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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엄이빈
성유원은 더 깊이 따져 묻지 않았다.

연지아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내일 월요일이잖아. 오후에 시간 있어? 우리 가정 법원에 미리 가서 처리하자. 두 달 정도 앞당겨도 상관없지?”

서명해도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아이를 낳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성유원은 그녀를 바라봤다. 담담하고 차분한 얼굴, 그 눈빛에는 한 겹 더 살피는 기색이 얹혔다. 그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내가 정한 시간에 가. 그게 언제든.”

연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차가 성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다.

김미현이 그들을 부른 건 확실히 연지아 뱃속 아이 때문이었다.

성씨 가문은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었다.

김미현에게는 아들이 둘이었다. 장남 성정석, 차남 성한민.

성정석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남 성주헌은 몇 년 전 결혼해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올해 다섯 살이었다. 차남 성민우는 올해 스물넷으로, 아직 미혼이었다.

성한민에게는 성유원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연지아가 딸을 임신한 걸 두고 김미현도 성종현도 무척 기뻐했다.

“역시 경사야. 이 작은 꼬마가 들어오니까 저 사람 병도 좋아졌네.”

김미현이 아이 일에 이렇게 크게 생각하자, 이서연도 따라 맞장구를 치며 연지아에게도 몇 마디 좋게 말했다.

연지아는 옆에 앉아 얌전히 받아 대답했다.

통통한 몸에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이서연의 눈에는 어쩐지 거슬렸지만 김미현 앞이라 티를 내지 않았다.

김미현은 기분이 좋아 값비싼 옥팔찌 하나를 연지아에게 건넸다.

연지아는 놀라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으려 했다.

이서연이 말을 얹었다.

“할머니가 주는 거면 그냥 받으면 돼.”

일반 집안 특유의 소심함이란 역시 격이 안 맞았다.

연지아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옥팔찌를 받아 들었다.

“감사해요, 할머니.”

“몸 잘 챙겨. 통통한 아기 낳아야지.”

연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미현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건,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래는 본가에 남아 저녁까지 먹고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성유원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눈가에 웃음이 맺혔고 목소리도 다정했다.

그들은 반려동물을 한 마리 키우는 모양이었다. 성유원은 그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꼬맹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됐을지도 몰랐다.

“응, 나 바로 갈게.”

전화를 끊고 성유원은 발코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거기 서 있던 연지아를 봤다. 연지아는 화들짝 놀랐다. 순간 반응이 늦어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가슴이 턱 막혀 연지아가 급히 말했다.

“할머니가 너 서재로 오래.”

성유원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연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슴 안쪽이 찌르듯 아픈 걸 억누르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성유원이 서재에 들어섰다. 김미현과 성종현이 함께 있었다.

김미현이 말했다.

“유원아, 할머니도 네가 지아를 안 좋아하는 거 알아. 그래도 애는 곧 태어나잖니. 지아도 꽤 괜찮아. 좋은 학교 나온 데다가 성격도 순하고. 네 결혼은 안정이 중요해. 가정 챙기고 아이 키우는 데는 딱 맞는 사람이야.”

성유원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미간이 굳게 찌푸려진 걸 보면 기분이 어떤지 다 드러났다.

김미현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연지아의 외모가 확실히 평범한 건 맞았고, 손자 곁에 서면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성종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네 혼사에 변수가 생기면 안 된다. 정말 마음이 없으면 네가 말했듯이... 그녀가 선을 넘는 일을 하지 않는 한, 일단 1에서 2년 정도는 두고 보자.”

김미현도 바로 받았다.

“그래. 지금 너를 노리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네 약점 잡아서 기사 만들려고 기다려. 지아 몸조리까지 끝내게 하고 나서 갈라서도 늦지 않아.”

“...”

성유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깊은 눈빛 속에 무슨 생각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네, 알겠어요.”

연지아가 다시 김미현을 만났을 때, 김미현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유원이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 조금 있다가 운전기사 보내서 너도 데려다줄게.”

연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

그날, 떠나기 전.

김미현이 연지아에게 당부했다.

“임신했어도 몸은 좀 움직여야 해. 관리도 하고. 예전에 네 시어머니들 임신했을 때는 남편 따라 행사도 다니고, 집안일도 챙겼어. 쉽게 얻은 건, 계속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야.”

연지아는 그 말속 뜻을 바로 알아챘다.

성씨 가문 며느리 자리는 만만하지 않았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면 지금의 자신부터 바꿔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성유원의 체면만 망가뜨릴 뿐이었다.

운동도 하고 요가도 하며 살을 빼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운이 달려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체중은 더 늘었다.

그래도 김미현 말이 틀리진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가라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자리’ 때문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

“알겠어요.”

밤.

연지아는 뜻밖이었다. 아침에 이혼을 꺼냈던 남자가 집에 돌아왔다.

“너...”

“해장국 하나 만들어서 서재로 가져와.”

말을 끝낸 성유원은 바로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연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부엌으로 가서 국을 끓였다. 그릇에 담아 서재로 가져다줬다.

남자는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눈매는 날카롭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기운이 몸에 맴돌았다.

연지아는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서재를 나왔다.

그가 집에 와도 둘은 따로 잤다.

남자는 2층 안방에서 자고, 그녀는 1층 손님방에서 잤다.

다음 날.

성유원이 집에 있으니 도우미들이 아침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그는 상석에 앉았는데, 연지아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그가 집에 있을 때면, 연지아는 다음 날 입을 옷까지 다려놓고 아침도 직접 준비했다. 그야말로 ‘얌전하고 성실한 아내’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다린 옷도 보이지 않았고, 밥도 도우미들이 차려놓은 것이었다.

“아주머니, 연지아는 어디 있어요?”

성유원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유미연이 곧바로 불평을 쏟아냈다.

“도련님, 아침부터 사람 보내서 깨웠는데요, 계속 안 일어나시더라고요. 맨날 밥도 방까지 갖다드려야 하고, 저희가 뭐 물어봐도 퉁명하시고요. 뭘 드실지 여쭤봐도 답이 없으시니 저희가 속을 어떻게 알아요. 임신했다고는 해도 그냥 임신이잖아요. 예전에 서연 사모님께서 도련님 임신하셨을 때는 성 회장님도 얼마나 정성껏 챙기셨는데요. 여기서는 오히려 진짜로 편하게 지내시려고 하시네요.”

성유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서 깨워요.”

“네, 도련님.”

연지아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다만 성유원이 먼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유미연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연지아를 보더니 역겨운 듯 말끝을 비틀었다.

“정말 대단하신 사모님이네요. 저희가 모셔 오길 기다리셨어요?”

연지아가 눈을 들어 차갑게 말했다.

“제가 사모가 아니면 당신이겠어요?”

몇 달 내내 고개 숙이고 말도 없던 연지아였다. 유미연은 연지아가 맞받아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연지아가 이어 말했다.

“앞으로 선을 넘으면, 그동안 뭐 하고 있었는지 할머니께 말씀드릴 수도 있어요.”

어차피 이혼할 거였다. 남은 두 달, 굳이 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유미연의 눈이 커졌다.

“당신...”

어제 이서연이 전화를 걸어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한 게 떠올랐다. 딸이라 해도, 이 아이는 성씨 가문 삼대에서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김미현이 이렇게 크게 챙기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미연은 이를 악물고 말을 삼켰다.

“도련님께서 다이닝룸에서 기다리세요.”

연지아는 의외였다.

식당으로 내려갔다.

성유원은 식사 중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연지아를 한 번 봤다. 흰 니트 롱셔츠는 그녀의 부은 몸에 당겨져 형태가 흐트러졌고, 걸음도 힘이 없어 비틀거렸다. 커다란 배는 마치 여러 번 임신한 것처럼 과장돼 보였다.

연지아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 스스로 그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때 성유원이 무심하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본가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야. 너 때문에 뭐든 맞추게 하지 마. 임신한 거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임신한 거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래. 그에게 이 아이는 어쩌면 별것 아닐지도 몰랐다.

이 뜬금없는 핀잔은 분명 유미연이 옆에서 혀를 놀린 탓이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분들이 내가 불편하다고 하면 본가로 돌아가면 돼. 나 혼자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연지아는 그릇 속 죽을 천천히 저으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밥도 자기가 차리고, 옷도 자기가 빨고, 방도 자기가 치웠다. 성유원이 있을 때만 그들은 돌보는 척했을 뿐이었다.

성유원이 미간을 더 깊게 접었다.

연지아는 그게 불쾌하다는 표시라는 걸 알았다.

일이든 생활이든, 성유원은 늘 강했고, 반박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난 알려준 거지, 의견 받자고 한 말 아니야.”

연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성유원은 그녀의 죽은 듯 가라앉은 얼굴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도우미들에게 앞으로 연지아의 일은 연지아가 알아서 하게 하고 굳이 챙기지 말라고 했다.

연지아는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침 식사 끝나고, 성유원은 집을 나갔다.

연지아는 아현대학교로 향했다.

강현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는 정장을 말끔히 갖춰 입고 있었다. 오똑한 콧대 위엔 무테안경이 걸려 있었고, 분위기는 성숙하고 안정적이었다.

강현수는 올해 겨우 스물아홉, 아현대학교 경제학과 최연소 정교수였다. 경제학계에서도 이름이 쩌렁쩌렁한 천재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연지아는 손을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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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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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homejoa
찌질이 남주 가만히나 있지 뭘 임산부를 돕지말라고 지시까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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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아는 소파에 앉아 성시하를 품에 끌어안고 입을 열었다.“이모도 내일은 외국에 가서 일해야 해.”성시하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놀란 얼굴이더니, 금세 반짝이던 눈빛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에블린 이모는 맨날 바빠요.”성시하의 서운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지아의 가슴은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목소리도 저절로 잠겼다.“시하야, 미안해.”성시하가 물었다.“그럼 이모는 언제 와요?”연지아가 답했다.“이모도 아직 정확히는 몰라. 그래도 시하가 이모 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하고 영상통화 해도 돼.”성시하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지아는 성시하를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볼을 감쌌다.“우리 아가, 왜 그래?”그러다 보니 성시하의 두 눈이 벌써 빨갛게 젖어 있었다.연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시하야.”성시하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가 훌쩍하고 숨을 삼켰다.“에블린 이모, 미안해요. 나도 안 울고 싶은데, 이제 이모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해서 그래요.”성시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지아는 가슴이 쥐어짜이듯 아팠다. 연지아는 서둘러 성시하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이모가 아예 안 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일하러 잠깐 가는 거야. 이모는 꼭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시하 울지 말자, 응?”성시하는 눈물 맺힌 눈으로 연지아를 올려다봤다.“그럼 에블린 이모, 매일매일 나한테 메시지 보내 줄 거예요?”“당연하지. 이모가 아무리 바빠도 시하한테는 꼭 메시지 할게.”“꼭 빨리 와야 해요.”“이모 일 끝나면 제일 먼저 시하 보러 올게.”연지아는 애써 성시하를 달랬다. 마음속으로는 혹시라도 아이가 충격받아 심장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계속 불안했지만, 다행히 성시하의 얼굴빛은 괜찮아 보였다.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겨우 성시하가 진정했다.연지아는 성시하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까지 닦아 주고, 다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소파에 앉아 등을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363화

    연지아는 이모 말을 듣고도 잠깐 얼어붙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배우진도 이모가 성시하를 연지아와 강현수의 아이로 오해할 줄은 전혀 몰랐다.그가 설명하려던 순간,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계단 위에 서 있는 성유원을 봤다. 남자 얼굴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안 좋다는 게 드러날 만큼 굳어 있었다.중년 여자는 더는 길게 말하지 못하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의사 곧 퇴근한다. 일단 이따 얘기하고, 난 목이 너무 아파서 약부터 받아야겠어.”연지아는 짧게 대답했다.“네.”배우진은 곧바로 차 키를 연지아에게 건네고, 이모와 함께 안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외래동 쪽으로 향하는 동안, 중년 여자는 그제야 계단 위에 서 있던 남자를 똑바로 보게 됐다.성유원을 알아본 순간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명할 수 없는 찔림 같은 게 올라와 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발걸음을 더 빨리 옮겼다.조금 떨어지고 나서야 여자는 뒤를 한번 돌아봤다. 그리고 배우진에게 속삭이듯 물었다.“방금 그 남자 뭐야? 아까부터 계속 우리 쪽만 보고 있던 것 같은데.”배우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연지아는 성시하를 데리고 먼저 차에 올랐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배우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빠, 이모한테 꼭 말해 줘. 괜히 이상한 소리 더 나오면 곤란해.]배우진은 문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했다.[알았어.]30분쯤 지나 배우진과 이모가 다시 나왔고, 일행은 그대로 웨스트 별장으로 돌아갔다.미리 말을 해 둔 덕분에 배씨 가문 사람들도 성시하를 보자마자 괜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성시하 앞에서만큼은 조심했다.그래도 연지아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연지아는 성시하를 먼저 따로 저녁을 먹이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혼자 잠깐 놀게 했다. 그리고 자기도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성시하는 성유원과 통화 중이었다. 연지아가 들어오는 걸 보자, 성시하는 전화를 그대로 내밀었다.“에블린 이모, 아빠가 이모랑 얘기한대요.”연지아는 전화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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