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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의 사랑
‘무음’의 사랑
作者: 불가지

제1화

作者: 불가지
“호인아, 미쳤어? 진짜 연서 몰래 골수를 빼서 채림이한테 줬다고?”

B시, 은산병원.

급히 병실로 들어온 부희은이 소파에 앉아 있던 부호인에게 손가락질하며 몰아붙였다.

부호인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면서 목소리에는 곤란함이 묻어났다.

“누나, 연서랑 채림이만 골수가 맞았어. 나도 방법이 없었어.”

부희은은 테이블 위에 놓인, 감염으로 반년 넘게 입원한 임연서의 검사지를 집어 들었다. 분노가 그대로 터져 나왔다.

“방법이 없었다고? 연서 몸도 약한 거 뻔히 알면서, 위장병 때문에 입원한 거라고 속여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했어?”

“도대체 기채림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예전에 기채림 웃는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레이싱 하다가 5년이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됐잖아. 그 5년 동안 네 곁을 지킨 건 연서였어.”

“이제 네 몸이 나아지니까, 병에 걸려 남자에게 차인 기채림이 귀국하자마자 연서 몰래 골수를 넘겨?”

“반년이 지나서 기채림 병이 낫자마자, 이번에는 기채림 장단에 맞춰 시험관 시술까지 하러 다녀?”

병실 문 앞.

퇴원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던 임연서는 부희은의 격앙된 말을 그대로 들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굳어지면서, 온몸이 얼음물 속에 잠긴 듯 싸늘해졌다.

30분 전, 의사는 위장병 수술 후 감염이 완전히 회복되었으니 퇴원해도 된다고 알려 주었다.

부호인은 그 자리에서 청혼했다.

임연서는 너무 기뻐 눈물을 쏟았고,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병실 안에서 부호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짙은 눈동자를 가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누나, 이 일은 그냥 덮어줘. 연서가 알면 절대 안 돼.”

“채림이 할머니가 오래 못 버티셔. 살아 계실 때 채림이 아이를 한번 안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래. 채림이한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부희은은 눈을 부릅떴다. 오목조목 예쁜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럼 연서는? 이 바닥에서 연서가 너를 꼬박 8년이나 좋아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 8년 전, 기채림이 최씨 집안 둘째아들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지.”

“너는 기채림 속을 풀어주겠다고 일부러 연서한테 접근해서 흔들었어. 연서를 좋아하던 최씨 집안 둘째아들을 골탕 먹이려고.”

“이제 기채림은 임신까지 했는데, 연서는 너를 따라 8년을 보냈어. 연서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부호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한참 뒤에야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 정리해 뒀어. 연서가 평생 채림이 임신을 알 일 없어. 앞으로는... 지난 8년 동안 연서 존재에 익숙해졌어. 나는 연서하고 결혼할 거야...”

뒤의 말은 임연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 간호사가 병실 쪽으로 걸어왔다.

임연서는 고개를 숙인 채 이제 막 돌아온 사람처럼 굴었다.

병실 안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부희은이 부호인을 데리고 나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호인은 결혼식 세부 사항을 임연서와 상의했다.

임연서는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창밖으로 뒤로 밀려나는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뼛속까지 싸늘해지는 기분만 들었다.

임연서 부호인을 처음 알게 된 건 15살, 부모와 사업 파트너들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그때 스쳐 본 차갑고도 귀한 소년의 모습은 이후 임연서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16살, 임연서는 ‘무음’이라는 이름으로 레이싱 대회에 나갔고, 부호인의 목숨을 구했다.

길고 긴 짝사랑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20살, 최이헌이 임연서에게 마음을 보냈다.

같은 해, 부호인은 임연서 친구의 모임에 참석했고 그날 밤 먼저 연락처를 물었다.

임연서는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기뻤다.

같은 해, 임연서는 부호인에게 기채림이라는 어린 시절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유를 좋아한 기채림은 사귄 남자 친구만 10명이 넘었지만, 부호인만은 좋아하지 않았다.

21살, 부호인이 고백했고 임연서는 부호인과 사귀기로 했다.

22살, 부호인은 레이싱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

다음 날 의사는 부호인의 장애를 선고했다.

그러자 부호인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성격은 어둡고 난폭해졌다.

임연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따라 해외에 정착하는 대신 국내에 남아 부호인을 돌봤다.

27살, 부호인의 다리가 회복되자 부 회장은 부씨 집안을 부호인이 맡는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다. 사랑하는 남자는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섰다.

같은 해, 임연서는 집에서 쓰러졌다. 깨어난 뒤 의사가 위장병이라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곰곰이 따져 보니,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 같다고 믿었던 사랑은 시작부터 거짓으로 가득했다.

반년도 더 전에 병원에서 피를 그렇게 많이 뽑았을 때, 부호인은 검사라고 했다.

사실은 기채림에게 골수를 주기 위해서 속인 것이었다.

벤틀리는 천천히 주택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밤 12시쯤, 부호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임연서는 발신자명을 흘끗 보았다.

‘귀염둥이 채림이’였다.

가볍게 전화를 끊은 부호인은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건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호인은 급히 몸을 일으키고 나갔다.

임연서는 창가로 걸어갔다.

끝없는 밤길 위로 그 벤틀리가 점점 멀어졌다.

임연서는 어머니 윤영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결심했어. 유씨 집안과의 혼인, 받아들일게. 일주일 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집안 아들이랑 혼인신고할게.”

윤영주는 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강 짐작한 듯했다. 잠시 딸을 달랜 뒤 차분히 말했다.

[정말 생각 끝낸 거니? 연서야, 지금 우리 집안은 예전 같지 않아.]

[이번 혼인은 장난이 아니야. 유씨 집안과 부씨 집안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대로 원수였고, 서로 섞일 수 없는 사이야.]

[네가 유씨 집안의 그 아들과 혼인하면, 유씨 집안 어른들은 너한테 부씨 집안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라고 할 수도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임연서는 촉촉한 눈을 내리깔았다.

6년 전 사업이 커지자, 임씨 집안은 회사를 해외로 옮겼고 그 뒤로 해외에 정착했다.

하지만 해외 이전 직후 임씨 집안에는 경제 위기가 닥쳤다.

같은 나라에 있던 유씨 집안에서 여러 차례 임씨 집안과 혼인으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임원민과 윤영주는 자기 딸이 부씨 집안의 장남인 부호인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회사를 살리겠다고 딸의 결혼을 희생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임연서는 앞으로 부호인과 어떤 연결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유씨 집안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엄마, 생각 끝냈어. 평생 다시는 부호인을 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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