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나는 화가였으나, 한 차례의 교통사고가 내 눈을 앗아갔다. 내가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을 때, 내 곁을 계속 지켜준 것은 소꿉친구 허지성이었다. 그는 내 생명 속 유일한 빛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결혼했고, 2년이 지난 후, 나는 뜻밖에 컴퓨터 안의 녹음 파일을 발견했다. [지성 씨, 나 살려줘서 고마워. 그런데 조유경 각막을 몰래 빼서 나한테 이식한 거, 나중에 조유경이 알게 되면 어떡할 거야? 만약 걔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할 거야. 이미 앞도 못 보니까, 내가 결혼해서 내 곁에 딱 붙잡아 두면 돼.] [유리야, 너를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늘한 한기가 몰려왔다. 내가 구원이라 생각했던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었다. 녹음 파일을 휴대폰에 복사한 후, 나는 곧장 병원을 알아보고 임신중절 수술을 예약했다. 지옥 같은 연극은 여기까지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갈 시간이었다.
Voir plusN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꽤 많은 작품을 그렸다. 그중 몇몇 작품은 이미 국내외 대회에 출품된 상태였다. 귀국한 날은 공교롭게도 그 대회들의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시상대 위에 당당히 서서 대중을 향해 내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갔다.“과거에 시력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만감이 교차하게 합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구원이라는 이름의 거짓말 속에 살아야 했고, 동시에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내야 했으니까요.” “그 모든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결국 이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그림은 저의 아픈 과거이자,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말을 마치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환호 속에서 나는 식장 구석에 서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허지성이었다. 결국 내 작품은 그날 밤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며 허성그룹에 낙찰되었다. 그것이 나에 대한 허지성 나름의 속죄이자 미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강유리가 아니다. 허지성의 이런 행동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식장을 나설 때, 허지성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차갑게 돌아서서 지나치려고 하자 그가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유경아, 네 용서를 바라거나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러 온 게 아니야.” “강유리가 네 그림을 표절하고 있었다는 건 정말 몰랐어. 그 여자를 너무 믿었던 탓에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야.”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왔던 그 아이, 지키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너한테 준 상처들에 비하면 내 수천 번의 사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 유경아, 네 그림은 정말 최고야. 앞으로 네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나는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 볼일 끝났으면 가볼게.”그때 허지성이 갑자기 다가와 나를 품에 꼭 안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밀쳐내려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한 걸음 물러서 있었
같은 시각, 허지성은 강유리를 찾아갔다.“강유리, 너에 대한 내 감정은 이미 오래전 과거야. 지금은 그저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아.” “당장 인터넷에 해명 글 올려. 지금 너 때문에 유경이가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고 있어.”강유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험악한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지금 네티즌들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데, 내가 해명하면 그 화살이 다 나한테 돌아오잖아! 넌 내가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하는 건 상관없다는 거야?” “그리고 과거라고? 지난 2년 동안 조유경보다 나랑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으면서, 갑자기 유경이를 사랑하게 됐다는 게 말이 돼?” “잊었나 본데, 넌 나 때문에 그 여자 눈까지 멀게 만들었어. 진실을 다 알아버린 조유경이 널 절대로 용서할 리 없잖아!” “허지성, 너와 조유경의 결혼은 그냥 보여주기식 연극이었어. 그런데 왜 네가 더 몰입해서 난리야?”허지성은 눈앞의 강유리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갑자기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처음에 왜 이 여자를 좋아했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다. 강유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조유경에게 그토록 모진 상처를 주었던 지난날들이 사무치게 후회스러웠다.허지성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묻어났다.“나와 유경이 사이의 일은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유경이는 내 아내니까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해.” “네가 인터넷에 헛소리만 안 했어도 유경이가 욕먹을 일은 없었어. 비난을 받더라도 네가 자초한 일이니 당장 해명해.”허지성의 태도가 강경하게 나오자, 강유리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난 지성 씨 때문에 이혼까지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날 좋아하지 않는다니, 지성 씨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 “내가 올린 글들도 그동안 지성 씨가 보여준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였어. 나쁜 뜻은 없었다고...”그러나 이번만큼은 허지성도 눈물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울음 섞인 변명을 거칠게 가로막았다
내가 일부러 그들의 소식을 찾아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뉴스 피드는 온통 허지성과 강유리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강유리가 이혼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지난 몇 년간 허지성이 강유리의 그림을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았던 과거 기사들이 줄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네티즌들은 이것이야말로 ‘재벌가와 천재 화가의 로맨스’라며 떠들어댔다. 심지어 강유리의 이혼이 허지성과의 재결합을 위한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돌았다. 그러자 누군가 허지성이 이미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폭로했고, 인터넷에는 내 사진까지 유포되었다. 당시 시력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형편없이 초췌했던 내 모습이 그대로 공개되었다. 네티즌들은 시각장애인인 내가 허지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와 강유리야말로 선남선녀라며 떠들었다.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뉴스들과 댓글 부대는 전부 강유리가 돈을 써서 매수한 게 분명했다. 처음 허지성과 결혼했을 때만 해도 허씨 집안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가문이었고, 강유리는 진짜 재벌 2세에게 시집을 갔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재벌 2세는 방탕한 생활로 가업을 탕진했고, 허성그룹은 지난 2년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허지성의 자산만 수천억 원에 달했다.아마 강유리도 나와 허지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여론을 이용해 어떻게든 허지성에게 다시 들러붙을 속셈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정작 허지성은 그동안 N국의 도시들을 샅샅이 뒤지며 내 행방을 쫓고 있었고, 오늘에야 겨우 나를 찾아낸 것이다.허지성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아니야, 유경아. 그 여자가 이혼한 건 나와 아무 상관도 없어. 난 절대 그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야.” “전에는 내가 강유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네가 떠나고 나서야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강유리에게 잘해줬던 건 그저 오래된 습관이었을 뿐이야.” “강유리에게는 확실하게 말해둘게. 앞으로 다시는 연락 안 해. 제발, 이번 한 번
한편, 나는 병실에 누워 눈에 거즈를 댄 채 회복 중이었다. 의사는 수술이 성공적이라며, 관리만 잘하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잠에서 깬 직후에는 눈이 엄청 불편했다. 찌르는 듯한 통증에 눈부심까지 심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보낸 지난 2년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일주일이 지나자 시력은 완전히 돌아왔다. 나는 N국에 작은 집을 하나 구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붓을 잡았다. 2년 동안 붓을 놓았던 탓에 조금 서툴긴 했지만, 그림을 향한 내 열정은 예전 그대로였다.낮에는 작업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밤이면 강가나 광장, 들판으로 나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자유롭고 밝은 삶이 원래 나의 것이었는데, 그 모든 것을 허지성과 강유리의 이기심이 앗아갔던 것뿐이다.N국은 내가 유일하게 즉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국내 안과들은 이미 허지성이 손을 써둔 상태였다. 검사 정도야 타인의 명의를 빌려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수술은 본명으로 접수해야 했기에 무조건 허지성에게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허지성이 강유리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허지성이 내 눈을 고칠 기회마저 완전히 짓밟아버릴까 봐 두려웠다. 내 인생을 건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허지성 몰래 해외로 나와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그러던 어느 날,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었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앞에 다가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조유경? 유경아?”허지성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며칠은 갈아입지 않은 듯 구겨진 옷차림에, 머리카락은 눈을 가릴 정도로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예전의 세련되고 유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드디어 찾았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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