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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지아가 겪어온 일들, 현재의 고통.그리고 자신이 송씨 가문에서 지내던 시절, 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던 나날들.그 모든 것이 송정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송정미는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송나겸의 낮은 웃음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자신이 방금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입을 열려던 순간.송나겸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연청이랑 어머니 둘 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요. 내가 돌아가면 제대로 사과받을 거예요.”그 말을 듣자 송정미의 얼굴이 굳었다.“송나겸, 너...”말을 끝내기도 전에.송나겸은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곧바로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당장 사람 보내서 별장을 지켜. 아가씨와 사모님은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네.”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송나겸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분명 햇빛은 그의 몸 위로 내려앉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끝없는 쓸쓸함만 느끼게 했다.성유원은 그런 송나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때.성유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확인해 보니 김미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성유원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할머니.”김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원아, 너 시하 데리고 테리스에 있다면서.”성유원이 대답했다.“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갑자기 거기에는 왜 간 거니?”“할머니, 무슨 일인지 바로 말씀해 주세요.”김미현의 목소리는 무척 진지했다.“내가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김미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유원이 끊었다.“무엇을 들어야 하고 무엇을 듣지 말아야 하는지는 할머니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미현은 잠시 침묵했다.“유원아, 네가 시하 때문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너와 성씨 가문의 명예도 생각해야 해.”성유원이 말했다.“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저는 누구의 말이나 어떤 여론에도 휘둘리는 걸 가장 싫어합니
성유원이 말했다.“그럼 한번 지켜보지.”송나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유원을 바라보았다.분위기는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잠시 뒤 성유원이 다시 말했다.“지금도 네가 지아와 만나 정체를 밝힐 때는 아니야.”송나겸이 대답했다.“나는 여기 이틀 머물 거야.”“그래.”그때.송나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연무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여보세요, 아버지.”“나야.”전화기 너머에서 배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나겸은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이모, 무슨 일이에요?”배난화가 물었다.“너 지아 만났니?”배난화 일행은 갑자기 연지아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제야 성유원이 연지아를 데리고 해외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배우진은 연지아가 몸이 좋지 않아 성유원이 그쪽으로 데려가 쉬게 하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송나겸이 대답했다.“네. 지아는 지금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렇구나.”송나겸은 배난화의 말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아버지는요?”배난화의 목소리가 좋지 않게 가라앉았다.“네 그 여동생 때문에 심장병이 도져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어.”오늘 배난화는 연무현과 함께 병원에 갔다가 안연청과 마주쳤다.안연청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연지아를 모욕했다. 입에 담기 어려운 말까지 쏟아냈다.원래 그들은 연지아가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랐다. 당연히 안연청이 꾸며낸 이야기를 믿을 리 없었다.하지만 과거 배우진과 성민우가 해외에 갔고,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두 사람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다.거기에 안연청이 한 말을 연결해 보면, 지아에게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배우진이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연무현은 원래 오늘 심장 검사를 다시 받기로 예약되어 있었다.그런데 안연청 때문에 심장병이 재발하고 말았다.당시 주변에는 지켜보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병원 자체
성시하는 옆에서 물고기 먹이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 물고기를 발견하고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엄마, 시하도 물고기랑 놀고 싶어요.”연지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고개를 들자 무심코 성유원의 시선과 마주쳤다.성유원은 햇빛 아래 서 있었다. 하얀 셔츠는 바람에 살랑였고,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성유원은 손에 들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성시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아 조심스럽게 지켜주며 말했다.“조심해.”성시하가 안전한 것을 확인한 뒤, 성유원은 연지아의 옆자리에 앉았다.보온병을 들어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연지아에게 내밀었다.“물 좀 마셔.”연지아는 손을 뻗어 받아 들었다.“고마워.”연지아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고 물을 마셨다.성유원은 컵을 받아 성시하에게도 물을 따라주었다.성시하는 신나게 놀고 있었다.연지아는 별다른 기운이 없었다. 그대로 햇살을 받으며 부드러운 쿠션에 기대 잠들었다.그 순간만큼은 무척 편안하고 깊은 잠이었다.배는 다시 선착장에 도착했다.성유원은 품 안의 연지아를 안정적으로 안고 별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성시하는 아빠 뒤를 따라갔다.그때.송나겸을 데리러 온 차가 도착했다.송나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지아를 안고 돌아오는 성유원을 보았다.연지아는 성유원의 품에 조용히 기대 잠들어 있었고, 성시하는 얌전히 옆을 따라오고 있었다.성시하는 송나겸을 보고 깜짝 놀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저씨, 어떻게 왔어요?”송나겸은 성시하에게 부드럽게 웃어준 뒤 성유원의 품에 안긴 연지아를 바라보았다.차분했던 얼굴은 창백했고, 이전보다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온몸에서 아픈 사람 특유의 기운이 느껴졌다.순간.송나겸의 마음속에는 참기 어려운 아픔이 밀려왔다.성유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방에 데려가서 쉬게 할게.”성유원은 연지아를 1층 침실로 데려갔다.천천히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성시하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성유원은 몸을
송나겸이 말했다.“나랑 강현수 씨 같이 있어.”성유원이 대답했다.“너는 와도 돼. 하지만 강 대표님은 알아서 하라고 해.”송나겸이 말했다.“그 사람이 지아의 현재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어.”성유원의 말투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야. 그리고 나도 그렇게까지 대인배가 아니야.”“...”송나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강현수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통화에서 성유원이 한 말을 강현수도 들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그럼 먼저 지아를 보러 가요.”송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죠.”“그래요.”성유원은 송나겸과의 통화를 끊었다.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주민우에게서 온 전화였다.성유원은 벌써 사흘째 업무를 미뤄둔 상태였다.주민우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성유원이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호주로 가겠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연지아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업무 보고를 마친 뒤, 주민우가 덧붙였다.“김지애 씨는 이미 장례를 치렀습니다. 범주형 씨는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의 어린 딸은 김지애 씨의 어머니가 데리고 있고, 누군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김지애 씨가 추락하기 전에 누군가와 통화한 기록이 있습니다. 확인 결과 그 전화번호 명의자는 안연청 씨 곁에 있는 보디가드였습니다.”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안연청이 왜 김지애와 연락을 주고받았을까.그날 범주형의 아들이 갑자기 성유원을 습격했고, 안연청이 대신 칼을 맞았던 일이 떠올랐다.지금 성유원과 연지아가 관계를 공개한 것은 안연청에게 큰 자극이었을 것이다.안연청이 이런 일을 한 것도 어쩌면 다시 성유원의 동정과 관심을 얻으려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누가 예상했겠는가.연지아가 지금처럼 변하면서 성유원의 마음까지 바뀌게 될 줄은.주민우의 보고를 들은 성유원의 검은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통화를 마친 뒤.성유원은 다
한 시간 뒤.도우미가 문을 두드렸다.성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은 많이 진정하셨습니다.”성유원은 다시 옆방으로 향했다.침대 위의 여자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호흡은 일정했고, 이미 잠든 상태였다.의사가 말했다.“일단 약물로 상태를 안정시켰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당분간은 계속 약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장기간의 심리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선 사모님이 재발하게 된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다음 날.연지아가 눈을 떴을 때.가슴 쪽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연지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엄마.”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연지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눈앞에는 성시하의 사랑스럽고 예쁜 얼굴이 있었다.“엄마, 좋은 아침.”성시하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연지아는 고개를 숙여 성시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좋은 아침이야, 우리 아가.”성시하도 곧바로 엄마의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모녀는 침대 위에서 잠시 다정하게 시간을 보냈다.연지아는 의식은 무척 또렷했다.하지만 몸은 이상할 정도로 지쳐 있었고 힘이 없었다. 머리 피부 안쪽까지 은근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때.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성유원이 문밖에서 들어왔다.“아빠.”성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 서서 두 손을 뻗었다.성유원은 다가가 성시하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성시하는 아빠의 목에 붙은 반창고를 발견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빠, 여기 다쳤어?”성유원은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괜찮아.”그는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연지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성유원은 성시하를 내려놓고 물었다.“어디 불편한 데 있어?”연지아는 고개를 들어 성유원을 바라보다가 그의 목에 붙은 반창고를 발견했다.어젯밤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연지아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성
성유원은 연지아를 침대에서 안아 올려 다른 침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방 안의 모든 불을 켰다. 침실 전체가 대낮처럼 환해졌다.연지아는 두 손으로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성유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연지아의 어깨 위에 올렸다.하지만 손이 닿는 순간.연지아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 충혈된 눈으로 성유원을 노려보며 외쳤다.“만지지 마!”성유원은 손을 거두었다.목소리에는 차분함과 지친 기색이 섞여 있었다.“알았어. 안 만질게.”하지만 연지아의 감정은 오히려 더욱 격해졌다.그녀는 거의 울부짖듯 성유원에게 따졌다.“성유원,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모욕해?! 내가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인생을 결정해? 나 이혼할 거야. 너 안연청이랑 살아. 나 너랑 이혼할 거라고!”성유원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순간.연지아는 다시 후회와 절망에 빠진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겼다.“후회해. 나 정말 후회해. 내가 너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혼자 시하를 낳았어야 했어. 너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어.”성유원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그리고 두 손으로 연지아의 손목을 붙잡아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그러고는 문밖을 향해 크게 말했다.“의사 불러와.”문밖에서 대기하던 도우미는 깜짝 놀라 곧바로 돌아서 의사를 부르러 갔다.연지아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다리를 계속 차며 소리쳤다.“놔! 성유원, 나 너 싫어! 너 미워!”그 순간 연지아의 힘은 유난히 강했다. 성유원은 힘을 줘야만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다.고통과 절망으로 무너진 연지아의 모습을 바라보던 성유원은 순간 한 손을 놓고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연지아의 입술을 강하게 막았다.“읍...”연지아의 외침이 순간 멈췄다.하지만 다리는 더욱 거칠게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계속 성유원의 어깨를 밀어냈다.시간이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