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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스매시모찌
“아이고, 아이고...”

소현성이 뻣뻣하게 굳은 팔다리를 어설프게 풀어 늘리자, 옆에 있던 이혜림이 눈길을 돌렸다.

“현성 씨, 뭐 하는 거예요?”

“아, 혜림 누나. 별일 아니에요. 그냥 몸 좀 풀고 있었어요.”

지난 사흘 동안 증시가 개장하는 순간부터 채용 연계형 인턴들의 하루는 똑같았다. 삐걱대는 철제 카트를 밀며 트레이딩본부 각 팀을 오가고 지시와 서류를 전달하느라 물고기처럼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다. 말 그대로 바닥부터 굴러야 하는 자리였다.

“누나가 말했잖아요. 증시는 순식간에 요동치니까 결국 중요한 건 두 가지라고. 하나는 ‘심리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필요한 작업이니 그건 머리 다 벗겨져 가는 베테랑 트레이더들이 맡아야 할 몫이고... 우리 같은 인턴이 낼 수 있는 가치는 오직 하나, ‘속도’뿐이라고요. 남보다 빨라야 하니까, 스트레칭이라도 해줘야죠.”

전날 하루 종일 뛰어다닌 탓에 그의 장딴지는 여전히 뻐근했다.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무겁게 처지는 피로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때 소현성은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나도 팀장님처럼 운동 좀 해서 몸을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퇴근하고 운동? 웃기고 있네. 지금껏 게임만 하던 내가 밤마다 헬스장을 간다고? 절대 불가능하지.’

그렇게 자조하던 순간, 이혜림이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현성 씨, 좋은 소식 있어요. 오늘은 그 카트 안 밀어도 될 것 같아요.”

“네?”

소현성이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

‘인턴 중에서도 제일 말단인 내가 안 하면 누가 하지?’

“팀장님 지시예요.”

이혜림이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다른 팀 인턴들한테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우리가 발로 뛰지 않아도 된대요.”

‘왜 갑자기? 어제는 안 그러더니. 그동안 괜히 다리만 고생했잖아...’

투덜거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주 팀장이 이렇게까지 배려할 리가 없는데... 설마 내가 낙하산이라는 걸 의식한 건가?’

이혜림이 설명을 이었다.

“오늘 우리 임무는... 장 마감까지 모의투자만 집중하는 거예요. 팀장님이 직접 내린 지시예요. 아마 어제 그 관리종목 건 때문에 현성 씨를 시험해 보려는 것 같아요.”

말끝에는 알 수 없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아...”

소현성이 중얼거리자, 이혜림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덕분에 저도 따라 앉아서 모의투자만 할 수 있게 됐네요. 고마워요, 현성 씨.”

“별말씀을요. 저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인데...”

“정말 운이었을까?”

이혜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뭐, 굳이 캐묻진 않을게요. 현성 씨만의 비밀 무기일지도 모르니까.”

‘비밀 무기라니...’

소현성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고작 캔들 차트의 빨강, 파랑이 뭘 뜻하는지도 어제에서야 알게 된 주제에 무슨 비밀 무기가 있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속에는 묘한 기대가 꿈틀거렸다.

‘오늘 하루 종일 모의투자만 하면 된다고? 어쩌면... 그 능력을 제대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지도 몰라.’

“현성 씨, 곧 데일리 시장 브리핑 회의 시작이에요.”

이혜림이 시계를 흘끗 보며 일렀다.

“현성 씨, 귀 쫑긋 세우고 잘 들어야 해요. 우리처럼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마다 매일 장 시작 전에 시장 주도 테마를 잡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시장 주도 테마요?”

“네. 요즘 잘 나가는 인기주, 테마주, 주목받는 종목, 대장주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게 보통은 혼자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특정 섹터에서 몰려서 터져요. 그걸 우리가 ‘핫한 테마’라고 불러요.”

소현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게임이랑 똑같네. 게임에서도 현재 버전 최강 조합을 메타 전략이라고 부르잖아. 증시도 마찬가지구나. 증권시장에서는 가장 파급력이 큰 영역을 시장 주도 테마라고 하고, 인력과 자금이 몰리는 거네.’

이혜림이 이어 말했다.

“데일리 브리핑은 결국 오늘 누가 시장을 이끌 대장주가 될지, 어떤 섹터가 같이 움직일지 가늠하는 자리예요. 우리 트레이딩본부는 이런 흐름에 제일 민감해야 하고요.”

겉으로 보기엔 채용 연계형 인턴들이 회의 자료를 출력하고 제본해 나눠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그 자료의 원천은 리서치본부였다.

리서치본부는 말 그대로 회사의 두뇌였다.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들이 해외에서 쏟아지는 정보까지 긁어모아 산업 동향, 기업 분석, 매크로 지표를 모조리 씹어 삼킨 뒤 고도로 압축된 리포트로 가공해 트레이딩본부에 제공했다.

인턴들에게 맡겨진 몫은 단순했다. 그렇게 걸러낸 알맹이만 담은 리포트를 프린트해 회의실에 뿌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혜림 누나. 그 보고서들... 제 눈에는 그냥 엉터리 같아요.”

소현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글로벌 매크로, 산업 전망, 기업 분석, 시장 트렌드라니... 살아 숨 쉬는 변수를 어떻게 숫자랑 차트에 구겨 넣는 거지?’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이, 또 겁먹고 그래요?”

이혜림이 그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웃었다.

“학교에서 기본은 다 배웠잖아요? 투자자산운용사 시험 준비할 때는 이거보다 더 빡센 자료들도 봤을 텐데요.”

“....”

소현성은 말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전공도 금융이랑 전혀 상관없는데... 투자자산운용사? 아직 시험 등록도 안 했는데...’

이혜림이 다시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 다 됐네요. 이제 곧 선임 트레이더분들 들어올 거예요. 우리도 가요.”

“네.”

‘시장 주도 테마, 핫한 테마, 반드시 잡아야 한다!’

소현성은 그 말을 되새기며 이혜림을 따라 회의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곧 명문대 출신 리서치본부 엘리트들이 직접 풀어내는 ‘핫한 테마’ 해석을 생생하게 들을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깥세상에서는 돈을 쏟아부어도 얻기 힘든 최고급 인사이트가 곧 눈앞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회의실은 사람들로 빼곡했고 공기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보고서는 다 확인했겠죠?”

주희재의 매서운 눈빛이 회의실을 훑었다. 그의 중저음 보이스가 회의실에 울렸다.

“지금 시장의 초점은 신재생에너지 섹터입니다. 특히 공급망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각자 의견을 내보시죠.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시작하세요.”

‘으악, 시작부터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소현성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최근 전기차 화재 사건이 잇따르면서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안전 기준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배터리 핵심 원자재인 니켈 가격이 반년 전 대비 45% 폭락했어요. 그 여파로 기업들의 재고 자산이 대규모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베테랑 트레이더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케파에도 거품이 심각합니다.”

다른 트레이더가 곧바로 이어받았다.

“올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산 케파가 3,000GWh에 달할 전망인데, 시장 수요를 한참 웃도는 수준입니다. 결국 공급 과잉 국면에 진입하면서 가격 전쟁, 이른바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신에너지 자동차 섹터는 여전히 우상향 아닐까요? 각국이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계획을 내놓고 있는데요.”

회의실 반대편에서 이견이 나왔다.

소현성은 입을 꾹 다문 채 보고서를 훑으며 귀로는 쏟아지는 키워드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유럽이나 미국 정책 방향이야 분명하죠. 하지만 우리처럼 단기 트레이딩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먼 미래의 공약 따위는 전혀 의미 없습니다.”

주희재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 약속이 하루아침에 뒤집힐지 누가 압니까? 그 불확실성 자체가 리스크예요.”

트레이딩본부 1팀은 100% 단기 매매를 전담하는 팀이었다. 그들에게 장기 로드맵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주식 시장의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 공급망 관련주들, 장 초반에는 공매도로 접근하세요. 다만 반드시 철저하게 리스크를 관리해야 합니다.”

주희재가 결정을 내렸다.

“배터리주 비중이 높은 ETF로 헤지 포지션을 잡아주시고요.”

“네, 팀장님. 그러면 레버리지는요?”

“최대 1.5배를 넘기지 마세요. 일단 보수적으로 갑시다. 장 초반에는 숏 포지션 위주로 진입하되 시장이 충격을 소화하고 반등 흐름이 보이면 오후에는 롱 포지션을 다시 노립시다. 매수 및 매도 타이밍은 각자 책임지고 잡아요.”

그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절대 욕심부리지 마세요. 지난달 실적 부진한 거 저도 압니다. 다들 마음이 급한 것도 알고요. 그렇지만 이런 때일수록 흥분하면 끝장입니다.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입니다. 알겠죠?”

“알겠습니다, 팀장님!”

트레이더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처럼 각자의 자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희재는 순식간에 수많은 지시를 쏟아냈다. 하지만 소현성의 귀에는 그것들이 그저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들릴 뿐, 단 하나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

“휴...”

이혜림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듯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긴장감은 참으로 오랜만이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주희재는 분명히 말했다. 이번 모의투자는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 평가라고. 만약 여기서 삐끗하면 당분간은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로서 잡무만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이혜림은 더는 커피 심부름, 서류 배달, 뒷정리 같은 시중드는 일만 매일 되풀이하는 신세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야 해! 난 할 수 있어!”

이혜림은 꽉 쥔 주먹을 살짝 흔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건 오래전부터 꿈꿔온 기회였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단히 준비해 왔고 이제 남은 건 장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전력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 회의에서 다룬 핵심 내용과 리서치본부 리포트부터 빠르게 정리하며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목들을 추려내고 있었다. 장 시작 전까지 최소한의 매매 시나리오는 세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채 모든 걸 쏟아내다가 문득 소현성이 걱정됐다.

‘현성 씨는 잘하고 있으려나?’

이혜림은 무심코 발끝을 들어 옆 칸을 힐끔 바라봤다.

하지만 소현성은 달랐다. 그는 얼어붙은 석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다. 눈빛은 공허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모르는 ‘초짜’의 모습이었다.

‘역시 지난번 관리종목 건은 순전히 운빨이었구나. 이따가 좀 한가해지면 도와줘야겠다. 어쨌든 현성 씨는 내가 챙겨야 하니까.’

이혜림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증시 개장을 앞둔 마지막 몇 분 동안 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긴장감이 극도로 팽팽하게 조여졌다.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워졌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음이 유일하게 공간을 가르는 소리였다.

모두가 출발선에 웅크린 단거리 선수 같았다. 온몸의 근육이 팽팽히 당겨졌고 시선은 한 점에 고정된 채 시작의 총성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경쾌하다 못해 경보처럼 날카로운 장 시작 시스템 알림음이 층 전체를 울렸다.

그 순간, 모든 이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눈빛은 매서워졌고 손끝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단단히 움켜쥔 채,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동시에 전속력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

하지만 소현성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기회를 노리며 침착하게 기다리는 척’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얼어붙은 상태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지?’

게임이라면 간단했다.

가챠 뽑기나 강화 클릭은 그냥 ‘촉’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누르기만 하면 끝이었다. 드랍템 줍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식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았고, 그 연결고리도 끝없이 복잡했다.

‘내가 지금 매수하는 이 종목... 당장 오를까, 내일 오를까? 아니면 아예 안 오를까? 누가 알겠어.’

게임은 성공이든 실패든 즉각 피드백이 왔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았다.

‘혹시 지금 직감대로 산 게 1년 뒤에나 반등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게다가 종목 수는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소현성은 그중 어디를 골라야 직감이 내려앉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끝없는 모래사장에서 특정 모래알을 찾는 기분이었다.

“진정해, 진정해...”

머릿속이 난마처럼 얽히고 조급함이 몰려올 때, 그는 늘 이렇게 자기 자신을 다잡곤 했다.

예전에 게임할 때 써먹던 방법이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게 전부였다.

‘어쨌든 지금은 서두르지 말자. 냉정을 유지하고, 하나씩 따라가 보는 수밖에 없어.’

“회의 때 들은 대로라면... 오늘 시장 주도 테마는 신재생에너지 섹터지. 우선 거기부터 들여다봐야겠네. 어쨌든 팀장님 눈에는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지.’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태연한 척 리서치본부에서 내려온 리포트를 열었다.

“헉...”

모니터 속 글자와 그래프는 외계어 같은 낯선 코드였다. 그는 순간 튜토리얼조차 없는 게임에 혼자 던져진 초보자 같았다.

뒤쪽에는 오늘 시장 주도 테마인 신재생에너지 섹터 관련 종목 리스트가 붙어 있었다. 주희재의 말대로 그 종목들 옆에는 거의 전부 파란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팀장님이 아침엔 숏, 오후엔 롱 포지션? 리스크 헤지도 하라고 했던가? 근데... 숏이니 롱이니, 이름만 멋있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건데?’

‘아... 진작에 혜림 누나 쫓아다니며 튜토리얼이라도 밟아둘걸. 경험치 쌓을 기회를 왜 날렸지?’

한숨이 깊게 새어 나왔다.

“근데... 하락장인 건 확실하니 지금은 절대 사면 안 되겠지?”

소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리스트를 스크롤 했다.

신재생에너지 섹터 종목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화면 가득 이어진 건 끝없이 늘어선 파란 캔들뿐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괜히 손을 댔다가는 그대로 전 재산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그는 결국 마우스를 움직여 창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전기가 온몸을 타고 번지듯 찌릿한 감각이 스쳤다.

“이... 느낌은 뭐지?”

손끝에서 가느다랗지만 분명한 전류가 흘러드는 듯하더니, 곧장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전율이었다.

그리고 게임에서 아이템을 뽑을 때의 기억과 겹쳤다.

“설마...”

소현성은 멈춰 선 채 닫으려던 창을 다시 크게 펼쳤다. 숨을 고르며 리스트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 파란빛 물결 한가운데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종목 하나에 커서가 멈췄다.

[덴미안]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였다.

“....”

그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손끝에서 시작된 전율은 이제 손바닥과 팔을 타고 온몸을 감쌌다.

그 강렬한 파동은 전신을 미세하게 떨리게 할 만큼 생생하고 압도적이었다.

‘이거야. 틀림없어. 게임에서 레전드 아이템을 뽑아낼 때마다 터지던 바로 그 짜릿함. 단 한 번도 착각한 적 없는 그 촉이 발동된 거야. 그런데 이 종목을 매수해도 될까...’

시선은 여전히 차갑게 파란 불빛을 내뿜는 가격 창에 꽂혀 있었다.

숫자는 추락하는 낙엽처럼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고 이미 하한가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파란 캔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는 모니터 화면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더구나 조금 전 회의에서 신재생 배터리 섹터는 단기 리스크가 크니 공매도로 대응하자는 결론이 나지 않았던가. 지금 이 종목을 매수한다는 건 상식적으로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 전율은 거꾸로 그의 뇌리에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메시지를 새기고 있었다.

‘맞아. 이거다. 바로 이놈이다. 어서 매수해!’

“그래... 뭐가 두려워.”

소현성의 뇌리에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쳤다.

“어차피... 모의투자잖아?”

그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좋아. 그렇다면 이번만 더 믿어보자. 내 이 죽일 놈의 촉을 한 번 더 믿어보는 거야!’

‘딸깍!’하고 마우스 클릭 음이 사무실 구석에서 울렸다.

파란색으로 잠긴 모니터 화면을 똑바로 응시한 소현성은 숨 한 번 고르고 나서 더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손 검지로 매수 버튼을 힘껏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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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헛소리였지. 이런 눈사태 같은 장세라면 이번 달은 물론, 몇 달은 부서 전체가 고개 푹 숙이고 쪼들려 지낼 게 뻔하다. 다 같이 허리끈 졸라매고 연명하겠구먼...’“잠, 잠깐만! 저건 뭐지?”장준휘는 모든 희망이 끊어진 듯 체념에 잠겨 있을 무렵, 시야 끝에 걸린 모니터가 그의 동공을 단번에 조여왔다.끝없이 무너져 내리던 파란 절망의 바다. 그 지옥 같은 화면 한가운데서, 눈을 찌르는 듯 선명한 빨간색 곡선 한 줄기가 치솟고 있었다.그건 단순한 상승세 신호가 아니었다.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불길처럼 번져 나가며 모든 한기를 삼켜버릴 듯 타오르는 역전의 불꽃이었다.‘아니... 저건 그냥 빨간색 그래프가 아니다. 저건 희망이다. 거센 역풍을 뚫고 선 자만이 붙잡을 수 있는 승리의 불꽃이야.’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시장이 끝없이 치솟을 거라고 외쳐댔다.“밀어붙여! 몰방이 답이다!”“이참에 바닷가 별장 하나 장만하는 거야!”그러나 그 광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놀란 닭처럼 허겁지겁 소리쳤다.“팔아! 던져! 다 정리해!”그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의 팀만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처음에는 죽으러 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던 그들이 지금은 모든 이가 눈을 감은 자리에서 홀로 눈을 뜬 예언자로 서 있었다.그는 말뿐이 아니라 무려 현금 1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움켜쥔 채, 단호하게 전부 공매도에 쏟아부었다.온 시장이 매수 버튼을 광기에 휩싸여 두드리던 그 순간,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진 단 한 사람은 바로 소현성이었다....같은 시각 폭풍의 정중앙,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 집무실.“...”소현성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화면 위의 숫자들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고 캔들 차트는 절벽에서 추락하듯 곤두박질쳤다.누가 봐도 처참한 금융 재난의 도식이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고요했다. 마치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라도 되는 듯, 마음속은 평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8화

    날카롭고 급박한 시스템 알림음이 순식간에 리스크관리본부 전체를 휘몰아쳤다.리스크관리본부 팀장 장준휘는 등골 끝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솟구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순식간에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이 바닥에서 굴러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장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모니터가 파란색으로 뒤덮였다.그 파란색은 곧 시장 붕괴와 재앙을 의미했다. 번쩍이는 불길한 빛은 그 자체로 종말을 알리는 경고등 같았다.순간, 평소라면 재빨리 돌아가던 그의 머리마저 멈춰 섰다.남은 건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투박하고 무겁고 절망적인 결론이었다.‘씨X... 이제 끝장이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부서 분위기는 은퇴 후의 오후처럼 한가로웠다.커피잔을 들고 잡담을 나누거나 다과를 곁들여 티타임을 즐기던 모습이었다.시장은 잔잔했고 관리할 만한 리스크도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단숨에 하늘이 뒤집혔다.금융위원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수심 깊은 바다에 폭탄을 던지듯 새로운 규제 정책을 기습 발표한 것이었다.그 소식은 마치 끓어오르는 기름 솥에 한 바가지의 얼음물을 퍼붓는 듯한 충격이었다.시장은 그대로 폭발했다.투매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제방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린 홍수처럼, 셀 수 없는 매도 물량이 무자비하게 덮쳐오고 있었다.“본부장님, 어... 어쩌면 좋습니까?”장준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나자빠지듯 반세훈 앞에 달려왔고 목소리는 너무 떨려 말 한마디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눈앞에 보인 건, 이미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정신마저 놓아버린 듯한 반세훈 본부장이었다.그 순간, 장준휘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반세훈은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이 배어 있었다“우리 리스크관리본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서버실에 뛰어가서 랜선을 뽑아버릴 겁니까? 거래소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7화

    양건우는 숨조차 멎은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손아귀에 힘주어 움켜쥔 마우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덜덜 떨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단순한 클릭조차 쉽지 않았다.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주신의 신이 환생하여 인간 세상에 개입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대역전이었다.‘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트레이딩본부 신설팀을 맡은 지 겨우 일주일 남짓 된 팀장이, 무슨 근거로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인가? 소현성...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양건우는 그 순간 200% 확신했다.광한국의 금융 중심지는 물론,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식으로 시장의 붕괴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그 사람은 바로 트레이딩본부 7팀의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팀장 소현성이었다.‘설령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괴물 같은 천재가 있어 이번 폭락을 예상했다 해도, 과연 누가 우리 팀장님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모든 이가 매수 버튼을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눌러대던 그 순간에 홀로 반대편에 설 수 있었겠는가? 조롱과 의심, 질타와 비웃음을 정면으로 감수하면서 가진 자금을 몽땅 내던져 시장을 거스르는 그런 베팅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단순한 통찰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배짱이고 광기이며 동시에... 선택받은 자만이 감히 할 수 있는 도박이야.’그건 절대 대수롭지 않은 소액의 시도가 아니었다. 수십만 원, 수백만 원 단위의 소액 투자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무려 100억 원, 중견기업 하나 부도나게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양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얇은 유리 칸막이 너머로 향했다.회사 전체가 종말 같은 혼돈과 공포에 휩싸인 순간에도 소현성은 바른 자세로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양건우는 단 한 번의 눈 깜박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소현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6화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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