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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Author: 스매시모찌

제1화

Author: 스매시모찌
“이게 뭐야, 도대체 어디서 주워 온 휴지 조각이야?”

인사본부장 한문빈이 한 장의 이력서를 손가락으로 꼬집듯 들어 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을 기세였다.

창밖으로는 한진시 금융타운의 빌딩 숲이 유리창에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숱한 마천루가 권력과 자본의 위세를 과시하며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반면, 사무실 안쪽에는 ‘네오투자캐피탈’이라는 금빛 사명이 묵직하게 걸려있었다.

20조 원을 굴리는 국내 최상위 사모펀드, 명문대 출신은 기본 스펙이고 각종 국제 자격증으로 무장한 금융 엘리트들이 피를 말리며 경쟁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사본부장 한문빈이 손에 쥔 이력서는 너무도 초라했다.

[이름: 소현성]

[나이: 25세]

[학력: 한진과기대 경영학 전공]

[자격증: 없음]

[경력: 없음]

한문빈은 소현성의 이력서를 본 순간 혹시라도 프린터가 오작동해서 테스트 페이지가 잘못 나온 게 아닐지 의심했다.

CFA, CPA, FRM 같은 금융권 필수 스펙은커녕 인턴 경력조차 빈칸이었다. 네오투자캐피탈 역사상 이런 ‘빈 종잇장 같은 이력서’를 본 건 처음이었다.

네오투자캐피탈 사무실 한쪽에는 수천만 원짜리 해외 명품 파쇄기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비싼 파쇄기에 넣기조차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형편없는 이력서 한 장이 지금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본부장님... 조금 전에 회장님 비서실에서 직접 보낸 이력서입니다.”

비서의 조심스러운 말에 한문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요?”

한문빈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벌떡 일어났다.

‘우리 회사를 무명에서 업계 정점으로 끌어올리고 인사 문제에서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 회장님 말이야? 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가장 혐오하시는 우리 회장님이?’

불과 1년 전, 한 원로 임원이 조카를 핵심부서에 앉히려다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사내에서는 ‘인사 청탁’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한문빈 역시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 회장님이 직접 이런 허접한 이력서를 던져줬다고? 이건 암시가 아니라 대놓고 지시하신 거잖아! 명령이라고! 대체 뭐야, 혹시 회장님 친척이라도 된다는 거야? 성은 다른데...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위에 있는 분들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말이지... 젠장, 이렇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애를 떠안으라고?’

“혹시 어느 부서로 보내라는 언질은 없었나요?”

“네, 아무런 지시도 없었습니다.”

“참...”

한문빈은 씁쓸하게 웃었다.

특별한 지시 사항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골머리를 앓게 했다. 결국 인사본부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일 테니까.

‘이런 보잘것없는 낙하산을 어디에 꽂아야 위에서도 불만이 없을까? 핵심부서에 넣자니 당장 민원이 폭발할 거고... 변두리 부서에 두자니 괜히 회장님의 지인을 홀대하는 꼴이 되고...’

“흠...”

한문빈은 무려 30분 가까이 생각을 굴리며 수십 가지 선택지를 따져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트레이딩본부 1팀으로 보내요.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부터 시작하게 합시다.”

“그쪽에서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비서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물었다.

“반발? 입 다물라고 해요! 회장님이 직접 꽂은 사람인데, 감히 토 달면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한문빈은 손을 내저으며 비서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트레이딩본부는 회사의 심장부지만, 트레이드 어시스턴트란 사실상 잡무 담당이었다.

가끔 마우스 몇 번 클릭하여 모의투자만 진행하고 서류 출력,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직무였다.

‘이러면 회장님 체면도 세워주고 낙하산이 사고 칠까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야.’

한문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큰 배가 오래 항해하다 보면 선체에 따개비나 수초가 붙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세상사 이치라는 것도 결국은 비켜 갈 수 없구나.’

한문빈은 다시 이력서를 집어 들었었고 시선은 자연스레 그 이름 위에 멈췄다.

‘소현성? 너무 흔한 이름 같은데... 회장님께서 굳이 이런 파격적인 예우를 해줄 만큼의 뒷배라도 있는 걸까?’

소현성의 이력서는 작은 조약돌처럼 네오투자캐피탈이라는 거대한 호수에 던져졌다. 겉보기에는 고요하던 수면이 흔들리며 파문이 번져 갔다.

같은 시각, 그 파문의 중심에 서게 될 소현성은 정작 알지 못한 채, 한진시의 허름한 골목 어딘가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폭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

‘쾅!’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집 안 가득 묵직한 울림이 퍼졌다.

게임에 몰두하던 소현성은 갑작스레 고개를 홱 돌렸고 어두운 방 안, 모니터 불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엄, 엄마? 아빠? 언제 들어오셨어요?”

“뭐야? 게임만 하느라 엄마 아빠가 들어온 것도 몰랐어?”

소현성의 어머니 김미연의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고 그 속에는 오랫동안 눌러온 분노가 배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소제훈은 말없이 뒤에 서 있었지만 부릅뜬 두 눈은 금세라도 폭발할 화산처럼 위태로웠다.

“나랑 네 아빠가 밖에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이 나이 될 때까지 키워놨건만! 언제까지 집에서 게임만 할 셈이야?”

“옆집 아들 좀 봐. 너랑 동갑인데 벌써 승진해서 집 사고 결혼 준비까지 한다더라!”

“네 여동생은 너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직장 다니며 집에 생활비까지 보태고 있어! 그런데 너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

한꺼번에 터져 나온 김미연의 울분은 범람한 강물처럼 소현성을 덮쳤다.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하지만 소현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한때는 비명문대 출신이었지만 패기에 차 있던 청년이었고 뜨거운 포부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 수년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자 점점 주눅이 들었고 결국 현실에서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게임이라는 가상의 피난처에 숨어든 채 몇 년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부모에게 얹혀살며 현실을 외면하고 게임이 주는 가짜 행복에 스스로를 마비시키며 버텨온 것이었다.

김미연의 목소리가 순간 부드러워졌다.

“엄마도 네가 평생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니. 우리도 언젠가는 네 곁을 떠날 거야. 그때가 오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해. 그런 생각도 해야지...”

“알겠어요.”

고개를 떨군 소현성은 목이 메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아버지 소제훈이 단호히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보마. 이번에는 행동으로 보여줘. 두 번 다시 실망시키지 마라!”문이 쾅 닫히고 방 안에는 숨 막히는 적막만이 남았다.

소현성은 굳은 채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간신히 뽑아낸 ‘전설 무기’가 눈 부신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조롱처럼 느껴졌다.

“하...”

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길드 음성 채널에서 형들과 떠들썩하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와 대박, 미쳤다! 현성이 전설 무기 뽑았다!]

[소현성 클래스 보소, 이런 걸 다 뽑네? 행운의 신이 돕고 있는다니까!]

[현성은 진짜 천운 체질이다 개쩐다!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라니까!]

...

길드 채팅창은 놀라움과 환호, 그리고 찬탄으로 들끓었다. 사람들이 ‘행운의 신’이라 부르며 떠받드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 모든 것은 최근에 깨달은 한 가지 기묘한 능력 덕분이었다. 극도로 예민하고 미묘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종의 ‘직감’이었다.

한 달쯤 전부터였을까.

게임에서 가챠를 돌리거나 랜덤 박스를 여는 등 오직 확률에만 기대야 하는 순간마다 그는 아주 짧은 찰나에 찾아오는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손끝에서 전류가 스치듯, 찌릿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머리끝까지 번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바로 그 찰나에 마우스를 클릭하면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이 되곤 했다.

조금 전 손에 넣은 그 전설의 무기 역시 그 느낌이 스쳐 간 찰나에 망설임 없이 클릭했기에 얻을 수 있었다.

이른바 ‘행운의 신’이라 불릴 만한 능력은 그가 붙잡고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현실을 외면하게 해주는 위안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무거운 눈빛 앞에서는 그 자존심이 너무도 초라했다.

길게 한숨을 내쉰 후, 소현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그는 곧장 길드 채팅창을 열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한참 망설이다가 천천히 마지막 인사를 입력했다.

[형님들, 미안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게임을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보내자, 길드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붙었다.

[뭐라고? 현성아, 네가 게임을 접는다고? 잘만 하던 애가 왜 갑자기!]

[누가 너 열받게 했냐? 말만 해, 우리가 가서 혼내줄게!]

[접지 마! 너 빠지면 우리 길드 진짜 경로당 된다니까!]

화면 가득 쏟아지는 아쉬움 섞인 애원에 소현성의 마음은 따뜻해지면서도 쓰라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안 사정을 대충 털어놓았다. 그러자 채팅창은 한동안 조용해졌다.

한참 정적이 흐른 뒤에야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랬구나...]

[하긴, 부모님 말씀도 맞지. 이제는 진짜 일 좀 찾아야지.]

[아쉽네, ‘행운의 신’ 없으면 우리 앞으로 누가 장비 뽑냐고!]

아쉬움과 위로가 오가는 와중에 갑자기 ‘띵’ 소리와 함께 개인 대화창이 튀어 올랐다.

길드장이었다.

[현성아!]

[형님?]

[야, 잠깐! 당장 접는 건 보류해. 너 한진과학기술대 나왔다 했지? 경영학 전공 맞지?]

[네, 맞아요 형님. 근데 왜요?]

[수학 좀 하냐? 회계 과목 들어본 적 있지?]

[뭐... 조금은 했었죠.]

[좋아. 그럼 이력서 하나 보내봐.]

[네? 형님, 이력서를 왜요?]

[쓸데없는 아르바이트나 이상한 일자리 찾지 말고 그냥 우리 회사로 와라. 그러면 게임도 접을 필요 없잖아. 네가 빠지면 우리 길드 진짜 노인정 된다니까!]

순간, 소현성은 멍해졌다.

‘길드장 형이? 늘 게임에서 농담 반 허세 반으로 부자라 떠들던 그 형이?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밥값을 시원하게 계산하고 고급 외제차를 몰고 온 걸 보고 그냥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회사까지 차린 능력자였다고? 게다가 날 채용하려 한다고?’

이건 현실이라기보다, 마치 게임 속 이벤트 퀘스트 같은 전개였다.

[형님, 농... 농담 아니시죠?]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냐? 네가 어떤 애인지 내가 제일 잘 알지. 믿음직하고 의리 있고 머리도 잘 돌아가잖아. 길드에서 온갖 잡일, 전부 네가 도맡아 했던 거 다 알고 있어. 네가 없었으면 진작 우리 길드는 산으로 갔을 거다. 이번에는 내가 빚 갚는 셈 치자. 이력서 내 메일 주소로 보내. 인사본부에 바로 얘기해 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소현성의 눈가가 젖었다. 게임에서 알게 된 길드장이 이렇게 의리를 지켜 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불안이 꿈틀거렸다.

‘근데... 혹시 불법 회사면 어떡하지?’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내던졌다.

‘아니야! 지금이 어떤 때인데, 취직되려면 재고 따질 여유가 어디 있다고. 일단 취직이 먼저지! 크고 작은 건 나중 문제고 최소한 부모님 앞에서 얼굴은 들고 다녀야지!’

소현성은 떨리는 손끝으로 메모장에 적힌 이메일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보자... 형님이 준 메일 주소가...”

곧장 검색창에 이메일 도메인을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를 치는 순간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네오투자캐피탈]

[국내 초대형 사모펀드]

[운용 자산 규모 20조 원 이상]

소현성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수축했다. 뇌리에 하얀 섬광이 번지며 몸은 벼락이 관통한 듯 얼어붙었다.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고 충격과 황당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

“와... 씨X... 이거 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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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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