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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엄이빈

제1화

엄이빈
임신 25주 차, 연지아는 병원에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다.

검은 코트를 걸친 키 크고 준수한 남자는 품 안의 여리고 고운 소녀를 감싸안고 있었다. 소녀는 흰 코트를 입었고, 볼에는 분홍빛이 은은하게 돌았다. 작은 얼굴은 부드러운 울 머플러에 파묻혀 있었으며, 이목구비는 인형처럼 섬세했다.

연지아는 임신 정기검진 결과를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만큼 세게 쥐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할퀴었지만, 몸보다 더 차가운 것은 심장을 쑤시는 듯한 통증이었다.

성유원은 멀리서 그녀를 봤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들킨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직접 소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고, 태도는 다정했다.

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냉정하던 권력자에게도 그렇게 보살피고 따뜻한 면이 있었다.

소녀가 연지아를 알아챈 듯 움직임이 멈췄다. 의아한 눈빛으로 연지아를 한 번 보더니 성유원을 향해 물었다.

“저 아줌마는 왜 계속 오빠를 보고 있어? 오빠, 저 사람 알아?”

바람 소리가 귓가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연지아는 소녀가 성유원에게 뭐라고 더 말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소녀의 입 모양에서 ‘아줌마’라는 두 글자를 읽어냈을 뿐이었다.

‘아줌마?’

그건 분명 자신을 부르는 말이었다.

연지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올해 겨우 스물넷이었다.

하지만 원래도 약간 통통한 몸에 평범한 얼굴, 검은 패딩에 검은 니트 모자를 눌러쓴 차림이었다. 임신 말기 가까운 몸은 붓고 무거워졌고, 얼굴까지 초췌하니 정말 서너 살 더 많은 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디에 젊고 반짝이는 소녀와 견주겠나.

성유원은 소녀를 감싸며 차에 태웠다.

연지아는 온몸이 굳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차량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바라봤다.

연지아와 성유원은 아이 때문에 결혼했다. 강요된 이 결혼은 성유원 같은 천지의 총아에게 인생의 오점이었다. 그녀 뱃속의 아이는 그를 옭아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였다.

그는 그녀를 증오했다.

반면 그녀는 8년 동안 그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연지아는 자신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며 그를 인생의 이상으로 삼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했다.

마침내 그녀는 소원대로 그의 비서가 되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곁에 설 수 있었다.

그날 밤 무너진 건 성유원만이 아니었다. 더 잔인하게 찢겨나간 건, 그 앞에서 지켜온 그녀의 자존심과 존엄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관계가 끝난 뒤, 그가 자신을 노려보던 혐오의 눈빛을. 마치 손끝에 역겨운 더러운 것을 만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러니 그에게 어울리는 건, 저렇게 예쁘고 빛나는 소녀뿐이겠지.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이어서 아랫배가 한 번 쥐어짜듯 아팠다. 그녀는 급히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옆의 돌기둥을 짚었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그녀를 보더니 서둘러 다가와 부축했고, 그녀를 진료실로 데려갔다.

그녀는 감정이 크게 흔들려 태동이 불안해졌을 뿐이었다.

조금 진정되고 나서 연지아는 병원을 떠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채 혼자 운전해 오션 빌리지로 돌아왔다.

여기는 성유원의 별장이었다. 성유원의 할머니 김미현은 본가 쪽의 경험 많은 도우미를 붙여 그녀를 돌보게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를 돌본다는 두 도우미는 마치 이 집 주인이라도 된 듯 난방이 잘 되는 거실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도우미가 소리를 듣고 문 쪽을 돌아봤다. 연지아가 돌아온 걸 보자 그중 한 명이 일어나 다가와 물었다.

“검사 결과는 어때요?”

오만한 태도에 깔보는 말투였다. 돌봐주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주인 행세를 하며 감시하러 온 사람처럼 굴었다.

연지아는 도우미를 한 번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도우미는 불만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물었잖아요.”

연지아는 여전히 무시했다.

도우미는 연지아의 뒷모습을 보며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돼지 같은 게 성씨 집안 사모라고 잘난 척은.”

연지아는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마음은 텅 비었고, 머릿속은 막막했다.

성유원도 성씨 가문도 그녀 같은 며느리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김미현이 나서서 그녀와 성유원에게 혼인신고를 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성유원의 할아버지 성종현이 위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임신한 채 찾아왔고, 성종현에게 후대를 보여주려고 두 사람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겹경사라며.

우연인지, 정말 효험이 있었던 건지, 성종현의 병세는 점차 호전됐다.

그러자 김미현의 태도도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성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업신여겼다.

오늘 그녀가 병원에 간 것도 뱃속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려고 해서였다. 딸이었다.

성유원이 어머니 이서연 쪽에는 이미 병원에서 연락이 갔을 것이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연지아는 생각을 거두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의 발신자 표시를 보고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지도교수 강현수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스탠더대학교에 가서 연수하면서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있는데, 너 해볼래?”

강현수의 말을 듣고 연지아는 한동안 멍해졌다.

강현수는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말을 이으려 했다.

“안 되면 굳이...”

“저 갈게요.”

연지아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단호하게 말했다.

오히려 강현수가 잠시 침묵했다.

연지아가 성유원의 곁에 설 자격을 얻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야 바란 것을 이룬 듯 결혼까지 하고 임신도 했는데, 그녀가 쉽게 떠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남은 이 자리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교수님.”

연지아가 다시 불렀다.

강현수가 말했다.

“그럼 내일 오전 열 시에 내 사무실로 와.”

“네.”

강현수는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연지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달이 드러나는 듯한 묘한 허전함이 남았다.

그녀도 이제 깨어나야 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발목에 묶이지 않아. 그리고 돌아서서 너를 한 번 더 봐주지도 않아.’

그녀는 또 김미현의 전화를 받았다. 본가로 한 번 들어오라는 말이었다. 연지아는 알겠다고 했다. 아마도 뱃속 아이 일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그녀는 기운이 조금 돌아왔다.

먼저 욕실로 가서 제대로 샤워했다.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붓고 둥근 얼굴, 짙은 다크서클, 처진 눈 밑, 깊게 패인 눈두덩, 양쪽 볼에 가득한 잡티.

이렇게 못난 모습 누가 봐도 싫어하겠지.

이런 그녀가 어떻게 성유원 같은 천지의 총아 곁에 설 자격이 있겠나.

그녀는 화장을 하고 분홍색 패딩을 걸쳤다. 흰 둥근 모자까지 쓰자 한결 말끔해 보였다.

원래는 혼자 운전해 본가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성유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자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연지아는 놀랐다.

아마 김미현이 그도 본가로 부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알겠다고 답했다.

별장에서 나오자 남자의 롤스로이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두 시간 전, 이 차는 다른 여자를 태우고 다녔다.

연지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가가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차에 타자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소녀 특유의 달콤하고 산뜻한 향이었다. 차 안에는 분홍색 곰 인형까지 놓여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어린 여자애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고개를 들자 남자의 손목에 고무줄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가 주인인 척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성유원은 그 소녀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연지아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시큰함을 눌러 삼키며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운전사가 차를 몰아 천천히 출발했다.

연지아는 창밖을 보며 말없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생기기만 해도 소중하게 여기며 거리를 좁히려 했을 것이다. 그가 싫어해도, 싫증 내도, 귀찮게 굴며 화제를 찾아 말을 걸었겠지.

그녀는 순진하게도 이미 부부가 됐고 아이도 생겼으니 앞으로 시간이 길다고 믿었다. 자신이 아내답게, 엄마답게만 하면 언젠가 성유원이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거라고.

하지만 결국 그건 그녀 혼자 꾸는 착각일 뿐이었다.

남자는 그녀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늘 그렇듯 차갑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아이 성별이 뭐야?”

“딸이야.

그 말을 들어도 성유원의 깊은 얼굴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애 낳으면 우리 이혼하자.”

말이 떨어지자 연지아의 손가락이 꽉 조였다.

심장이 누군가에게 세게 움켜잡힌 것처럼 숨이 막혔다.

이 결혼이 오래갈 수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데도 그가 직접 입으로 꺼내는 순간, 가슴은 여전히 아팠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답했다.

“그래.”

성유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봤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조금은 의외로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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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10화

    연지아는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쉬고 있었다. 손바닥을 아랫배 위에 얹고 아이가 톡톡 차는 움직임을 느끼다 보니 흔들리던 감정도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아까 서안성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성유원은 정말로 그녀 뱃속 아이까지 싫어하는 것 같았다.김미현이 지금은 이 아이를 챙긴다 해도, 언젠가 안연청이 성씨 가문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의 아이가 얼마나 대접받을까.그 생각은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만큼 두려웠다.연지아는 결심 했다.이 아이를 자신을 원하지 않는 집안에 남겨두고 혼자 버티게 할 수는 없었다.아이를 데리고 떠나야 했다.그때.똑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연지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온 뒤, 문으로 가서 열었다. 문 앞에는 유미연이 서 있었다. 얼굴에는 날이 서 있었다.“도련님이 부르세요.”연지아가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성유원이 보였다.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분위기는 숨이 막힐 만큼 냉정했다.연지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남자의 표정 하나만으로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걸음이 굳어졌고, 눈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그녀가 남자 앞에 멈춰 섰을 때, 예상하던 꾸중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더 차갑고 잔인한 말이 떨어졌다.“이 서류, 다 끝내고 자.”말을 마친 성유원은 길게 뻗었던 다리를 거두고 다이닝룸 쪽으로 걸어갔다.연지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자료 뭉치를 바라봤다. 이건 오늘 밤 잠은 포기하라는 뜻이었다.그에게 연지아는 임산부도 아니었다.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정말로 그녀를 이렇게까지 미워했다.연지아는 손끝을 꽉 쥐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려 남자의 등을 향해 말했다.“나 사직서 냈어. 이제 안 해.”성유원이 발걸음을 멈췄다.몸을 반쯤 돌린 채, 차가운 시선이 연지아 위로 떨어졌다.연지아는 온 힘을 모아 그 눈빛을 받아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성유원이 유미연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9화

    성유원은 작게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안연청을 바라봤다.“연청이 너한테 친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면 큰일 나지. 네가 아직도 그렇게 그리워하는데 분명 질투할 거야.”송나겸이 말했다.“네가 연청이랑 만나는 걸 반대하지는 않아. 하지만 네 일 정리되기 전에는, 나는 연청이랑 네가 같이 사는 건 절대 못 봐.”성유원은 입꼬리를 옅게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송나겸이 웃었다.“별 얘기 아니야.”...“연지아 씨, 무슨 뜻이에요? 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알아요?!”주이빈이 자료 뭉치를 연지아 앞에 탁 소리 나게 내던졌다.조금 전에도 주이빈은 늘 그랬듯 연지아의 일이 아닌 업무를 연지아에게 처리하라고 넘겼고, 연지아는 대놓고 거절했다.연지아는 화가 난 주이빈을 보며 비웃듯 웃었다.“주이빈 비서님, 그 일도 못 하셔서 남한테 떠넘기실 거면... 그만두시는 게 낫겠어요.”“...”사무실 다른 직원들이 이쪽을 힐끗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연지아의 말이 너무 직설이라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진짜로 더는 참을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주이빈은 분이 치밀어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연지아의 뺨을 때리려 했다.연지아는 책상 위 물컵을 집어 먼저 주이빈에게 확 끼얹었다.얼굴에 물을 뒤집어쓴 주이빈은 그대로 굳어 있다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연지아, 이 뻔뻔한... 이 더러운 뚱보!”“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요?”주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주이빈은 달려들려던 걸 멈췄고, 주민우는 기세 좋게 걸어와 주이빈의 젖은 몰골을 훑어봤다.“무슨 일이에요?”주이빈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제가 연지아 씨한테 일을 맡겼는데 안 하겠대요.”주민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에 불쾌함이 짙게 올라왔다. 그는 연지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여기서 왜 혼자 예외를 만들려고 하죠? 여기는 회사예요. 연지아 씨 집이 아니라고요.”연지아는 목에 걸린 사원증을 뗐다. 그리고 탁 하고 책상 위로 던졌다. 그녀는 주민우를 노려보며 차갑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8화

    송나겸은 서안성 쪽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줄로만 생각해서 굳이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송나겸이 큰 걸음으로 다가가 연지아를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서안성은 그를 막아섰다.“형, 신경 쓰지 마. 저 사람은 그럴 만해서 그런 거야.”송나겸은 결국 연지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괜찮아요?”연지아는 너무 아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앞에 선 남자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튕겨 나가 버린 도시락 쪽으로 걸어갔다.송나겸은 서안성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산부인 거 안 보여? 여긴 유원이 회사야. 여기서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그래?”서안성은 연지아의 둔중한 뒷모습을 보며 냉소했다.“멀쩡하잖아. 진짜로 문제 생기면... 애가 유산돼도 차라리 좋지.”그 말을 들은 연지아는 몸이 굳었다. 심장이 쿵 하고 조여 오듯 아팠다.서안성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성유원 역시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몰랐다.송나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오빠.”송나겸은 생각에서 돌아와 고개를 들었다. 안연청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질 좋은 울 니트를 입은 채 주름치마를 매치했으며, 가느다란 다리에는 흰 부츠를 신었다. 청춘의 빛이 튀는 듯 당당하고 예뻤다.그 뒤에는 잘생긴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는 팔에 안연청의 겉옷을 걸쳐 들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송나겸이 말했다.“그렇게 뛰어오면 어떡해. 넘어지면 어쩌려고.”안연청은 송나겸의 팔을 붙잡고 투정하듯 말했다.“나 애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넘어지지 않아.”서안성이 다가와 한마디 얹었다.“연청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리 성 대표님이 회사 통째로 부숴서 다시 지을지도 모르겠네.”안연청은 얼굴이 붉어져 흥 하고 말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그때 성유원이 다가왔다.“가자. 밥부터 먹자.”서안성과 송나겸은 원래 여기서 성유원과 안연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7화

    연지아는 그날 밤 연씨 가문에 머물렀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고 편안하게 잠든 밤이었다.아침에 일어나니, 배난화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지아를 위해 닭곰탕도 따로 끓였고, 회사에 가져갈 영양 도시락도 담아두었다.연지아는 어젯밤 사직서를 내고 강현수 곁에서 한 달 동안 교수로 일하겠다고 말했다.처음에는 다들 반대했다. 몸부터 챙기며 태교에 집중하라고 했다.하지만 연지아는 끝까지 고집했다. 몸이 좀 무거워진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한 데가 없었고, 간단한 일 정도는 무리 없었다. 무엇보다 환경을 바꿔서 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만 늘어날 것 같았다.결국 연무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연지아는 부엌에 가서 돕고 싶었지만 배난화가 못 하게 했다.연지아도 더 고집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임산부에게 맞는 필라테스 수업을 검색했다.마음에 드는 곳 하나를 골라두고 시간 잡아서 상담을 가볼 생각이었다.계속 화면을 넘기다가 연지아의 얼굴빛이 순간 굳었다.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보였다.누군가가 9장짜리 모임 사진을 올렸는데, 배경은 어느 고급 프라이빗 클럽이었다.글을 올린 사람은 서안성. 성유원 주변 사람 중 하나였다. 예전에 연지아가 성유원 비서로 있을 때 연락처를 추가했던 인물이었다.사진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모임의 밤. 또 염장 구경한 하루, 대체 언제 결혼식 올리냐.]사진 속에는 성유원과 안연청의 투 샷이 세 장이나 있었다.가운데 사진에서는 안연청이 볼을 가리고 부끄러운 듯 성유원 품에 기대 있었고, 잘생긴 남자는 큰 손으로 그녀 어깨를 감싸며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자를 다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달콤한 기운이 화면 밖으로 넘칠 것만 같았다.성유원 주변 사람들은 그가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 눈에는 연지아가 어울릴 자격이 없었을 뿐이다.서안성이 이 글을 올린 건 어쩌면 일부러 연지아에게 보이게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연지아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6화

    똑똑똑.“지아야, 다들 돌아왔어.”배난화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연지아는 별생각 없이 앨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자, 그녀는 환하게 불렀다.“아빠, 오빠.”배우진과 연무현이 연지아를 바라봤다.“지아야, 선물 가져왔어. 와서 보고 마음에 드는지 봐.”배우진이 손짓했다.연지아가 들뜬 얼굴로 다가갔다.“무슨 선물이에요?”배우진은 한가득 들고 온 봉투들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브랜드 로고가 찍힌 장신구 상자를 하나 꺼내 연지아에게 건넸다.“열어봐.”연지아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 열었다. 정교하게 만든 금팔찌였다.“고마워요, 오빠. 진짜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면 됐어.”배우진은 손을 뻗어 연지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배우진은 배난화에게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금팔찌를 따로 사 왔고, 두 사람에게 각각 스킨케어 세트도 챙겨왔다. 연무현에게는 차와 술을 준비했고, 현지 특산품까지 잔뜩 들고 돌아왔다.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연지아는 집에 돌아와서야 숨이 놓였다.“지아야, 예정일이 언제야?”배우진이 걱정스레 물었다.그녀의 배는 누가 봐도 임신 말기처럼 커 보이긴 했다.연지아가 답했다.“예정일까지는 두 달 남았어요.”배난화가 웃으며 말했다.“지아 너, 이거 딸이다.”연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딸이에요.”“성별 확인했어?”연무현이 물었다.배난화도 뭔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괜히 굳었다.“응. 그런데 할머니가 이 아이를 많이 챙기세요.”연무현은 그제야 한숨을 놓았다.“그럼 됐다. 아이만 있으면 나중에 너랑 유원이는 천천히라도 좋아질 거야.”연지아는 시선을 떨궜다.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순간 망설였다. 성유원은 이미 이혼 얘기를 꺼냈는데.그래도 이건 숨길 수 없는 일이고, 그녀는 오션 빌리지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와 살기로 결정했다.‘일단은 저녁 먹고 나서 말하자.’배난화는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렸다.배우

  • 버림받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   제5화

    주이빈의 얼굴빛이 확 변하더니 책상을 세게 치고 벌떡 일어섰다.“연지아 씨!”연지아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자리로 돌아온 연지아는 작은 거울을 꺼냈다. 뺨 한쪽에 아주 가느다란 핏자국이 보였다. 자국은 깊지 않았다. 젖은 티슈로 한 번 슥 닦고 나니 더 손볼 것도 없었다. 어차피 이런 얼굴에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그러다 문득 그 소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어쩐지 낯익었다.퇴근이 가까워질 즈음.연지아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우진이 돌아왔으니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으라는 말이었다.연지아는 반가움에 목소리가 높아졌다.“우진 오빠가 돌아왔어요? 15일에 온다더니.”아버지가 말했다.“일 정리하고 일찍 들어왔어.”“알겠어요. 퇴근하자마자 갈게요.”연지아는 차를 몰아 연씨 가문으로 돌아갔다.연씨 가문은 서정구의 중간급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올해 새로 산 넓은 평수의 주택이었다.아버지는 중형 부동산 회사를 운영했다. 대단한 재벌은 아니어도 살림은 넉넉해서 연지아는 어릴 때부터 비교적 풍족하게 자랐다.하지만 요즘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반년쯤 전 회사가 투자에 실패해 재정 문제가 심각해졌다.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녀가 성유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고도 억지로 성씨 가문에 찾아가 따지고 요구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다.연지아는 하루가 다르게 늙고 초췌해지는 아버지 얼굴을 보며 결국 집안 재산까지 정리해 빚을 갚아야 할 지경이 된 걸 보고 결심했다. 그래서 성씨 가문으로 갔다. 그때 그녀는 사실 속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그녀는 원하는 걸 얻었다. 성씨 가문이 건넨 큰 예물 덕에 연씨 가문의 빚은 정리됐다. 하지만 그만큼 값을 치렀다.그러니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도 결국은 자업자득이었다. 남 탓할 일이 아니었다.집에 들어서자 배난화가 부엌에서 나왔다.“지아야, 왔네.”연지아가 아홉 살이던 해, 어머니는 아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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