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희는 붉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켜 속옷을 챙겨 입었다.“교수님, 저... 임신이 가능할까요?”가희는 불안한 눈으로 세면대 앞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윤주환은 허리를 조금 숙인 채 손을 씻고 있었다. 길고 반듯한 손가락 위로 물줄기가 흘렀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는 힘줄이 은근히 도드라져 있었다.주환의 시선이 가희에게 닿았다.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검은 눈에는 담담한 냉기가 배어 있었다.“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습니까?”가희의 얼굴이 귀까지 붉어졌다.입술을 깨문 끝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한 번뿐이었어요.”“한 번?”“왜, 왜요? 문제가 있나요?”가희는 치맛자락을 쥐며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의사한테는 환자가 다 똑같아. 아무것도 이상할 거 없어.’하지만 주환의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눈에 들어오자 조금 전 진료 화면이 떠올랐고, 호흡이 괜히 흐트러졌다.가희는 딴생각을 떨쳐 내려고 일부러 시선을 돌렸다.주환 앞에 놓인 진료기록지가 보였다. 글씨는 놀라울 만큼 정갈했다. 흔히 떠올리는 알아보기 힘든 필체와는 달리 선이 또렷하고 단정했다.“기초 체력이 많이 약합니다. 조기 진통 위험도 있고요. 아이를 유지하고 싶다면 입원해서 경과를 봐야 합니다. 보호자에게 바로 연락하는 게 좋겠습니다.”가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조심했다. 유산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처방받은 주사도 빠뜨리지 않았고,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어렵게 유명한 전문의 진료까지 잡았다.그런데 설마 아이를 잃을 위험이 있을 줄은 몰랐다.가희는 치맛자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교수님, 아이만 낳을 수 있다면 뭐든 할게요.”결혼한 지 3년.부원우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 하나로 결혼 후 단 한 번도 가희를 안지 않았다.이번 임신은 술에 취했던 밤에 벌어진 뜻밖의 일이었다.가희는 원우가 아이를 원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처음으로 남편 뜻을 거슬렀다.원우가 M국으로 반년짜리 출장을 떠난 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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