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집 밖으로 볶은 결명자의 구수한 냄새가 넘쳐 흘렀다. 어진은 금선이 볶아 놓은 결명자를 약연으로 갈아내고 있었다. 잠시 후, 금선이 부엌에서 또 다른 바구니를 가지고 나와 어진의 옆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어진이 갈아 놓은 고운 가루를 종이에 담아 약첩으로 만들었다. 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일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아래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누구 있소?”사령 하나가 집 앞에 서서 외쳤다. 어진이 약연을 옆으로 살짝 밀어 놓고 달려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다. 연서가 근신 명령을 어기고 우성과 함께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무슨 일이십니까?”“아전께서 명을 보내셨다.”어진이 곤란한 표정으로 금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묵묵히 약첩을 묶을 뿐,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어진은 지레 겁을 먹고 대답했다.“춘향은 지금 뒷간에 잠깐 갔는데...”그녀는 자신도 우성과 똑같은 변명을 해 버렸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하지만 사령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춘향이 아니라 어진이라는 아이에게 전하라 했다. 여기 있느냐?”어진은 깜짝 놀랐다. 일만 하던 금선마저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제, 제가 어진입니다. 말씀하십시오.”어진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령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아전의 말을 전했다.“‘올해로 14세가 되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 이달 20일에 있을 동기 지원에 응하라. 시험은 20일 오후에 관아의 예방에서 실시하니 교방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올해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16세가 되는 해부터 관노비로 일하게 될 것이니 그리 알라.’라고 하셨다.”“예, 알겠습니다.”최후 통첩이었다. 연서가 임진년에 열 살이 되자마자 동기에 지원했던 걸 생각해 보면 꽤 늦은 나이였다. 일반적으로는 이른 나이에 동기가 될수록 더 뛰어난 기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동안 시험을 미루었던 것은 어진이 아니라 관아 쪽이었기에, 조금
마지막 인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연서를 업은 우성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무심코 마당으로 발길을 옮기다 대청에 앉아 있는 어진을 보고 기겁하며 뒤로 돌아섰다. 업혀 있던 연서는 우성이 재빨리 방향을 바꾸자, 금방 상황을 눈치채고 숨을 죽였다.하지만 너무 급하게 몸을 튼 나머지, 몸이 흙벽에 스치며 중심이 흔들렸다. 흙벽이 부스러지며 퍼석 소리가 났다. 담장이 낮았기 때문에 연서를 업은 채로 몸을 완벽히 숨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우성과 연서는 눈을 마주친 채 긴장감을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간절함을 배신하며 어진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 앞에 다다른 어진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아예 숨길 생각도 없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연서는 그에게 매달린 채 어진을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우성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그... 잠깐... 뒷간을 좀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연서가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보았다. 열받은 그녀가 우성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게 산책보다 더 큰 문제예요...”“흠... 분명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여전히 아녀자와 뒷간 얘기하시는 걸 좋아하시네요.”어진이 비아냥거리듯 그에게 말했다. 두 여자의 협공에 우성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대답했다.“아니 왜 나한테만...”“저야 늘 언니 편이니까 견우님한테만 말씀드린 거고요,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언니도 곧 혼날 거예요.”그녀가 얄밉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연서도 곤란한 표정을 하며 우성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선이 문을 벌컥 열며 방에서 나왔다.“그냥 아예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북이라도 치고 오지 그러냐? 그럼 이리 숨어 다닐 필요도 없을 텐데.”연서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우성이 그녀를 다시 고쳐 업으며 금선에게 대답했다.“계속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더뎌지고 욕창이 생겨 다른
하루도 쉬지 않던 연서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점점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 일으키자니 팔꿈치와 어깨가 아팠고, 그렇다고 엎드리자니 허리와 목이 불편했다. 조금씩 옆으로 눕는 게 가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동 범위가 극히 좁아 답답했다.삼십 대를 굳이 맞아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자존심이 그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한계를 느끼고 독서를 포기했다. 연서는 책을 바닥에 던지듯 툭 내려놓으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책이 바닥에 툭 쓰러지며 [詩經]이라고 쓰인 표지가 보였다.“흐아아-”연서가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는 했지만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이미 수없이 읽은 책을 또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점차 고요해지는 듯싶었다.“아하하! 아이참, 다시 해 보세요. 왜 이렇게 못 하세요?”바깥에서 어진의 목소리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왔다. 우성과 무엇을 하는지 마당에서는 자박자박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곧 우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이게 지금 무게 중심이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아요.”“와 진짜 안 해 보셨나 보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사내가 되어서 이런 것도 안 해 보고 뭐 하셨어요?”연서는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이겨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고, 조심조심 팔꿈치를 짚어 기듯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방문 앞에 도착한 연서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끼익-연서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우성과 어진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에엥? 언니! 왜 일어났어요?”“...뒷간 가시게요?”우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무례한 우성의 말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하... 아녀자한테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나 참, 숨 쉬듯 무례하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진도 그런 우성을 타박하며 덧
경찰서 안쪽은 민원실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가 돌아가는 소리, 간헐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여성청소년과로 예성을 안내한 경찰은 인계를 마치고 돌아갔다. 사십 전후로 보이는 경위가 그녀를 맞이했다. 예성은 남자가 가리킨 의자에 앉아서 긴장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아까 기본 내용은 들었습니다. 견우성 씨 동생분이라고 하셨죠?”“네.”그는 모니터를 보며 능숙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직접 본 시간하고 장소 말씀해 주시겠어요?”“음... 마지막으로 본 건 저희 본가 OO로 24-1이고요, 시간은... 이틀 전 저녁 7~8시쯤인 것 같아요.”“이틀 전이면... 11월 6일인가요?”경위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성은 그 말에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잠시만요... 네, 맞아요.”“11월 6일... 7시경... 그날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예성은 그날 우성과 차 안에서 다투듯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저랑 말다툼 비슷하게 좀 하긴 했는데... 그 정도는 평소에도 하던 거라 특별히 다르다고 하기엔 좀 그래요... 제일 이상한 건 차가 그대로 있고 사람만 없어졌다는 거예요.”“...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 실종자가 평소에 우울증이나 병을 앓고 있었나요?”그의 말에 예성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정확히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병이 있지는 않았어요.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우울 증세가 좀 심하게 오긴 했었는데...”“...우울 증세... 또 있을까요?”그제야 예성은 상태의 방문이 떠올랐다.“아...! 잠시만요.”그녀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상태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오빠가 없어진 직후에 자칭 형사 한 분이 와서 이걸 주고 갔어요.”“형사요...?”경위가 예성이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시간관리국? 이런 부서는 없는데... 직접 받으신 거예요?”그가 명함을 뒤집어 이리저리 보며 물었다. 예성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연서의 엉덩이 상처는 말라붙은 피와 진물로 엉겨 딱지처럼 굳어 있었다. 멍 자국은 더욱 크게 퍼져 있었고, 터진 자국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금선이 미지근하게 식힌 물에 깨끗한 무명천을 적셔 환부의 가장자리부터 아주 살살 닦아냈다.“읏...”연서가 이를 악물며 신음했다. 금선은 한동안 상처를 닦다가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냐.”연서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답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금선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닙니다.”금선이 손을 멈추고 연서를 째려보았다. 연서는 그런 금선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별일이 아닌데 태형을 30대씩이나 때리냐? ...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거냐?”금선의 격노에 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기 시작했다.“어머니, 혹시 칠복 아재 딸 기억나세요? ... 홍이라고.”금선이 다시 그녀의 상처를 닦으며 대답했다.“...홍이를 때렸어?”“때리다뇨... 걔가 요새 그리 저를 괴롭혀요. 특히 제가 사기가 된 후로 더 심해졌어요.”연서의 말에 금선이 말했다.“걔가 엄마 없이 자라서 이상한 열등감이 있나 보다.”“얼굴도 예쁜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튼, 걔가 저한테 어저께 공개적으로 시를 쓰더라고요. 아름다운 수를 삼베에 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저를 모욕하며 비웃었어요.”금선이 한숨을 쉬었다.“그래서... 때렸니?”“아이 참, 안 때렸다니까요! ... 아무튼 그래서 저도 화답을 해 주었지요. 꽃 주제에 누에인 나를 비웃느냐고 해 주었어요.”금선이 피식 웃었다.“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스스로 비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다니... 너는 부끄럼도 없냐?”“......어머니는 누구 편이신 거예요? ...자꾸 말이나 끊고...”금선의 말에 연서가 열받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에 금선은
아침 일과를 마친 마당에는 볕이 들어 밝고 따뜻했다.“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마루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약초를 다듬는 금선과 어진을 향해 우성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내의 깍듯한 인사에 여전히 어색한 듯, 두 사람은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금선은 우성의 발치께를 눈으로 슬쩍 보며 대답했다.“조심히 가세요. 급하게 가시다 그르치실라.”“...네, 알겠습니다.”괜히 잔소리 한마디 더 얹는 금선에게 우성이 착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어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셔야 돼요? ... 아직 언니도 아프고, 나리가 어제 물도 다 써서 물도 없는데...”“...”우성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금선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발걸음에 우는 소리 말어라... 사내들 떠날 때마다 울어대니 나라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치...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리 쉽게 가 버립니까, 그래.”어진이 미련을 잔뜩 쏟아냈다. 우성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연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천근같은 몸을 일으킨 연서는 겨우 문틀을 잡고 서서 우성을 보았다. 모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몸이었다. 우성이 급하게 그녀 쪽으로 돌아섰고, 어진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언니...!”연서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을 바라보았다. 잠깐 우성과 눈을 맞추던 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부디 건강하세요.”짧고 단정했다.우성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우성이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파이팅.”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 밖으로 향했다. 어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렁한 눈으로 금선에게 물었다.“방금 뭐라신 거예요? 파잇딩?”“...”하지만 금선이 그 말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연서와 그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