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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꽃잎소녀
“아비도 모르는 애를 임신한 주제에 감히 내 딸이랑 손녀까지 해쳐? 뭐 해! 저 애 버릇 좀 제대로 고쳐 놔!”

장미애는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 화를 냈다.

말이 떨어지자 경호원 몇 명이 가희에게 달려들었다.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졌다.

가희는 몸을 웅크린 채 두 팔로 배를 감쌌다. 온몸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왔지만 머릿속에는 어머니 장미애가 조금 전 뱉은 말만 맴돌았다.

‘아비도 모르는 애...’

‘친엄마라면 정말 자기 딸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원우는 바닥에서 얻어맞는 가희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가희가 얌전히 뱃속 아이만 없앴다면, 3년 부부로 산 정을 봐서 법적인 아내 자리는 줄 수 없어도 밖에서 생활비를 대주며 살게 해 줄 생각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가희가 기어코 스스로 일을 키웠다고 여겼다.

감히 자기 딸 나은을 건드렸으니까.

원우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나은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오늘은 여기서 끝내 줄게.”

가희의 입가로 피가 가느다랗게 흘렀다.

비웃음과 고집이 섞인 눈으로 원우를 올려다봤다.

“싫다면요? 부 대표님이 저를 죽이기라도 하게요?”

원우는 가희의 눈을 보고 멈칫했다. 언제나 말 잘 듣고 얌전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희에게서 이렇게 서늘한 증오와 모든 걸 건 사람의 용기가 드러날 줄은 몰랐다.

독 묻은 바늘 같은 눈빛이 이상하게 가슴을 찔렀다.

“죽여?”

원우가 화가 극에 달해 웃었다.

“그런 말로 날 협박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너무 순진하네. 널 망가뜨릴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아빠, 나은이 아파!”

원우 품에 있던 나은이 불편한 듯 몸을 뒤틀었다.

아이의 팔이 원우 목을 꽉 감았고, 울음 때문에 작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언제 다가왔는지 정희가 나은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나은이 어디 다친 거 아니야?”

“나은아, 괜찮아. 아빠가 병원 데려갈게.”

원우는 가희에게 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은을 안고 연회장을 빠르게 나갔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 이상 생일 파티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남영수 부부는 남은 손님들을 한 명씩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가희 옆을 지나가며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옆구리를 한 번 더 걷어찼다.

“재수 없는 것. 나중에 두고 보자!”

가희는 부서진 인형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생기가 거의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원우가 떠나자 주변을 짓누르던 압박도 조금 옅어졌다.

‘이제... 끝난 건가?’

“동생아.”

정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가희는 몸을 떨며 눈을 떴다.

정희는 악의가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 착한 동생, 나 협박하려고 했잖아? 그럼 누가 먼저 망가지는지 해 보자.”

정희는 느긋하게 핸드폰을 꺼내 가희를 향해 카메라를 켰다.

“얘들아, 옷 다 벗겨서 호텔 입구에 내다 버려.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도 꼭 찍고.”

“안 돼... 읍!”

가희의 안색이 변했다. 항의하려 했지만 경호원이 입을 막았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쳐도 훈련받은 남자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가희는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이미 남영수 부부가 전부 내보낸 뒤였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괜히 재벌가 일에 끼어들기 싫어 고개를 돌린 호텔 직원들뿐이었다.

경호원의 거친 손이 집게처럼 가희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힘껏 잡아당겼다.

찌익!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홀 안에서 끔찍하게 크게 울렸다.

정희는 핸드폰 렌즈를 가희에게 고정한 채 뒤틀린 만족감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무서워하지 마, 가희야. 언니가 널 해치려는 건 아니야. 영상 하나 찍는 것뿐이잖아.”

가희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후회 때문에 눈까지 붉어졌다.

‘후회돼.’

3년 전 모든 걸 걸고 원우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했던 일이 후회됐다.

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이유로 해외 연수 기회까지 정희에게 양보한 것은 더 후회됐다.

“부원우... 남정희... 너희 둘 다 후회하게 될 거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너무 작아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가희는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힘없이 몸부림쳤다.

두 손만은 필사적으로 아랫배를 지켰다.

배 속 아이는 지금 가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땀 냄새가 섞인 경호원의 거친 손이 다시 찢어진 옷자락으로 다가왔다.

남은 자존심까지 산산이 찢어 버리려는 듯했다.

가희는 절망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만!”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홀을 가로질렀다.

가희가 눈을 떴다. 눈물로 시야가 흐려 긴 실루엣 하나만 어렴풋이 보였다.

옆 복도 입구에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짙은 정장이 단단하고 반듯한 체형을 드러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한 차가운 압박감이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교... 교수님...”

가희는 그제야 누군지 알아봤다.

흰 가운이 아닌 정장을 입은 주환은 병원에서 볼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차갑고 품위 있는 인상이 더 선명했다.

주환은 가희 앞까지 걸어왔다.

고개를 조금 숙여 가희의 상태를 살폈다.

가희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입가의 핏자국이 유난히 선명했고, 눈물로 가득한 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허탈함만 남아 있었다.

정희의 웃음이 굳었다.

경계하는 눈으로 주환을 봤다.

“누구세요?”

옷차림과 태도만 봐도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다.

정희는 혼란스러웠다.

‘남가희가 언제 이런 남자를 알게 된 거지?’

주환은 질문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가희만 바라봤다.

목소리는 병원에서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가희는 바닥을 짚고 힘을 모아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무거워진 몸 상태를 과신했다.

반쯤 일어난 채 다시 앞으로 쓰러졌다.

떨어지기 직전 몸이 가볍게 들렸다.

주환이 팔을 뻗어 가희를 잡아 세운 뒤 다시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주환은 정장 재킷을 벗었다. 옷에는 서늘한 시더우드 향과 남은 체온이 섞여 있었다.

그 재킷으로 가희의 거의 드러난 상체를 빈틈없이 감쌌다.

불쾌하게 쏟아지던 시선을 막은 뒤 그대로 가희를 안아 들었다.

처음 느끼는 종류의 안전하다는 느낌이 가희를 감쌌다.

가희는 주환의 옷을 꼭 붙잡았다. 입술을 깨문 채 눈물 어린 눈으로 올려다봤다.

“제발...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주환은 품 안의 가희를 내려다보며 불쾌한 듯 입술을 굳혔다.

“의사 말 안 들으면 누가 와도 못 살립니다.”

가희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죄송해요. 또 폐를 끼쳤네요.”

가희는 주환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주환은 가희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사람이었다.

정희는 두 사람이 있는 모습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주환의 기세는 원우보다도 더 압도적이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래도 오늘 가희를 그대로 보내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외부인이 끼어들 일이 아니에요.”

주환이 눈을 들었다.

“집안일?”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정희와 경호원들을 훑었다.

“사람을 여러 명이 때리고, 강제로 옷을 벗기고, 촬영까지 하려 했는데 이런 범죄가 언제부터 집안일이 됐습니까?”

“제 동생한테 속고 계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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