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바뀐 걸 안 원경릉하지만 이거든 아니든 아명은 이렇게 정해졌다.초왕부 사람들은 내일이 태어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라 ‘삼일 목욕’ 준비에 바빴다.삼일 목욕은 대길(大吉)의 예식으로 이 일을 위해 태후가 미리 기별을 넣었으므로 황실의 친인척은 시간이 있던 없던 반드시 가야 했다.세시풍속을 대략 알고 있는 원경릉도 삼일 목욕 풍습을 알고 있다. 소위 삼일 목욕은 아이가 태어난 지 삼일 째 되는 날 일가 친척과 친구를 불러 몸을 닦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생에서 가져온 더러움을 씻어 내고 이생은 평안하고 대길하길 기원하고, 몸을 청결이 해서 병을 예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당히 웅장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정후부 쪽에서도 사람이 와서 삼일 목욕 의식에 출석한다.다음날 이른 아침 예친왕 부부가 와서 우문호에게 아가들의 아명이 이미 족보 옆에 기입이 되었고 본명이 정해지는 대로 위에 첨가할 것이라고 알렸다.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고 예친왕비가 원경릉을 보러 들어왔다.들어가서 다독거리며 칭찬하길: “정말 대단해요, 황실 가문에 남자 아이 셋을 낳아 주다니, 가서 봤는데 셋 다 똑같이 복스럽고 부귀할 상이에요.”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지금 보면 못 생겼어요, 왕비마마 말씀대로 쟤들이 복스럽게 일생 평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꼭 그럴 거예요!” 예친왕비가 원경릉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해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걔들 아명을 초왕비가 붙였다면서요. 좀 특이하긴 하지만 착착 입에 붙기는 해요.”원경릉이 웃으며: “제가 의술을 알아서, 약초 이름으로 아이들의 아명을 지었어요, 걔들이 앞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요.”예친왕비가 당황해서, “그게 약 이름이라고요? 그거…… 떡 이름 아니고요?”“떡 이름이요?” 원경릉이 당황해서, “남성, 인동, 공청은 전부 약이름이에요.”예친왕비가 이상하다는 듯 원경릉을 보며, “아뇨…… 만두, 경단, 찰떡인데요?”원경릉이 눈앞이 아득해 지더니, “어떻게 만두 경단 찰떡이 될
만두 경단 찰떡“아가들 아명이 뭐야?”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우문소가 웃으며: “네가 붙였잖아, 기억 안나?”“뭐냐고? 왕야가 궁에 가져간 이름이 뭐냐고?” 원경릉이 웃고 있는 우문호의 얼굴을 보는데 조금도 웃고 싶지 않다.“그 종이에 써 있던 그대로지. 만두, 경단, 찰떡.” 우문호가 원경릉 곁에 앉아 말했다.원경릉이 힘없이 손을 떨구더니 우문호를 노려보며, “내가 지은 거 아냐.”“어?” 우문호가 놀라서, “네가 그랬잖아 서재 책상 위에 있다고? 내가 책상에서 집은 게 바로 그거야. 써 있는게 딱 3개였어. 네가 말한 게 이 3개 아니야? 그럼 네가 붙인 이름은 뭔데?”원경릉이 화가 나서: “내가 쓴 건 공청, 남성, 인동인데 왕야는 무슨 만두가 어쩌고 찐빵이 어쩌고, 도대체 어디서 본 거야?”우문호가 경악한 얼굴로, “너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은 거야? 하지만 진짜 그 종이를 봤다니까, 보니까 네가 글씨를 잘 못써서 내가 다시 한 장 썼다고. 못 믿겠으면 내가 가져다 줄게.”“가서 가져와!” 원경릉은 우문호가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거짓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이 기억상실이나 기억 착오를 일으킨 거 아닐까?무슨 만두, 찐빵 이게 정말 그녀가 지은 이름이라고?우문호가 일어나서 나가더니 밖에 소리쳐서, “서일아, 가서 서재 탁자에서 그 종이 가져와.”“예이!” 서일이 밖에서 답했다.우문호가 원경릉 곁에 앉아 틀림없다며: “진짜 널 속이는 게 아니야, 확실히 이 3개가 써 있었다니까.”원경릉이 풀이 죽어서, 아이들 이름은 짓는 건 사실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이 시대에선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닌지라 아명이라도 지어 줘서 자신에게 일말의 위로를 건네려 했었다.이 이름은 원경릉이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 뒤에 자를 붙일 수 있고, 그래서 원경릉이 이 세 이름을 지으며 결국 그들의 자대로 되길 원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좋은 이름을 생각해낼 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건성으로 라도 일단은 물어봐야 했
삼일 목욕커다란 손이 서일의 뒤를 덮쳐와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떨어지며, 다섯 손가락을 펼쳐 서일의 옷을 비틀어 쥐자 서일이 뒤틀려서 휘장 안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얼른 고개를 돌리고, “공자왈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우문호가 서일의 두 눈을 겨누고 주먹을 날린 뒤 성난 파도처럼, “미친 새끼가 잘못 쓴 종이 버릴 줄 몰라? 바닥에 쓰레기 바구니 있는 거 못 봤어? 엉? 버리진 못할 망정 고이 모셔서 탁자에 올려 놔? 너 일부러 내가 잘못 집게 한 거지? 결국 세 아이 아명을 서대인 너님께서 지어 주셨구나?”서일이 눈을 감싸 쥐고 줄줄이 죄를 인정하며, “오해예요, 오해입니다. 전부 오해예요, 아직 괜찮습니다. 왕야 어서 예친왕 전하를 찾아 가세요.”“찾긴 뭘 찾아, 벌써 족보에 다 올렸는데.” 우문호가 화가 치밀어 뚜껑이 열리고 손가락으로 서일의 이마를 가리키며, “넌 앞으로 일할 때 머리 좀 써 알겠어?”“예, 예, 예!” 서일이 서둘러 답했다.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됐어, 지금 서일한테 뭘 화내? 왕야가 잘못 집은 거지. 그 이름을 보고 뭔가 이상하면 왜 나한테 와서 물어보지 않았어?”우문호가 한 발로 서일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당장 꺼져.”서일이 광복절 특사라도 된 것처럼 얼른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서일은 그 뒤로 한동안 세 아가들을 볼 때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인 게, 이름을 지어준 게 자기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분이 사그라지지 않는데 원경릉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미안해, 이 일은 내가 잘못 했어.”원경릉이 얼굴을 갸웃거리더니 미소를 쥐어 짜내며, “괜찮아, 사실 만두든, 찐빵이든, 송편이든 확실히 예친왕비가 말한 대로 입에 착착 붙고 순서 구별하기도 편하네.”우문호가 감동해서, “원, 넌 정말 자상해.”하며 바로 원경릉을 안았다.원경릉이 울상을 지으며, 그럼 어떡하냐고? 널 죽여? 서일을 죽여?하지만 정말 서일에게 한마디 따끔하게 해야겠다. 쓰레기 분리 제대로 하라고 말이다.황실의 친인척이 속속 도착
아가를 둘러싼 궁중 여인들삼일 목욕은 정오 즈음에 있는데 이 때가 태양이 중천에 떠서 하루 중 제일 기온이 높아 목욕 할 때 아가가 동상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정오가 다가오자 태후, 명원제, 주황후, 현비, 귀비, 덕비, 호비가 모두 도착했다.태상황은 오지 않고 상선을 보냈는데 오늘 초왕부에 사람이 많으니 흥을 깨지 않으려고 오지 않았다.마치 궁중에서처럼 성대하니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초왕부에 들어서자마자 태후는 아가들이 보고싶어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희상궁이 유모를 시켜 세 쌍둥이를 안고 와서 태후 앞에 두니 태후는 거의 모습이 똑같은 세 아가를 보고 기쁨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정말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총애가 지극했다.태후가 안자 아가가 심지어 입을 벌리고 웃는데, 그 웃는 얼굴에 태후의 심장이 녹아 내렸다. 천지신명에 빌고 빌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증손자를 안았으니, 태후는 아가를 안고 조상의 영전 앞에 꿇어 앉아 조상님의 보우하심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어서 오너라, 와서 다들 좀 안아 봐!” 주황후는 별로 안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 기분이 나쁜 것이, 현비가 득의양양한 꼴이 보기 싫기 때문이다.그날 현비가 성지를 잘못 전한 일이 궁에 온통 알려졌지만 태후와 황제는 현비를 벌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주황후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하지만 막상 아가를 안으니 아가가 주황후를 보고 웃는데 마음에 가득하던 고뇌가 전부 사라지는 듯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어마마마, 이제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된 아가인데 어쩜 웃을 줄 알아요. 신기하죠 그죠?”“신기하다, 신기하고 말고,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니 당연히 특별하고 말고.” 태후는 모든 행운과 복이 모두 세 아가들에게 가득 머물길 간절히 바랄 뿐더러 아이들에게 믿을 만한 뒷배경을 찾아주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며,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들이니 보살들이 살펴 주실 게야.”귀비와 덕비도 안아보더니 귀비가 웃으며: “오랫동안 이렇
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은근 열이 받아서 가서 경단을 안았는데, 세상에나 경단을 품에 안자 또 똑같이 울어서 안되겠다.현비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막내 찰떡이를 안아보려고 갔는데 찰떡이는 처음엔 안 울더니 현비가 안은 뒤에 젖을 토했는데 현비가 허둥지둥 닦자 찰떡이가 울기 시작했다.찰떡이는 원래 작아서 울음 소리는 크지 않지만 울기 시작하면 잘 토해서 현비가 안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찰떡이 얼굴이 괴로워서 자주빛이 되었다. 태후가 화가 나서, “됐다, 넌 앉아라, 안을 필요 없어.”태후는 희상궁을 불러 찰떡이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안겨 달라고 했다.현비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자리에 앉는데 눈물이 고였다.태후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찰떡이를 깨끗이 닦은 뒤 무릎에 놓고 살살 흔들어주다가 포대기를 톡톡 두드려주며, “착하지, 우리 착한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 왕할미가 안고 있어, 예뻐 하고 있어.”세 아가는 모두 울지 않았다.현비는 사람들에게 세게 따귀를 몇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들 자신을 멸시하고 비웃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얘들은 현비의 친손자인데 다른 사람이 안으면 멀쩡한데 오직 현비만 안을 수가 없다.하필 귀비가 이때 웃으며: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다 안아도 상관없는데 유독 친할머니인 현비 마마가 안으면 안되는 게, 마마 손에 가시가 났나요 아님 왜 그러죠?”다들 현비의 얼굴을 응시하자 현비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오늘은 좋은 날인데, 귀비 마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부적절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현비는 전에 귀비가 이렇게 짜증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왜 사사건건 현비를 걸고 넘어지지?현비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조금 있다가 삼일 목욕이 끝난 뒤에도 귀비가 여전히 득의양양한지 봤다.현비는 태후전에 갔다가 황제가 오늘 조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았는데, 분명 삼일 목욕 후 천하에 다섯째를 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선포할 것이 틀림없다.태자의 친모는 지위가 낮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예전
황태자 책봉귀비가 와서 자세히 보고 손으로 긁어도 보는데 발바닥을 긁어서 빨갛게 되었는데도 색이 없어지지 않자 태후가 불쾌해 하며, “어떻게 그릴 수가 있느냐? 어서 안아라, 아직 날이 춥구나.”희상궁이 유모에게 분부하며, “안고 준비하자,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구나. 씻으셔야지.”씻는다는 얘기를 듣고 태후가 비로소: “어째서 사돈댁에서는 아직 오지 않았는가?”희상궁이 웃으며: “태후 마마, 왔습니다. 노마님과 정후부부 모두 와 있습니다. 정후는 밖에서 선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오, 그럼 어서 들어와서 아이를 보셔야지, 너희들은 가서 준비하거라.” 태후가 말했다.정후는 오늘 참으로 어깨를 쫙 폈다.출산을 마치고 도련님이란 것을 알고 바로 사람을 시켜 대례를 준비시키고 삼일 목욕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태후와 황제가 안에서 아이를 보고 정후는 문 앞에서 황제의 접견을 기다리는데 노마님과 황씨, 원경병이 원경릉을 보러 갔다.정후는 들어가서 착실하게 예를 취해 아주 예의가 바른 모습으로 보였다.태후가 정후를 추켜세우는 말을 아끼지 않으니 정후는 기뻐서 얼굴에 꽃이 활짝 피었으나 감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황제가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제는 정후의 눈에 진노가 없고 이미 아미타불인 것을 봤다.삼일 목욕이 막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실내엔 구리 대야 세 개에 절반정도 물이 담겨 있고, 구리 대야에 비친 물이 금빛으로 찬란한데 물 안에는 배꼽 집게가 놓여 있고, 대야 주변에 수건, 항아리 화로, 좁쌀, 작은 금괴와 은 등 길하고 복을 비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삼일 목욕을 주관한 사람은 아가들을 받아 주신 산파이기도 한 강녕후 부인, 주패(朱佩) 고모님이다.하지만 셋이기 때문에 최대인이 소개한 산파와 희상궁이 같이 목욕을 시켰다.실내는 따듯하고 온화한 빛이 비치는 것이 여름 같아 옷을 벗긴 후 살짝 구리 대야에 내려놓는데, 원래 마르고 약한 세 아가가 지금은 옷을 벗고 서로 똑 닮은 강아지처럼 물에 들어가 손발을 꼼지락 거리
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가슴이 쿵쾅거려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입을 틀어 막고 태후의 발 앞에 꿇어앉아 있는데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소씨 집안에서 마침내 인물이 나왔고, 현비가 황후는 아니라도 언젠가는 태후가 될 것이다.현비도 잠시 꿇어 있다가 일어나 목여태감이 책봉조서를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없었다. 황제는 그저 우문호를 바라 본 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더니: “폐하께서 궁으로 돌아가신다. 가마를 대령해라!” 오늘은 그저 절차만 밟을 뿐 군신이나 부자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해야 할 것이다.현비는 명원제가 정말 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불러서, “폐하, 잠시만!”명원제가 고개를 돌려 현비를 보고, 음산한 눈빛으로, “또 무슨 일이냐?”현비가 명원제의 이 눈빛을 보니 그날 따귀를 맞았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철렁하며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얘기를 꿀꺽 삼키고 눈을 내리깔고: “신첩 태자비와 잠시 함께 있고 싶사오니 조금 늦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명원제는 밝지 않은 얼굴로: “허락한다!”우문호와 다른 친왕은 태후, 황후 및 다른 마마들을 나가시는 것을 공손히 배웅하고, 손왕, 회왕, 제왕이 우문호를 둘러싸고 축하했다.안왕이 홰나무 아래 서 있는데 마침 홰나무 그늘에 가려서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다섯째야, 축하한다!”우문호가 안왕을 보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넷째 형 고맙습니다.”안왕이 고요하게: “이런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어, 안 그러면 황태자의 자리를 뺏길 지도 모를 일 아니냐.”이런 도발적인 말에도 우문호는 조금도 맞받아치려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넷째 형 말이 맞습니다.”안왕이 눈을 내리깔았지만 곁눈질하더니 홀연히 스쳐 지나갔다.안왕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분부해 안왕비를 오라고 하더니 안왕부로 돌아가겠다며 작별했다.안왕을 보내고 현비는 바로 우문호를 작은 서재방으로 끌어갔다.현비의 표정은 최고로 엄숙하고 준엄해서, “오
엄마가 하는 짓이라니현비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꺾이며,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우문호가 현비를 보고, “어마마마, 원 선생이 해산하던 그날, 어마마마께서 뭘 하셨는지 아십니까?”현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미가 한 모든 행동은 다 널 위해서 였다. 원경릉은 널 놀며 즐기게 망가뜨릴 뿐이야, 네가 무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게 만들 뿐이라고.”“제 왕비를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 저를 위해서란 말입니까?” 우문호가 말을 해놓고도 마음이 섬뜩해서,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내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부모 된 도리란 자식이 일생을 평안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제가 제왕의 집안에 태어나 만약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다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현비는 얼이 빠져서 우문호를 보는데 오직 분노가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실망스럽고 가슴 아파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씨 집안은 이미 몰락했지만 네 외할아버지와 네 외삼촌이 너를 지원하는데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네가 황위에 오를 수……”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언젠가 제가 황위에 오르면 소씨 집안이 제후와 공작 벼슬에 봉해 질 것이다 아닌가요? 그러면 그들이 한 행동은 전부 저를 위한 겁니까? 그들 자신을 위한 겁니까? 또 소씨 집안이 몰락한 것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만약 제가 황제가 돼서 소씨 집안의 위엄을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다면, 지금 황조모는 폐하의 어머니고, 소씨 집안 사람인데 아바마마께서 줄곧 소씨 집안을 살펴 주셨 건만 어째서 소씨 집안이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못 볼까요? 문제는 처음부터 누가 황제가 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씨 집안에 기용할 만한 인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현비는 크게 충격을 받고, “너……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소씨 집안에 어째서 인재가 없어? 네 외조부, 네 외삼촌 전부 조정에서 직책을 맡으셨는데 그분들이 왜 쓸모가 없어?”“직책을 맡으셨지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