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頁 / 판타지 / 무색탑의 수학자 / 52화. 한 시간은 열다섯 도

分享

52화. 한 시간은 열다섯 도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7:48

청색탑 검사관 이졸드는 이번엔 시험하러 온 게 아니었다.

사람을 둘 데려왔다. 둘 다 볕에 그을려 얼굴이 가죽 같았다. 한 사람은 쉰이 넘어 보였고 한 사람은 서른쯤이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땅이 흔들리지 않는데도 발을 넓게 벌리고 걸었다.

“청색탑 항해사들이다.” 이졸드가 말했다. “배에서 내린 지 열흘이 안 됐다. 아직 땅이 흔들린다고 한다.”

늙은 쪽 항해사가 고개만 까딱했다. 젊은 쪽은 루엔을 위아래로 보더니, 이졸드에게 작게 물었다.

“이 아이입니까?”

“이 아이다.”

교장이 빌려준 빈 강의실이었다. 칠판 하나, 긴 탁자 하나. 늙은 항해사가 탁자에 둘둘 만 가죽을 펼쳤다. 모서리마다 돌을 눌러 놓았다.

해도였다.

*

루엔은 해도를 오래 보았다.

바닷가 선이 가늘고 촘촘했다. 곶마다 이름, 암초마다 작은 십자, 수심을 적은 숫자가 물 위에 빽빽했다. 몇십 년을 고쳐 그린 지도였다. 대충 그린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해도 가장자리에 칸이 둘 있었다.

왼쪽 칸은 남북이었다. 가는 금이 층층이 그어져 있고 금마다 도수가 적혀 있었다.

오른쪽 칸은 동서였다. 금이 없었다. 칸 한가운데 글씨 네 자만 있었다.

신의 영역.

“남북은 잽니다.” 늙은 항해사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갈라져 있었다. “밤엔 북극성, 낮엔 한낮의 해. 높이를 재고 표를 보면 됩니다. 한 도 안쪽으로 맞힙니다.”

“동서는요.”

“동서는 못 잽니다.” 항해사가 해도의 빈 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배가 몇 날 동안 어느 쪽으로 얼마나 빨리 갔는지 매듭 줄과 모래시계로 셈해서, 대충 여기쯤이겠거니 합니다. 바람이 바뀌고 해류가 끌면 셈이 샙니다. 열흘 가면 사흘 거리가 틀리기도 하지요.”

“대충이요.”

항해사가 루엔을 보았다. 이졸드가 옆에서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가 그 말에 무슨 얼굴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루엔은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대충인 줄 아시니까 신의 영역이라고 적으신 거군요.”

늙은 항해사가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모르는 걸 아는 척 금을 그으면 배가 바위에 올라앉소.”

젊은 항해사가 해도 서쪽 끝, 작은 섬들이 흩어진 곳을 가리켰다. 십자 표시가 유난히 많은 자리였다.

“작년 가을에 여기서 한 척 잃었습니다. 짐배였어요. 선장은 섬들 동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다고 믿었답니다. 남북은 맞았어요. 북극성으로 쟀으니까. 동서가 하루 거리쯤 틀렸던 거지요.”

“몇 사람이었습니까.”

젊은 항해사가 루엔을 보았다. 그런 걸 묻는 아이는 처음이라는 얼굴이었다.

“서른하나. 건진 건 넷.”

루엔은 그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서른하나, 넷. 옆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

“월식은 써 보셨습니까.”

젊은 항해사가 눈을 크게 떴다. 늙은 쪽은 놀라지 않았다.

“써 봤지요. 달이 가려지는 시각을 두 항구에서 따로 적어 맞대 보면, 두 곳 사이 동서 거리가 나온다. 청색탑에 백 년 된 기록이 있소. 다만 월식은 몇 해에 한 번이고, 가려지기 시작하는 때가 흐릿해서 적는 사람마다 다르게 적었소. 바다 한가운데서는 쓸 수도 없고.”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데가 없는 말이었다. 이 사람들은 알 만큼 알고 있었다. 모자란 건 하나였다.

루엔은 분필을 들었다.

칠판에 원을 하나 그렸다. 원 둘레를 스물넷으로 나누었다. 컴퍼스 없이 그었지만 칸이 고르게 나오도록 천천히 그었다.

“해는 하루에 한 바퀴 돕니다.”

항해사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한 바퀴는 삼백육십 도입니다. 하루를 같은 길이 시간 스물넷으로 나누면—”

루엔은 칸 하나에 숫자를 적었다. 열다섯.

“한 시간에 열다섯 도입니다.”

루엔은 칠판 옆에 두 줄을 더 적었다.

「떠난 항구가 한낮일 때, 배 위는 아직 아침이다 → 배는 서쪽에 있다.」

「늦은 시간 하나마다 열다섯 도.」

“배 위의 한낮은 해를 보면 압니다. 해가 가장 높이 뜬 때입니다. 그때 떠난 항구는 몇 시인지만 알면 됩니다. 두 시각의 차이에 열다섯을 곱하면 동서로 몇 도 떨어졌는지가 나옵니다.”

강의실이 조용했다.

젊은 항해사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늙은 항해사는 칠판을 보고 있었다. 눈이 칠판 위 숫자 열다섯에 박혀 있었다.

“떠난 항구 시각을 어떻게 아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시계를 싣고 가시면 됩니다. 떠날 때 항구 시각에 맞춰 두고, 가는 내내 그 시각을 지키는 시계.”

“모래시계는 사람이 뒤집소. 뒤집는 녀석이 졸면 끝이오.”

“압니다.”

“물시계는 배가 기울면 물이 쏟아지고.”

“압니다.”

“그럼 무슨 시계요.”

루엔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아직 없습니다.”

*

젊은 항해사가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맥이 풀린 웃음이었다.

“그럼 도로 신의 영역이네요.”

“아닙니다.” 루엔이 말했다. “전에는 무엇이 모자란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가는 시계 하나입니다. 모자란 게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늙은 항해사가 칠판 앞으로 걸어왔다. 발을 넓게 벌린 그 걸음으로.

“시계가 틀리면.”

“한 시간이 틀리면 열다섯 도가 틀립니다. 모래시계 한 번, 반 시간이 틀리면 칠 도 반입니다.”

“칠 도 반이면 배가 바위에 올라앉소.”

“예. 그래서 하루에 몇 박자 틀리는지까지 따지는 시계여야 합니다.”

항해사는 한참 칠판을 보았다. 그러다 손을 들어 루엔이 적은 열다섯을 손끝으로 쓸었다. 분필 가루가 손가락에 묻었다.

“서른 해를 바다에 있었소.” 그가 말했다. “이 숫자를 몰랐던 건 아니오. 해가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건 뱃놈도 아오. 다만 이렇게 한 줄로 써 놓고 보니—”

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손가락의 분필 가루를 해도 가장자리에 문질러 닦으려다, 멈추고 제 바지에 닦았다.

루엔은 칠판의 원을 보았다. 해가 하루에 한 바퀴를 돈다. 그 말을 적는 동안 머릿속 한구석에서 다른 문장이 고개를 들었다가 들어갔다. 누가 도는지는 이 칠판과 상관이 없었다. 한 바퀴라는 것만 맞으면 셈은 같았다. 그래서 적지 않았다.

*

해가 기울 무렵 항해사들은 먼저 나갔다. 해도는 탁자에 그대로 두었다. 이졸드가 사본을 떠 가라고 허락했다고 했다.

이졸드는 남았다. 칠판을 오래 보다가 말했다.

“청색탑은 백 년 동안 월식만 기다렸다. 네 칠판은 모래시계 한 번 만에 기다리는 걸 시계로 바꿨다.”

“시계는 아직 없습니다.”

“알아. 그러니 과제다.” 이졸드가 돌아보았다. “청색탑이 너에게 주는 과제. 그리고 네가 청색탑에 주는 과제.”

루엔은 그 말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적고 나서 하나를 기억해 냈다.

“검사관님. 스승님께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이졸드가 멈췄다.

“지난겨울 답장에 적으셨습니다. ‘이졸드가 아직 검사관이더냐.’ 그 한 줄이었습니다.”

이졸드는 한동안 창밖을 보았다. 얼굴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지난번 시험 날, 루엔의 스승 이름을 들었을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오스윈 마로는,” 이졸드가 낮게 말했다. “청색탑 기록에서 지워진 이름이다.”

루엔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옳다는 건 셈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탑 사람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좋겠다. 오늘 두 항해사 앞에서 안 부른 건 잘한 일이다.”

이졸드는 문으로 갔다. 문고리를 잡고 한 번 멈췄다.

“… 아직 검사관이라고 전해라.”

*

그날 밤 루엔은 쇠잔에 끈을 묶어 책상 모서리에 매달았다.

잔이 흔들렸다. 왔다가 갔다가. 루엔은 맥박을 짚으며 셌다. 흔들리는 폭이 줄어도 한 번 왔다 가는 데 걸리는 박자는 거의 같았다.

“그건 또 뭐야.” 테오가 침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시계가 될 수 있는지 봅니다.”

“잔이?”

“흔들리는 게 고르면 시계가 됩니다. 한 번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세면 됩니다.”

테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한참 잔을 보더니 책상 다리를 잡았다.

“그럼 이건.”

테오가 책상을 흔들었다. 배가 파도를 타듯이,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반대쪽으로.

쇠잔이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옆으로 돌다가 멈칫했다. 루엔이 세던 박자가 엉망이 되었다.

테오가 손을 뗐다.

“배는 하루 종일 이렇게 흔들린다며.”

“예.”

“그럼 안 되겠네.”

“안 됩니다.” 루엔은 흔들리는 잔을 손바닥으로 잡아 세웠다. “방금 그 흔들기는 서른 해 배를 탄 항해사님이 낮에 물으신 것과 같은 물음입니다. 모래시계 한 번 만에 거기까지 오셨습니다.”

테오는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좋은 뜻인 걸로 치기로 하고 도로 누웠다.

루엔은 끈을 풀지 않았다. 잔을 매단 채로 수첩에 적었다. 「흔들리지 않는 곳에서는 된다. 배는 흔들린다. 흔들림을 빼는 것 — 아니면 흔들려도 상관없는 것.」

그 아래에 줄을 긋고 하나 더 적었다. 「과제. 기한 없음.」

기한이 없는 과제를 적어 본 건 처음이었다. 루엔은 그 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지우지 않았다.

그러고는 수첩 맨 뒷장을 폈다. 「모르는 것」. 줄이 넷 있었다. 샌 마나. 땅의 크기. 하겐 로스. 해마다 비는 레어. 그 아래에 다섯째 줄을 적었다.

「흔들리는 배에서도 가는 시계 — 만드는 법.」

모르는 것이 늘었는데 이상하게 셈이 하나 줄어든 기분이었다. 무엇을 모르는지 한 줄로 적을 수 있었으니까.

*

해도는 루엔이 사흘 동안 베꼈다.

베끼면서 원본에 손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동서 칸을 옮겨 그릴 때, 그 네 글자를 보고 손이 한 번 멈췄다.

신의 영역.

루엔은 원본을 더럽히지 않을 만큼 작게, 네 글자 옆 여백에 물음표 하나를 그렸다. 가는 납 막대 끝으로, 거의 보이지 않게.

이틀 뒤, 늙은 항해사가 해도를 찾으러 왔다. 루엔은 사본을 다 떴다고 말하고 해도를 말아 건넸다.

항해사는 받아 들고 나가려다 다시 탁자에 펼쳤다. 동서 칸을 보았다. 물음표를 보았다.

루엔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원본에—”

항해사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허리춤에서 뭉툭한 납 막대를 꺼냈다. 물음표 옆에 뭔가를 적었다. 글씨가 크고 삐뚤었다.

그리고 해도를 말아 옆구리에 끼고, 발을 넓게 벌린 걸음으로 나갔다.

루엔은 말린 해도 끝자락이 복도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적힌 글씨는 나가기 전에 다 읽었다.

「시계를 주면.」

그게 약속인지, 내기인지, 둘 다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在 APP 繼續免費閱讀本書
掃碼下載 APP

最新章節

  • 무색탑의 수학자   87화. 점과 선

    지도는 너무 많은 걸 그리고 있었다.막료 천막 벽에 걸린 베스트리아 동부 지도였다. 황색탑 측량사들이 그린 것. 산은 산 모양으로, 숲은 나무 모양으로, 강은 굽이굽이 그대로. 마을마다 교회 첨탑이 그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지도였다.그런데 루엔이 알고 싶은 건 하나였다. 어디가 끊기면 안 되는가.산 모양도, 나무 모양도, 강 굽이도 그걸 가리고 있었다.루엔은 새 종이를 폈다. 그리고 점을 찍었다.본진. 창고 마을. 왕도. 여섯 영지의 곡식 창고. 역참 열두 곳. 여울 셋. 모두 점 하나씩.그다음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었다. 수레가 다니는 길이면 선 하나. 다리가 있으면 선 위에 짧은 가로줄. 거리도 산 높이도 그리지 않았다. 이어져 있는지 아닌지만.마흔한 개의 점과 예순 개 남짓의 선이 남았다.테오가 어깨 너머로 보았다.“이게 지도야? 거미줄 같은데.”“지도에서 필요 없는 걸 다 뺀 겁니다.”“뭐가 필요 없는데.”“어디로 이어졌는지 빼고 전부 다.”*루엔은 선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렸다.선 하나를 가리고, 본진에서 출발해 점을 따라가 보았다. 모든 점에 닿으면, 그 선은 끊겨도 괜찮은 선이었다.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닿지 못하는 점이 생기면, 그 선은 끊기면 안 되는 선이었다.예순 번을 가렸다.대부분은 괜찮았다.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하나를 끊으면 옆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멀어지긴 했지만 닿았다.세 선만 달랐다.메를 강 중류의 돌다리. 창고 마을로 들어가는 지류 위 나무다리. 그리고 왕도 동쪽 문 밖, 늪 사이로 난 둑길 위 다리.셋 중 하나만 끊겨도 점들이 두 덩이로 갈라졌다

  • 무색탑의 수학자   86화. 열 가운데 하나

    재무대신 발터 크로이츠는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루엔은 그걸 첫눈에 알았다. 왕궁 재무실 벽에 장부가 천장까지 꽂혀 있었다. 등마다 해가 적혀 있었고, 해마다 빠진 권이 없었다. 탁자 위 셈판은 알이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크로이츠는 쉰 남짓, 머리가 희고 손가락이 가늘었다. 루엔이 들어서자 일어나지 않고 셈판 알을 마저 튕겼다. 한 줄을 다 셈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앉으시오. 폐하께서 곧 오시오.”왕 레지날드 2세는 정말 곧 왔다. 이번에도 작은 금테만 둘렀다.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봄 싸움 돈이 모자란다.”크로이츠가 장부 한 권을 펼쳤다. 숫자가 빼곡했다. 옛 셈, 금화와 은화와 동화가 스물과 열둘로 얽힌 셈이었다. 그러나 줄이 반듯했고, 끝자리가 맞았다. 루엔은 곁눈으로 합계 셋을 속으로 셈해 보았다. 다 맞았다.“가을 싸움과 겨울 대치에 든 돈이 옛 금화로 만 사천 닢.” 크로이츠가 말했다. “봄에 레오폴트 장군이 국경 성채를 되찾으려면 삯군과 공성 기구를 더 들여야 하오. 새 금화로 이천 닢이 더 있어야 하오. 세금은 가을에 걷히오. 그때까지 빌려야 하오.”왕이 루엔을 보았다.“하르트 상단이 빌려줄 수 있나.”*루엔은 대답하기 전에 수첩을 폈다.클라리사가 어젯밤 적어 준 숫자가 있었다. 하르트 상단이 제 것으로 가진 금과 은, 창고의 물건, 받을 삯. 새 금화로 치면 삼천이백 닢 남짓. 보움 상단과 왕도 상인 조합 둘이 나눠 댄 몫까지 넣은 것이었다.“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삼백이십 닢까지.”크로이츠의 손가락이 셈판 위에서 멈췄다.“이천이라 했소.”

  • 무색탑의 수학자   85화. 무는 금화

    첫 롱 텔레포트는 눈 녹는 날 아침에 했다.참호 뒤 빈터에 원진을 그렸다. 지름 열두 걸음. 테오가 말뚝과 끈으로 원을 잡고, 루엔이 안쪽 선을 그었다. 원진 가운데에 짐 상자 둘, 그 옆에 루엔과 테오.도착지는 왕도 아스테른, 루엔 공방 뒷마당이었다. 거기엔 클라리사가 같은 크기의 원을 그려 두었다. 사흘 전 편지로 보낸 그림대로.루엔은 보정표를 펼쳤다. 여기서 왕도까지의 거리, 두 곳의 위도, 오늘 해가 뜬 시각. 땅은 하루에 한 바퀴 돈다. 여기와 왕도는 도는 빠르기가 조금 다르다. 그 차이만큼 도착하는 몸을 미리 돌려 놓는다. 열여섯 살 겨울, 모래 자루 두 개로 보인 그 셈이었다.그때는 교장과 파비오가 루엔 식으로 걸었다. 루엔은 옆에서 보기만 했다. 여섯째 고리가 없었다.지금은 있었다.“무섭냐?” 테오가 물었다.“무섭지 않습니다. 셈을 세 번 했습니다.”“나는 무서운데.”“그럼 제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떨어지면 셈이 틀어집니다.”테오가 루엔 옷자락을 꽉 쥐었다.루엔은 걸었다.한 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발밑의 흙이 진창에서 마른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코끝의 냄새가 참호 연기에서 빵 굽는 냄새로 바뀌었다. 구스타프 분점이 두 골목 건너였다.짐 상자 둘이 발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기울지도, 밀리지도 않았다.테오가 비틀거렸다. 루엔 옷자락을 놓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어, 어…… 됐어?”“됐습니다. 원 가운데서 손가락 한 마디 어긋났습니다.”뒷마당 문간에서 클라리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원 끝에 분필로 적어 둔 작은 표를 가리켰다.&l

  • 무색탑의 수학자   84화. 여섯째 서클

    겨울은 링겐 고개 아래에서 멈췄다.마르케스군은 고개 발치의 국경 성채로 물러나 틀어박혔다. 가을 첫머리에 빼앗은 베스트리아 성채였다. 레오폴트는 그 앞 오 리 떨어진 곳에 참호를 파고 진을 쳤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어느 쪽도 성채 벽까지 가지 않았다. 가 봐야 얼어붙은 밭에서 죽을 뿐이었다.대신 새벽마다 안개가 왔다.한겨울 두 달은 조용했다. 양쪽 다 눈 속에서 장작과 곡식을 세며 버텼다. 하르트 서기들의 겨울 셈대로, 말먹이가 가장 먼저 바닥을 보였다. 레오폴트는 말 절반을 뒤쪽 고을로 돌려보냈다. 마르케스 쪽 성채에서도 말 울음이 줄었다. 저쪽도 같은 셈을 한 것이었다.첫 안개는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아직 눈이 녹기 전 어느 새벽에 왔다. 성채 쪽에서 하얀 김이 낮게 깔려 밀려왔다. 겨울 안개치고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앞 참호에 닿자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이 뜨거웠다. 살갗에 닿으면 붉게 부어올랐다. 눈이 따가워 뜰 수 없었다. 김이 지나간 참호 바닥은 눈이 녹아 진창이 되었고,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얼었다. 병사들 발이 진창째 얼어붙었다.사흘 동안 앞 참호에서 발가락을 잃은 병사가 열넷이었다.“적색탑 복합 술식이다.” 레오폴트가 말했다. 눈썹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불로 물을 끓이고 바람으로 민다. 옛날에 한 번 봤다. 그땐 이만큼 오래 가지 않았는데.”“교대를 합니다.” 루엔이 말했다. “가을 싸움 뒤로 적이 바꿨습니다. 번쩍임을 세어 보면, 밤을 셋으로 나눠 돌아가며 쏩니다. 한 번에 쏘는 사람은 열넷, 쉬는 사람이 스물여덟.”적도 셈을 했다. 사흘째 오후에 바닥나는 걸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번엔 바닥나지 않게 나눠 쏘았다.*끓는 안개를 막으려면 같은 걸로 맞서야 했다.불과 물과 바람을 한꺼

  • 무색탑의 수학자   83화. 열일곱과 일흔하나

    요스트는 명령서를 두 번 읽었다.창고 마을은 본진에서 서쪽으로 반나절 거리였다. 메를 강 지류 가에 곡식 창고 여든 채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섯 영지에서 보낸 곡식, 말먹이, 화살 다발이 전부 여기 모였다. 요스트는 그 창고 열쇠를 쥔 창고지기였다. 하르트령에서 온 사람이었다. 쉰 살, 한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명령서는 새벽에 왔다. 본진에서 출발한 전령이 중간 역참에서 명령을 옮겨 적어 다음 전령에게 넘겼고, 그 전령이 요스트에게 가져왔다.「71번 창고를 열어 곡식 이백 자루를 본진 빵 굽는 곳으로 보낼 것. 레오폴트.」번호 옆에 작은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71-9」.요스트는 입속으로 셈했다.앞자리 일곱에 둘을 곱하면 열넷. 뒷자리 하나를 더하면 열다섯. 열다섯을 열하나로 나누면 하나에 넷이 남는다.넷이어야 했다.명령서에는 아홉이 적혀 있었다.요스트는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도로 걸었다.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마구간 소년을 불렀다.“본진으로 가라. 가장 빠른 말로. 루엔 도련님께 이 종이를 드려라. 끝자리가 안 맞는다고.”소년이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빵 수레를 몰고 온 보급 기사가 창고 앞에 섰다. 동쪽 영지 사람이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왜 안 여나. 장군님 명령이다.”“끝자리가 안 맞습니다.”“끝자리?” 기사가 명령서를 낚아채 보았다. 번호 옆 작은 글자를 한참 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이 꼬랑지 말이냐. 이게 뭐라고.”“번호가 제대로 옮겨졌는지 보는 겁니다.”“번호는 71이라고 적혀 있다. 장군님 서명도 있다. 본진에선 병사들이 빵을 기다린다. 창고지기가 장

  • 무색탑의 수학자   82화. 사흘째 오후

    마르케스 본대가 온 건 열흘 뒤였다.선봉 뒤로 깃발이 끝없이 이어졌다. 링겐 고개에서 내려오는 행렬이 이틀 동안 끊이지 않았다. 강 동쪽 둑 위에 천막이 들어찼다. 붉은 천막은 스무 채가 넘었다.“이만 넘는다.” 정찰대장이 보고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지 않으려고 애쓰는 목소리였다. “이만 오천쯤.”천막 안 사람들이 루엔을 보았다. 귀족 회의에서 삼만이 한계라고 한 사람이었다.“이만 오천이면 셈 안입니다.” 루엔이 말했다. “강 아랫마을 곡식을 우리가 먼저 옮겼으니 오래 못 버팁니다. 문제는 마법사입니다.”“몇이오.”“어젯밤 번쩍임을 셌습니다. 쏜 자리가 마흔하나. 한 자리에 한 사람이면 마흔하나.”*싸움은 이튿날 새벽에 시작됐다.적은 쉬지 않고 쏘았다. 파이어볼이 선 앞까지 와서 떨어졌다. 선을 넘으려는 마법사는 궁수가 막았다. 방패벽 뒤에서 아군은 엎드려 버텼다. 적 보병이 여울을 건너려 했고, 아군 창병이 여울 끝에서 밀어냈다.루엔은 둔덕 위에서 한 가지만 했다.셌다.번쩍임 하나에 밀랍판에 금 하나.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금을 묶어 따로 적었다. 이 세계의 한 시간, 낮을 열둘로 나눈 그 한 칸.첫날 번쩍임은 삼백열두 번이었다.시간마다 고르게.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넷. 해 질 녘까지 줄지 않았다.“하나도 안 줄었어.” 테오가 루엔 어깨 너머로 밀랍판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 지치지도 않나.”“오늘은 안 지칩니다. 그릇이 가득 찬 채로 왔습니다.”한낮이 지나자 루엔의 손목이

更多章節
探索並免費閱讀 優質小說
GoodNovel APP 免費暢讀海量優秀小說,下載喜歡的書籍,隨時隨地閱讀。
在 APP 免費閱讀書籍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