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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作者: 불가지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하지만 나와 채림이는 거의 17년을 알고 지냈고, 채림이는 한 번도 남을 속인 적이 없어.”

잠깐 말을 멈춘 부호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이 일을 끝내겠다는 듯 말했다.

“네가 채림이를 울렸으니 네가 달래.”

그때 계속 울먹이던 기채림이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수영장에 던지더니 놀란 척 소리쳤다.

“호인 오빠! 오빠가 준 반지가 실수로 수영장에 떨어졌어.”

말을 마친 기채림은 임연서를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이 높이 올라가며 도발적인 웃음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자. 나 달랠 필요 없어. 저 반지 주워 오면, 언니가 나한테 한 모든 일 용서해 줄게.”

막 초겨울에 접어든 때였다. 수영장 물은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임연서는 머리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앉아 있는 부호인을 보았다.

부호인은 눈을 내리깔고 있어서 두 눈이 보이지 않았다.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머리를 계속 숙인 채, 임연서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그때 임연서는 심장에 뭔가 박히는 것 같았다. 촘촘하게 번지는 통증이 숨을 막았다.

문득 부호인이 장애 판정을 받은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병원으로 찾아온 부 회장은 회복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걸 듣고 다른 후계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부호인은 병실에서 사라졌다.

임연서가 찾아냈을 때, 부호인은 휠체어를 밀며 거친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것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임연서는 놀라 서둘러 말렸지만, 부호인은 임연서를 밀쳐냈다.

“위선 떨며 나를 챙기지 마. 넌 내 여자친구일 뿐이지, 아내가 아니야.”

“정말 내 일에 끼어들고 싶으면 지금 바람도 파도도 센데 한 바퀴 헤엄치고 와. 그러면 앞으로 네 말 들을게.”

임연서는 멍하니 부호인을 바라보았다.

사실 말하고 싶었다. 위선이 아니라 정말로 부호인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임연서는 수영을 못하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바다로 뛰어들었다.

파도와 바람이 거셌고, 곧바로 바다에 휩쓸려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걱정으로 가득한 부호인의 눈과 마주했다.

부호인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고, 턱은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수영 못한다고 왜 말 안 했어! 미쳤어? 수영도 못하면서 바다에 뛰어들어?”

임연서는 고개를 들어 부호인을 보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다리가 평생 낫지 않아도 난 너와 결혼하고 싶어. 정말...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널 좋아해.”

그 뒤로 부호인은 임연서를 바닷가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

집 수영장에도 물을 채우지 못하게 했다.

수영장에 물이 없으면 이상하다고 임연서가 말하자, 그제야 부호인은 고용인들에게 매일 물을 채우고 갈도록 했다.

그 생각을 하던 임연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작은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반지 주우라는 거지? 좋아, 주울게.”

말을 마친 임연서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적셨다. 온몸이 떨릴 만큼 추웠다.

임연서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끝없는 공포가 밀려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구조를 청하지 않았다.

곧 붉은 피가 수영장 물에 퍼졌다.

옆에 있던 김 집사가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사모님 머리에서 피가 납니다!”

곧바로 외투를 벗고 수영장에 뛰어든 부호인이 임연서를 건져 올렸다.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졌다.

“그만해! 왜 이렇게 고집이 세? 방금 그냥 돌아서서 나가면 됐잖아!”

임연서는 고개를 들어 수영장 바닥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나보고 그 여자의 기분 풀어주라며. 지금 이 꼴이면 네 첫사랑도 꽤 만족하겠네.”

부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단정하게 잘생긴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내가 몇 번을 말해. 난 정말 채림이를 여동생으로만 봐. 기씨 집안도 B시에서 작은 집안이 아니야. 네가 한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요즘 여론을 그렇게 쉽게 누를 수 있는 줄 알아? 네가 채림이를 달래서 화를 풀게 하려던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다 널 위한 거라고.”

부호인의 말투는 다정했다. 모든 일이 임연서를 생각해서인 듯했다.

하지만 임연서가 듣기에는 억지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가 없었다.

부호인은 여론을 누르기 어렵다고 했다.

당시 부씨 집안의 후계자가 기채림 때문에 레이싱을 하다 장애를 입은 일도 어떻게든 눌러 묻어 두지 않았던가?

기채림은 제멋대로 굴었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며 강한 사람 앞에서는 몸을 낮추는 성격 탓에 기씨 집안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동안 부호인이라는 큰 나무에 기대 순조롭게 지냈다.

부호인과 기채림이 시험관 시술을 한 일도 완전히 숨겨 두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설령 납치 사건이 정말 임연서가 벌인 일이라 해도, 부호인은 임연서에게 여론을 누르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부호인 마음속에서 임연서는 기채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자리에 있었다.

임연서는 더는 부호인과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흠뻑 젖은 검은 코트를 벗고 거실 쪽으로 걸었다.

몇 걸음도 떼지 못한 채,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임연서가 쓰러졌다.

부호인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빠르게 임연서 쪽으로 다가가서 안으려고 했다.

그때 기채림이 갑자기 허리를 굽히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애처롭게 울었다.

“오빠, 아랫배가 너무 아파. 나 위층에 눕게 도와줘.”

부호인의 걸음이 멈췄다. 임연서를 안으려던 손을 거둔 부호인은 몸을 돌려 기채림을 안아 올렸다.

임연서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옆의 김 집사를 바라보며 한마디만 남겼다.

“김 집사, 빨리 연서를 병원으로 데려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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