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늘은 교양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이미 좌석의 절반 이상이 차 있었다.송하나가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하나 씨, 여기요!”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가 쪽에 앉아 있는 허지안이 바로 눈에 띄었다.송하나는 눈을 반짝이며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빠르게 다가가 허지안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허지안은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송하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기쁨과 반가움이 목소리에서 여실히 느껴졌다.“하나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송하나는 웃으며 팔을 들어 허지안을 마주 안아주면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나도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는 잘하고 지냈어요?”“그럼요!”허지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거기 사장님이 일을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고, 앞으로 주말마다 와서 일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어요.”말을 마친 뒤에는 송하나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참, 며칠 전 SNS를 통해 하나 씨가 스키 마을에 여행 간 거 봤어요! 사진 정말 잘 찍었던데요? 거기 엄청 재미있었죠?”송하나는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던 풍경을 떠올리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어디를 가도 온통 새하얘서 정말 힐링 됐어요.”그러면서 가방을 열어 안에서 기념품 몇 개를 꺼내 허지안에게 건넸다.“자, 이거 받아요. 현지에서 고른 기념품들인데 지안 씨한테 주려고 특별히 가져온 거예요.”허지안은 기념품을 두 손에 올려두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눈빛에 기쁨이 가득했다.“세상에, 정말 너무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네요! 하나 씨, 여행 가서도 나 생각해 준 거예요? 나 너무 행복해요.”말이 끝나자 허지안은 무언가가 문득 떠오른 듯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다.그러고는 곧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 상자 하나를 꺼내 송하나에게 내밀었다.“선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하나 씨한테 줄 거
비서실장은 화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이혼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강우는 아직도 송하나를 잊지 못한 듯했다.송하나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만 보면 여전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는 걸 보면 말이다.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몰랐다.눈 깜짝할 사이에 며칠이 지났다.심성빈의 어깨와 등에 생겼던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개강일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고 항공권까지 예매한 뒤 낭만으로 가득했던 설원의 작은 마을과 작별을 고했다.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심성빈의 휴대폰이 울렸다.회사에서 걸려 온 업무 전화였다.전화를 받은 심성빈은 덤덤한 표정으로 낮게 대답했다.“그래. 상황은 알겠어. 관련된 업무는 전부 내일 처리하도록 해.”간단히 지시를 내린 뒤에는 전화를 끊었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장시간 비행으로 잔뜩 지쳐 있었던 송하나는 빠르게 샤워를 한 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송하나는 그날 아주 깊은 잠을 잤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송하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서 심성빈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겨보고 있었다.몸에 꼭 맞는 어두운 색의 정장은 어깨선이 매우 반듯했고, 고급스럽고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는 심성빈은 당장이라도 외출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발소리를 들은 심성빈은 고개를 들어 송하나를 바라보더니 들고 있던 잡지를 덮으며 말했다.“일어났어? 아침은 식탁 위에 놓여 있어. 밥 다 먹으면 학교까지 데려다줄게.”송하나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으로 심성빈을 바라봤다.“오늘... 회사 안 가는 거예요?”송하나는 심성빈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회사에 밀린 업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회사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렇다면 당연히 돌아오자마자 회사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심성빈은 잡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송하나 앞으로 걸어가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사 일은
모든 사진이 마치 무딘 칼날처럼 이강우의 심장을 난도질하며 똑똑히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때의 이강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송하나를 잃은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이 직접 놓쳐버린 결과라는 사실을 말이다.똑똑똑.바로 그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서실장이 점심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들로 준비했습니다. 요즘 계속 야근하셨으니 특별히 국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따뜻할 때 조금이라도 드세요.”비서실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하나씩 책상 위에 차려놓았다.이강우는 눈앞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먹은 것이 없어 뱃속이 텅 비어 있었지만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고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이강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목소리는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고, 차분한 말투 아래에는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전부 치워. 각 부서에 전달해. 20분 후에 회의 시작할 거야.”비서실장은 순간 당황해하면서 저도 모르게 물었다.“대표님,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잖아요. 그러다가는 몸이 못 버팁니다. 몇 숟가락이라도 드시는 게...”“내 말 이해 못 하겠어?”이강우가 고개를 들어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비서실장은 순간 등허리가 서늘해졌고, 이강우의 기분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비서실장은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황급히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비서실장은 서둘러 책상 위의 음식을 모두 정리해 도시락 용기를 들고 대표이사실에서 나왔고 다른 직원이 있는 자리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당장 각 부서에 공지해요. 휴식 시간을 취소하고 20분 후 회의 시작한다고요.”직원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네? 원래 오후 2시 반에 회의 시작이라고 했잖아요. 왜 갑자기 시간이 앞당겨진 거예요?”“대표님께서 방금 결정하
직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네. 지금 바로 포장해 드릴게요. 휴대하기 편하도록 예쁘고 정성스럽게 포장해 드릴게요!”포장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송하나는 다른 기념품들도 꼼꼼하게 둘러봤다.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모두 이 작은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문화 거리를 다 둘러본 뒤 두 사람은 한가롭게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씻고 나온 송하나는 푹신한 침대에 엎드린 채 앨범을 클릭한 뒤 며칠 동안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가득했다. 그 외에도 끝없이 펼쳐진 숲과 목조 주택 등이 있었는데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두 아름다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송하나는 사진 몇 장을 신중하게 골라 자신의 SNS에 올리기로 했다.사진을 고르고 또 골랐지만 결국 일곱 장만 추려졌다.아무리 해도 아홉 칸을 채우기에는 사진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어느 사진 하나 빼기도 아까웠다.결국 송하나는 고민 끝에 사진 두 장을 더 보탰다.한 장은 마당에서 눈사람과 함께 찍은 셀카였고, 다른 한 장은 방금 산 기념품들을 한데 모아서 찍은 사진이었다.사진을 모두 고른 송하나는 손끝으로 화면을 가볍게 눌러 게시물을 올린 후 만족스럽게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잘 준비를 했다.같은 시각, 국내에서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이원 그룹은 최근 정부와 관련된 주요 협력 사업을 하나 맡게 되면서 업무량이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 탓에 회사의 모든 직원이 바짝 긴장한 채로 정신없이 바쁘게 일했다.세 시간 동안 이어진 임원 회의가 끝난 뒤 이강우는 손목시계를 흘끗 확인했다. 어느새 12시 반이었다.이강우는 고개를 살짝 들며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잠시 쉬었다가 오후 두 시 반부터 다시 회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사무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비서실장이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라가며 조용히 보고했다.“대표님, 점심
심성빈은 고개를 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송하나의 두 눈을 바라봤다. 즐거워하는 송하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심성빈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봤어. 정말 귀엽던데? 하지만...”심성빈은 잠시 뜸을 들이며 송하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너만큼 귀엽지는 않아.”조금 전 심성빈은 송하나에게 완전히 시선을 빼앗겨 눈사람을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다.심성빈은 매우 자연스럽게 송하나의 손을 잡아 장갑을 벗기더니 꽁꽁 얼어버린 작은 손을 만져보고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마음 아파했다.“손이 왜 이렇게 찬 거야?”심성빈은 따뜻하고 건조한 손바닥을 펼쳐 송하나의 손을 꼭 잡고 비비면서 자신의 체온으로 송하나의 언 손을 녹여주었다.손끝에서부터 온기가 서서히 퍼져 나가며 차가운 기운이 조금씩 가셨다.송하나의 두 손이 충분히 따뜻해지고 나서 심성빈은 송하나에게 따뜻한 과일차를 건넸다.“우선 이것 좀 마시면서 몸 좀 녹여.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송하나는 얌전히 컵을 건네받은 뒤 과일차를 홀짝였다. 적당히 달고 따뜻한 차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몸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고 은은하게 달콤해서 맛있었다.어느덧 해 질 무렵이 되었다.노을 진 하늘에서 흰 눈이 나풀거리며 내려앉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심성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안했다.“오늘 마을 문화 거리에서 야시장이 열린대. 같이 가보지 않을래?”송하나는 심성빈의 상처가 걱정돼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아니요.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성빈 씨는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으니까 많이 움직이면 안 돼요.”심성빈은 손을 들어 송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내심 있게 달랬다.“천천히 둘러보면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야. 야시장은 매일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쉽지 않겠어?”송하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승낙했다.“그러면 너무 오래 둘러보지는 말고 일찍 돌아오기로 약속해요.”“알겠
송하나는 심성빈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뜨거운 열기가 너무 강렬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송하나는 서둘러 고개를 내려 시선을 피하면서 약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포비돈 요오드와 면봉, 거즈를 하나둘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정리를 마친 뒤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는 이만 방으로 돌아가서 쉴게요. 성빈 씨도 일찍 쉬어요.”말을 마친 뒤에는 심성빈이 대꾸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거실을 빠져나왔다. 황급히 도망치는 가녀린 뒷모습에서 다급함과 당황함이 물씬 느껴졌다.심성빈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깨와 등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마음만큼은 행복으로 가득 차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심성빈은 급히 떠나가는 송하나의 뒷모습을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창밖에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밤새 눈이 내린 모양인지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심성빈이 등을 다친 탓에 송하나는 밖에 나가 놀자는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심성빈에게 집에서 푹 쉬라고 했다.심성빈은 송하나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설득했다.“그냥 조금 다친 것뿐이라 괜찮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멀리 이곳까지 왔는데 송하나가 심심하게 지내는 건 싫었다.“안 돼요.”송하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직 멍이 다 빠지지도 않았잖아요. 혹시라도 무리하면 상처가 낫기는커녕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꼭 쉬어야 해요.”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 단호한 태도였다.심성빈은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송하나의 말에 따랐다.“그러면 너는? 나랑 같이 집에 있으면 심심할 텐데.”송하나는 밖에 가득 쌓인 흰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럴 리가요. 나는 마당에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어야겠어요.”송하나는 춥지 않게 두꺼운 롱패딩을 챙겨입고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 눈사람을 만드는 도구를 빌려서 홀로 마당으로 나갔다.폭신폭신한 눈이 두껍게 쌓여 그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