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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작은 잔을 싸다

작가: Jino
last update 게시일: 2026-10-16 18:53:56

“대충 싸라.”

코넬이 문틀에 기대 말했다. 열여섯이 된 형은 문틀을 거의 다 채웠다. 아버지를 닮아 가는 중이었다.

“모자라면 가서 사면 돼. 왕도야. 없는 게 없대.”

루엔은 바닥에 펼친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서 사면 생활비에서 나갑니다.”

“생활비 넉넉하잖아.”

“한 해 금화 두 닢입니다. 은화로 마흔 닢. 동화로 사백여든 닢입니다. 하루에 한 닢 하고 삼분의 일이 조금 안 됩니다.”

코넬이 입을 다물었다. 잠깐 뒤 다시 열었다.

“… 조금?”

“끝자리는 그해 날수에 따라 다릅니다.”

형은 한숨을 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늘어놓은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옷 여섯 벌. 겨울 망토. 모포 두 장. 장화와 여름 신. 밀랍판 여섯. 컴퍼스와 곧은 자. 분필 한 상자. 세 칸 계량 숟가락. 1동화 영수증 묶음. 볼록 유리 조각을 싼 천 주머니. 비누와 잿물 병. 셈을 적은 종이 묶음 열한 개. 책 네 권. 그리고 베르타가 싼 말린 고기와 꿀과자 자루.

종이 맨 위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짐말 한 마리가 하루 지고 가는 짐: 백이십 근. — 마부의 말.

그 아래로 물건마다 무게를 적을 빈칸이 있었다.

“이걸 다 달겠다고?”

“답니다.”

*

집 안 저울로는 모자랐다. 아버지 방 놋쇠 저울은 작은 것만 달았다.

그래서 방앗간으로 갔다. 토빈의 곡식 저울은 막대 저울이었다. 긴 참나무 막대 한쪽에 갈고리, 다른 쪽에 쇠추. 추를 밀어 막대가 수평이 되는 눈금을 읽었다. 곡식 자루를 달던 것이었다.

토빈은 휜 깎기 막대 일 이후로 루엔 앞에서 저울 눈금을 두 번씩 읽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옷 보따리 스물두 근.”

“망토 아홉 근 반.”

“밀랍판 여섯 개, 열여덟 근.”

“종이 묶음 열한 개, 서른세 근.”

“책 네 권, 스물여섯 근.”

“모포 열여섯 근. 신발 다섯 근. 비누랑 병 넉 근. 자잘한 것 여섯 근 반.”

“고기랑 과자… 열한 근.”

루엔이 그 자루를 잠깐 보았다. 베르타의 자루는 뺄 수 없었다. 빼면 국자가 올 것이었다.

루엔이 빈칸을 채워 나갔다. 코넬은 방앗간 문간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토빈의 아들이 코넬 옆에 앉았다. 둘 다 입에 풀줄기를 물고 있었다.

다 더했다. 백쉰한 근.

서른한 근이 넘쳤다.

“말을 한 마리 더 빌리면 되잖아.” 코넬이 말했다.

“한 마리 더 빌리면 마부 삯이 두 배가 됩니다. 나루에서 배 삯도 짐 무게로 받습니다.”

“그럼 뭘 빼.”

루엔은 종이를 한참 보았다.

밀랍판 여섯 중 넷을 뺐다. 열두 근. 새로 사도 되는 것이었다. 밀랍은 왕도가 더 쌌다.

겨울 망토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코넬이 말했다. “학교도 겨울은 있다.” 루엔이 망토를 도로 넣었다.

종이 묶음 열한 개 중 여섯 개를 뺐다. 열여덟 근. 다시 셈하면 나오는 것들이었다. 셈한 길은 머리에 있었다.

남은 한 근은 여름 신으로 뺐다. 신고 가면 되었다.

백스무 근. 딱.

토빈이 막대 저울 눈금을 두 번 읽었다. 백스무 근이었다.

“도련님.” 토빈이 말했다. “곡식 자루도 이렇게 딱 맞춰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곡식은 알이 작아서 맞추기 쉽습니다. 신발은 한 짝씩은 못 뺍니다.”

*

떠나기 이틀 전, 루엔은 숲으로 올라갔다.

오스윈은 텃밭에 있었다. 루엔을 보고 호미를 내려놓았다.

“짐은 다 쌌나.”

“백스무 근입니다.”

“자네답군.”

오스윈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푸른 가죽 표지였다. 가장자리가 닳아 속 나무판이 보였다. 두꺼웠다.

“내가 탑에서 쓰던 영창책일세. 가져가게.”

루엔은 두 손으로 받았다. 손이 조금 내려갔다. 속으로 어림했다. 세 근 반. 어쩌면 조금 넘게.

첫 장을 펼쳤다.

영창이 한 줄씩 적혀 있었다. 탑의 글씨였다. 반듯하고 작았다. 그런데 여백마다 다른 글씨가 있었다. 새로 쓴 먹이었다. 떨리는 획이 섞여 있었다.

틀렸을지도 모름 — 루엔이 확인할 것.

다음 장에도. 그다음 장에도.

루엔은 장을 넘겼다. 넘길 때마다 같은 줄이 있었다. 어떤 장엔 두 번. 어떤 장엔 그 줄 옆에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매듭 자리에 점이 찍힌 원이었다.

“언제 쓰셨습니까.”

“겨우내.” 오스윈이 대답했다. “눈이 오면 할 일이 없네.”

루엔은 마지막 장까지 넘겨 보았다. 백스무 장이었다.

“해마다 한 장씩 확인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 장씩?”

“학교에서는 제 셈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한 해에 한 장은 틀림없이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약속하겠습니다.”

오스윈이 잠깐 말이 없었다.

“백스무 장이면.”

“백스무 해입니다.”

“그럼 오래 살아야겠군.”

오스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루엔도 따라 올라갔다. 그러다 멈췄다.

“선생님. 탑에 가면—”

“탑이 아니라 학교일세.”

“학교에 가면 탑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오스윈은 텃밭을 보았다. 물 높이 말뚝 쪽을.

“있겠지.”

그 말뿐이었다. 루엔은 더 묻지 않았다. 수첩 맨 뒷장에 적힌 줄이 하나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

저녁을 먹고 아버지가 루엔을 방으로 불렀다.

탁자에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주머니를 기울였다. 금화 두 닢이 굴러 나왔다.

“한 해 치다.”

“예.”

루엔은 금화를 집지 않았다. 아버지 저울을 보았다. 아버지가 턱으로 저울을 가리켰다. 달아 보라는 뜻이었다.

금화를 한 닢씩 접시에 올렸다. 반대편엔 목에 건 기준 동전 주머니와 보리알을 올렸다. 다섯 살 때부터 해 온 일이었다.

두 닢의 무게가 달랐다. 한 닢이 보리알 세 톨만큼 가벼웠다. 테두리 한쪽이 아주 조금 매끈했다.

“아버지. 이 금화는—”

“깎였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알고 준 거다. 성 금고에서 제일 가벼운 걸 골랐다.”

루엔이 아버지를 보았다.

“왕도 가면 너는 저울부터 꺼낼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게 무슨 물건이냐고 볼 거다. 깎인 금화 한 닢이 왕도에서 어디까지 가는지, 누가 알아채는지 보고 와라. 세 톨이면 몇이나 알아채는지.”

루엔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금화 두 닢을 주머니에 넣었다. 가벼운 쪽에는 매듭을 하나 더 지었다.

“적어 두겠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그 말만 했다. 수첩에 이름이 오르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

그날 밤 루엔은 짐을 다시 풀었다.

세 근 반을 빼야 했다.

남은 종이 묶음 다섯 개 가운데 둘을 더 뺐다. 여섯 근. 영창책 자리가 났다. 두 근 반이 남았다. 남는 건 괜찮았다. 넘치는 게 문제였다.

새벽에 짐을 방앗간으로 다시 가져갔다. 토빈이 졸린 눈으로 추를 밀었다.

백열여덟 근.

루엔이 멈췄다.

“백열일곱 근 반이어야 합니다.”

토빈이 눈금을 두 번 읽었다. 세 번 읽었다.

“백열여덟입니다. 도련님 셈이 틀렸나 보지요.”

“제 셈이 틀렸으면 제가 먼저 압니다.”

반 근이 더 나갔다. 루엔은 보따리를 풀었다. 옷을 하나씩 꺼냈다.

맨 아래, 겨울 망토 속에 접힌 천이 있었다.

하얀 아마천이었다. 옅은 잿빛 실로 동그라미 하나가 수놓아져 있었다. 옆이 조금 긴 동그라미. 쉰일곱 땀.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루엔은 한참 천을 보았다.

그리고 도로 접었다. 망토 속, 맨 아래, 있던 자리에 넣었다. 대신 양말 한 짝을 뺐다. 잿빛 양말이었다.

토빈이 물었다. “양말은 왜.”

“두 가지 색이면 세 짝만 있으면 한 켤레는 맞습니다. 한 짝은 남는 것이었습니다.”

토빈은 무엇을 봤는지 묻지 않았다. 추를 다시 밀었다. 백열여덟 근에서 눈금 반 칸이 내려갔다.

반 근은 그대로 넘쳤다. 루엔은 그 반 근을 빼지 않았다.

*

떠나는 날 아침엔 비가 왔다.

가는 비였다. 성 마당 돌바닥이 까맣게 젖었다. 짐말 등에 기름 먹인 천을 덮었다.

식구들이 문 앞에 섰다. 베르타는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섰다. 마르타는 벌써 울고 있었다. 펠릭스는 밀랍판 두 개를 더 내밀었다가 루엔이 무게를 말하자 도로 넣었다. 그러고는 「아스테른에 가시면—」 하고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손이 옷깃께에서 머물렀다. “아닙니다. 가서 셈하시면 됩니다.”

엘리나가 루엔 옷깃을 여며 주었다.

“떠나는 기분이 어떠니.”

루엔은 대답을 골랐다.

“짐보다 조금 무겁습니다.”

“얼마나.”

“… 재지 않았습니다.”

엘리나가 웃었다.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눌렀다. 망토 속 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엔도 하지 않았다.

코넬이 루엔 어깨를 쳤다. 세게.

“대충 잘 지내.”

“대충의 뜻을—”

“가라.”

아버지는 말에 올라 있었다. 나루까지 같이 간다고 했다. 이틀 길이었다.

루엔은 마차에 올랐다. 품 안에 쇠잔이 있었다. 짐에 넣지 않고 제 몸에 지녔다. 백스무 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제 몸무게에 들어갔다.

*

로센령 고개를 넘을 무렵 빗발이 굵어졌다.

마부가 채찍을 들었다. 해 지기 전에 고개 아래 여관에 닿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바퀴가 진흙을 튀기며 빨라졌다. 마차가 옆으로 조금 미끄러졌다.

루엔의 손이 쇠잔을 쥐었다.

빗소리. 젖은 길. 미끄러지는 바퀴. 멈추는 데 드는 거리. 셈이 저절로 떠올랐다. 모자랐다. 딱 한 걸음쯤—

말굽 소리가 마차 옆으로 붙었다.

“천천히.”

아버지 목소리였다. 크지 않았다. 마부가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앞만 보고 있었다. 빗물이 수염을 타고 떨어졌다.

“해 지기 전에 못 닿습니다, 나리.”

“그럼 해 지고 닿으면 된다.”

마부가 채찍을 내렸다. 말이 걷기 시작했다.

루엔은 쇠잔을 쥔 손을 폈다. 아버지는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여관에는 해가 지고 한 시간 반 뒤에 닿았다. 루엔은 그 시간을 셌다. 한 번도 원망스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

여관 방에서 루엔은 영창책을 꺼냈다. 짐 무게를 셈할 때 겉만 달았지 속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첫 장, 첫 영창 위쪽 여백에 다른 글씨보다 작은 한 줄이 있었다.

이 책 무게: 세 근 하고 반, 조금 넘음. — 짐에 넣을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할 것.

루엔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확인은 이미 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조금 넘었다.

그 줄 옆에만은 「틀렸을지도 모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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