“위왕은 지금 어디에 있어?”원경릉이 물었다. “아직 정후부에 계십니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구사도 끌고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사식이가 한숨을 쉬었다. “구사도 어쩔 수 없다고?” 원경릉이 놀랐다.사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위왕이 구사의 장검을 빼앗아 휘두르는 마당에 구사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제가 바로 왕비께 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마차가 정후부에 도착하자 사식이와 만아는 원경릉을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화군주가 있던 정원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밖이 소란스럽자 노마님과 원륜문까지 나와있었다. 위왕은 손에 구사의 장검을 쥐고 회화나무 아래에 서있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눈밑이 시커멓고 목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으면서도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공포가 느껴졌다. 구사는 위왕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정원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들 숨죽이고 위왕을 지켜보았다. 원경릉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왕은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 둘을 번갈아 보았다. 불안해진 원륜문이 달려와 원경릉의 앞을 가로막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위왕! 검을 내려놓으세요!” 원경릉이 소리를 질렀다. “네가 저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지?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꿈깨라 죄책감은커녕 난 내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해 떳떳해!” 위왕이 검을 들어 원경릉이 걸어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죠?” 원경릉이 가볍게 원륜문을 밀치고 천천히 걸어 나와 뒷짐을 졌다. “뭐라고?”“지금 와서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는지 아닌지 그게 뭐가 중요하죠? 설령 그녀가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고 해도, 강제 혼인이라고 해도, 그게 뭐가 대수
“정화군주 다들 나갔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지요.”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그녀의 속눈썹을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잠시 후 정화군주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눈을 꼭 감은 정화군주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 누워있는 그녀는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흐느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원경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아 눈물을 닦아주었다. 원경릉은 그녀가 탈진할까 걱정돼 수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수액을 놓아주고는 편하게 잠들 수 있게 했다. 수액을 다 놓은 원경릉은 밖으로 나와 한 사람만 방 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구사는 위왕을 왕부로 데리고 갔고, 정후부의 하인들은 그가 어지럽힌 정원을 치우고 있었다. 위왕이 정원에 있는 회화나무에 장검으로 상처를 내고, 꽃들도 모두 잘라버렸기에 정원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매화꽃이 예뻤을 정원에는 아무렇게 잘린 가지들과 아직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희상궁은 원경릉을 부축하며 “왕비,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눈 좀 붙이시지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왕부에 가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보다는 왕야를 챙기는 원경릉이 안타까웠다. “원누이, 어젯밤 한숨도 못 잤잖아요. 제가 왕부로 가서 왕야가 어떤지 살피겠습니다. 왕야께서 또 열이 나신다면 제가 이곳으로 오면 되지 않습니까?”원경릉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아니야. 쉬더라도 왕부에 가서 쉬어야지. 여기에는 정화군주께서 쉬고 계시니까 방해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희상궁과 사식이는 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왕부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왕부에 도착하자 사식이
열이 내리자 우문호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단잠에 빠진 그의 코 고는 소리는 마치 피리처럼 가늘고 길게 울렸다. 원경릉은 그의 추한 모습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비몽사몽한 얼굴로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잠시 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원경릉은 침상에서 일어나 들어오라고 했다.“왕비, 현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만아가 말했다.원경릉은 현비마마라는 말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현비마마라면 원주 원경릉을 싫어하는 시어머니?’그녀는 조용히 침상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우문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휙—” 순간 우문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조용히 해. 나 자고 있잖아.” 우문호가 말했다.“참나, 알겠어!” 원경릉은 그의 얼굴을 톡톡 치며 말했다.그녀는 만아에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달라고 하고는 입가에 묻은 침자국을 닦았다. 현비마마는 출궁 할 때마다 화려하게 겉치레를 하기로 유명했다. 원경릉이 급히 밖으로 나오자 태감들과 궁녀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고,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고는 치마를 잡고 다급히 본관으로 향했다. “현비마마께서는 지금 천자의 수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식이가 원경릉을 붙잡았다. “본관이 아니라 천자의 수레에 계신다고?”원경릉은 현비의 허세에 기함을 토했다. 왕부에 오면서 궁인들과 태감을 대동하는 것도 모자라 천자의 수레를 타고 오다니.원경릉은 속으로 현비의 허세를 욕했다. ‘역시 시어머니가 불편하고 싫은 건 현대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기사 2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키운 아들을 맘에 들지도 않는 여인에게 장가 보냈으니 시어머니인 현비도 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겠어……’그녀는 과거나 현대나 고부관계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춥고 바람도 거센 겨울, 12명의 금군이 현비마마를 태운 수레 앞에 두 줄로 서있었다.현비마마는 천자의 수레에 앉아있었고, 상궁이 초왕비가 나왔다고 하자 ‘응’하
“치료했습니다. 만약 치료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열이 났을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계속 열이나라고 저주를 하는 것이냐?”현비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원경릉을 보며 엄하게 말했다.현비가 갑자기 멈추자 원경릉은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섰다.“저주라니요! 제가 감히……”“그럼 그게 무슨 뜻이냐? 네가 임신한 몸으로 네 남편을 치료한 걸 공으로 인정해달라는 거야?”현비가 몰아세우자 원경릉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보았다. 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희상궁은 웃으며 현비를 부축하며 “마마님, 못 본 사이에 전보다 훨씬 젊어지신 것 같으시네요! 살갗이 희고 투명하셔서 쇤네가 잘 못 본 줄 알았습니다! 무슨 단약이라도 달여드십니까? 어쩜 이리 고우십니까?”라고 말했다.현비는 자신이 젊고 예쁘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참, 희상궁도…… 본궁이 그렇게 젊어 보입니까? 어휴, 세월이 빨라요. 제가 벌써 마흔이라니까요. 단약은 무슨 하나도 챙겨 먹는 거 없는데, 아 참! 예전에 희상궁이 본궁에게 줬던 백풍단, 그건 참 좋더라고요? 그건 먹으면 눈가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 봐봐요 희상궁이 보기에는 주름이 옅어진 것 같아요?”현비마마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다. 희상궁은 현비의 얼굴을 이리저리 보았다. “어머! 세상에 피부가 아주 투명하십니다! 주름은커녕 진주같이 고와서 미끄러질 것 같아요!”현비는 희상궁의 손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실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 하는 사람이 많은데, 희상궁은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아요. 항상 진실을 말해주니까요.”“마마님 쇤네는 황실에서 반평생을 살았습니다.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잘 압니다.” 희상궁은 웃으며 그녀를 부축하며 안으로 향했다.원경릉은 왜 시어머니인 현비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알고 있었다. 다섯째가 다친 것 말고도 호 아가씨(扈小姐)때문일 것이다. 시어머
현비도 호씨 집안 여식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항간에 도는 소문에도 호씨 아가씨가 진북의 도적 소굴에서 자랐기에 성격이 거칠고 제멋대로라고 했다. 그래도 현비는 다섯째가 계집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할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호씨 집안 여식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고 해도 다섯째가 태자가 될 수 있도록 호씨 집안에서 힘을 써줄 수 있지 않는가. 몰락한 정후부보다는 든든한 호씨 집안을 처가로 두는 게 우문호가 태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희상궁은 원경릉이 난처해질까 봐 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현비마마! 여인에게 특히 좋은 차를 가져왔습니다. 안에는 구기자와 계피 대추 등 몸에 좋은 것은 다 들어있습니다. 마시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혈색이 좋아질 겁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라고 말했다.현비는 희상궁이 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지도 않고 맛이 딱 좋네요. 역시 희상궁의 손맛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희상궁, 시간이 있을 때마다 왕비를 설득 좀 해봐요. 여인의 미덕 중에 하나가 나눔, 배려 아닙니까? 질투심이 강한 여인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마마님 왕비께서는 통이 크십니다! 왕비께서 임신을 한 이후로 계속해서 왕야께 후궁을 맞이하라고 하셨는데, 왕야가 전부 거절하신 겁니다.”희상궁이 말했다.희상궁의 말을 듣고 현비는 다섯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현비는 슬쩍 원경릉의 배를 쳐다보았다. ‘임신을 한 걸 보니 영 몹쓸 물건은 아니군……’희상궁은 현비의 표정이 유해진 것을 보고 한숨을 돌리고 물러났다. 현비는 이왕 출궁 한 거 원경릉에게 훈계를 몇 마디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시어머니로서 현모양처가 되는 방법부터 이상적인 며느리가 되는 법까지 원경릉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다.현비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드르렁- 드르렁-”현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원씨, 본궁이 지금 얘기하는 거 안 보입니까? 어떻게 본궁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코까지 골면서 잘
조어의가 원경릉을 보고 피로누적으로 인해서 잠을 자는 것이라고 하자 현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비는 부중의 사람들에게 왕비를 잘 돌보라고 분부하고 수레에 올라탔다. 현비가 떠난 왕부에서 원경릉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만아와 사식이의 부축으로 침상으로 옮겨져 누가 업고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들었다. 현비는 궁으로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녀는 출궁을 하면서 다섯째를 설득해 호씨 집안과 혼인을 하게끔 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밖의 상황에 이렇게 쫓겨나듯 궁으로 돌아오게 되다니. 궁으로 돌아온 현비에게 태후가 초왕비의 상태를 묻자 무사하다고 말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사람을 진북후부로 보내 내일 호 아가씨를 입궁하라고 분부했다.현비는 호 아가씨의 인품이 어떤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소문보다 성격이 견딜 수 있는 정도라면 빠른 시일 내 다섯째와 혼인을 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현비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아들 문호를 꼭 태자로 만들어야 해.’다섯째는 공주부 사건으로 근 1년 동안 황실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 왕비의 임신과 동시에 경조부윤으로 파견되어 승승장구하나 싶었더니 또 곤장을 맞고 그 모양 그 꼴이 되다니. 현비는 바보 같은 다섯째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다음날, 호 아가씨가 입궁했다. 호 아가씨는 빨간 단색 치마를 입고 검은 옷깃의 저고리에 털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쪽진 머리에는 적산호 비녀가 꽂혀있었으며 검은 피부에 짙은 눈썹,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곧게 뻗은 콧대. 전체적으로 그녀의 모습엔 활기가 가득했다. ‘소문대로 대범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군.’그녀는 무릎을 꿇고 현비 앞에 앉았다. “신녀가 현비마마를 뵙습니다. 제 이름은 호강연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비마마 만수무강하시옵소
현비는 호강연의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현비가 잠깐 눈을 감자 눈앞에 우문호가 태자로 책봉되는 순간이 그려졌다. 현비는 호강연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가늘게 떴다. “호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정말 다행입니다!”호강연은 활짝 웃으며 “예, 그 말씀을 줄곧 기다려왔습니다!”라고 말했다.현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오늘 본궁이 사람을 시켜 제비집을 준비해 두었는데, 마시고 계세요. 본궁이 사람을 시켜 황상을 모셔오겠습니다.”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현비는 방금 호강연과 나눈 대화를 황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강연은 황상이라는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비를 보았다.“예…… 신녀 다 마셨습니다. 제비집은 진북에서 아주 귀한 겁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준비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현비는 당황한 표정의 호강연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간에서 떠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겸손하고 예의도 바르다고 생각했다. 원경릉은 다섯째가 호 아가씨의 성격 때문에 혼인을 거절했다고 했는데, 그건 그가 호강연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생각보다 얌전하고 성격도 소탈하니 좋은데…… 다섯째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명원제는 요 며칠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는 나귀빈 사건이 해결된 후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고, 또 하나는 진북후측에서 트집을 잡지 않아 평온한 매일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여태감이 출궁해 초왕비를 보고 와서는 배가 남산만 하니 장군을 낳을 것 같다고 전하자 그 기쁨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하지만 명원제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는 셋째 때문이었다. 구사가 말하길 셋째가 정후부에서 소란을 피웠다는데, 그 말을 듣고 명원제는 낯이 뜨거워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렵다더니…… 정세보다 자식 관리가 더 어렵구나.’명원제가 궁궐화원에서 앙상해진 가시나무를 보며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때마침 현비가 보낸 사람이 와서 호 아가씨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