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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숨기려 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거리

مؤلف: 윤미주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6-29 17:36:30

순간 공기가 조용히 얼어붙었다.

“…그 남자랑 같이 있었던 거예요?”

정우진의 낮은 목소리가

천천히 귓가를 눌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

우진 시선은 여전히 내 목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본능처럼 셔츠 깃을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진은 다 본 얼굴이었다.

밤새 잠 못 잔 눈.

흐트러진 숨.

그리고 급하게 감추려는 표정까지.

짧은 침묵.

사무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만

희미하게 이어졌다.

나는 겨우 입술을 움직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우진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조용한 시선이 이상하게 더 숨 막혔다.

“어제 연락드렸는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계속 안 받으셨잖아요.”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어젯밤.

태준과 가까워졌던 거리.

숨이 섞이던 순간.

그리고—

‘오늘은 그만 가.’

갑자기 밀어내듯 돌아섰던 그 뒷모습까지.

심장이 괜히 다시 흔들렸다.

나는 급하게 정신을 붙잡았다.

“…피곤해서 일찍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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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열주의   239화. 천천히, 올라가는 마음 (2)

    몇 층쯤 올랐을 때 센서등이 꺼졌다.“왜 안 가?”태준이 물었다.“불 꺼졌잖아.”“움직이면 다시 켜져.”“잠깐만.”나는 잡고 있던 손을 당겼다.어둠 속에서 입술이 닿았다.짧게 끝날 줄 알았던 입맞춤은 우리가 다시 숨이 찰 때까지 이어졌다. 불이 켜졌을 때 태준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호텔방에 도착했을 때는 둘 다 숨이 차 있었다.짐도 도착하지 않은 빈 방에서 우리는 바닥에 나란히 앉아 와인을 기다렸다. 커다란 창 너머로 낯선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다음에는 바다 보이는 곳으로 가자.”내가 말했다.“이번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그래도 다음 것도 정해둬야지.”“언제 갈 건데?”“다음 달?”“연차 낼 수 있어?”“내면 되지.”와인이 도착한 뒤에는 창가에 앉아 잔을 부딪쳤다.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며칠을 머물지.그날 밤에는 할 말이 많았다.“서윤아.”태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괜찮아?”“응. 잠깐 딴생각했어.”“조금 더 쉴래?”“아니. 이제 가자.”나는 장바구니를 다시 들었다.태준도 노트북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처음보다 걸음이 느려졌다. 한 구간은 태준이 앞서고, 다음 구간에서는 내가 먼저 걸었다.이번에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계단을 밟는 소리와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만 이어졌다.얼마 뒤 태준이 사는 층을 알리는 숫자가 나타났다.그가 계단실 문 앞에서 멈췄다.“나는 여기야.”“응.”태준이 문을 열자 복도의 따뜻한 공기와 밝은 불빛이 안으로 들어왔다.“장바구니 무거운데, 아직 더 올라가야 하잖아. 괜찮겠어?”“응. 아까 쉬어서 괜찮아.”“천천히 가.”“너도 들어가서 밥 먹어.”“그럴게.”나는 장바구니를 고쳐 들었다.“내일 봐.”태준이 말했다.“응. 내일 봐.”태준은 복도 쪽으로 나갔다.계단실 문이 닫히기 전 그가 한 번 돌아봤다.나는 위쪽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문이 천천히

  • 미열주의   238화. 천천히, 올라가는 마음 (1)

    월요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로비에 들어서자 엘리베이터 문 옆에 붙은 안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임시 점검 중입니다.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움직였는데 숫자판은 꺼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 버튼을 눌러봤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나는 손에 든 장바구니를 내려다봤다.세탁세제 리필과 두부 두 모, 귤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세제만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가 몇 가지를 더 담은 탓이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는 견딜 만했는데,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손잡이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하필 오늘이네.”작게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자동문이 열렸다.태준이었다.한 손에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었고, 검은 코트 안으로 보이는 셔츠 소매가 아침보다 구겨져 있었다.태준이 내 옆에 멈춰 서서 안내문을 읽었다.“엘리베이터 멈췄어?”“응. 점검 중이래.”그가 꺼진 숫자판을 올려다봤다.“아침에는 괜찮았는데.”“그러니까.”태준의 시선이 내 장바구니로 내려갔다.“장 봤어?”“세제 사러 갔다가 조금 늘었어.”“무겁겠다.”“계단까지 올라갈 줄 알았으면 작은 걸 살걸.”“내가 들까?”나는 장바구니를 반대 손으로 옮겨 잡았다.“아직은 괜찮아. 힘들면 부탁할게.”“그래.”태준이 먼저 계단실 문을 열었다.안쪽은 로비보다 서늘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잠시 어두웠다가,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센서등이 켜졌다.회색 계단과 금속 난간이 불빛 아래로 드러났다.나는 첫 계단을 밟았다.“계단으로 올라가려니까 이 건물이 이렇게 높았나 싶네.”“오늘 제대로 알겠네.”“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힘든 것 같아.”“천천히 가자.”태준의 발소리가 뒤를 따랐다.계단 폭이 넓은 곳에서는 나란히 걷고, 좁아지면 한 사람이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위쪽의 센서등은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하나씩 켜졌다.“오늘 현장 다녀왔어?”내가 물었다.“응. 천장 마감이 예상보다 낮게 나왔어.”“조명 위치 다시 잡아야 해?”“조금. 그대로 설치하면 한쪽 벽

  • 미열주의   237화. 덜 단, 다음 (6)

    잠시 뒤 만두가 다 익었다.나는 접시에 옮겨 담고 식탁 앞에 앉았다.편의점 냉장고 안에 나란히 놓여 있던 저당 라떼가 떠올랐다.다음에 가도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그때는 태준이 고르겠다고 했다.나는 만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다음이 언제인지는 아직 몰랐다.그래도 이번에는,그 말을 굳이 지우고 싶지 않았다.⸻【서윤의 기억 25】예전에 태준과 편의점에 갔던 밤이 있었다.야근을 끝내고 늦게 만난 날이었다.나는 피곤하다며 단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고, 태준은 바닐라 라떼를 골랐다.자기는 아메리카노를 샀다.밖으로 나와 한 모금 마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달았다.나는 얼굴을 찌푸렸고,태준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자기 커피와 바꿔주었다.이번에는 아메리카노가 너무 썼다.결국 나는 설탕을 하나 넣었고,태준은 내가 남긴 바닐라 라떼를 마셨다.“너 단 거 안 좋아하잖아.”내가 묻자 태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네가 이것보다 아메리카노가 낫다며.”그날 우리는 서로의 커피를 바꿔 들고 걸었다.나는 태준이 내 취향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태준도 아마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가끔은 틀렸다.내가 원하는 맛을 잘못 고르기도 했고,그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 때도 있었다.그럴 때 우리는 그냥 바꿔 마셨다.그리고 오랫동안,그 정도면 서로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일요일 편의점에서는 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어제보다 덜 단 라떼를 두 개 골랐다.하나는 내가 마셨고,하나는 태준에게 건넸다.이번에는 바꿔 마실 필요가 없었다.

  • 미열주의   236화. 덜 단, 다음 (5)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우리는 함께 탔다.태준이 자기 층을 누르고, 나는 그 위에 있는 내 층 버튼을 눌렀다.거울 같은 문에 두 사람이 나란히 비쳤다.한 손에는 각자의 장바구니.회사에서 돌아오는 모습과는 달랐다.주말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편의점에 다녀온 사람들처럼 보였다.실제로도 그랬다.엘리베이터가 태준의 층에서 먼저 멈췄다.그가 봉투를 들고 문 앞에 섰다.“라떼 잘 마셨어.”“다음에는 네가 사.”“기억하고 있어.”태준이 내 장바구니를 한번 보았다.“저녁 먹어.”“너도. 밥 남았다고 했지?”“응. 라면만 먹는 건 아니야.”“그럼 됐어.”문이 닫히기 시작했다.태준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내일 봐.”“응. 내일 봐.”문이 완전히 닫혔다.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갔다.집에 들어와 장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렸다.우유를 냉장고에 넣고 달걀을 하나씩 꺼냈다.깨진 건 없었다.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팬에 올렸다. 기름을 조금 두르고 불을 켜자 금방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도 입안에 라떼 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어제보다 덜 달았고,그래서 다른 맛도 조금 더 잘 느껴졌다.나는 만두를 뒤집었다.한쪽이 생각보다 노릇하게 익어 있었다.태준과 저녁을 먹은 건 아니었다.라떼를 마신 뒤 각자의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왔고, 지금도 각자의 집에서 다른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쉽지 않았다.같이한 시간을 더 늘이지 않아도,끝난 뒤에 허전해지지 않았다.

  • 미열주의   235화. 덜 단, 다음 (4)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지나갔다.아이는 손에 든 아이스크림 봉지를 흔들었고, 아버지는 떨어뜨린 영수증을 주웠다.나는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라떼 병을 비웠다.태준도 거의 다 마신 상태였다.“갈까?”내가 물었다.“그래.”태준이 빈 병 두 개를 들고 편의점 앞 분리수거함에 넣었다.나는 장바구니를 챙겼고, 그는 자기 봉투를 들었다.건물까지는 길 하나만 건너면 됐다.우리는 편의점 앞 횡단보도 쪽으로 걸었다.해가 거의 넘어가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라떼는 성공이네.”태준이 말했다.“응. 이건 다음에도 마실 수 있겠어.”“다음엔 다른 것도 골라볼까?”“네가 고르면 또 너무 단 거 고르는 거 아니야?”“오늘 네가 고른 걸 기억하면 되지.”“그럼 똑같은 거잖아.”“실패할 가능성이 없잖아.”“안전하게 가네.”“커피는 안전해도 괜찮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래.”신호가 바뀌었다.길을 건너 건물 쪽 골목으로 들어섰다.주차장 입구와 이어진 좁은 길이라 차가 들어오면 보행자들이 벽 쪽으로 붙어야 했다.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태준이 먼저 알아차렸다.“차 온다.”나는 옆으로 물러나려다 무심코 그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손가락 끝에 얇은 천의 감촉이 닿았다.태준도 내 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차가 생각보다 가까이 지나갔다.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었다.차가 골목 끝으로 빠져나간 뒤에야 내가 그의 소매를 잡고 있다는 걸 알았다.나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태준은 잡혔던 소매를 내려다보지 않았다.그저 지나간 차 쪽을 한번 본 뒤 말했다.“갑자기 들어왔네.”“그러게.”우리는 다시 걸었다.설명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차가 가까워서 그랬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놀라서 무심코 잡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느 말도 꺼내지 않았다.태준도 묻지 않았다.내 손에는 아직 셔츠의 얇은 감촉이 남아 있었다.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밝은 조명이 바닥에 길게 비쳤다.택배함 앞에는

  • 미열주의   234화. 덜 단, 다음 (3)

    태준이 장바구니를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생수병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큰 물은 안 샀네.”내가 물었다.“무거워서.”“어제 내가 그럴 것 같다고 했지?”“맞혔어.”“강태준도 귀찮은 게 있구나.”“생각보다 많아.”“뭐가 더 귀찮아?”태준은 잠시 생각했다.“다 쓴 걸 늦게 발견하는 거.”“휴지 같은 거?”“휴지, 면도날, 세제.”“그러면서 미리 사두지는 않고?”“미리 사두면 있는 줄 알고 더 늦게 확인해.”그럴듯한 말이었다.“그건 조금 알 것 같아.”“너도 그래?”“샴푸 새것까지 사놓고, 욕실에 옮기는 걸 잊어.”“다 쓴 다음에 생각나고?”“응. 물 묻은 채로 다시 나오지.”태준이 웃었다.“상상된다.”“왜.”“그냥.”“되게 급하게 나오는 사람처럼 말하네.”“급하지 않아?”나는 잠깐 생각하다 웃었다.“급하지.”이런 이야기를 태준과 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샴푸가 떨어진 날이나 휴지를 뒤늦게 사는 일.연인이었을 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말들이 많았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보고 싶다고 하고, 다음 약속을 정했다.그런데 정작 이런 사소한 일은 잘 몰랐다.태준은 라떼를 조금 더 마신 뒤 물었다.“내일 아침은 달걀 먹게?”“우유랑 같이. 시간 있으면.”“시간 없으면?”“회사에서 뭐라도 먹어야지.”“내일 오전 회의 있잖아.”나는 그를 봤다.“기억하네.”“금요일에 일정 정리할 때 들었어.”“아홉 시 반이야. 너무 이른 건 아니야.”“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말투는 담담했다.나를 타이르거나, 대답을 확인하려는 말이 아니었다.나는 병을 손안에서 굴렸다.“먹고 갈게.”“나도 먹고 갈게.”“너는 왜 갑자기 약속해?”“너만 챙겨 먹으라고 하면 불공평하잖아.”“그건 맞네.”나는 다시 라떼를 마셨다.어제보다 덜 단 맛이었다.단맛 뒤에 커피 향이 조금 남았다.“이번 주는 좀 덜 바빠?”내가 물었다.“월요일만 지나면.”“월요일에 뭐 있어?”“오전 현장 확인. 오후에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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