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스물넷에 이혼녀가 되어버린 '은방울'은 산속에 칩거하며 살아간다. 전 남편에게 받은 상처는 쉽사리 아물만 한 상처가 아니었다. 그 자식은 더럽고, 추악하고, 본능만을 표출하는 변태 새끼였으니까.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서우암'이라는 남자는 참으로 이상했다.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어떡하지? 두 번 다신 섹스라는 건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라면, 정말로 괜찮은 걸까? 남자라는 동물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믿어봐도 되는 거냐고.
View More나의 남편, 최도균은 이상 성욕자였다.
만약에 그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웨딩드레스를 입을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아니, 누군가를 사랑해서 이토록 상처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최도균과의 첫날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방울의 몸에는 은은한 핑크색 슬립이 걸쳐져 있었다. 친구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란제리 세트였다.
손끝은 긴장으로 하얗게 질려갔지만, 방울은 두 손을 꼭 맞잡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
‘괜찮을 거야,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니까.’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드레스와 베일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편을 기다리는 수줍은 아내의 모습이라니.
심장이 쉴 새 없이 뛰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켜 어디까지가 기대이고 어디부터가 불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샤워 가운을 걸친 최도균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 와인이 반쯤 채워진 유리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방울아, 예쁘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잔 하나를 내밀며 온몸을 훑는 시선이 이상하게 소름 끼쳤다.
사랑하는 신부를 보는 게 아니라 꼭 상품의 흠집을 확인하듯, 혹은 값어치를 재듯. 차갑고도 집요한 시선이었다.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말을 꼭 눈빛으로 보여주는 것같았다.
방울은 등골을 스치는 싸늘한 감각을 애써 무시했다. 이것 또한 긴장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고, 떨리는 손으로 와인 잔을 받아들었다.
“오빠, 저는... 술은.. 괜찮은데요...”
방울이 술잔을 입에 대긴 커녕 바라만 보자, 도균은 방울의 뺨을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처음이잖아, 괜히 긴장할까 봐. 긴장하면 더 아프거든.”
"많이 아파요...?"
"아마도. 나는 우리의 첫날밤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몇 모금 넘겼을 때, 도균은 이제야 만족한듯 방울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해, 내 와이프."
커다란 체구가 방울의 위로 드리워졌다.
“오빠가 미안해. 신혼여행 못 간 대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줄게.”
민망한 말이었지만, 방울은 그 말이 진심이길 누구보다 바랐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첫 섹스가 정말로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만큼 짜릿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신혼여행은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피부과 개업을 앞두고 있던 탓에 비행기는 타지 못했지만, 서운한 감정은 단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방울의 머릿속에는 이 첫날밤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괜찮아, 이제 부부잖아, 오빠가 하는대로 따라가면 돼.’
사실 도균의 시선만으로도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다.
실크 슬립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고, 세트로 맞춰 입은 브래지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핑크색 레이스 팬티 하나만이 남은 방울은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며 뺨을 붉혔다.
“불은 끄고 하면 안 돼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커다란 손이 가슴을 덥석 움켜쥐었다.
퍽 사나운 손아귀에 뽀얀 살결이 고스란히 짓뭉개졌다.
“아, 앗...!”
“그동안 얼마나 만지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 솔직히 혼전 순결은 너무했잖아.”
“그, 그건.. 하아... 오빠....”
남자 경험이라곤 없는 스무 살의 어린 신부에게는 민망한 말과 상황의 연속이었다.
젖꼭지에 그의 도톰한 엄지가 닿았을 땐, 저도 모르게 아찔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하읏!”
아무리 남편이라도 모든 게 처음이었던 방울은 부끄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섹스라는 게 원래가 이런 건지, 자신이 유난히 예민한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저 혼란스러운 상태 같달까.
급격하게 분위기가 뒤바뀌는 방 안에서 방울이 온전히 믿을 사람은 오직 남편, 최도균이 유일했다.
"오빠, 키스.. 키스 해요 우리."
"그건 그동안 많이 했잖아."
도균은 점점 단단해지는 젖꼭지와 방울의 얼굴을 번갈아 내려다봤다.
그토록 원하는 순간을 맞이했으니, 키스 보다는 모든 순간을 제 눈에 담고 싶었다.
"어때? 기분 좋아?"
"간, 간지러워요..."
"솔직히 후회하지? 그동안 비싸게 굴었던 거."
가을의 문턱,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까지 잠시도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질 때마다, 칠호산은 더욱 깊은 안갯속으로 잠겨 갔다.창가 앞, 과거를 회상하던 방울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젖은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빗줄기를 따라 어디론가 흘러갈 뿐이었다.‘은방울,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데.’스물넷. 사람들은 아직도 젊고 창창한 나이라고 말했다.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라고도 했다.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아니라, 견뎌 낸 계절의 수만큼 늙는 법이었다.그 계절의 수는, 나락의 강도라고나 할까.이미 식어버린 차에서는 희미한 쑥 향만이 피어올랐고,문득 왼손 약지가 시야에 들어왔다.반지가 있던 자리는 어느새 희미한 자국만이 남아 있었다.엄지손가락으로 그 흔적을 문지르던 방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역겨운 새끼.”스무 살이라는 아무것도 몰랐던 나이에 올렸던 결혼식과 혼인신고.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은 결코 달콤한 신혼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피폐했다.최도균, 그와의 결혼은 모두가 부러워했던 첫사랑의 결실이었다.하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많은 이들의 축복에는 우려가 더해졌었다.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선택을 하냐, 너무 성급한 결정 아니냐, 돈이 다가 아니다, 후회할 땐 이미 늦는다.그때만해도 얼마나 억울했는지.결혼을 결심한 건 돈 때문도, 조건 때문도 아닌 오직 사랑 때문이었는데. 그 마음을 증명할 방법 따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결혼식은 나름 성대했다. 8살 연상이었던 그는 집안도, 외모도, 능력도. 소위 엄친아였으니까
도균의 아버지는 능력은 좋았지만, 남편으로선 실로 최악이었다.여자 없인 못 살았고, 그 부분에 있어 거리낌 없이 당당했고, 그러다 비서년이랑 여행을 가던 길 자동차 사고로 즉사했다.덕분에 미순은 지옥같은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피부과를 개업할 수 있었고, 지금은 돈 걱정 없이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즐기는 중이다. 앞으로는 정말 행복한 일만 남았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하나 있는 아들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집애한테 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살다가 질리면? 그땐 쓸데없이 위자료나 빼앗기려고? 누구 좋으라고?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부모가 없으면 돈이라도 있던가, 돈이 없으면 능력이라도 좋던가...!”“저런 여자는 쉽게 안 질려요 엄마. 만약 질리면, 그까짓 돈이야 몇 푼 쥐여주고 끝내면 되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했지만 결국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니까, 반대를 하면 할수록 더 길길이 날뛴다는 성격인 걸 진작에 알았으니까.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는 얄미운 존재 은방울.다만 어디를 데리고 다녀도 창피하지 않을 외모와 몸매를 가졌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 미순은 어쩔 수 없이 져주기로 결심했다.“당분간 피임은 해라.”“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피임에 대한 이야기 역시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넘어갔다."방울아, 오빠는 방울이 닮은 딸 갖는게 마지막 꿈인데. 그래도 방울이 인생도 중요하잖아. 물론 오빠랑 결혼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고맙고.""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지금 너 작곡 학원도 한참 재미붙여서 열심히 다니고 있고, 오빠도 피부과 개업하면 더 정신 없어 질테고. 우리 아이 계획은 나중으로 미루면 어떨까?"방울은 그런 도균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의아했다.아무리 결혼식이 코앞이라고 해도 아직 첫날밤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2세 계획에 대한 이야기라니.혹시,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는 어머님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오늘도 평범한 데이트를 하는 줄 알았는데, 도균의 차가 무인텔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이 사색이 된 방울이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아직 첫 키스도 못 해봤는데, 손만 잡아도 떨려 죽겠는데. 예고도 없이 이런 장소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질 않았다.“오, 오빠.. 여기는 왜....”“잠깐만 쉬었다 가자""네...?"정말로 놀란듯 눈을 키우는 방울의 모습에, 도균은 티가 나게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그래, 솔직히 말하면 핑계고. 연인끼리 당연히 오는 장소잖아.”거짓이 아닌 솔직한 마음을 내뱉는데도 왜 이렇게 내키지 않는 건지. 이제 막 성인이 된 방울에게 성(性)이라는 영역은 미지의 세계였다. 동시에 '온전한 사랑'이라는 전제가 붙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나름 꿈꿔온 판타지가 분명해 존재했다.물론 도균을 사랑한다. 온전하고 완벽한 사랑이라곤 할 수 없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틀림 없었다.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아닌, 정말로 미래를 약속했을 때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고 싶었다.쿵쿵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첫 경험. 그런 사랑받는 여자의 로망 같은 것 말이다.“오빠... 여기는 모텔이잖아요... 저는 결혼 전에는...”방울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들은 도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무슨 혼전순결이라도 지키려는 건가? 나이가 어린 건 알지만, 방울이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그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반가울 리 전혀 없었다.솔직히 말하면, 억지로라도 방 안에 질질 끌고 들어가고 싶었다.“어차피 오빠랑 결혼할 거잖아. 요즘은 속궁합부터 맞춰본다고 하는 말 못 들었어? 그만큼 성생활은 중요한 거야.”“오늘은 싫어요, 저한테 아무런 상의도 없었잖아요.”입술을 짓씹던 도균은 결국 핸들을 돌렸다.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은 더러웠지만, 혹시라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가 방울이 등을 돌릴까 봐서. 그동안 애를 썼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
딱히 애틋한 마음을 나눈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그런 일상으로 치부하기엔 나름 설레는 첫사랑이었다. 보고 싶고, 보면 반갑고, 웃어주면 설레고.외로운 사춘기 소녀에게 그의 웃음은 살갑고, 따스하고,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마치 예상하지 못한 핑크빛 감정이 소리 소문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저 아저씨도 나만 보면 웃잖아.’정말로 국밥이 맛있어서 자주도 오는 건지, 아니면 자신과 같은 마음인 건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그리고, 할머니에게 살갑게 구는 모습도 순수한 마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이사라도 가버린 듯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 "할머니, 그 착한 아저씨는 요즘 왜 안 와?""누구 말하는 겨?""있잖아! 맨날 저 자리에 앉아서 국밥 먹던 젊은 아저씨!""아아, 도균 총각? 이제 안 올겨. 여기도 잠깐 있던거라고 혔어."할머니는 집안 사업이 잘 풀려서 서울로 갔다는 말을 전해왔지만, 어린 방울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영역이었다.다만,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사실이 서운할 뿐이었다.그리고 그 서운함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가 겪은, 아리고도 무력한 첫 이별이었다.***최도균을 다시 만난 건 3년 뒤, 할머니의 장례식장이었다. 유일한 보호자가 사라졌다는 상실감,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두려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허덕이던 순간.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타난 도균은 구원자나 다름없었다.“방울아, 부조금으로 장례식 비용은 충분할 것 같은데... 알아보니까 할머님 명의로 된 빚이 좀 있네. 당장 급한 이자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유골함이랑 납골당은 제일 좋은 걸로 해.”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던지, 방울은 경계는커녕 그제야 마음을 놓고 엉엉 울었다. “우리 할머니 어떡해요.. 나 아직 효도도 못 했는데. 매일 틱틱거리기만 했는데...”"할머니는 방울이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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