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채은이 고른 식당은 노드 리테일에서 차로 십여 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번화가에서 한 골목 벗어난 작은 한식 다이닝이었다.짙은 목재로 마감된 실내에는 낮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테이블마다 따뜻한 빛을 내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홀 중앙의 낮은 칸막이가 테이블 사이의 시선을 적당히 가려주었다.오픈 키친에서는 그릇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와 구수한 육수 냄새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큼 화려하지도, 누군가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볼 만큼 트여 있지도 않은 곳이었다.별도의 룸도, 두 사람을 기다리는 수행원도 없었다
도영과 채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채은이 왜 투자금을 회수하고 떠났는지 연지원은 알지 못했다.알고 싶지도 않았다.결과는 분명했으니까.채은은 떠났다가 돌아왔고, 자신은 그 순간 도영의 곁에서 밀려났다.자신을 이용하고 버린 사람은 한정숙이었다.자신을 비서 이상으로 보지 않은 사람은 도영이었다.연지원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시선은 자꾸 한 사람에게 향했다.신채은.한정숙과 손을 잡게 만든 원한의 시작도.도영의 곁에 서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만든 사람도.지금 자신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채은이
그녀는 연지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등을 떠밀었다.그러나 일이 틀어지자 가장 먼저 손을 놓았다.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당장 찾아가 왜 자신만 남겨두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하지만 한정숙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도 없었다.그 손을 잡은 것은 연지원 자신이었다.드레스를 받아 입은 것도.의도를 알면서 무대에 오른 것도.채은이 상처받기를 바라며 도영의 곁에 선 것도.누구에게 강요당한 일이 아니었다.한정숙은 기회를 주었고, 연지원은 그것을 이용하려 했다.두 사람을 묶어준 것은 처음부터 신채은이라는
“다만 아직 지원 씨가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뭔지 모르잖아.”“무슨 뜻이죠?”“지원 씨는 오랫동안 도영이 곁에 있었고, 나는 그랑 팔레와 SLP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연지원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차 대표님을 감시하라는 겁니까?”“그런 부탁을 한 적은 없는데.”차종하가 느긋하게 웃었다.“지원 씨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고.”“그럼 왜 저를 불렀죠?”“선택할 기회는 줘야 할 것 같아서.”“무슨 선택이요?”차종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계속 신
교묘하게 질문을 되돌리는 대답이었다.차종하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자료를 누가 보관했는지.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는지.왜 오래전 사건까지 조사했는지도.연지원은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잠시 망설인 끝에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차종하를 믿어서가 아니었다.믿지 않더라도 확인해야 할 이름이 서류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서류철을 펼치자 익숙한 감사보고서가 나타났다.문서번호의 체계와 당시 사용된 결재 양식은 연지원이 가지고 있던 자료와 같았다. 종이 아래 찍힌 감사실 접수인도 낯익었다.원본인지까지는 알 수 없
연지원은 봉투를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오랫동안 옷가지 아래 눌려 있던 봉투의 모서리는 구겨져 있었고, 입구에는 여러 번 열었다 닫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버리지는 못했지만 자주 꺼내 볼 수도 없었던 시간의 흔적이었다.누렇게 변한 서류들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그랑 팔레 내부 감사 결과서.징계위원회 의결서.형사 고발 승인서.오래전 오빠 연종인을 범죄자로 만들었던 서류들이었다.회사 기밀 유출.협력사 입찰 정보 제공.금품 수수.서류에 적힌 혐의는 구체적이었다.내부 전산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한 기록과 연종인 명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