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양동준이었다. 강가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물론 양동준이 나를 강물로 차버리고 밧줄을 내 목에 걸고 잡아끌었지만, 나는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양동준이 너무 멋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확히 나를 딱 맞춰 밧줄을 걸다니 역시 내 우상 다웠다.“동준 형님, 고마워요.”나는 강가에서 기어 나와 헤실거리며 웃었다.그러자 양동준은 싸늘한 눈빛을 쏘아 댔다.“고맙다고요? 수호 씨를 강으로 차버린 것도 난데, 그래도 살려줘서 고마워요?”“네. 아까 동준 형님이 저를 걷어차는 바람에 저와 형님의 실력차가 얼마나 큰지 알았어요. 그래서 동준 형님이 더 존경스러워요.”이건 내가 양동준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내 말을 들은 양동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 제자가 되려고 정신 나간 말도 하네요.”“틀렸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한 건 진심이에요. 다른 목적이 없어요.”“귀신을 속여요.”양동준은 밧줄을 정리하고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나는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동준 형님, 저 좀 데려다줘요. 제 차가 저쪽애 있거든요.”“나한테 가르쳐 달라면서요? 고작 이 거리도 정복 못 하겠어요?”그 말에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무슨 뜻이에요? 저 가르쳐 주는 거예요?”“흥.”양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시동을 걸고 떠나버렸다.그 뒤에서 나는 몸이 축축한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양동준의 속도는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렸는데, 보아하니 나를 단련시키려고 일부러 나를 운동시키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나를 운동시킨다는 건 나를 가르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이건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나는 양동준의 속도에 맞추려고 힘을 냈다. 하지만 온몸이 젖은 데다 전에 다친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결국 나는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양동준은 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양동준이 아까는 나를 놀린 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나는 양동준 앞에서 내 결심을 증명하려고 생각지도 않고 뛸 생각부터 했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웃었다.“제가 안 뛰면 동준 형님이 제가 나약하다고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봐요.”“뛰면 내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요?”쏘아붙이는 듯 내뱉은 양동준의 한마디에 나는 너무 난처해서 얼굴이 붉어졌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동준 형님이 저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도 이러지 않으려고 해도 정태곤이 너무 강해요. 제가 동준 형님처럼 담력과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저 정말 찌질해요. 그래서 변하고 싶어요.”양동준은 어느새 오토바이에 다시 올라탔다.“정말 변하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해요. 그런 비겁한 방법 쓰지 말고.”말을 마친 양동준은 이내 시동을 걸고 떠나버렸다.하지만 이게 대체 나를 응원하는 건지 아니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지 라이송해졌다.내가 마침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진동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두 번 정도 울리고 바로 꺼져버렸다.내가 아까 강물에 빠졌을 때 핸드폰도 물에 잠기면서 고장 난 모양이었다.민우와 동료들이 나한테 전화한 것일까 봐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얼른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가게에 도착했더니 확실히 문제가 생겼다.이번에 소란을 피운 사람은 주해진이었다.아침에 내가 주해진의 똘마니들 앞에서 그의 거시기를 잡아 쪽팔리게 했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주해진은 김진호처럼 저급한 수단은 사용하지 않았다.주해진은 워낙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깡패라 이런 경험은 많기에 이미 능구렁이였다.의료 사고가 난 척 행패 부리는 건 가장 수준 낮은 방법이다.일을 크게 벌이지 못하면 상대는 별로 타격이 없고, 마약 크게 벌인다 해도 기껏해야 가게 이름에 손해가 될 뿐이다.하지만 주해진은 레벨이 달랐다. 그는 아예 식약처 사람을 데려왔다.식약처 직원들은
남주 누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전화한 게 내 인맥을 빌려 식약처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거였어?”“네. 그런데 누나가 그 국장과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을 줄은 몰랐어요.”남주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 여자와 사이가 안 좋지만 그 여자 약점을 쥐고 있어.”“정말이에요? 뭔데요?”“뭐긴 뭐야 정계 쪽 일이지.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내가 바로 그 여자한테 전화해서 부하들 불러가라고 할게.”“고마워요.”남주 누나의 말을 들으니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그때 남주 누나가 전화 건너편에서 갑자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이 은혜는 어떻게 갚을 건데? 오늘 밤 우리 집 올래?”“됐어요. 요즘 화인당 일로 바빠서 자리 비울 수 없어요.”나는 핑계를 댄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무슨 말투야? 누가 봤으면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됐어. 볼일 봐. 시간 나면 연락할게.”남주 누나는 피식 냉소를 짓더니 전화를 끊고 의약품안전국장한테 전화했다.그 시각, 의약품안전국장 사무실.정미령은 단톡방에 올라온 잘생긴 남자 사진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잘생긴 젊은 총각을 소개해 줘 오늘 밤 제대로 즐길 생각이었다.하지만 한창 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정미령은 액정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최남주!평소 저와 상극이던 사람이 갑자기 웬일로 전화했는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정미령은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해가 서쪽에서 떴나? 네가 나한테 무슨 일이야?”최남주도 저를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투를 들었지만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했다.“해는 서쪽에서 뜰 수 없지만 난 너한테 전화할 수 있지.”“하, 무슨 일인데? 네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겠어? 너 정부 사무실에 있잖아. 아무리 볼 일이 있어도 나를 찾지는 않을 텐데.”“그건 아니지. 이번에 정말 일이 있어. 게다가 반드시 너를 찾아야 해. 화인당이라는 한의관이 있는데 네 부하들이 조
솔직히 정미령도 언제 다시 강등될지 모른다.의약품안전국장은 아주 좋은 자리다. 하지만 유혹을 견디지 못한 이전 국장들은 바로 대체되었다.심지어 은연중에 의약품안전 국장 자리는 가시방석 같아 1년을 버티는 사람이 없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정미령도 사실 자기가 얼마나 버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 때문에 최남주와 완전히 틀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정미령의 아들은 공부를 잘하지만 집이 너무 멀리 있는 데다 실험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인맥이 필요하다.때문에 최남주가 어떤 태도로 나오든 정미령은 너무 심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최남주한테 끌려 다니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결국 정미령은 직접적인 약속은 회피했다.“이따가 전화해서 상황부터 물을게.”“이따가? 언제 말하는 거야? 1분 뒤? 10분 뒤? 아니면 내일? 내가 원하는 건 지금 당장 사람들 불러가라는 거야.”“최남주, 적당히 해. 나도 지금은 국장이야. 나도 일이 바빠.”정미령은 목소리를 높이며 강조했다.최남주는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는 듯 말했다.“그래. 그럼 일 봐.”최남주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정미령은 다급히 말했다.“뭐 하려고?”“너 바쁘다며? 그래서 방해 안 한다니까.”최남주의 말에 정미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머리마저 지끈거렸다.정미령은 최남주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렇다할 방법이 없었다. 최남주가 직접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괜찮을 테지만,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분명 문제가 커진다.정미령은 너무 짜증이 나 미간을 문질렀다.“그 한의관이 너랑 상관있는 곳이야?”정미령은 최남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캐물었다. 하지만 최남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너랑 무슨 상관인데? 전화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다른 사람 찾을 거야.”“너...”최남주는 정미령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정미령은 화가 나면서도 결국 전화를 했다.안 그러면 최남주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몰랐으
때문에 주해진은 자기 사촌 형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도와줄 수 있으면 계속 도와주고. 싫으면 관둬. 볼 일 있으면 가서 일 봐. 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마.”상대는 친척이라서 주해진을 도운 거였는데, 주해진이 제 호의를 무시하고 은근히 비아냥거리자 기분이 언짢았다. 이에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널 도와주는 건 친척 간의 정을 봐서야. 그런데 이런 태도로 말해? 나 기분 나빠지려고 해. 난 고작 팀장이야, 국장도 아닌데 어떻게 뭐든 내 말대로 되겠어?”“됐어. 알았어.”주해진은 짜증 나는 듯 상대의 말을 잘랐다.그러자 그 사람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지더니 씩씩거리며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주해진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대단해네? 식약처 사람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하고 말이야.”나는 피식 냉소를 흘렸다.“우리 한의관은 원래부터 문제없어. 식약처에서 다시 검사하러 와도 꼬투리 잡지 못할 거야.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 떳떳해. 오히려 꿍꿍이가 있는 놈들이 여기 와서 소란 피우면 안 되지.”주해진 역시 냉소를 지었다.“말도 잘하고 능력 있네. 네가 그렇게 대단하면 가게 잘 지켜. 미리 말해두지만, 난 이 가게 부술 거야.”주해진은 으름장을 놓으면 나에게 접근했다.하지만 나와 가까워지기 전에 양동준이 그를 대여섯 걸은 밀어냈다.“뭘 부순다는 거야? 여기? 어디 한번 해봐!”양동준이 부순다는 것과 주해진이 부순다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특히 양동준이 위압감 넘치는 눈빛으로 쏘아보자 주해진은 살짝 움츠러들었다.주해진은 갑자기 겁을 먹고 말했다.“이건 우리 사이 일이니 당신은 끼어들지 마.”“내가 왜? 이건 내 제자 일이야. 내 제자를 건드리는 건 나를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고.”양동준의 말을 들으니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파가 들끓었다.“스승님!”나는 뻔뻔하게 양동준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나를 째려봤다.양동준은 핑계를 찾기 위해 이렇게 말한 거였지만 나는 그걸 철석같이 믿고 심지어 스승
나는 양동준이 더 존경스러웠다.한마디로 모든 사람을 쫓아내다니, 이런 상황은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데, 오늘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봤다.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나는 양동준의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뻔뻔하게 양동준을 향해 박수쳤다.“스승님, 대단해요!”양동준은 나를 홱 째려봤다.“누가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된댔어요?”그 모습에 서지예는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상대 놀라잖아.”“사모님 고마워요.”스승님 아내니까 사모님이라고 한 건데, 서지예한테 아주 잘 먹혀들었다. 그녀는 이내 눈웃음치며 양동준을 바라봤다.“난 수호 씨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제자로 받아줘.”“난 아가씨 부탁을 받고 한의관 지켜주러 온 거지 혹을 달고 갈 생각은 없어.”양동준은 여전히 쌀쌀맞게 거절했다.비록 거절당했지만 나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내가 확실히 약한 게 맞기에 양동준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정상이다.내가 양동준이어도 번거롭게 실력 없는 사람을 제자로 받지 않을 거다.번거로운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정말 그럴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자기 능력을 향상할 거다.때문에 나는 뻔뻔스럽게 물었다.“스승님. 대체 제가 뭘 해야 제자로 받아줄래요? 조건을 말해 봐요. 만족하게끔 할게요.”“수호 씨가 날 만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양동준이 되물었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그때 서지예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줬다.“그래도 우리 사이의 분위기를 풀어줄 수 있잖아. 난 워낙 오만한 성격인데 넌 나보다 더 심하잖아. 우리가 싸웠을 때 분위기 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평생 이 모양 이 꼴인 거야.”“양동준, 너 정말 나랑 만나고 싶긴 한 거야? 정말 만나고 싶으면 수호 씨 제자로 받아. 그게 싫으면 내일 답변 줘.”서지예가 이런 말을 한 건 솔직히 사심이었다,양동준처럼 뻣뻣한 사람이 살아에 눈 뜨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서지예가 혼자 과몰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서지예
나는 그때 너무 쉽게 동의한 걸 우회했다.하지만 사내대장부라면 뱉은 말은 지켜야 했다. 이미 말했는데 어떻게 쉽게 번복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에 양동준이 제기한 요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한편 주해진은 가장 강력한 인맥인 사촌형을 내세우면 화인당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줄은 몰랐다.때문에 다른 방법을 강구하느라 한동안은 화인당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나는 휴식 시간에 단련을 견지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이틀 동안 시달리느라 직원들 모두가 기운이 빠져 있었다. 민우 역시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가 휴식하겠다며 말했다.민우와 함께 셋방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한 명은 침대 위에,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바닥에 누워 방문이 열린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주선영이 돌아와 피곤함에 찌든 우리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문 좀 닫아줄래? 나 좀 휴식하고 싶어.”주선영은 고분고분 방문을 닫아 주었다.아래에 누워 있는 민우를 봤더니 어찌나 피곤했는지 바닥에 엎드려 쿨쿨 자고 있었다.하지만 드르렁거리는 코 고는 소리에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마지못해 거실로 나갔다.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주선영은 내가 나오자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선배가 여기서 휴식해요. 전 방에 들어가 책 볼게요.”“선영아. 나 침 좀 놔줄 수 있어?”나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오후에 너무 맹렬히 연습한 탓에 근육이 다쳤는지 아직도 다리가 아팠다.주선영도 의대생이니 침을 놔주고 마사지해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네, 알았어요.”주선영은 발그스름한 얼굴로 침술 상자를 가져왔다. 보아하니 또 쑥스러운 모양이었다.나는 소파에 편히 엎드려 나른하게 말했다.“왼쪽 다리가 아파. 오후에 운동하느라 근육을 다친 것 같은데, 네가 대신 좀 봐줘.”주선영은 입술을 오므럈디. 어찌나 긴장했는지 가슴이 쿵쾅
이 생각이 들자마자 주선영은 너무 부끄러워 얼굴에 피가 쏠렸다.하지만 비록 부끄러웠지만 아직은 남자 친구가 없으니 나를 연습 상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결국 주선영은 이를 악문 채 내 반바지를 더 위로 올렸다.그러다가 내 팬티가 드러났다.불룩 튀어 올라온 걸 본 순간 주선영은 부끄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의 그곳이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게다가 그 과정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 알고 싶어졌다.주선영은 심호흡을 하더니 용기를 가지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거의 닿으려는 순간 또 살짝 겁이 났다.가장 주된 원인은 내가 갑자기 깨어나면 너무 어색할까 봐서였다.사실 아까 주선영이 내 다리를 만질 때부터 나는 이미 깨어 있었다.하지만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주선영이 대체 뭘 할지 보기 위해서.나는 눈을 살짝 떠 작은 틈새 사이로 주선영을 바라봤다. 그랬더니 주선용은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부끄러워했다.솔직히 한편으로 마음이 조급 해나기도 했다. 만질 테면 얼른 만지지 왜 꾸물대나 하고.나는 바로 깨어나지 않았다. 주선영이 하도 겁쟁이라 내가 깨어나면 놀라 도망칠까 봐.”주선영은 한참 망설이다가 큰 숨을 들이켜더니 또다시 손을 뻗었다.순간 주선영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그곳이 궁금하면 남자 친구를 사귀면 될 텐데, 왜 나를 실험 상대로 사용하나 싶기도 했다.하지만 어쩌겠네? 협조하는 수밖에. 안 그러면 워낙 얇은 주선영의 낯가죽 때문에 앞으로 지내는 것부터가 문제가 된다.나는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자는 척했다.사실 나는 주선영한테 사심이 조금도 없다. 애교 누나의 사촌 여동생이라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주선영을 넘보지는 않을 거다.하지만 주선영이 내 몸을 노린다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주선영은 입을 오므리고 조심스럽게 내 반바지 안으로 손을 쑥 넣었다.그 과정 내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거렸다.주선영은 양심이 찔리기 했으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참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