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엄이빈
성유원은 더 깊이 따져 묻지 않았다.

연지아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내일 월요일이잖아. 오후에 시간 있어? 우리 가정 법원에 미리 가서 처리하자. 두 달 정도 앞당겨도 상관없지?”

서명해도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아이를 낳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성유원은 그녀를 바라봤다. 담담하고 차분한 얼굴, 그 눈빛에는 한 겹 더 살피는 기색이 얹혔다. 그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내가 정한 시간에 가. 그게 언제든.”

연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차가 성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다.

김미현이 그들을 부른 건 확실히 연지아 뱃속 아이 때문이었다.

성씨 가문은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었다.

김미현에게는 아들이 둘이었다. 장남 성정석, 차남 성한민.

성정석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남 성주헌은 몇 년 전 결혼해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올해 다섯 살이었다. 차남 성민우는 올해 스물넷으로, 아직 미혼이었다.

성한민에게는 성유원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연지아가 딸을 임신한 걸 두고 김미현도 성종현도 무척 기뻐했다.

“역시 경사야. 이 작은 꼬마가 들어오니까 저 사람 병도 좋아졌네.”

김미현이 아이 일에 이렇게 크게 생각하자, 이서연도 따라 맞장구를 치며 연지아에게도 몇 마디 좋게 말했다.

연지아는 옆에 앉아 얌전히 받아 대답했다.

통통한 몸에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이서연의 눈에는 어쩐지 거슬렸지만 김미현 앞이라 티를 내지 않았다.

김미현은 기분이 좋아 값비싼 옥팔찌 하나를 연지아에게 건넸다.

연지아는 놀라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으려 했다.

이서연이 말을 얹었다.

“할머니가 주는 거면 그냥 받으면 돼.”

일반 집안 특유의 소심함이란 역시 격이 안 맞았다.

연지아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옥팔찌를 받아 들었다.

“감사해요, 할머니.”

“몸 잘 챙겨. 통통한 아기 낳아야지.”

연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미현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건,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래는 본가에 남아 저녁까지 먹고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성유원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눈가에 웃음이 맺혔고 목소리도 다정했다.

그들은 반려동물을 한 마리 키우는 모양이었다. 성유원은 그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꼬맹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됐을지도 몰랐다.

“응, 나 바로 갈게.”

전화를 끊고 성유원은 발코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거기 서 있던 연지아를 봤다. 연지아는 화들짝 놀랐다. 순간 반응이 늦어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가슴이 턱 막혀 연지아가 급히 말했다.

“할머니가 너 서재로 오래.”

성유원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연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슴 안쪽이 찌르듯 아픈 걸 억누르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성유원이 서재에 들어섰다. 김미현과 성종현이 함께 있었다.

김미현이 말했다.

“유원아, 할머니도 네가 지아를 안 좋아하는 거 알아. 그래도 애는 곧 태어나잖니. 지아도 꽤 괜찮아. 좋은 학교 나온 데다가 성격도 순하고. 네 결혼은 안정이 중요해. 가정 챙기고 아이 키우는 데는 딱 맞는 사람이야.”

성유원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미간이 굳게 찌푸려진 걸 보면 기분이 어떤지 다 드러났다.

김미현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연지아의 외모가 확실히 평범한 건 맞았고, 손자 곁에 서면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성종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네 혼사에 변수가 생기면 안 된다. 정말 마음이 없으면 네가 말했듯이... 그녀가 선을 넘는 일을 하지 않는 한, 일단 1에서 2년 정도는 두고 보자.”

김미현도 바로 받았다.

“그래. 지금 너를 노리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네 약점 잡아서 기사 만들려고 기다려. 지아 몸조리까지 끝내게 하고 나서 갈라서도 늦지 않아.”

“...”

성유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깊은 눈빛 속에 무슨 생각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네, 알겠어요.”

연지아가 다시 김미현을 만났을 때, 김미현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유원이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 조금 있다가 운전기사 보내서 너도 데려다줄게.”

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

그날, 떠나기 전.

김미현이 연지아에게 당부했다.

“임신했어도 몸은 좀 움직여야 해. 관리도 하고. 예전에 네 시어머니들 임신했을 때는 남편 따라 행사도 다니고, 집안일도 챙겼어. 쉽게 얻은 건, 계속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야.”

연지아는 그 말속 뜻을 바로 알아챘다.

성씨 가문 며느리 자리는 만만하지 않았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지금의 자신부터 바꿔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성유원의 체면만 망가뜨릴 뿐이었다.

운동도 하고 요가도 하며 살을 빼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운이 달려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체중은 더 늘었다.

그래도 김미현 말이 틀리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가라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자리’ 때문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

“알겠어요.”

밤.

연지아는 뜻밖이었다. 아침에 이혼을 꺼냈던 남자가 집에 돌아왔다.

“너...”

“해장국 하나 만들어서 서재로 가져와.”

말을 끝낸 성유원은 바로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연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부엌으로 가서 국을 끓였다. 그릇에 담아 서재로 가져다줬다.

남자는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눈매는 날카롭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기운이 몸에 맴돌았다.

연지아는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서재를 나왔다.

그가 집에 와도 둘은 따로 잤다.

남자는 2층 안방에서 자고, 그녀는 1층 손님방에서 잤다.

다음 날.

성유원이 집에 있으니 도우미들이 아침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그는 상석에 앉았는데, 연지아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그가 집에 있을 때면, 연지아는 다음 날 입을 옷까지 다려놓고 아침도 직접 준비했다. 그야말로 ‘얌전하고 성실한 아내’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다린 옷도 보이지 않았고, 밥도 도우미들이 차려놓은 것이었다.

“아주머니, 연지아는 어디 있어요?”

성유원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유미연이 곧바로 불평을 쏟아냈다.

“도련님, 아침부터 사람 보내서 깨웠는데요, 계속 안 일어나시더라고요. 맨날 밥도 방까지 갖다드려야 하고, 저희가 뭐 물어봐도 퉁명하시고요. 뭘 드실지 여쭤봐도 답이 없으시니 저희가 속을 어떻게 알아요. 임신했다고는 해도 그냥 임신이잖아요. 예전에 서연 사모님께서 도련님 임신하셨을 때는 성 회장님도 얼마나 정성껏 챙기셨는데요. 여기서는 오히려 진짜로 편하게 지내시려고 하시네요.”

성유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서 깨워요.”

“네, 도련님.”

연지아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다만 성유원이 먼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유미연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연지아를 보더니 역겨운 듯 말끝을 비틀었다.

“정말 대단하신 사모님이네요. 저희가 모셔 오길 기다리셨어요?”

연지아가 눈을 들어 차갑게 말했다.

“제가 사모가 아니면 당신이겠어요?”

몇 달 내내 고개 숙이고 말도 없던 연지아였다. 유미연은 연지아가 맞받아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연지아가 이어 말했다.

“앞으로 선을 넘으면, 그동안 뭐 하고 있었는지 할머니께 말씀드릴 수도 있어요.”

어차피 이혼할 거였다. 남은 두 달, 굳이 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유미연의 눈이 커졌다.

“당신...”

어제 이서연이 전화를 걸어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한 게 떠올랐다. 딸이라 해도, 이 아이는 성씨 가문 삼대에서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김미현이 이렇게 크게 챙기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미연은 이를 악물고 말을 삼켰다.

“도련님께서 다이닝룸에서 기다리세요.”

연지아는 의외였다.

식당으로 내려갔다.

성유원은 식사 중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연지아를 한 번 봤다. 흰 니트 롱셔츠는 그녀의 부은 몸에 당겨져 형태가 흐트러졌고, 걸음도 힘이 없어 비틀거렸다. 커다란 배는 마치 여러 번 임신한 것처럼 과장돼 보였다.

연지아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 스스로 그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때 성유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본가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야. 너 때문에 뭐든 맞추게 하지 마. 임신한 거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임신한 거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래. 그에게 이 아이는 어쩌면 별것 아닐지도 몰랐다.

이 뜬금없는 핀잔은 분명 유미연이 옆에서 혀를 놀린 탓이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분들이 내가 불편하다고 하면 본가로 돌아가면 돼. 나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연지아는 그릇 속 죽을 천천히 저으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밥도 자기가 차리고, 옷도 자기가 빨고, 방도 자기가 치웠다. 성유원이 있을 때만 그들은 돌보는 척했을 뿐이었다.

성유원이 미간을 더 깊게 접었다.

연지아는 그게 불쾌하다는 표시라는 걸 알았다.

일이든 생활이든, 성유원은 늘 강했고, 반박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난 알려준 거지, 의견 받자고 한 말 아니야.”

연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성유원은 그녀의 죽은 듯 가라앉은 얼굴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도우미들에게 앞으로 연지아의 일은 연지아가 알아서 하게 하고 굳이 챙기지 말라고 했다.

연지아는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침 식사 끝나고, 성유원은 집을 나갔다.

연지아는 아현대학교로 향했다.

강현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는 정장을 말끔히 갖춰 입고 있었다. 오똑한 콧대 위엔 무테안경이 걸려 있었고, 분위기는 성숙하고 안정적이었다.

강현수는 올해 겨우 스물아홉, 아현대학교 경제학과 최연소 정교수였다. 경제학계에서도 이름이 쩌렁쩌렁한 천재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연지아는 손을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happyhomejoa
찌질이 남주 가만히나 있지 뭘 임산부를 돕지말라고 지시까지 해?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31화

    송나겸은 연지아의 맞은편에 앉았다.“앞으로 이틀 안에 성씨 가문에서도 사람이 올 거야.”연지아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언가 물으려던 순간.휴대폰이 진동했다.화면을 확인하니 집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연지아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색팀에서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잇달아 인양했고,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연지아의 심장이 세게 조여들었다.“알겠어요.”전화를 끊자 얼굴빛도 따라 새하얗게 질렸다.송나겸도 방금 집사의 말을 들었다.“지아야, 일단 강현수랑 같이 다녀와.”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하명진이 노크한 뒤 들어왔다.조정혁 측에서 협상을 위해 사람이 찾아온 것이었다.송나겸이 연지아에게 말했다.“지아야, 너는 먼저 가. 여기는 내가 상대할게.”그러고는 강현수를 바라보았다.“지아 좀 부탁할게요.”강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뒤.연지아와 강현수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가는 내내 연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현수는 곁눈질로 그녀를 한번 바라봤지만, 결국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수색 구조 센터에 도착했다.현장 전체에는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 방으로 안내됐다.안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건들 가운데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지품들이 테이블 위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연지아는 물건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주변의 공기가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았다.그러다 익숙한 넥타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연지아의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강현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그 넥타이를 발견했다.눈에 띄게 창백해지는 연지아의 얼굴을 보며 낮게 불렀다.“지아야.”하지만 연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확인하셨습니까?”연지아는 손을 뻗어 그 넥타이를 만지려 했다.하지만 손끝이 통제할 수 없이 떨렸고, 팔을 들어 올릴 힘조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30화

    하명진이 떠난 뒤.연지아는 손재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선배님.”손재인은 강현수와 먼저 연락한 뒤에야 연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목소리를 들어보니 지금은 감정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인 듯했다.손재인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지아 씨가 괜찮다니 다행이에요.”손재인은 연지아를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팠다.하늘은 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게 해야 이 사람을 놓아줄 생각일까.성유원은 연지아에게 상처와 고통을 더 많이 안겨준 사람이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시하의 아빠였다.아이도 아직 너무 어렸다.성유원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앞으로 연지아가 성시하를 다시 만나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지금 괜찮아요.”“네.”손재인은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아무리 위로해도 지금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그저 연지아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 뒤 사흘 동안.연지아는 아파트에서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하루 대부분을 성유원의 서재에서 보냈다.요 며칠 동안은 주로 강현수가 연지아에게 연락했다.강현수도 이곳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었다.그에게는 고은의 업무에 직접 개입할 명분이 없었다.그래서 송나겸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면서 외부의 복잡한 움직임을 일단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서로의 인맥을 이용해 다른 회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미리 대응책을 세웠다.하지만 성유원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해난 사고에서 실종자를 한 달 넘게 찾지 못하면 사망으로 처리될 수 있었다.그러니 이 한 달 안에 모든 경우를 대비해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성유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다.송나겸은 그의 컴퓨터에서 핵심 정보를 찾아냈다.그 자료는 송나겸 정도가 아니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성유원은 송나겸이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올 것이라고 확신했던 듯했다.그렇다면 한 가지는 분명했다.성유원은 이번 일이 자신에게 매우 위험하다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29화

    강현수는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입 뜨려다가 막 입을 열려고 했다.연지아가 서둘러 말했다.“교수님, 일단 다 드시고 이야기하세요.”강현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다 가볍게 끄덕였다.“그래.”조용한 식당 안에는 식기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강현수는 아침 식사를 마쳤다.집사가 식기를 정리하고 휴지를 건넸다.강현수는 고맙다고 말하며 받아 입가를 닦았다.그러고는 정신이 조금 멍해 보이는 연지아를 바라보았다.연지아는 강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두 사람은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강현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아야,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잘 붙잡는 거야. 내가 아는 성유원이라면 절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 지금은 아직 실종으로만 확인된 상태니까,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거고. 성유원이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였든, 송나겸 씨만큼은 분명 성유원을 도울 거야.”연지아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일도 들었어. 지아야, 지금은 여기 있는 게 가장 안전해. 다 괜찮아질 거야. 너 혼자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마.”연지아는 강현수의 말을 들으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단단하고 힘이 느껴지는 눈빛을 보고 있자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신경도 조금씩 풀렸다.“네.”연지아가 조금 진정한 것을 확인한 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너는 우선 몸부터 잘 챙겨. 나는 송나겸 만나러 갈게. 무슨 일 있으면 계속 연락하고. 마침 나도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연지아도 따라 일어나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교수님, 조심해서 가세요.”“응.”연지아는 그 자리에 서서 강현수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강현수는 엘리베이터에 타려다 문 앞에 서 있는 연지아를 돌아보았다.“들어가.”연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강현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지아는 위층에 있는 성유원의 서재로 갔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28화

    가정의가 도착해 연지아의 상태를 확인했다.주된 문제는 심한 신경쇠약과 영양 부족, 그리고 그로 인한 면역력 저하였다.지금 연지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조용히 쉬면서 몸을 회복하는 것이었다.의사는 영양 수액을 놓고 수면 주사도 한 대 놔주었다.연지아는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집사는 이후 송나겸에게 연락해 연지아의 상태를 설명했다.“알겠습니다. 잘 돌봐주세요.”전화를 끊은 뒤.송나겸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수면 주사의 영향 때문인지.연지아는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멀리 하늘은 서서히 밝아지며 희뿌연 빛이 번지고 있었다.연지아는 눈을 뜬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아직 머리가 완전히 맑아지지는 않았다.도우미가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왔다가 연지아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빠르게 다가왔다.“사모님, 일어나셨네요. 괜찮으세요?”연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도우미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킨 뒤 화장실로 데려갔다.그리고 집사에게 알렸다.집사는 아침 식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연지아를 보며 말했다.“사모님,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은 반드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네.”연지아는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어젯밤 충분히 잔 덕분에 지금은 확실히 정신도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연지아가 그제야 물었다.“어제 기사님이랑 경호원들은요?”어제 경호원 두 명이 총에 맞았다.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송나겸이 미리 경호원들을 붙여두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연지아의 표정이 무겁게 굳었다.집사가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연지아는 곧바로 송나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방 연결됐다.“지아야, 지금은 좀 괜찮아?”목소리에 다급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연지아가 대답했다.“응. 지금은 괜찮아. 그런데 어제 총격은...”연지아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게다가 성유원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면 현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27화

    송나겸은 전화를 끊고 연지아를 바라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성주헌은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야. 앞으로 무슨 움직임을 보일지는 기다려봐야 하고. 그래도 성씨 가문에는 아직 할머니가 계시잖아.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성한민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연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송나겸은 다시 컴퓨터 속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연지아는 음식도 절반을 채 먹지 못하고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송나겸은 그녀가 식사 용기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거의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안쓰러운 마음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연지아가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마 성시하가 아빠를 잃는 일이겠지.송나겸은 성유원에게 정말 이대로 무슨 일이 생길 리 없다고 믿었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겠는가.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송나겸은 생각을 거두고 다시 컴퓨터 속 파일을 하나씩 확인했다.그렇게 저녁 여섯 시가 되었다.“지아야, 너는 먼저 돌아가서 푹 쉬어. 집에 중요한 자료를 따로 두고 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한번 확인해 보고.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연락하자.”지금 연지아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이대로 계속 버티다가는 정신적으로 무너질까 봐 정말 걱정됐다.연지아도 반박하지 않았다.지금은 송나겸이 이곳에 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적어도 송나겸이 진심으로 성유원의 이익을 지키려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연지아는 먼저 회사를 나섰다.송나겸은 사람을 시켜 경호 차량까지 붙여 보냈다.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연지아의 안전을 반드시 완벽하게 지켜야 했다.차에 오른 연지아는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너무 지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그때 갑자기.차가 급정거했다.연지아의 몸이 관성에 밀려 앞으로 크게 쏠렸다.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에요?”“사모님, 엎드리세요!”기사가 빠르게 반응했다.몸을 뒤로 돌려 연지아를 아래쪽으로 끌어내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26화

    정오가 되어 회의가 끝날 때까지.연지아는 컴퓨터 안에 있는 파일을 전부 확인하지 못했다.너무 오랫동안 쉬지 않고 화면을 들여다본 탓에 눈이 뻐근하고 시큰거렸다.그와 동시에 은행 측에서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로 사람이 찾아왔고, 다른 대기업 관계자들도 잇따라 방문했다.오늘 하루 동안.회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화가 걸려 왔다.어제까지만 해도 성유원의 실종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거의 모두 알고 있었다.회사 전체에는 무겁고 초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송나겸과 하명진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그래도 송나겸이 나서자 대부분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주었다.겉으로는 정중하게 말했다.“성 대표님께 별일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며칠 뒤에 다시 연락드리죠.”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잇따라 찾아온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낼 수 있었다.그제야 송나겸은 잠시 시간이 생겼다.준비해 둔 식사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연지아는 막 전화 한 통을 끊은 뒤 의자 등받이에 기대 미간을 문지르고 있었다.“지아야.”연지아는 송나겸을 바라보았다.“사람들 다 갔어?”연지아도 회사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성유원의 메인 연락처로도 거액의 자산을 맡긴 주요 고객 몇 명에게서 잇따라 전화가 걸려 왔다.이들이 성유원에게 맡긴 자금만 100억 달러가 넘었다.그러니 성유원의 현재 상황을 누구보다 다급하게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그들이 신뢰한 것은 회사가 아니라 성유원이라는 사람이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보통 영리한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지아는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넘어가게 만들었을 뿐이었다.살면서 이렇게까지 기진맥진해 본 적이 없었다.이렇게 막대한 자금과 사업을 성유원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다뤄왔다.이제야 연지아는 그가 사업에서 발휘하는 능력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인지 직접 체감했다.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응.”송나겸은 들고 있던 봉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 사람들한테 전화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