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자랑삼아 남편 이야기를 꺼내기에 귀 기울여 보니, 남편이 유명한 사업가 강준영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내 남편 역시 유명한 사업가 강준영이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지방으로 회의하러 간 바람에 함께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남편 또한 지방으로 출장을 떠난 상태였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음을 추스르며 앉아 있다가, 결국 검사를 받지 않고 돌아가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 후에 이혼을 제기했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두 사람은 여태껏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 보기에피소드강준영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 학업이든, 직장이든, 심지어 결혼까지도 그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부모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강해져야만 부모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준영은 자신만의 인맥이 없었고, 비록 전승연과 결혼했지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여전히 그의 아버지가 통제하고 있었다.그러다 이정오를 만났을 때, 그녀의 집안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겉으로는 이정오가 그를 쫓아다닌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강준영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이정오가 산부인과에서 찍은 증거 사진을 보내온 순간, 강준영은 크게 흔들렸다. 정말로 이정오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5년 동안 함께 지내며, 강준영은 이미 이정오를 사랑하게 되었다.한편 전승연이 임신하게 된 것은, 그녀가 술에 약을 타서 강준영과 함께 밤을 보냈던 것이다.그런데 그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이정오까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강준영은 되려 기뻐했다.아이만 태어나면, 이정오가 절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 여겼던 것이다.그러나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다. 결국 이정오는 모든 걸 알아차리고 만다.이정오가 이별을 고했을 때, 강준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정오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헤어지자고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전승연이 온라인에서 허위 사실을 퍼뜨리려 했을 때, 그는 막지 않았다.이렇게라도 하면 이정오가 자신에게 굴복하리라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이정오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뿐이었으니까.출소 후, 강준영은 이정오를 다시 찾아갔지만, 그녀 곁엔 이미 김도영이 있었다.말 한마디 건네기도 전에, 김도영이 성벽처럼 그와 이정오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이정오가 김도영의 팔을 잡고 함께 유아용품 가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칼자국이 깊지 않아서 약을 잘 바르면 흉터가 남지 않는다고 했다.그런데도 김도영은 혹시라도 흉이 질까 봐, 매일 같은 시간에 병실로 찾아와 내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나를 챙겨 주었다.한편, 강준영은 살인 미수 혐의로 경찰서에 잡혔다. 덕분에 내 주변은 한동안 잠잠했고,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퇴원하는 날, 병원 입구에서 전승연과 딱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 앞길을 막아섰다.축하 파티 이후로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꽤 수척해 보였다.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승연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미안해요, 전에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테이블 위 잔을 집어 잠깐 입만 적셨다.“그쪽도 피해자긴 해요.”그러자 전승연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저, 강준영이랑 이혼할 생각이에요.”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놀랐고, 마음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강준영이 이미 이혼했다던 말도 거짓이었구나. 결국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었네.’“그런데 절 찾은 이유가 단순히 사과 때문만은 아닌 거죠?”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본론을 꺼냈다.“그래요, 이혼할 생각이긴 한데 제발 강준영 고소는 하지 말아 주면 안 돼요?”그 말을 듣자, 방금까지도 괜찮았던 내 등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정말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구나.’“정말 황당하네요.”나는 더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황한 전승연은 나를 다시 붙잡으며 말했다.“이혼하기로 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저희를 좀 내버려 두면 안 돼요? 우리 애한테 전과자 아빠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나는 냉정하게 그녀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지,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전 반드시 강준영을 감옥에 보낼 겁니다. 절대 용서 못 해요.”“비켜요!”그렇게 내뱉
그날 밤, 나는 혼자 소파에 앉아 어둠 속에서 서서히 번져 가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준영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안 뒤로, 제대로 잠든 적이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약을 먹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정신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그래서 주의력을 돌리기로 했다. 일에만 전념해서 다른 생각이 들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나는 인근의 작은 마을에 집을 한 채 사서 펜션을 운영해 보려는 계획도 세웠다.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잡념이 들어올 틈도 줄어들 테니까.김도영이 날 찾아온 건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다. 그는 싱싱한 장미 꽃다발을 들고 한 걸음씩 내게 다가왔다.“새로운 인생 시작한 걸 축하해. 드디어 고생길에서 벗어났네.”“김도영? 여긴 웬일이야?”나는 깜짝 놀라 꽃다발을 멍하니 안아 들었다.그때, 어디선가 강준영이 튀어나왔다.“이정오! 정말 대단하네. 너 애초에 이 남자랑 짜고 날 함정에 빠뜨린 거지? 두 사람이 손잡고 나를 모함한 거 맞지?”“어쩐지 나와 쉽게 헤어지더라니,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 거네.”강준영은 내가 김도영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이정오, 네가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어?”“난 전승연이랑 진짜로 이혼까지 했다고! 오늘은 널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근데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넌 너와 평생 함께하기로, 같이 극광 보러 가기로 약속했잖아. 그것들은 다 거짓이었어?”강준영은 광기 어린 모습으로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려 했다. 그러다 김도영의 주먹 한 방을 맞고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강준영, 난 너랑 더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강준영의 두 눈이 금세 빨갛게 충혈되었다.“결국 저 남자 때문이지? 저 자식 때문에 5년 넘게 사랑했던 나를 버리려는 거야?”김도영이 또 한 번 내 앞으로 나서며, 강준영을 향해 소리쳤다.“이 망나니 자식아, 넌 정오 마음을 짓밟은 것도
축하 파티에서 벌어진 일이 금세 외부로 퍼져 나가자, 네티즌들은 들끓기 시작했다.JS그룹 대표 강준영이 결혼한 사실을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다니. 거기에 전승연 역시 생각 없는 사람이라며, 둘 다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아니, 남자가 어쩜 저렇게 비열할 수 있지? 한 여자를 5년 동안 속인 거야?]여론은 완전히 내 편으로 기울었고, 강준영이 저지른 온갖 악행이 들춰지며 끝없이 비난이 쏟아졌다.강준영은 평소 사람들 눈에 늘 점잖고 매너 좋은 신사처럼 비쳤던 터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누구나 내 사정을 불쌍히 여기며, 나를 안쓰럽게 여겼다.그리고 일이 터진 지 채 24시간이 안 돼, JS그룹 주가가 무섭게 폭락했고, 반대로 LE그룹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나는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욕설을 잠시 훑어본 뒤,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거두었다.내용은 대체로 똑같고, 별다른 재미도 없었다. 게다가 내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으니, 더 볼 필요도 없었다.며칠 동안 늦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지? 경비 아저씨인가?’나는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문 앞의 사람은 바로 강준영이었다.이 아파트는 내가 새로 마련한 집이고, 그가 분명 모르는 곳인데 어떻게 찾아온 거지?강준영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맸고, 충혈된 눈만 겨우 보였다.그를 보자마자, 나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강준영, 날 미행한 거야?”“정오야, 그래도 난 네 남편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어?”그는 지쳐 보였고,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헛소리하지 마. 난 네 아내가 아니야.”나는 차갑게 대꾸했다.“이미 벌받을 만큼 받았잖아. 도대체 얼마나 더 원하는 건데? 왜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데?”“난 정말 널 많이 사랑해. 전승연이랑은 어쩔 수 없이 결혼했던 거라고! 왜 날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 몇 번을 말해야 믿어줄 거냐고!”“네가 이 일을 이렇게 키워 놓는 바람에, 내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정말 내 인생을 망쳐야 직성이 풀려?
며칠 뒤 JS그룹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서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강준영은 전승연과 함께 참석했는데, 바로 어제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고 발표했었다.주변 사람들은 강준영이 이번 논란 속 ‘남자 주인공’인 줄도 모른 채, 그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나는 그들이 파티를 열 장소를 알아낸 뒤, 따로 기자 몇 명을 섭외해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연회장에 도착했을 땐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았고, 강준영은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는 중이었는데, 먼저 날 발견한 건 전승연이었다.그녀는 나를 보더니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곧 이긴 사람처럼 비웃으며 다가왔다.“멍청한 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와? 혹시 명분이라도 얻으려는 건 아니겠지? 우린 이미 결혼 발표까지 끝냈거든.”이쯤 되니 오히려 전승연이 순진해 보여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 시점에 내가 명분을 구하러 왔을 리가 있나.“그래요? 제가 두 사람을 축하해 주러 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나는 비웃듯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괜히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전승연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경고했다.그 사이 행사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JS그룹의 대표로서 강준영이 무대에 오르며, 전승연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한 기자가 물었다.“강 대표님, 얼마 전 강 대표님과 아내 분의 결혼 소식이 보도됐는데, 두 분 정말 다정해 보이시네요. 혹시 두 분의 사랑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강준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하려 했다.“물론이죠.”그러나 나는 그를 가로막으며 무대로 걸어 나갔다.“강 대표님의 연애 이야기는 제가 대신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강준영은 깜짝 놀라더니 내 곁으로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왜 왔어? 당장 나가.”나는 그를 무시한 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안녕하세요, 저는 LE그룹 대표의 딸 이정오입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욕먹고 있는
링크를 열어 보니, 전부 나와 강준영이 함께 찍힌 사진들이었다.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진 속 강준영 부분이 반쯤 잘려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강준영인 것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거기다 내 얼굴로 합성한 온갖 음란한 사진이며, 노골적인 대화 내용을 조작해서 내가 말한 것처럼 꾸민 것들도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이런 영상과 글들이 각종 메신저 단톡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지나치게 노출된 합성 영상 일부는 지워지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더 난리가 났다.결국 SNS 전체가 들썩였고, 댓글창에는 영상 좀 보내달라는 반응이 쏟아졌다.누리꾼들은 순식간에 내 정보를 캐냈고, 내 개인정보가 여러 플랫폼에 미친 듯이 퍼졌다.[엄청 좋은 집안에서 사는 것 같은데, 왜 굳이 자기 인생 망쳐가며 내연녀 짓을 하는 걸까?][겉만 보면 모른다더니, 부잣집 자식들이 이상한 짓 하는 경우도 많긴 해. 어쩌면 이런 과정을 즐기는 걸지도.]어떤 누리꾼은 댓글에 이렇게 남겼다.[얼마 전 병원에서 이 사람을 본 것 같아. 사진 찍어 놨는데, 궁금하면 보여 줄까?]바로 아래에는 보고 싶다는 반응이 가득했다.그리고 곧 사진이 올라왔는데, 김도영이 나를 받쳐 안고 있는 장면이었다.각도를 아주 절묘하게 잘라 놓아서, 내 얼굴은 거의 가려지고 마치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이 사진이 올라오자 인터넷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저 여자 진짜 대단하네? 유부남이랑 불륜한 것도 모자라서 다른 남자도 만나고 있었던 거야?[진짜 양심 없네. 지금 밝혀진 것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어.]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움켜쥐고 사진을 봤다.다행인 건, 김도영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그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 말려들지 않은 점이었다.나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브라우저 창을 닫았다.이 모든 게 누가 벌인 짓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나는 강준영에게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이미 나를 차단해 두었다.나는 온라인에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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