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 누나, 저 수호에요.”나는 복부의 통증을 참으며 남주 누나를 마구 흔들었다.하자만 남주 누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정말 과음했나 보네.’‘하, 이걸 어쩌지?’‘설마 이대로 포기해야 한다고? 그러면 너무 재미없잖아.’나는 얼른 뒤돌아 애교 누나를 흔들어댔다.“애교 누나, 취했어요?”하지만 애교 누나는 몸을 한번 뒤척이더니 아무 반응도 없었다.이건 그야말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기대에 부풀어 두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왔더니 모두 만취해서 쓰러지기나 하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설령 지금 이 상태로 한다고 해도, 그건 별 재미가 없을 거다. 무드가 없을 테니까.나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윽고 두 사람을 양쪽에 눕힌 후 가운데에 벌러덩 드러누웠다.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푹 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몰랐던 건 애교 누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거다. 반대로 남주 누나는 확실히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남주 누나가 없으니 애교 누나도 민망해서 취한 척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애교 누나는 셋이 하는 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서른 넘는 나이에, 앞으로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아직 젊고 그럴 조건이 될 때 제대로 즐기고 경험해 봐야지.하지만 그렇게 큰소리치며 술을 마시던 남주 누나가 먼저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애교 누나는 나보다 더 어이가 없었을 거다.애교 누나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모른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니 못내 아쉬웠다.나도 사실 적게 마시지 않았던 터라 올 때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때문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이 들었다.그 시각, 형수가 형에게 끌려 다른 호텔에 갔다는 걸 우리 셋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한편, 그 호텔의 어느 방에서는 샤워를 마친 왕정민이 목욕 타월로 몸을 감싼 채 형이 형수를 데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소민이
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뒤돌아 떠나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사실 정규직 전환은 소민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그녀의 진정한 목적은 부자의 애인이거나 내연녀가 되는 것이다.그러니 소민은 왕정민과 호형호제할 수 있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부자라고 생각했다.더군다나 왕정민은 이미 애인이 있기에, 소민이 그 여자의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목표를 바꿔서 다른 스폰서를 찾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민은 다시 물었다.“왕 사장님, 그럼 그 친구분도 당연히 사장님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겠죠?”왕정민은 크게 웃으며 소민을 자기 옆에 눕혔다.소민은 왕정민의 손길에 바로 얌전히 누웠다.그러자 왕정민은 소민의 옷깃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내 그 친구는 너도 만났던 사람이야. 바로 정수호의 형, 진동성이야.”“아, 생각났어요, 얌전하게 생긴 그 잘생긴 남자죠? 그분은 아내를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와이프 몰래 바람 피운다고요?”‘역시 남자는 다 똑같아. 겉보기엔 얌전한 남자가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법이야.’‘역시 사람은 남자보다 자신에게 의지해야 해. 돈을 많이 버는 게 진리야.’“진동성 와이프도 올 거야. 오늘 밤은 우리 넷의 천국이야.”“네 사람이요?”소민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왕 사장님, 설마 그분과...”“맞아, 하지만 그 친구 와이프랑 하기 전에 내가 제대로 아껴줄게.”왕정민은 갑자기 소민을 덮쳤다.역시 젊은 게 젊은 거라고, 소민이 얼마 건드리지 않았는데 왕정민은 괴로워 났다.다만 왕정민의 유지 시간은 고작 2분이었다.‘무슨 팽이버섯도 아니고. 이 주제에 이렇게 문란하게 논다고?’소민은 마음속으로 왕정민을 경멸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척했다. “왕 사장님 정말 대단해요. 사장님이 너무 괴롭혀서 걷지 못하겠어요.”이 방법은 역시나 왕정민에게 잘 먹혔다.왕정민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말을
동성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소민이 그에게 살포시 뽀뽀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지금은 좀 어때요?”“좀, 좀 나아졌어요.”“그럼, 우리 침대로 갈까요?”동성의 몸은 엄청 굳어 있었다.그걸 눈치챈 소민이 얼른 입을 열었다.“아님, 우리 욕실로 갈까요? 거긴 밀폐된 공간이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하거나 긴장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동성은 욕실 쪽으로 한번 쓱 보더니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소민이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진 사장님, 저 욕실까지 안고 가면 안 돼요?”그러자 동성은 두말없이 소민을 번쩍 안아 욕실로 걸어갔다.한편 왕정민은 두 손으로 태연의 하얗고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더니 대뜸 뽀뽀를 해댔다.그 순간 솔솔 풍겨오는 고약한 입냄새 때문에 태연은 번쩍 눈을 떴다.눈을 떠보니 왕정민의 못생긴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더군다나 그가 제 얼굴에 마구 뽀뽀를 해대는 걸 느껴지자 태연은 왕정민의 뺨을 후려갈겼다.갑자기 뺨을 맞은 왕정민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때, 태연이 번쩍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왕정민 이 개자식아. 너 지금 나한테 뭐 하는 거야?”왕정민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이 여자 손이 왜 이렇게 매워!’‘턱이 다 빠질 뻔했네.’왕정민은 잔뜩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다.“내가 뭘? 가서 네 남편한테 물어봐. 나한테 뭘 시켰는지!”“그게 무슨 뜻이야?”태연은 아직 완전히 술이 깬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그때 왕정민이 욕실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직접 가서 욕실 안을 한번 봐봐. 당신 남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태연은 왕정민이 가리키는 대로 욕실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태연의 눈에는 자기 남편이 한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태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었다.인제야 동성이 왜 본인을 데리러 오겠다고 했는지 납득이 갔다.‘이런 꿍꿍이가 있었
왕정민은 형수의 말이 이해되니 않는 듯 물었다.“무슨 뜻이지?”태연은 옷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네 내연녀, 전소희 맞지? 걔 내 둘째 여동생이랑 같은 학교야!”왕정민은 순간 멍해졌다. 전소희랑 고태연의 여동생이 같은 학교 학생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렇다면 태연이 진작에 자기랑 전소희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저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왕정민은 태연이 무슨 생각으로 여태껏 얘기하지 않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태연은 마지막으로 욕실 쪽을 쓱 보더니 그늘진 얼굴로 자리를 떴다.방안엔 왕정민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십몇 분 뒤.동성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민과 욕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침대에 혼자 앉아 있는 왕정민을 본 순간 이내 당황했다.“정민아, 너 왜 혼자야? 태연은?”왕정민은 아까부터 줄담배를 피고 있었다. 지금까지 벌써 십몇 대는 피웠을 거다.진동성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담배꽁초를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그리고 걸어가 동성의 멱살을 쥐어 잡고 말했다.“네 와이프랑 전소희가 같은 학교 다니는 거 왜 말 안 했어?”그 말을 들은 동성은 더욱 당황했다.‘대체 무슨 상황이지?’“정민아,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못 알아들어? 그래, 그럼 내가 하나하나 말해 줄게. 아까 네 와이프가 깨어나더니 나한테 뺨을 한 대 날리면서 자기 여동생이랑 전소희가 같은 학교 다닌다고 경고하더라!”동성의 머릿속은 태연이 깨어났다는 말로 꽉 차, 태연의 여동생이랑 전소희에 관한 얘기는 들리지도 않았다.‘태연이 깨여나서 떠났다고?’‘그 얘기는 아까 욕실 안에서 내가 했던 모든 일을 다 봤다는 거잖아?’동성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정민아, 태연이 또 다른 얘기는 안 했어?”동성은 전전긍긍하며 물었다. 왕정민은 그를 밀쳐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건 네가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젠장, 난 뭐야! 건진 게 하나도 없잖아!”왕정민은 말하면서 진
동성은 할 수 없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태연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걸 보자 동성은 마음이 조급해 났다.형수는 확실히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전화로 내 위치를 물었다.정신없이 자던 나는 형수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고 걱정이 앞섰다.내가 말한 주소로 오겠다는 형수의 말에 나는 특별히 호텔 아래로 내려가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의 차가 보였다.차에서 내린 형수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와락 안기더니 울음을 터뜨렸다.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이게 무슨 일이지?’“형수, 형이랑 집에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혹시 싸웠어요?”나는 걱정스레 물었다.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품에 엎드린 채 울기만 했다.형수가 이렇게 슬피 우는 건 처음 본다. 이대로 울다간 형수가 이대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형수는 한참 동안 울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울음 때문에 팅팅 부은 형수의 두 눈을 보자 너무 안쓰러웠다.나는 형수의 얼굴을 가볍게 감쌌다.“형수,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울어요?”형수는 흐느끼며 말했다.“수호 씨 형이... 바람났어요. 그뿐만 아니라 나를 왕정민한테 보냈어요.”형수의 말에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형수를 왕정민한테 밀어주다니?’‘왕정민이 얼마나 개자식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형수를 왕정민한테 줄 수 있지?’‘해도 해도 너무하네.’나는 당장 형한테 전화해서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었다.하지만 형수가 나를 극구 말렸다.“난 지금 그딴 인간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수호 씨도 연락하지 마요. 혼자 있고 싶어요.”나는 형수가 너무 안쓰러웠다. 두 번이나 왕정민한테 선물로 바쳐지다니.한 이불 덮고 사는 사람이 저를 다른 사람한테 선물처럼 줘버렸는데, 누가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나는 형이 왕정민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쓰레기 같은 짓을 할 수 있는지.나는 형수를 꼭 끌어안으며 위로했다.“형수,
형수가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어찌나 처연하고 가련한지, 보고 있는 내 마음마저 찢어질 것만 같았다.지금껏 나는 형수가 강한 여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형수도 결국엔 여자였다.아무리 강하더라도 내면에는 약한 면이 있기 마련이고, 남자의 사랑이 필요하기 마련이다.나는 형수를 보고 있기 안쓰러워 형수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같이 올라가요. 올라가서 쉬면 기분이 좀 괜찮아질 거예요.”그러자 형수가 눈물을 닦더니 갑자기 물었다.“애교랑 남주도 위에 있죠? 셋이 했어요?”“아니요. 두 사람 모두 너무 취해서 방까지 데려다줬어요. 지금 자고 있어요.”형수는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럼 나도 안아줘요. 지금 위로가 필요해요. 난 수호 씨가 나만 봐줬으면 좋겠어요.”“그럼 올라가지 말고 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요.”형수가 지금 어떤 심정일지 잘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형수를 끌어안았다.형수는 내 품에 한참 동안 안겨 있다가 겨우 기분이 나아졌는지 입을 열었다.“됐어요, 많이 좋아졌으니 올라가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형수를 방으로 데려갔다.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형수가 그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예쁜 여자 둘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많이 괴롭죠?”나는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많이 취해서 괜찮아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남자들은 술만 먹으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알코올은 오히려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켜 술 마신 남자들은 오히려 반응이 잘 오지 않거든요. 술 마셔서 실수했다는 건 사실 다 계획적인 거예요.”형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도 법률 플랫폼에서 본 적 있어요. 진행자도 이런 일을 당한 피해자들한테 숨기지 말고 꼭 신고하라고 하던 거요.”나는 형수를 부축하여 침대에 앉혔다.“형수, 오늘은 아무 일도 생각하지 말고 푹 자
“그 사람 마음속에 가족이 있고, 내가 있고, 수호 씨와 나한테 예전처럼 대한다면 이대로 지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나도 30년을 넘게 살아와서 사실 다 알아요. 남자는 다 똑같다는 걸. 동성 씨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하더라도 비슷할 거예요.”“그러니 번거롭게 이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대로 살려고요. 경제권은 내가 쥐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일은 못 저지를 거예요.”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궁금했다.“형수, 그 말은 형과 결혼생활은 유지하지만 서로 터치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수호 씨가 그런 것도 알아요?”형수는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저도 인터넷에서 본 거예요. 그때는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해가 안 됐거든요. 저는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그 말에 형수가 모처럼 미소 지었다.“그러니까 수호 씨가 단순하다는 거예요. 지금 사회는 수호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요.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다들 생각이 단순했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물질적인 만족감을 얻으니 사람들은 점점 바닥이란 게 없어지거든요.”“지금은 서로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는 부부도 있는가 하면 짝을 바꿔 생활하는 부부도 있고, 심지어 임시 부부도 있어요. 이런 건 못 들어봤죠?”나는 확실히 이런 건 하나도 들어본 적 없다. 짝으 바꿔 생활하는 부부도 있고, 임시 부부도 있다니.‘이건 너무 과하잖아?’‘이 사람들은 대체 결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때 형수가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돈이 있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내가 말한 건 돈 많은 부부 사이에 더 많이 벌어져요. 평범한 부부라면 누가 이런 걸 생각이나 하겠어요? 내가 개방적이고 친구를 가리지 않고 사귀기는 하지만, 나도 사실 보수적인 사람이에요.”“애초에 수호 씨 형과 함께 산 것도 그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하고, 나한테 잘해줬기 때문이에요.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착실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평생은 너무 긴 시간
“다시 왔어, 안 돼?”형수는 덤덤하게 말했다.그런 형수를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남주 누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형수뿐이라니까.’남주 누나는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형수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교 누나한테 달려갔다.“애교야, 수호 좀 봐. 바람기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이 여자 저 여자 하나도 놓치기 싫은가 봐. 어린 게 벌써 이런 것만 배우다니, 앞으로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닐 거야.”나는 순간 울컥했다.‘내가 형수를 부른 것도 아니고, 왜 내 탓이 된 건데?’나는 마지못해 애교 누나한테 설명했다.“애교 누나, 누나가 생각한 거 아니에요. 어젯밤 형수가 기분이 안 좋아 저한테 전화했는데, 형수가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봐 제가 오라고 했어요.”역시 애교 누나는 단번에 내 말을 믿어주었다.“난 수호 씨 믿어요. 수호 씨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애교 누나는 말하면서 형수를 보더니 걱정스레 물었다.“태연아, 너 무슨 일 있었어?”형수는 대답하기 싫은 모양이었다.하지만 남주 누나가 옆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놀려댔다.“혹시 네 남편이 또 너 만족시켜 주지 못했어? 동성 씨 한 사람한테 목맬 필요 뭐 있어? 너도 애인이나 만들어. 여자한테 봄날은 얼마 없어. 그러니까 기회 잘 잡아야 해. 네가 비쩍 마르고 피부도 푸석푸석해지면 애인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어.”형수는 남주 누나를 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너인 줄 알아? 맨날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까 봐 두렵지도 않아?”남주 누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두려울 거 뭐 있어? 입은 그 사람들한테 달려 있는데, 뭐라고 말하는 것까지 어떻게 통제해? 나만 즐거우면 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뭐가 중요해? 이건 너도 나한테 많이 배워야 해.”나도 남주 누나의 말에 동의한다.사실 여자들은 남자가 이기적이고 밖에서 몸 함부로 굴린다고 하는데, 이건 남자와 여자의 생각 차이일 뿐이다.여자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