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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십이만 대군

Autor: Jino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16 19:01:42

전령은 새벽에 왔다.

말이 성문 앞에서 쓰러졌다. 전령은 쓰러진 말을 두고 걸어서 왕궁으로 들어갔다. 해가 뜨기 전에 온 왕도가 알았다.

동쪽 마르케스 왕국이 국경을 넘었다.

루엔이 그 소식을 들은 건 공방 창구를 여는 때였다. 빵을 사러 나갔던 테오가 빵 없이 뛰어 들어왔다.

“마르케스가 넘어왔대. 국경 성채 둘이 벌써 떨어졌대. 그리고—”

테오가 숨을 골랐다.

“십이만이래.”

*

마르케스의 포고문이 장터 돌기둥에 붙은 건 사흘 뒤였다. 누가 붙였는지 아무도 몰랐다. 경비대가 떼어 냈지만, 그 전에 수백 명이 읽었다.

「마르케스 총사령 벨록 공작이 십이만 대군을 이끌고 베스트리아에 묻는다. 동쪽 세 고을을 내놓겠는가, 왕도를 내놓겠는가.」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적색탑의 불이 우리와 함께한다. — 장로 루프레히트 페르난의 이름으로.」

루엔은 떼어 낸 포고문 사본을 받아 그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디트마르가 졸업식 날 복도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동쪽 손님을 자주 만난다. 손님들 신발에 묻은 흙이 우리 쪽 흙이 아니다.

두 번 온 편지를 두 번 거절했다. 세 번째는 편지가 아니라 불로 왔다.

*

귀족 회의는 왕궁 큰 방에서 열렸다.

루엔은 벽 쪽 긴 의자 끝에 앉았다. 왕이 부른 자리였다. 귀족도 기사도 아닌 사람이 앉는 의자였다. 앞쪽 탁자에는 동쪽 영주들, 재무를 맡은 사람들, 기사단장들이 앉았다. 탁자 한가운데에는 동쪽 국경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회의는 처음부터 무거웠다.

“십이만이오.” 동쪽 큰 영지의 영주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왕국이 모을 수 있는 병사를 다 모아도 사만이 안 되오. 세 고을을 내주고 강화를 청해야 하오.”

“세 고을을 내주면 다음엔 여섯 고을을 달라 할 거요.”

“그럼 왕도를 내주자는 거요?”

목소리가 커졌다. 누가 탁자를 쳤다. 왕 레지날드 2세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왕 옆에 선 늙은 장수 하나도 말이 없었다. 희끗한 머리를 짧게 깎았고, 왼쪽 귀가 반쯤 없었다. 장군 레오폴트라고 했다.

한참 뒤 왕이 손을 들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루엔 하르트.”

모두 벽 쪽을 돌아보았다.

“셈을 해 왔나.”

“해 왔습니다.”

*

루엔은 지도 앞에 섰다.

동쪽 국경에서 왕도까지 오는 길은 하나였다. 링겐 고개를 넘어 메를 강을 따라 내려오는 길. 북쪽으로 도는 길은 가을 끝이면 눈에 막혔다. 남쪽은 늪이었다.

“이 길 폭은 수레 한 대 반입니다. 제가 봄에 황색탑 측량 기록에서 보았습니다.”

누군가 코웃음을 쳤다. 루엔은 이어 갔다.

“십이만이 이 길로 오려면, 넷씩 한 줄로 걸어서 삼만 줄입니다. 한 줄에 두 걸음씩 띄면 육만 걸음. 행렬 머리가 고개를 넘어 하룻밤 자리에 닿을 때, 꼬리는 아직 마르케스 땅에서 출발도 못 합니다. 꼬리가 고개를 넘는 데 사흘이 걸립니다. 수레와 말은 빼고 센 겁니다.”

방 안이 조금 조용해졌다.

“먹는 것.” 루엔이 두 번째 숫자를 짚었다. “병사 하나가 하루에 먹는 곡식은 왕도 근으로 두 근 하고 조금입니다. 말 한 마리는 그 일곱 배, 열여섯 근 남짓. 십이만 병사에 다섯에 하나씩 말이 딸리면 하루에 육십만 근이 넘습니다. 수레 한 대에 천오백 근을 실으면, 먹는 것만으로 하루 사백 대.”

루엔 속으로는 다른 숫자가 함께 돌았다. 1.36킬로그램, 10킬로그램. 전생에서 읽은 옛 군대의 기록. 입으로는 근으로만 말했다.

“그런데 수레를 끄는 말도 먹습니다. 마르케스 곡창에서 링겐 고개까지 수레로 엿새. 오가는 열이틀 동안 말이 먹는 게 싣고 온 것의 절반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 수레는 사백 대가 아니라 칠백 대가 넘어야 합니다. 날마다.”

“현지에서 거둬 먹으면 되지 않소.” 동쪽 영주가 말했다.

“그렇게 합니다. 옛 군대는 늘 그렇게 했습니다.” 루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셌습니다. 메를 강을 따라 있는 우리 고을 곡식을 전부 거둬도, 가을걷이 끝난 지금 십이만이 먹으면 열흘입니다. 그런데 강 아랫마을 사람들은 벌써 곡식을 지고 서쪽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숫자.

“물. 병사와 말이 마실 물은 메를 강 하나뿐입니다. 강은 흐르지만, 강가에 댈 수 있는 자리는 길 따라 몇 곳뿐입니다.”

루엔은 지도에서 손을 떼었다.

“이 길로 먹이며 올 수 있는 건 삼만이 한계입니다. 무리하면 삼만 오천. 십이만이라는 건 마르케스 땅 전체의 병사를 센 숫자이거나, 셈이 아니라 겁을 주려는 숫자입니다.”

*

한참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장군 레오폴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였다.

“말 한 마리 열여섯 근은 어떤 말 기준인가.”

“짐말입니다.”

“기병 말은 더 먹는다. 갑옷 입은 기사를 태우는 말은 스무 근을 먹어도 모자라.”

루엔은 바로 밀랍판을 폈다. 기병 말을 스무 근으로 바꾸고 다시 셌다.

“그러면 한계가 내려갑니다. 이만 팔천.”

레오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반쯤 없는 귀를 한 번 긁었다. 방 안의 몇 사람은 그게 끄덕임이라는 걸 알았다.

동쪽 영주가 등받이에 기댔다. 얼굴의 핏기가 조금 돌아와 있었다.

“이만 팔천이면,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사만으로 막을 수 있다는 말이오?”

“숫자로는 그렇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다만 적색탑 전쟁 마법사가 몇이 오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마법사 하나는 병사 하나로 셀 수 없습니다.”

“그럼 몇으로 세오.”

“그걸 세러 가야 합니다.”

탁자 끝에서 젊은 영주 하나가 손을 들었다. 서쪽 작은 고을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꾸로도 되겠소.” 그가 말했다. “강 아랫마을 곡식이 적의 밥이라면, 우리가 먼저 거둬 서쪽으로 옮기면 적의 한계가 더 내려가겠군. 삼만이 아니라 이만으로.”

루엔은 그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셈하지 않았습니다.”

“셈은 당신이 했고 나는 그 다음 줄만 읽었소.” 젊은 영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고을은 해마다 가뭄이라, 곡식을 어디로 옮기면 누가 굶는지는 좀 아오.”

그 말에 동쪽 영주 몇이 낮게 웃었다. 방 안 공기가 처음으로 풀렸다.

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른 길은 없나. 바다 쪽이라든가.”

루엔은 지도 남서쪽 끝, 바다를 보았다. 마르케스는 바다가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바다가 있는 나라와 사귈 수는 있었다.

“지금은 없습니다. 마르케스에 배가 없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지금은.”

왕은 그 마지막 말을 들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일어섰다.

“루엔 하르트는 레오폴트 장군 막료로 간다. 셈을 맡는다.”

*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레오폴트가 루엔을 불러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장군은 루엔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반쯤 없는 귀 둘레에 오래된 흉터가 하얗게 엉겨 있었다.

“전쟁터에서 쓴 숫자는 거의 다 틀린다.” 장군이 말했다. “적이 몇인지, 하루에 몇 리를 오는지, 화살이 몇 발 남았는지. 마흔 해 싸우면서 맞은 숫자를 본 적이 별로 없어.”

“예.”

“틀리면 어떻게 할 텐가.”

“고칩니다.”

“고칠 때까지 사람이 죽는다.”

루엔은 그 말을 셈했다. 답이 없었다. 틀린 숫자와 죽은 사람 사이에는 저울이 없었다.

“그래서 빨리 고칩니다.” 루엔이 말했다. “틀린 걸 먼저 찾는 사람이 누구든, 찾으면 바로 고칩니다. 제 것도, 장군님 것도.”

레오폴트는 한참 루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말 스무 근. 잊지 마라.”

“이미 고쳐 적었습니다.”

장군의 어깨가 한 번 들썩했다. 웃은 건지 기침을 한 건지 루엔은 알 수 없었다.

*

그날 밤 공방에서 루엔은 짐을 쌌다.

클라리사가 창구 열쇠 꾸러미를 받았다. 하르트 상단과 공방 창구, 조폐소와 주고받는 장부, 황색탑 후원 장부. 열쇠가 일곱 개였다.

“테오는?” 클라리사가 물었다.

“같이 갑니다.”

“네가 데려가는 거야, 쟤가 따라가는 거야?”

“테오가 먼저 짐을 쌌습니다.”

구석에서 테오가 배낭 끈을 조이며 말했다. “너 혼자 두면 전쟁터에서도 밥을 달아 먹을 거잖아. 병사들이 싫어해.”

클라리사는 열쇠를 허리띠에 꿰었다. 그리고 루엔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장부 셋째 칸, 아직 비어 있어. 돌아와서 채워.”

*

닷새 뒤, 북쪽 성문으로 하르트령 기사단이 들어왔다.

맨 앞에 형 코넬이 있었다. 스물둘. 어깨가 아버지를 닮아 문틀을 채울 만큼 넓어졌다. 까만 머리는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아버지가 가라 하셨다. 대충 다 데려왔어.”

코넬이 가슴팍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루엔에게 내밀었다. 짐 목록이었다. 코넬 글씨였다. 크고, 삐뚤고, 줄이 안 맞았다.

「기사 대충 열둘. 병사 대충 여든. 창 백 자루쯤. 화살 스무 다발쯤. 말먹이 대충 사흘 치.」

“형.”

“대충이라고 했잖아. 세어 보진 않았어. 바빴어.”

루엔은 대답하지 않고 짐수레로 갔다.

기사 열둘. 병사 여든. 창을 셌다. 백 자루. 화살 다발을 셌다. 스무 다발. 한 다발을 풀어 화살을 셌다. 스물넷. 다른 다발도 풀었다. 스물넷. 말먹이 자루를 달고 말 수로 나누었다. 사흘 치. 하루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았다.

루엔은 목록을 다시 보았다. 「대충」이 다섯 번 적혀 있었다. 틀린 숫자는 하나도 없었다.

“형은 말만 대충입니다.”

코넬이 투구를 고쳐 끼었다.

“너 그 말 여덟 살 때도 했어.”

“여섯 살 때입니다.”

“봐, 대충 맞잖아.”

기사들이 웃었다. 코넬도 웃었다. 루엔은 웃지 않고 목록 맨 아래에 작게 적었다. 「확인. 틀린 곳 없음.」 그리고 목록을 접어 수첩 사이에 넣었다.

코넬이 그걸 보았다. 귀가 조금 빨개졌다.

이튿날 새벽, 하르트 기사단은 레오폴트 본대 뒤에 붙어 동쪽 성문을 나섰다.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코넬이 말 위에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말고삐를 조금 당겨 걸음을 늦췄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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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색탑의 수학자   88화. 깜빡이는 산등성이

    봉화는 한 가지밖에 말하지 못했다.왔다.불이 오르면 적이 왔다는 뜻이었다. 몇이 왔는지, 어디로 왔는지, 기병인지 보병인지는 싣지 못했다. 그걸 알려면 봉화대 옆에서 말 탄 전령이 따로 달려야 했다. 본진에서 왕도까지 전령은 말을 갈아타며 이틀. 봄 싸움이 시작되면 이틀은 너무 길었다.루엔은 하르트령 망루 둘 사이에서 거울 신호를 처음 해 본 게 열두 살 여름이었다. 형이 보낸 첫 신호가 「대충 잘 지냄」이었다. 그때는 망루 둘, 거리 이십 리, 주고받는 사람도 둘이었다.이번엔 본진에서 왕도까지였다.*루엔은 점과 선 그림을 다시 폈다.이번엔 길이 아니라 산등성이를 점으로 찍었다. 황색탑 측량 기록에서 높은 곳만 골랐다. 한 점에서 다음 점이 보이는지. 보이면 선을 그었다. 산이 가리면 긋지 않았다.그다음은 셈이었다.탑을 촘촘히 세우면 탑 사이가 가까워 흐린 날에도 잘 보인다. 대신 탑이 많아진다. 신호 하나가 탑마다 한 번씩 받아 적히고 다시 쏘아진다. 탑이 많을수록 그 받아 쏘는 시간이 쌓인다.탑을 드문드문 세우면 빠르다. 대신 흐린 날 안 보인다. 안 보이면 멈춘다.루엔은 날씨 기록을 모았다. 하르트 서기들이 본진에 온 날부터 날마다 적은 반년 치, 그리고 하르트령 망루 둘이 몇 해 동안 적어 둔 것. 맑은 날, 흐린 날, 안개 낀 아침. 흐린 날에 거울 빛이 몇 리까지 보였는지 망루 둘로 재어 둔 값이 있었다. 이십오 리까지는 흐린 날에도 대개 보였다. 삼십 리가 넘으면 열흘에 사흘은 안 보였다.“이십 리 안팎으로 세웁니다.” 루엔이 레오폴트에게 말했다. “본진에서 왕도까지 탑 열여섯. 한 탑에서 받아 적고 다시 쏘는 데 작은 모래시계 네 번. 열여섯이면 예순네 번. 한 시간이 조금 넘습니다.”“한 시간.&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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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는 너무 많은 걸 그리고 있었다.막료 천막 벽에 걸린 베스트리아 동부 지도였다. 황색탑 측량사들이 그린 것. 산은 산 모양으로, 숲은 나무 모양으로, 강은 굽이굽이 그대로. 마을마다 교회 첨탑이 그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지도였다.그런데 루엔이 알고 싶은 건 하나였다. 어디가 끊기면 안 되는가.산 모양도, 나무 모양도, 강 굽이도 그걸 가리고 있었다.루엔은 새 종이를 폈다. 그리고 점을 찍었다.본진. 창고 마을. 왕도. 여섯 영지의 곡식 창고. 역참 열두 곳. 여울 셋. 모두 점 하나씩.그다음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었다. 수레가 다니는 길이면 선 하나. 다리가 있으면 선 위에 짧은 가로줄. 거리도 산 높이도 그리지 않았다. 이어져 있는지 아닌지만.마흔한 개의 점과 예순 개 남짓의 선이 남았다.테오가 어깨 너머로 보았다.“이게 지도야? 거미줄 같은데.”“지도에서 필요 없는 걸 다 뺀 겁니다.”“뭐가 필요 없는데.”“어디로 이어졌는지 빼고 전부 다.”*루엔은 선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렸다.선 하나를 가리고, 본진에서 출발해 점을 따라가 보았다. 모든 점에 닿으면, 그 선은 끊겨도 괜찮은 선이었다.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닿지 못하는 점이 생기면, 그 선은 끊기면 안 되는 선이었다.예순 번을 가렸다.대부분은 괜찮았다.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하나를 끊으면 옆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멀어지긴 했지만 닿았다.세 선만 달랐다.메를 강 중류의 돌다리. 창고 마을로 들어가는 지류 위 나무다리. 그리고 왕도 동쪽 문 밖, 늪 사이로 난 둑길 위 다리.셋 중 하나만 끊겨도 점들이 두 덩이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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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색탑의 수학자   85화. 무는 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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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색탑의 수학자   84화. 여섯째 서클

    겨울은 링겐 고개 아래에서 멈췄다.마르케스군은 고개 발치의 국경 성채로 물러나 틀어박혔다. 가을 첫머리에 빼앗은 베스트리아 성채였다. 레오폴트는 그 앞 오 리 떨어진 곳에 참호를 파고 진을 쳤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어느 쪽도 성채 벽까지 가지 않았다. 가 봐야 얼어붙은 밭에서 죽을 뿐이었다.대신 새벽마다 안개가 왔다.한겨울 두 달은 조용했다. 양쪽 다 눈 속에서 장작과 곡식을 세며 버텼다. 하르트 서기들의 겨울 셈대로, 말먹이가 가장 먼저 바닥을 보였다. 레오폴트는 말 절반을 뒤쪽 고을로 돌려보냈다. 마르케스 쪽 성채에서도 말 울음이 줄었다. 저쪽도 같은 셈을 한 것이었다.첫 안개는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아직 눈이 녹기 전 어느 새벽에 왔다. 성채 쪽에서 하얀 김이 낮게 깔려 밀려왔다. 겨울 안개치고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앞 참호에 닿자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이 뜨거웠다. 살갗에 닿으면 붉게 부어올랐다. 눈이 따가워 뜰 수 없었다. 김이 지나간 참호 바닥은 눈이 녹아 진창이 되었고,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얼었다. 병사들 발이 진창째 얼어붙었다.사흘 동안 앞 참호에서 발가락을 잃은 병사가 열넷이었다.“적색탑 복합 술식이다.” 레오폴트가 말했다. 눈썹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불로 물을 끓이고 바람으로 민다. 옛날에 한 번 봤다. 그땐 이만큼 오래 가지 않았는데.”“교대를 합니다.” 루엔이 말했다. “가을 싸움 뒤로 적이 바꿨습니다. 번쩍임을 세어 보면, 밤을 셋으로 나눠 돌아가며 쏩니다. 한 번에 쏘는 사람은 열넷, 쉬는 사람이 스물여덟.”적도 셈을 했다. 사흘째 오후에 바닥나는 걸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번엔 바닥나지 않게 나눠 쏘았다.*끓는 안개를 막으려면 같은 걸로 맞서야 했다.불과 물과 바람을 한꺼

  • 무색탑의 수학자   83화. 열일곱과 일흔하나

    요스트는 명령서를 두 번 읽었다.창고 마을은 본진에서 서쪽으로 반나절 거리였다. 메를 강 지류 가에 곡식 창고 여든 채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섯 영지에서 보낸 곡식, 말먹이, 화살 다발이 전부 여기 모였다. 요스트는 그 창고 열쇠를 쥔 창고지기였다. 하르트령에서 온 사람이었다. 쉰 살, 한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명령서는 새벽에 왔다. 본진에서 출발한 전령이 중간 역참에서 명령을 옮겨 적어 다음 전령에게 넘겼고, 그 전령이 요스트에게 가져왔다.「71번 창고를 열어 곡식 이백 자루를 본진 빵 굽는 곳으로 보낼 것. 레오폴트.」번호 옆에 작은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71-9」.요스트는 입속으로 셈했다.앞자리 일곱에 둘을 곱하면 열넷. 뒷자리 하나를 더하면 열다섯. 열다섯을 열하나로 나누면 하나에 넷이 남는다.넷이어야 했다.명령서에는 아홉이 적혀 있었다.요스트는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도로 걸었다.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마구간 소년을 불렀다.“본진으로 가라. 가장 빠른 말로. 루엔 도련님께 이 종이를 드려라. 끝자리가 안 맞는다고.”소년이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빵 수레를 몰고 온 보급 기사가 창고 앞에 섰다. 동쪽 영지 사람이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왜 안 여나. 장군님 명령이다.”“끝자리가 안 맞습니다.”“끝자리?” 기사가 명령서를 낚아채 보았다. 번호 옆 작은 글자를 한참 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이 꼬랑지 말이냐. 이게 뭐라고.”“번호가 제대로 옮겨졌는지 보는 겁니다.”“번호는 71이라고 적혀 있다. 장군님 서명도 있다. 본진에선 병사들이 빵을 기다린다. 창고지기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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