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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네 번째 고리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7:36

네 번째 고리는 열네 살 생일 사흘 뒤, 새벽에 닫혔다.

소리는 없었다. 빛도 없었다. 루엔은 기숙사 침대에 앉은 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를 만나는 걸 느꼈다. 셋째 고리 바깥에, 조금 더 큰 원이 하나.

맞은편 침대에서 테오가 돌아누웠다.

“… 뭐 했냐.”

“고리를 하나 쌓았습니다.”

“아, 그래.” 테오는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뭐?”

*

넷째 고리를 쌓은 학생은 교장 앞에서 심사를 받는다. 쌓았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되고, 넷째 고리부터 쓸 수 있는 마법을 하나 보여야 한다.

심사는 이레 뒤로 잡혔다.

그 이레 동안 학교에서 더 시끄러웠던 건 심사가 아니라 책이었다.

지난가을 학기 첫날, 헤일로크 교수가 영창학 교재를 나눠 주었다. 나눠 준 건 책이 아니라 빈 종이 묶음이었다. 도서관에 원본이 한 권 있었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그걸 제 손으로 베껴야 했다. 책은 베껴야 생기는 것이었다.

루엔도 베꼈다. 다만 베낀 다음에 두 가지를 더 했다.

쪽마다 아래 귀퉁이에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맨 뒤에 몇 장을 덧대 낱말을 적었다. 「매듭 자리 — 둘째 장, 열일곱째 쪽.」 「반 박자 쉼 — 둘째 장 열아홉째 쪽, 넷째 장 쉰둘째 쪽.」

식당에서 그 책을 넘겨 본 학생 하나가 웃었다.

“책에 집 번호를 붙였네.”

“쪽 번호입니다.”

“그게 그거지. 책이 어디로 도망가나.”

웃음이 식탁을 한 바퀴 돌았다. 테오도 웃었다. 다만 제일 늦게 웃었고, 제일 먼저 그쳤다.

“근데 왜 붙였어?”

“교수님이 수업 중에 ‘앞에서 말한 그 대목’이라고 하십니다. 지난 학기에 스물세 번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다들 책을 처음부터 넘깁니다. 한 번에 평균 모래시계 반 번이 걸립니다.”

“그걸 셌냐.”

“셌습니다.”

테오가 책을 덮어 루엔에게 밀었다. “넌 진짜.”

*

심사 전날은 영창학 시험 전날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나자 기숙사 복도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방마다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났다. 끝없이 넘기는 소리였다.

첫 번째 노크는 해 진 지 모래시계 한 번 뒤였다. 식당에서 웃었던 그 학생이었다.

“저기. 반 박자 쉼이 어디 있었는지 좀.”

루엔은 책을 펴 주었다. 둘째 장 열아홉째 쪽. 학생은 문간에 서서 그 쪽을 베껴 적고 돌아갔다.

두 번째 노크는 그 직후였다. 세 번째도.

모래시계를 두 번 뒤집었을 때, 방문 앞 복도에 줄이 서 있었다. 열한 명. 조금 뒤 열여섯.

테오가 문을 열고 복도를 보더니 도로 닫았다.

“루엔. 반 전체다.”

“반은 스물여섯 명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열 명 더 온다는 거지.”

루엔은 종이 한 장을 잘게 잘랐다. 조각마다 숫자를 적었다. 하나부터 스물다섯까지. 자기 번호는 뺐다.

문을 열고 줄 맨 앞부터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번호 차례대로 모래시계 한 번씩입니다. 찾아보기는 맨 뒤에 있습니다. 쪽 번호를 적어 가시면 다음 분이 빨리 봅니다.”

맨 앞의 학생이 조각을 받아 보았다. 루엔의 글자로 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 이것도 번호냐.”

“줄이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겠지만, 번호가 있으면 다투지 않습니다.”

복도에서 웃음이 났다. 낮의 웃음과는 소리가 달랐다.

그날 밤 루엔은 책을 스물다섯 번 빌려주었다. 마지막 번호를 받은 사람은 다른 반 학생이었다.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루엔은 번호 조각을 하나 더 잘랐다. 스물여섯.

테오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말했다.

“다음 학기엔 다들 쪽 번호 붙이겠다.”

“그러면 제 책을 빌리러 안 옵니다.”

“그게 싫어?”

루엔은 잠깐 생각했다.

“아닙니다. 그게 맞습니다.”

이튿날 아침 시험지를 걷던 헤일로크 교수가 교탁 앞에서 멈췄다. 답안 여러 장을 번갈아 넘겼다. 서로 다른 학생의 답안 끝에 똑같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둘째 장 열아홉째 쪽 참조.」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스물다섯 명이 일제히 창밖을 보았다. 루엔만 교수를 보고 있었다.

“원본에도.” 교수가 한 마디씩 끊어 말했다. “쪽 번호를. 적어 두어야겠네.”

*

심사는 학교 종탑에서 했다.

종탑으로 가는 길에 실습장 옆을 지났다. 디트마르 페르난이 과녁 앞에 서 있었다. 넷째 고리는 지난달에 먼저 쌓았다. 심사 때 그가 던진 불덩이가 과녁 셋을 한꺼번에 태웠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식당에서 돌았다.

디트마르가 루엔을 보고 턱을 들었다.

“종탑? 거기서 뭘 태우려고.”

“아무것도 안 태웁니다. 봅니다.”

“보는 게 넷째 고리냐.”

“끝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디트마르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루엔이 종탑 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과녁 쪽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넷째 고리의 마법은 여럿이다. 다른 학생들은 대개 불을 더 멀리 던지거나 바람을 더 세게 일으켰다. 루엔이 종탑을 고른 까닭은 하나였다. 학교에서 가장 높았다.

종탑 꼭대기 방에 넷이 올랐다. 교장 마그누스 할베르크, 헤일로크 교수, 심사관 한 명, 그리고 루엔. 심사관은 종이와 펜을 들고 있었다.

“무엇을 보이겠느냐.” 교장이 물었다.

“멀리 있는 걸 가까이 보겠습니다.”

루엔은 서쪽 창을 가리켰다. 지붕들 너머로 성문이 보였다. 사람은 개미만 했다.

“성문까지 구백열두 걸음입니다. 지난달에 걸어서 쟀습니다. 문지기가 둘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의 얼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사관님이 사람을 보내 확인하시면 됩니다.”

심사관이 교장을 보았다. 교장은 턱짓만 했다.

*

루엔은 창틀에 두 손을 얹었다.

공기를 굳히는 건 첫 고리 때부터 해 온 일이었다. 해를 모으는 둥근 물방울, 빛을 가두는 관. 이번엔 공기 자체를 굳혀 유리처럼 만든다. 가운데가 두껍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게.

이레 동안 가장 오래 걸린 건 그 모양이었다.

루엔은 밤마다 어머니 유리잔의 바닥 조각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볼록한 면을 손끝으로 쓸었다. 어디를 만져도 같은 만큼 휘어 있었다.

공의 겉이었다. 커다란 공의 겉을 얇게 한 켜 벗겨 낸 조각.

그러면 공은 무엇인가. 루엔은 수첩 한구석에 원을 그리고, 그 원을 지름을 축 삼아 한 바퀴 돌리는 화살표를 그었다.

원을 한 바퀴 돌리면 공의 겉이 된다.

그 한 줄을 적고 나서 한참 그 그림을 보았다. 왜 오래 보았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영창은 짧았다. 탑의 고리 영창에 루엔의 수를 얹는 방식 그대로였다.

창밖 허공, 팔을 뻗은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 첫 번째 렌즈가 섰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의 지붕 기와가 조금 일그러져 보일 뿐이었다.

심사관이 몸을 내밀었다. “저기 뭐가—”

“스무 뼘 앞입니다. 만지지 마십시오. 떨어집니다.”

두 번째 렌즈는 루엔의 눈 바로 앞, 한 뼘 거리에 섰다.

먼 렌즈가 성문의 빛을 모아 허공에 작은 그림을 맺었다. 가까운 렌즈가 그 그림을 크게 했다. 먼 쪽의 휘는 길이를 가까운 쪽의 휘는 길이로 나누면 몇 배로 보이는지가 나온다. 스물을 하나로 나누면 스물.

루엔은 눈을 댔다.

거꾸로였다. 하늘이 아래에 있고 지붕이 위에 있었다. 알고 있던 일이었다. 거꾸로 선 세상을 속으로 뒤집어 읽으며 성문을 찾았다.

문지기 두 사람이 창을 세우고 서 있었다. 왼쪽 사람이 하품을 했다.

“왼쪽 문지기입니다.” 루엔이 말했다. “수염이 없습니다. 왼쪽 뺨, 귀 아래에서 입꼬리 쪽으로 흉터가 있습니다. 낫처럼 휘었습니다. 길이는 제 손가락으로 두 마디 반. 끝이 입꼬리 앞에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방금 하품을 했고, 앞니 하나가 빠졌습니다.”

심사관의 펜이 멈췄다가 급히 움직였다.

헤일로크가 창밖을 보았다. 성문은 여전히 개미만 했다.

교장은 창밖을 보지 않았다. 루엔 눈앞의 허공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사람을 보내라.” 교장이 말했다.

*

심부름꾼이 돌아오는 데 모래시계 두 번이 걸렸다. 그동안 아무도 종탑을 내려가지 않았다.

심부름꾼은 숨이 차서 계단 맨 위 칸에 주저앉았다.

“왼쪽 문지기, 수염 없고요. 흉터 있어요. 왼뺨. 끝이 두 갈래. 이도 하나 빠졌어요.”

심사관이 적은 종이를 교장에게 넘겼다. 교장은 그걸 읽고 헤일로크에게 넘겼다. 헤일로크는 읽고 나서 한참 창밖을 보았다.

“사십 년.” 헤일로크가 말했다. 영창을 읊듯 한 마디씩 끊었다. “넷째 고리 심사를 보았네. 이렇게 조용한 건. 처음일세.”

“번쩍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알고 있네.” 교수가 루엔을 돌아보았다. “칭찬일세.”

교장은 짧게 말했다. “넷째 고리. 통과.”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걸로 하늘도 보이느냐.”

루엔은 대답하기 전에 셈을 했다.

“보입니다. 다만 해는 보면 안 됩니다. 눈이 탑니다.”

“해 말고.”

교장은 그 말만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무엇을 보라는 건지는 말하지 않았다.

종탑 문밖에 디트마르가 서 있었다. 과녁 앞에 있다가 언제 왔는지 몰랐다.

“그래서. 뭘 봤는데.”

“성문 문지기 뺨의 흉터입니다.”

디트마르가 서쪽을 보았다. 성문은 지붕들 너머 개미만 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 그게 넷째 고리냐.”

“예. 통과했습니다.”

“불 하나 안 내고.”

“불은 과녁 셋을 태우지만, 흉터는 못 봅니다.”

디트마르는 대꾸하지 않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서쪽을 한 번 더 보았다.

*

이튿날 아침, 기숙사 문 앞에 손님이 왔다.

창을 든 사내였다. 수염이 없었다. 왼뺨에 낫 모양 흉터가 있었다.

“어느 놈이 내 얼굴을 종탑에서 봤다고?”

사감 이르마 뮐이 루엔을 불러냈다. 문지기는 루엔을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작다는 얼굴이었다.

“네가 봤냐.”

“예. 허락 없이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지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다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흉터가 몇 마디라고 했다며.”

“두 마디 반입니다. 제 손가락으로.”

문지기는 입을 다물었다. 제 뺨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 술집에선 세 마디라고 우기고 다녔는데.”

뒤에서 이르마 뮐이 기침을 했다. 웃음을 참는 기침이었다.

루엔은 문지기의 손가락을 보았다. 굵고 길었다.

“문지기님 손가락으로 재면 두 마디가 조금 안 됩니다.”

문지기는 한참 루엔을 내려다보다가, 창을 고쳐 들고 돌아갔다. 가면서 제 뺨을 한 번 더 더듬었다.

루엔은 수첩을 폈다. 「원을 한 바퀴 돌리면 공의 겉.」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교장: 해 말고 무엇을 보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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