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프레드릭 시점
7개월 전 ― 2017년 2월 27일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
나 같은 위치에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나는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 스물여섯 살 남자다.
방금 그 한 문장이 내 인생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 않나?주변에 여자가 넘쳐나냐고? 물론이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인생을 낭비하는 한심한 남자가 아니다.
할머니의 끝없는 재산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 게다가 나는 그녀의 다이아몬드 회사 이사이기도 하다.오늘은 폴라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유명 모델. 아름다운 얼굴, 완벽한 몸매.
아… 그녀가 빨리 내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크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어머, 참 좋은 아침이네. 우리 잘생긴 손자가 아직도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니.”
“할머니?”
나는 당황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1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그녀뿐이니까.“왜 경찰 조사라도 받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니? 내가 그렇게 무섭니? 영혼이라도 잡아먹을 늙은 마녀처럼 보여?”
조금 짜증 난 듯한 그녀의 표정.
솔직히 말하면, 난 할머니가 저렇게 화낼 때조차 사랑스러웠다.
“에이, 아름다운 로사 여사가 무서울 리가 없죠.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회사 회장이 언제부터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지지 하디드랑 비교해도 로사가 훨씬 아름답다니까요. 2017년이에요, 할머니. 화 풀어요.”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포근하고 따뜻한 모성애가 느껴졌다.
정말 그녀만이 내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이었다.“넌 정말 네 아버지를 닮았구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꼭 그렇게 날 놀렸지.”
순간 나는 그녀를 놓아버렸다.
귀가 뜨겁게 달아오른 채 그녀를 노려봤다.
“내가 그 인간 닮았다는 말 제일 싫어하는 거 알잖아요! 난 가족 버리고 도망가는 쓰레기 같은 인간 아니에요. 아직도 그 사람 기억하세요? 26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사람인데? 내가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얼굴 비춘 적 없는 인간이라고요! 그런 말은 모욕이에요, 할머니. 상처 준다고요.”
나는 몸을 돌려 침대 옆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할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 감정은 쉽게 폭발했다.
나는 그를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그가 우리를 떠난 이유도 모른다.부와 권력, 그런 건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걸까.
그가 떠나기 전까지 모든 건 괜찮았다.
나는 그를 찾으려 했다.하지만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안하구나, 프레드릭. 널 슬프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슬픈 게 아니에요. 화나는 거예요. 정말 미칠 만큼. 다시는 그 인간이랑 날 비교하지 마세요. 맹세하는데, 언젠가 그 인간을 찾게 되면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주먹을 날릴 거예요. 그래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할머니는 뒤에서 조용히 나를 안아주었다.
거친 숨소리.
외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조금씩 화가 가라앉자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다시 안아주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언성을 높이는 걸 싫어했다.
그녀는 내 화를 감당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니까.“괜찮아요, 할머니.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그 얘긴 잊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유 없이 제 방까지 오실 분은 아니잖아요.”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눈가의 잔주름조차 그녀의 우아함을 가리지 못했다.
“오늘 고일 씨 가족과 점심 약속이 있단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함께 식사하려고.”
정말 지루한 초대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 않아도 할머니 부탁은 거절하지 않으니까.“알겠어요. 몇 시에 출발해요?”
“한 시간 뒤. 준비하렴.”
그녀는 내 팔을 가볍게 두드리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나는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오늘 오후나 저녁에 갈게. 먼저 할머니 모셔야 해서.’
나는 폴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이번 주말은 그녀와 함께 보내기로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어.대신 오늘은 고일의 딸, 마틸다라는 재미없는 여자를 봐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뭐, 곧 알게 되겠지.
**
오전 11시 15분 정각.
우리는 가족 행사 때 자주 이용하는 5성급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여기서 식사 대접까지 하다니. 할머니처럼 충성심 강한 사장이 또 있을까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할머니는 미소만 지으며 장미빛 립스틱이 발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녀가 고일 가족에게 이렇게 후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20년 동안 충실하게 그녀 곁을 지켜온 사람들이었으니까.
고일은 성실하고 친절한 운전기사였다.
하지만 가끔은, 솔직히 말해 그들의 가까운 관계가 거슬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질투였을지도.
특히 그의 딸 마틸다는 은근히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 애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나는 넘치는 부 속에서도 사랑에 굶주린 채 혼자 컸으니까.
웃기지 않나.
사랑 없는 부유함 속에서 자란 남자가, 사랑이 있는 평범한 가족을 질투한다는 게.
“안녕하세요, 로사 여사님, 프레드릭 도련님. 이렇게 저희 결혼기념일까지 챙겨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고일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정중히 인사했다.
진지하고 단정한 태도 덕분에 레스토랑 직원보다 더 전문적으로 보였다.
“고맙긴요, 고일 씨. 오늘은 프레드릭과 내가 손님인걸요. 자, 어서 앉아요.”
할머니는 다정하게 말했다.
평소처럼 나는 조용히 있었다.
애초에 나는 고일 가족과 깊게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안녕하세요, 로사 여사님. 이렇게 멋진 선물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일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틸다도 로사 여사님과 프레드릭 도련님께 인사드린대요.”
나는 그 못생겼다는 여자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심하고 연약해 보이는 마틸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려 애썼다.
붉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두꺼운 안경.
전체적으로 어딘가 촌스럽고 답답해 보였다.
패션 감각도 최악이었다.
“정말 예쁘구나, 마틸다. 머리를 그렇게 묶으니까 바비 인형 같네. 프레드릭 옆에 서 있어도 잘 어울리겠어.”
나는 거의 사레들릴 뻔했다.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라리 지지 하디드나 켄달 제너 스타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마틸다는 더욱 고개를 숙였고, 고일 부부의 표정도 어색하게 굳어졌다.
“프레드릭.”
할머니가 급히 끼어들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마틸다, 얘는 네 머리를 풀면 더 예쁠 것 같다는 뜻이었을 거야. 젊은 남자들 취향이 원래 좀… 극단적이잖니.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점심 주문하자.”
그 말을 마친 뒤, 할머니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
화난 거였다.하지만 솔직히?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반응이었으니까.
마틸다가 언젠가 내 옆에 설 생각이라면—
최소 열 번쯤 성형수술은 해야 할 테니까.
프레드릭의 시점반쯤 열린 유리 미닫문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았다.식당 테라스의 밤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고, 느슨하게 묶인 헤레나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녀는 난간 끝에 선 채, 아래로 반짝이는 뉴욕의 야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안토니오가 서 있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몹시 가까웠다. 전류가 흐르듯 충격이 내 머릿속을 강타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안토니오가 뭐라고 말을 건네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행동은 눈에 선히 들어왔다. 그는 정장 재킷을 벗어 얇은 드레스 차림의 헤레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그러면서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그의 손등이 헤레나의 드러난 목덜미 살결을 스쳤다.헤레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재킷을 받아들고는 안토니오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미소였다.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쾅 하고 터져 내렸다.질투가 아니었다. 질투라는 감정 따위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참혹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미친 듯한 소유욕이었고, 내 이성을 갈라놓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 여자는 그딴 식으로 다른 남자에게 웃어주어선 안 된다. 그 여자는 내 것이다. 내가 비록 그녀를 망가뜨렸을지라도, 비록 나 스스로 절벽 아래로 내던졌을지라도, 그녀는 오직 나만의 소유여야 했다.이성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내 두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유리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경첩이 날카로운 긁히는 소리를 내며 테라스의 적막을 찢었다.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섰다. 안토니오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그 차가운 표정이 자리 잡았다. 반면 헤레나는……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놀라는 기색도, 죄책감도 없었다. 오직 냉랭한 시선만이 내 혈관 속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로맨틱한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내가 뱉어낸 목소
마틸다의 시점엔조의 저택 40층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살을 에는 칼날 같았다. 하지만 그 서늘함이 오히려 좋았다. 오늘 밤 유일하게 거짓 없는 진실처럼 느껴졌으니까.철제 난간에 기대어 맨해튼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땅 위에 떨어진 별들처럼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아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숨 쉬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가 있다. 어쩌면 지금쯤 집무실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 위 액자에 담긴 마틸다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헤레나'라는 이름만 들리면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내 귀에조차 쓴웃음으로 들렸다.마틸다, 왜 웃어? 네가 이긴 거잖아. 그를 무너뜨렸어. 네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였잖아?그런데 왜 가슴이 이렇게 짓밟힌 것처럼 아픈 거지?차가운 철제 난간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갑자기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입고 있던 검은색 트레이닝 복 상의가 마치 나를 옥죄는 젖은 담요처럼 답답했다. 이 감정에는 익숙해져야 했다. 내성도 생겼어야 했다.하지만 아니었다.프레드릭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언제나 나를 경멸하던 그 눈빛이, 지금은 훨씬 더 참담한 절망으로 나를 바라볼 때마다—내 안의 무언가가 바스러져 내렸다. 헤레나의 그 어떤 완벽한 가면으로도 메우지 못할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젠장." 바람을 향해 뇌까렸다. "그를 그리워하지 마. 절대, 절대—""혼자 말하는 거야?"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며 중심을 잃을 뻔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테라스 문턱에 안토니오가 서 있었다.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칼, 조금 구겨진 셔츠, 그리고 눈 밑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그 역시 잠들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의 외모가 아니었다.그의 말투였다.냉소도, 날 선
프레드릭의 시선나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26년 동안 완벽하게 익혀온 기술이었다.루디에게는 '이터널 프로스트(Eternal Frost)' 캠페인의 "최종 무드 보드를 확인하기 위해" 이 스튜디오에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는 "시각적 디자인의 퀄리티가 스미스-존즈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는지 직접 점검하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맨해튼의 거리를 가로질러 도시 외곽의 낡은 창고를 향해 스포츠카를 몰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순전히 비즈니스적인 문제라고 속삭였다.하지만 지금, 완전히 닫히지 않아 반쯤 열려 있는 문 뒤에 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비겁한 상태인지.나는 무드 보드를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방 안에는 먼지와 블랙커피, 그리고 어딘가 달콤한 향기—아마도 헬레나의 피부에 남아있던 백단향 향수의 잔여물일 터였다—가 맴돌고 있었다. 메인 조명은 꺼져 있었고, 구석에 놓인 작업용 스탠드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헬레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단정한 검은색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머리는 대충 틀어 올린 채 목덜미 위로 몇 가닥의 잔머리가 흘러내려 있었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어깨가 살짝 처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유지하던 완벽한 단단함에 생긴 미세한 균열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안토니오가 서 있었다.그 남자는 기술적인 지시를 내리는 매니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손에 클립보드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조명 각도나 발 모양에 대해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안토니오는 그녀에게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 인치도 되지 않아 보였다. 바늘자국과 다리미 화상 자국이 가득한 그의 거친 손—재단사의 손—이 느릿하게, 그리고 거의 눈에 띌 만큼 망설이면서 헬레나의 어깨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숨이 멎었다. 심장이 엉뚱한 박자로 뛰기 시작했고, 무겁고 뜨거운 박동이 치밀어 올라
마틸다의 시선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마치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벌 소리처럼 들렸다. 프레드릭은 무도회장에서 나를 끌어내어 발코니 문 근처의 반쯤 어두운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의 손은 여전히 내 손목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불처럼 뜨거웠다. 마치 방금 불에서 꺼낸 쇠사슬처럼 뜨거웠다."내 말 들어." 그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간절한 목소리였다. "내 말 좀 들어, 마틸다. 지금 어떤 이름을 쓰고 있든 상관없어. 내 말을 들어."나는 옆에 있는 대리석 벽을 응시했다. 그의 눈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헬레나의 가면이 깨져버릴 테니까. 그 균열이 순식간에 벌어져, 그토록 그를 사랑했던 바보 같은 마틸다—무덤에서 걸어 나와 그를 품에 안고 싶어 하는 마틸다—가 다시 깨어날 테니까."우리 첫날밤 기억나?" 프레드릭이 발걸음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그는 마침내 내가 자신을 쳐다보도록 강제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울어서가 아니라, 수면 부족과 속에서부터 자신을 갉아먹는 강박 때문에. "네가 나한테 닭백숙을 끓여줬었지.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어서 발이 다 부어 있었는데도 주방에서 두 시간이나 서 있었어. 그런데 난... 그걸 네 눈앞에서 쓰레기통에 들이부었지. 내 개도 안 먹을 음식이라고 하면서."숨이 멎었다. 그 기억이 거대한 트럭처럼 나를 덮쳤다. 뺨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수치심과, 당시 가슴속을 태우듯 아프던 그 통증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내 갈비뼈를 으스러뜨렸다."하지만 너는..." 프레드릭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계속 웃고 있었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지. '다음에는 더 맛있을 거예요, 프레드릭'이라고. 왜 그랬어? 왜 나한테 뺨을 때리지 않았어? 왜 그때 나를 미워하지 않았던 거야?!"가슴이 조여왔다. 이 구석의 산소 가 완전히 바닥났다. 다시 '사일런트 드롭(Silent Drop)' 계곡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
프레드릭의 시선나는 그녀에게 춤을 배우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나는 그저 엔조가 개입하거나 반응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끌어당겼을 뿐이었다. 그 유럽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등에 꽂히는 것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껏 노려보라고 해라. 뉴욕의 상류층 전체가 우리를 지켜보게 두어라.오늘 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나와 그녀, 단둘이서.오케스트라가 느린 왈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블루 다뉴브. 우리 결혼식 하룻밤에 울려 퍼졌던 그 저주받을 곡이었다.내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거의 없애다시피 하자, 헬레나는 긴장했다. 진청색 드레스가 소리 없이 흔들렸다. 고급스러운 백단향과 싸구려 바닐라의 달콤함이 오묘하게 섞인 그녀의 향기가 내 감각을 사정없이 두드렸다."너무 가까이 다가오시네요, 스미스 씨." 그녀가 속삭였다. 목소리는 단조로웠지만, 문장 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손님들이 보고 있어요.""보게 두지."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 거의 묻힐 만큼 낮게 대답했다. "슬픔에 잠긴 홀아비가 매혹적인 여인의 동행으로 위안을 삼는 모습을 구경하라고 해. 아니면 두려운 건가, 헬레나?""난 두려운 것 없어요.""좋아."나는 그녀를 돌려세우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얽어 쥐었다. "질문이 있으니까, 대답해야 할 거야."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내 왼쪽 어깨 너머를 향하고 있었고, 그 표정은 완벽하게 훈련된 허무함 그 자체였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당신은 너무 굳어 있어." 나는 리듬에 맞춰 그녀를 이끌며 농담조로 말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레드카펫을 걸을 때는 마치 이 곳의 여주인인 것처럼 굴더니, 이 무도회장 위에서는... 마치 춤을 추는 남자의 발을 밟을까 봐 두려워하는 소녀 같군."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더 강
마틸다의 시선내 허리를 감싸 쥔 프레드릭의 손은 마치 뜨거운 숯불 위에서 달궈진 철퇴처럼 느껴졌다.그 손의 열기는 드레스의 다크 블루 실크 직물을 뚫고 들어와 내 피부를 태웠고, 뼈 속 깊이刻(각인)될 자국을 남겼다. 홀 구석의 오케스트라는 왈츠를 연주하고 있었다. 느리고, 가슴을 비집고 들어오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멜로디였다.젠장.나는 이 멜로디를 알고 있었다. 프레드릭이 우리 결혼식 날 밤, 내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오점이라고 귓가에 소곤거리기 직전, 할머니에게 우리가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이끌며 연주하게 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떨고 있군, 헬레نا." 고급 샌들우드와 위스키 향이 섞인 프레드릭의 숨결이 내 목덜미를 간질였다. "아니면 두려운 건가? 여기 있는 삼백 명의 하객들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자신의 자존심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남자는 두렵지 않아요, 스미스 님." 내 목소리는 무덤덤하고, 차갑고, 완벽했다. 헬레나의 가면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마틸다는 내 마음속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있었다. "이 손 놓으시죠. 엔조가 나를 찾기 시작했어요.""찾으라고 해." 프레드릭은 조롱하듯 중얼거리며 내 허리를 한층 더 세게 쥐어짰고, 나를 자신 쪽으로 1인치 더 밀착시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거의 사라졌다.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나? 당신은 방금 전 무대 위에서 내 삶을 무너뜨렸어. 반지를 내던지고, 모레티의 이름을 입에 담고... 내가 바보로 보이나?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모를 줄 알고?"내 심장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를 덮어버릴 만큼 거세게 방망이질쳤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얼음처럼 냉정함을 유지했다.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그 어두운 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그의 가슴만을 똑바로 노려보았다."환각을 보고 계시네요, 프레드릭. 금단 증상과 수면 부족 때문에 온통 유령만 보이시나 봐요.""프레드릭이라고 부르지 마!" 그가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