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의식이 없던 동안에도 주현우는 계속 허아연을 걱정하고 있었다.주현우의 말에 주민경이 말했다."걱정 마, 아연이는 뇌진탕 말고는 큰 문제 없어. 오빠나 몸조리 잘해."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다시 말했다."경찰과 윗선에서도 어제 교통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미 조사에 착수했대. 오원빈도 조사하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몸부터 잘 챙기면 돼."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주민경이 전보다 훨씬 철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주현우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자 주민경이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걱정 마, 오빠가 깨어났는데 내가 거짓말하면 통하겠어? 나중에 거동이 편하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주민경의 말에 유서희도 거들었다."나도 오늘 아침에 가서 봤는데 아연이 정말 괜찮았어."아침에 유서희는 문 앞에 서서 허아연을 지켜보기만 했었다.현재 안시연인 허아연과는 친분이 두텁지 않아 들어가기가 좀 조심스러웠다.유서희와 주민경이 입을 모아 말하자 주현우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자신의 차에 타고 있다가 사고가 난 허아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앞으로 평생 볼 면목도 없을 뿐더러 더 큰 죄를 짓는 것이었다.병상 반대편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주현우를 바라보던 주석진은 미간만 잔뜩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몇 번이나 타일렀는데도 결국 자업자득이었다.주민경과 유서희가 계속 말을 걸어오는 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진 주현우는 다들 돌아가라며 내보냈다.지금은 그저 시끄럽지 않은 병실에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다.주현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유서희는 결국 의사와 간호사에게 잘 좀 살펴봐 달라 부탁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가족들이 떠나고 병실이 조용해지자 주현우의 머릿속도 한결 맑아졌다.사고가 났던 그날의 상황을 되짚어보던 주현우는 차 옆을 스쳐 지나가던 검은 옷을 입고 캡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요즘 허아연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다 직접 가서 보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침대에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허아연이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박혜숙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엄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허아연의 말에 박혜숙이 한 손으로 허아연의 손을 마주 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어제저녁에 영상 통화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아빠한테 전용기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해서 왔어."박혜숙의 진심 어린 걱정에 허아연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이 뭉클해졌다.두 팔을 벌려 박혜숙을 꼭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엄마."고맙다는 인사에 박혜숙이 허아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바보 같은 것,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보러 오는 게 당연하지."박혜숙이 다시 말을 이었다."서준이가 공항으로 마중 나와줬어. 아침에 여기서 삼십 분 넘게 있다가 방금 일 보러 갔어."허아연은 박혜숙을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고생하셨어요."허아연의 얌전한 모습에 박혜숙이 다시 화가 난 듯 말했다."네 교통사고, 나도 좀 알아봤어. 일부러 차를 들이받은 사람 잡히면 너희 아빠랑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박혜숙과 안씨 가문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자 허아연은 더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절대 가만두면 안 돼요."직접 비행기를 타고 와서 두 눈으로 허아연을 확인하고 품에 안아본 뒤에야 박혜숙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안도할 수 있었다.허아연은 항상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잠시 안고 얘기를 나눈 뒤 허아연은 욕실로 가서 씻고 박혜숙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박혜숙이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친엄마 못지않게 챙겨주었다.오히려 친딸을 둔 여느 어머니들보다 더 사랑을 듬뿍 주었다.허아연과 안씨 가문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필요로 하는 사이였다.박혜숙과 잠시 얘기를 나누던 허아연은 눈에 비친 피곤한 기색을 발견하고 침대에 누워 좀 쉬라고 했다.하지만 박혜숙은 요즘 통 못 봐서 보고 싶었다며 계속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싶
자리에서 일어난 권승준은 먼저 다정하게 허아연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안 선생님, 내일 다시 올게요."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래요."옆에서 두 사람이 "안 선생님", "권 비서실장님" 이라고 호칭하는 걸 지켜보던 안서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그래도 나름 색다르긴 했다.권승준을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온 안서준이 말했다."권승준 사람은 괜찮더라. 이번 안목은 지난번보다 낫네."안서준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답했다."사람은 겪어봐야 성장하는 거잖아요."남매는 한참 얘기를 나눴고 안서준은 병실에서 잠시 더 머물다 호텔로 돌아갔다.안서준이 병실을 나가자마자 베개 옆에 놓아둔 허아연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성시에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발신 번호를 확인한 허아연은 곧바로 전화를 받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허아연의 목소리에 엄마 박혜숙이 걱정스레 물었다."시연아, 진 부장한테 네가 오늘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 지금 몸은 좀 어때?"2년 전 진짜 안시연이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로 박혜숙은 컨디션이 계속 좋지 않았다.그래서 안서준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사고를 집에 전혀 알리지 않고 계속 숨겨왔다.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주현우까지 그토록 심하게 다쳤으니 결국 안씨 가문도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소식을 들은 박혜숙이 바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혜숙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저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영상 통화 할게요."박혜숙을 위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까 봐 걱정된 허아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화면 너머 허아연이 정말 다치지 않고 상태도 괜찮은 걸 확인하고서야 박혜숙은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잠시 더 얘기를 나누며 당부의 말까지 전한 뒤에야 아쉬운 듯 전화를 끊었다.영상 통화를 마친 허아연은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정리를 마친
권승준이 불쑥 손을 잡자 허아연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심장이 저도 모르게 점점 빨리 뛰었다.꼼짝 않고 권승준을 보던 허아연은 조금 긴장됐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권승준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다만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뿐이다.주현우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부부로서 관계를 맺은 적도 없고 몇 번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것도 다 주현우가 먼저 다가온 것이었다.은근 긴장한 허아연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자신을 쳐다보는 허아연의 눈빛에 권승준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웃던 권승준은 허아연의 손을 잡은 채 몸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여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숨을 죽이고 권승준을 바라보던 허아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 부드럽게 바라볼 뿐이었다.그 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거부하지도 않고 밀어내지도 않는 허아연 덕분에 권승준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승진했을 때도 이 정도로 기쁘지는 않았다.허아연의 손을 잡은 채 점점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가가던 권승준의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간호사가 성큼성큼 들어와 말했다."안시연 씨, 체온 좀 재볼게요."병상에 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동시에 멀찍이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하고 바르게 앉았다.병상 위, 허아연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너무도 민망했다.병실 문 앞, 약간 통통한 중년 간호사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이 병실에서 애틋한 순간을 보내며 데이트를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럴 줄 알았다면 무조건 노크를 하든지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분위기를 깬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병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안시연 씨, 체온 좀 재볼게요."허아연은 몸을 바로 세우고 간호사가 건넨 체온계를 받아 체온을 쟀다.이내 병실 안은 조용해졌고 잠시 동안 어색함이 감돌았다.제일 민망한 건 역시 간호사였다.
31년을 살아오는 동안 한 여자를 이렇게 지켜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애틋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권승준의 다정한 행동에 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권승준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눈이 마주친 허아연이 그저 빤히 쳐다볼 뿐 말도 하지 않고 국도 먹지 않자 권승준이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입맛에 안 맞아요? 먹기 싫어요?"허아연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권승준이 떠준 국을 받아 마셨다.자신의 돌봐주는 걸 허아연이 거절하지 않자 권승준의 미소가 한결 더 짙어졌다.그 순간, 권승준은 문득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챙겨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허아연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 권승준이 떠주는 밥과 국을 받아먹었다.아주 따뜻한 분위기였다. 두 사람 다 말을 하지 않고 병실 안도 조용했지만 서로 어색하지 않았다.병실 문 앞에 이미 오랫동안 서 있던 안서준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허아연이 권승준의 보살핌과 다정함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분위기인 두 사람을 안서준은 방해하지 않았다.허아연이 권승준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해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알고 지낸 지 2년이 넘었지만 안서준 앞에서도 이렇게까지 편안해 보인 적은 없었다.허아연과 권승준은 정말 잘 맞았다.병실 안쪽을 계속 바라보던 안서준은 식사를 마친 허아연이 입가를 닦아주는 권승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걸 보고서야 들고 온 저녁 도시락을 챙겨 조용히 자리를 떴다.허아연이 권승준을 선택한다면 안서준도 할 말은 없었다.안서준 입장에서는 허아연이 주현우를 선택하거나 주현우와 엮이지만 않는다면 누구를 선택하든 다 축복해 줄 수 있었다. 이번에 주현우가 허아연을 구해주고 지켜줬다 해도 안서준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사실 허아연도 마찬가지였다.구해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주현우와 허아연 사이에는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주현우가 갖고 있는 감정은
허아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이어 말했다."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깨어나면 바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대요."주현우가 큰 문제 없다는 말에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턱을 괸 채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민경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시연 씨, 그냥 드는 생각인데 시연 씨랑 우리 오빠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둘이 같이 있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나을 것 같아요."떠보는 건지 그냥 단순하게 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던 허아연은 주민경을 빤히 쳐다보며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민경 씨, 또 사람 잘못 봤네요."허아연의 귀띔에 주민경도 정신이 든 듯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아, 맞다. 시연 씨는 안시연이네요, 우리 집 아연이가 아니라."이번 사고로 주현우와 허아연 모두 다쳐서 느낀 게 많았는지 주민경도 예전처럼 조급하게 덤벙대지 않고 차분해져 있었다. 인생이란 너무 우쭐거리면 안 되는 법이었다. 주민경이 병실에 함께 있어 주자 허아연도 기분이 좋아져 계속 얘기를 나눴다.저녁 6시가 넘어 박민정과 주건영이 전화를 걸어 주현우 상태를 묻자 주민경은 그제야 허아연에게 인사하고 병원을 나섰다.침대에 기대앉아 멀어지는 주민경의 뒷모습을 보며 허아연도 마음이 뭉클했다.자신이 나타난 것으로 2년 전 주민경의 마음속 허탈한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병실 문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을까, 허아연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고 잠시 눈을 붙였다.잠시 후.다시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허아연이 들어오라고 하자 권승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손에는 보온 도시락 두 개가 들려 있었다.허아연은 바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비서실장님."권승준은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허아연에게 다가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좀 어때요?"허아연이 나직이 답했다."괜찮아요."그 말에 권승준은 방금까지 주민경이 앉아 있던 의자를 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