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스물넷에 이혼녀가 되어버린 '은방울'은 산속에 칩거하며 살아간다. 전 남편에게 받은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그 자식은 더럽고, 추악하고, 본능만을 표출하는 변태 새끼였으니까.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서우암'이라는 남자는 참으로 이상했다.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어떡하지? 두 번 다시 사랑에 빠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라면, 정말로 괜찮은 걸까? 남자라는 동물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믿어봐도 되는 거냐고.
View More나의 남편, 최도균은 변태였다.
만약 그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웨딩드레스를 입을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아니, 누군가를 사랑해서 이토록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방울의 몸에는 은은한 핑크색 슬립이 걸쳐져 있었다.
친구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란제리 세트였다.
손끝은 긴장으로 하얗게 질려갔지만, 방울은 두 손을 꼭 맞잡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
‘괜찮을 거야.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니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드레스와 베일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편을 기다리는 수줍은 아내가 되어 있었다.
심장이 쉴 새 없이 뛰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켜 어디까지가 기대이고 어디부터가 불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샤워 가운을 걸친 최도균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 와인이 반쯤 채워진 유리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방울아, 예쁘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잔 하나를 내밀며 온몸을 훑는 시선이 이상하게 소름 끼쳤다.
사랑하는 신부를 바라보는 눈빛이라기보다는 꼭 상품의 흠집을 확인하듯, 혹은 값어치를 재듯 차갑고도 집요했다.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말을 꼭 눈빛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방울은 등골을 스치는 싸늘한 감각을 애써 무시했다.
이것 또한 긴장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고, 떨리는 손으로 와인 잔을 받아들었다.
“오빠, 저는... 술은 괜찮은데요.”
방울이 술잔을 입에 대기는커녕 바라만 보자, 도균은 그녀의 뺨을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처음이잖아. 괜히 긴장할까 봐. 긴장하면 더 아프거든.”
“네...? 많이 아파요...?”
“아마도. 오빠는 우리의 첫날밤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몇 모금 넘겼을 때, 도균은 이제야 만족한 듯 방울의 손에 들린 잔을 가져가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해.”
그 말과 함께 커다란 체구가 방울의 앞을 가렸다.
“오빠가 미안해. 신혼여행 못 간 대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 줄게.”
민망한 말이었지만, 방울은 그 말이 진심이길 누구보다 바랐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첫날밤이 정말로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만큼 행복하길 바라며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신혼여행은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피부과 개업을 앞두고 있던 탓에 비행기는 타지 못했지만, 서운한 감정은 단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방울의 머릿속에는 이 첫날밤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괜찮아. 이제 부부잖아. 오빠가 하는 대로 따라가면 돼.’
사실 도균의 시선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윽고 실크 슬립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세트로 맞춰 입은 속옷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피부에 서늘한 감각이 몰려오자, 방울은 황급히 두 팔로 몸을 가리며 뺨을 붉혔다.
“저... 불은 끄고 하면 안 돼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커다란 손이 방울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예상보다 강한 힘에 순간적으로 온몸이 움찔했다.
“아...!”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솔직히 혼전 순결은 너무했잖아.”
“그, 그건... 오빠....”
남자 경험이라곤 없는 스무 살의 어린 신부에게는 민망한 말과 상황의 연속이었다.
도균의 손길이 예상보다 거칠어질 때마다 방울은 어깨를 움츠렸다.
다정하게만 느껴졌던 남편의 손길이 낯섦과 위압으로 다가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그래? 긴장했어?”
“조금요....”
“긴장 풀어. 우리는 부부잖아. 그 어떤 것도 숨길 필요 없잖아.”
아무리 남편이라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방울은 부끄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부부 사이의 첫날밤이 원래 이런 건지, 자신이 유난히 예민한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상황이 낯설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급격하게 분위기가 뒤바뀌는 방 안에서 방울이 온전히 믿을 사람은 오직 남편, 최도균이 유일했다.
“오빠, 키스.... 키스 해요, 우리.”
“그건 그동안 많이 했잖아.”
도균은 방울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관심은 방울이 기대했던 다정한 입맞춤이나 애정 어린 말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어때? 기분 좋아?”
“간, 간지러워요....”
“솔직히 후회하지? 그동안 비싸게 굴었던 거.”
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방울은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첫날밤인데, 어째서인지 아주 낯선 사람 앞에 홀로 놓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도가 돌아가고, 우암과 방울은 오늘 밤을 칠호산에서 보내기로 했다.주말이기도 했고,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시간도 늦었고. 함께 있을 이유나 핑곗거리는 많고도 많았으니까.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던 방울이 작게 웃었다."김 비서님이요, 되게 유쾌하신 것 같아요."저녁을 먹는 내내 웃을 일이 참 많았다.두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했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형제처럼 죽이 잘 맞았다."유쾌하고, 눈물도 많고. 종잡을 수 없는 놈이죠."우암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방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저녁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알 것 같았다.우암이 왜 그토록 김 비서를 믿고 의지하는지, 김 비서님은 왜 그렇게 서우암이란 남자를 따르는지."오랜만에 즐거웠어요. 사실, 조금 걱정했거든요.""걱정이요?""네. 우암 씨 지인분은 처음 뵙는 거니까..."우암은 물기를 털어낸 그릇을 건조대에 올려놓았다.그러고는 옆에 선 방울을 힐끗 바라봤다."망망 씨, 제 주변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어떻게 그래요.""아뇨, 그렇게 하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그만이니까."순간,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조용히 이어졌다. 방울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수세미만 내려다봤다.따뜻한 물에 오래 담가 둔 손끝보다 뺨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우암은 방울의 침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손에 들린 그릇을 받아 건조대에 올려놓고는 수도꼭지를 잠갔다."우리, 산길 좀 잠깐 걸을까요?"방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현관을 나섰다.밤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어둑한 산길에는 풀잎 스치는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만 희미하게 번졌다.방울은 겉옷의 앞섶을 여미며 천천히 걸었고, 우암은 발걸음을 맞추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익숙한 전주가 귓가에 흐르는 순간, 방울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출 뻔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우암이 튼 노래는 분
우암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 자식은 내 흔적이라고는 단 하나도 남겨 놓고 싶지 않은 건가?아니면 여전히 그 지독한 의심병을 떨쳐내지 못한 건가.─아, 아직 사망신고가 안 된 상태라서요.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고, 가족분들도 미국에 계셔서 재산 관련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준영의 의심과 달리, 형우의 대답은 나름 현실적이었다.─그럼 아직 명의는 그대로겠네?─예. 현재는 법원에서 선임한 재산관리인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흠... 그래?잠시 뜸을 들이던 준영이 마침내 속내를 드러냈다.─어차피 걔네 부모님은 귀국할 생각도 없으시잖아?─그거야.... 아마도....─내가 사야겠어, 그 집.이야기를 들은 형우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듯 한 박자 늦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 직, 직접 거주하시려고요...?─어차피 비어 있는 집이잖아.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매각 의사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알, 알겠습니다....통화가 끊기고, 이도가 혀를 차며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저, 저 나쁜 놈... 또 주말에 사람을 불러재끼고 지랄이네."이도는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순간 우암의 머릿속에는 그간의 일들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다.아티스트의 신곡 발매, 쇼케이스, 혹은 해외 출장이 있을 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이도와 함께였는데.이 자식은 그동안 그게 싫었구나. 돌려까는 스킬 한번 제대로구나."미안하다. 나도 그랬던 적이 꽤 많은 것 같은데."이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아? 아? 아닙니다! 대표님은 언제든지 부르셔도 됩니다! 대표님이랑 고준영이 어디 같습니까?""됐고... 상황을 빙자한 속마음 고백, 아주 잘 들었고.""아닙니다. 대표님... 정말 아닙니다. 억울합니다!"이도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우암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근데, 집까지 내어줄 순 없지.""그럼요! 말이 안 되죠. 아직 사망신고도 안 된 상태 아닙니까?""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
방울은 감탄을 쏟아 내는 이도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고, 그 옆에서 우암은 이마를 짚었다."우와... 와..... 혹시 칠호산에 사는 선녀십니까?""푸하, 김 비서님 엄청 재밌으세요!"이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은 멈출 줄을 몰랐다.게다가 도무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우암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김이도, 눈 안 돌려?""아! 죄송합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도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방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편하게 대해주세요.”“아닙니다, 형수님! 제가 감히 어떻게....”방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 비서님, 엄청 보고 싶었어요.”“예...? 저를요? 정말요?”“네. 우암 씨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엄청 믿는 분이라고, 되게 고마운 사람이라고.”그 말에 이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애써 참았던 감정이 다시 목까지 차오르는 듯했다."아... 대표님...""또 왜.""저, 잠깐만 울어도 되나요...?""들어가서 울어. 날도 추운데.""맞아요, 얼른 들어오세요!""그럼 실례하겠습니다!"우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방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었다.오랜만에 만난 부하 직원과, 사랑하는 여자가 한자리에 있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꽤 마음에 들었다.집 안으로 들어선 방울은 두 사람을 식탁으로 안내한 뒤 따뜻한 차부터 내어주었다."그럼 말씀들 편히 나누세요. 저도 할 일이 좀 있어서요.""어디 가십니까, 형수님!""이도야.""그,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방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작업실로 향했다.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길 바랐으니까.방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도는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얼마 전, 이형우의 휴대전화를 복제해 만든 것이었다."아직까지 특별한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괜찮아. 서두를 필요 없어.""업무용
씩씩거리던 화연은 곧장 카운터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방울에게 당장 연락해야 했다.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손가락이 뚝 멈췄다.굳이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이제 겨우 서우암이라는 남자를 만나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는데,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잊어도 모자랄 이름을 굳이 다시 들려주는 게 맞는 걸까.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아직 방울의 정확한 거처를 알아내지는 못한 듯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이다.하지만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방울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건, 결국 그만큼 집요하게 뒤를 쫓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하.... 골치 아프네.”답답한 마음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알려주자니 걱정이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자니 그것도 또 걱정이고.결국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놓은 화연은 한동안 카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당분간 방울이는 안 만나는 게 좋겠어.'적어도 최도균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칠호산도, 오피스텔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괜히 자신 때문에 평온한 일상에 금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그리고, 이제는 방울이 옆에 든든한 남자가 지키고 서 있으니까.***칠호산 중턱.차 한 대가 공터에 급하게 멈춰 섰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우암의 비서 이도였다."대표님...!"우암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짓했다."왔어?"그 한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도가 정신없이 달려들었다.그러고는 우암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으아아악! 대표님!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안도했고, 그 뒤로도 틈틈이 통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놓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어딘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난 건지, 이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징그럽게 왜 이래."우암은 질색하는 듯 말하면서도 이도를 밀어내지 않았고, 이도는 울먹거리며 참아왔던
reviews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