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성유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히려 아빠랑 엄마가 저한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이서연은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잠시 침묵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였다.“유원아, 이제 너도 연지아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봐야 해. 너는 그 애가 지금도 널 사랑한다고 생각하니?”“정말 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혼증명서 한 장이 무슨 상관이겠어.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행방불명이었는데도 바로 돌아와 버렸잖아. 네가 병원에 있을 때도 찾아오지도, 묻지도 않았고.”“마음속에 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매정하게 굴 수는 없어. 그런 여자랑 혼인신고가 되어 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니? 엄마는 네가 여자 하나 때문에 또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성유원의 얼굴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성한민도 말했다.“유원아, 네 엄마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다. 지금 네 모습을 봐. 그 여자 때문에 네가 어떻게 됐는지. 너답지 않아.”“...”김미현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그 순간.성유원이 갑자기 냉소를 흘렸다.웃음에는 짙은 비꼼이 담겨 있었다.“그러니까 이게 다 저를 위해서 한 일이란 거예요?”성한민과 이서연은 무거운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저를 위한다는 명분만 내세우면 제 인생을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제 의사는 무시하고요? 대체 지아의 뭐가 그렇게 불만이에요? 엄마 아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그렇게 싫어요?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으면, 애초에 저랑 지아가 혼인신고할 때는 뭐 하셨어요?”성유원이 부모 앞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따진 것은 처음이었다.당시 성한민과 이서연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받아들인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한편으로는 김미현이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그 이전에도 두 사람은 성유원에게 어울리는 혼처를 여러 차례 골라준 적이 있었다.집안이든 외모든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송나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성시에서 경원시로 돌아오는 가장 가까운 항공편을 확인했다.정오가 되었을 무렵.송나겸은 성유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지 않자 먼저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연결됐다.“경원시로 돌아왔어?”성유원이 짧게 대답했다.“응.”“같이 점심 먹을래?”성유원이 말했다.“저녁에 이야기하자.”송나겸도 더 권하지 않았다.“그래.”한 시간 뒤.롤스로이스가 천천히 성씨 가문 본가로 들어섰다.경호원이 다가와 차 문을 열었다.성유원이 차에서 내려 거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온몸에서 짙고 음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집사가 앞으로 나와 맞이하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그가 알고 있는 성유원은 언제나 차갑고 고고하며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었다.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둘째 도련님, 돌아오셨군요. 모두 다이닝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성유원은 무거운 걸음으로 식당을 향했다.오늘은 성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15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이 거의 가득 찬 상태였다.성유원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시끌하던 분위기가 서서히 조용해졌다.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성석준과 성재원은 그를 부르려다가 멈칫했다.평소와 전혀 다른 성유원의 얼굴빛을 알아차린 아이들은 겁을 먹은 듯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상석에 앉아 있던 김미현이 성유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드디어 돌아왔구나.”이서연은 아들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구겨진 셔츠를 정리해 주었다.“요즘 제대로 못 잤니? 옷도 왜 이렇게 흐트러지게 입고 다녀.”성유원은 이서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대로 앞으로 걸어갔다.도우미가 급히 의자를 빼주었다.성유원이 자리에 앉자 따뜻한 물수건을 건넸다.성유원은 물수건을 받아 손을 닦았다.이서연은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걱정스러웠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도 들었다.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성유원 옆자리에 앉았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
“네.”도우미는 그제야 이 여자아이가 정말 연지아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어젯밤에 왔던 그 무서운 남자는 연지아의 전남편인 모양이었다.성유원은 딱 봐도 쉽게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고, 강현수는 누가 봐도 연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관계가 꽤 복잡해 보였다.연지아는 성시하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데려가 손을 씻게 했다.그러고는 곁에서 아침을 함께 먹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성시하는 하품을 하며 졸기 시작했다.오늘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연지아는 성시하를 데리고 침실로 돌아가 재웠다.그러던 중.손재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연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선배님.”손재인이 말했다.“지아 씨, 오늘 저희가 그쪽으로 갈게요. 오빠분도 같이요.”연지아는 조금 의외였다.“송나겸이 선배님이랑 같이 와요?”손재인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말한 오빠는 배우진 씨예요. 그날 돌아온 뒤 송나겸이 저한테 밥 한 번 사준 이후로는 얼굴도 못 봤어요. 어제 일부러 점심까지 가져다주러 갔는데 못 만났고요.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으니 아무래도 많이 바쁜가 봐요.”연지아가 말했다.“그런가 봐요.”손재인이 이어 말했다.“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 지금 일 아니면 지아 씨 걱정밖에 안 하는 것 같아요. 지아 씨 일이 안정되지 않으면 자기 인생 문제는 아예 생각도 안 할걸요.”연지아는 손재인의 말을 듣고도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재인은 연지아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급히 덧붙였다.“지아 씨, 제가 재촉하려고 그런 말 한 건 아니에요. 지금은 당연히 지아 씨 일이 제일 중요하죠.”연지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알아요.”손재인이 물었다.“그럼 성유원 씨는 아직 두 분이 이혼한 거 몰라요?”“알게 됐어요.”“그 사람 반응은 어때요?”연지아는 한참 침묵했다.목소리에는 깊은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어제 찾아왔어요. 지금은 아마 경원시로 돌아가는
거실 안.성유원은 휴대폰을 꺼내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강현수는 소파에 기대앉아 남자의 통화를 듣고 있었다.통화를 마친 뒤.성유원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있는 강현수를 바라보았다.“난 포기한 적 없어요. 그러니까 강 대표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마요.”목소리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강현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거실 안은 고요했다.그날 밤.연지아는 침대에 누워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세 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머리까지 몽롱했다.연지아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온몸에는 쓸쓸한 기색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손은 아랫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이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노크 소리가 들렸다.도우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지아 씨.”연지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도우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어젯밤에 잘 못 주무셨어요?”연지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아침은 준비됐어요?”“네. 준비됐어요.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아니면 다이닝룸에서 드시겠어요?”연지아가 물었다.“두 사람은요?”도우미가 대답했다.“강 대표님하고 그분은 어젯밤 언제 나가셨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두 분 다 안 계세요.”연지아는 가볍게 대답했다.“네. 먼저 씻을게요.”“알겠어요.”연지아는 방으로 돌아와 커튼을 열었다.어젯밤 내내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게 개어 있었다.연지아는 편하게 입을 홈웨어로 갈아입었다.씻고 준비를 마친 뒤.먼저 엽산 두 알과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모든 약과 영양제는 서랍 안에 잘 넣어두었다.방을 나와 식당으로 가면서 도우미에게도 한마디 당부했다.어젯밤 성유원의 태도를 생각하면 당분간은 이야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 성격이라면 이대로 포기할 리도 없었다.연지아는 식당에 앉아 아침을
말이 끝난 순간.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창문이 벌컥 열렸다.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자 두 고양이는 깜짝 놀라 곧바로 소파 밑으로 숨어버렸다.창밖의 빗물이 거센 바람을 타고 안으로 들이쳤다.한여름의 무더운 8월인데도, 지금 방 안에는 서늘한 한기만 감돌았다.연지아는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갑자기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두 다리가 저릴 정도가 되어서야 연지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손에 든 봉투를 챙겨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두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연지아가 들어오자 성유원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강현수는 들어오는 연지아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맛이 다른 걸로 몇 종류 사 왔어. 너무 많이는 안 샀으니까, 일단 애들이 어떤 걸 더 좋아하는지 봐.”연지아는 가볍게 대답했다.“네.”그러고는 TV 옆에 있는 수납장으로 향했다.그 안에는 고양이 용품들이 들어 있었다.연지아는 사 온 고양이 캔을 하나씩 꺼내 수납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했다.강현수는 창가로 가 창문을 단단히 잠갔다.순간 거센 바람 소리가 차단되며 집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연지아는 서랍을 닫았다.성유원에게 등을 보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한참 뒤.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연지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몸을 돌렸다.성유원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심장이 저도 모르게 세게 조여들었다.연지아는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고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성유원, 우리...”말을 끝내기도 전에.성유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끊고 들어왔다.“무슨 말 하려고?”연지아는 그를 바라보았다.성유원이 차갑게 말했다.“내가 서명도 안 했는데 무슨 이혼이야? 이혼증명서에는 가정 법원 인장까지 찍혀 있어.”성유원은 비웃음을 흘렸다.“연지아, 너 머리 어디 부딪혔어?!”그 말을 듣자 연지아의 얼굴빛이
연지아는 눈을 내리깐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강현수는 시선을 거두고 휴지 두 장을 뽑아 손을 닦았다. 구긴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에는 빈 그릇을 가져다 밥을 한 공기 뜨고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었다.“다음엔 아주머니한테 조금만 하시라고 해도 되겠어.”식탁 위의 음식은 줄어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연지아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얌전히 앉아 나직이 대답했다.“네.”자신을 산 채로 잡아먹을 듯 사나운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그때 귀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연지아는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봤다. 성유원은 의자를 거칠게 빼고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검은 눈동자는 더없이 음산했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창밖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보다도 숨 막혔다.연지아는 무릎 사이에 내려놓은 손을 자꾸만 움켜쥐었다.“고양이들은 어디 있어?”강현수가 문득 물었다.연지아는 잠시 멈칫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소파 밑에 있을 거예요.”누가 자신들을 부르는 걸 알아듣기라도 한 듯, 치즈 고양이와 고등어무늬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소파 밑에서 기어 나왔다. 강현수의 발치로 다가가는 녀석들의 울음소리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강현수는 두 고양이를 내려다보다 연지아에게 말했다.“얘들 주려고 산 캔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네. 트렁크에 있는데, 지아야, 가서 좀 가져와 줄래?”연지아가 그를 바라봤다.강현수는 바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다녀와.”연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열쇠를 받았다.“네.”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집을 나선 뒤에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연지아는 몸을 돌려 벽에 기댄 채 잠시 서 있었다. 집 안은 숨 막힐 만큼 조용했다.한참 뒤 그녀는 안쪽을 한번 돌아보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집 안에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식사를 마친 강현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지 두 장을 뽑았다. 느긋하게 입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