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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

Author: 진해랑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6 08:00:13

단정한 정장 차림의 그녀가 입구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한정숙 여사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풀렸다.

“어머, 연 비서.”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안보여서 찾고 있었는데.”

연지원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브랜드 담당자와 미팅이 있어서 조금 늦었어요.”

“차 본부장 보필하느라 고생하네.”

“제 할 일인걸요.”

연지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정숙 여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연 비서가 있으니까 마음이 놓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한정숙 여사의 시선이 다시 도영에게 향했다.

“요즘 많이 바쁘다지?”

“예.”

“건강은 챙기고 있는 거지?”

도영이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연지원이 끼어들었다.

“최근에 야근이 잦으셔서 조정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연지원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마치 아주 자연스러운 대답이라는 듯.

한정숙 여사가 만족스럽다는 넉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연 비서가 잘 챙겨야지.”

그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차 본부장은 연 비서가 제일 잘 알잖아.”

그 말은 자못 칭찬처럼 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내 자리를 지우는 말처럼 남았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아랫입술만 잘근 물었다.

나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와 눈빛.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단어 하나, 눈빛 하나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도영의 생활, 도영의 하루,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연지원이라는 말처럼 들려서.

나는 괜히 클러치를 한 번 더 고쳐 잡았다.

***

장장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나와 도영은 친분이 있는 인사와 대화를 나누느라 거의 마지막 즈음에서야 나갈 채비를 했다.

홀을 나와 복도 끝에 다다르자 도영은 버릇처럼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무심코 손을 들었다. 삐뚤어진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늘 하던 일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끝이 그의 넥타이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정말로, 찰나라고 해도 될 만큼 짧은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멈칫했는지, 왜 망설였는지.

그저 손이 공중에 걸린 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연지원이 끼어들었다.

“대표님.”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거뒀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불쑥, 나와 도영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나는 뚝딱이며 한 걸음 옆으로 밀려났다.

고작 한 걸음 밀려났을 뿐인데, 그 한 걸음이 아내와 비서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연지원은 도영을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본부장님, 또 넥타이 풀렸어요.”

“아.”

도영이 짧게 반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살폈다.

그녀가 차도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옷매무새가 아니라, 그의 곁에 설 자리를.

당연히 넥타이는 내가 정리해줘야 했다. 바깥에 아직 기자들이 있었고,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건 아내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하지 못했고, 연지원은 망설이지 않았다. 저 멀리서 다급하게 뛰어오면서까지.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도영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도영 역시 그런 그녀의 손길을 받는 것에 어색함이 없었다.

몸을 피하지도, 불편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연지원은 넥타이 매듭을 한 번 풀어 다시 곧게 잡아 올렸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잠깐 스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손이 넥타이를 따라 내려오며 셔츠 깃 끝을 스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재킷 앞섶을 정리했다.

구겨진 부분을 펴듯이 손바닥으로 한 번,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동작이 끝났는데도 손은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정리할 것이 더 남아있는지 재차 확인한 후에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떨어졌다.

“아직 기자들 안 갔어요.”

연지원이 말했다.

그러면서 넥타이를 한 번 더 정리했다.

“지금 나가시면 또 잡힐 거예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

“네.”

도영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짧게 웃었다.

“차는 미리 대기시켜 놨습니다.”

그녀는 태연하게 한발 물러났다. 누가 봐도 업무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느낄 만큼 자연스러웠다.

너무도 익숙해서 위화감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비서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외부 행사에 나올 때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는 것도 업무 중 하나였다. 밖에 기자들이 포진해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겨우 넥타이였다.

정말로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별것 아닌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 내 자리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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