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로 수놓다

봄 향기로 수놓다

last update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8-19
โดย:  쭈의잔상อัปเดตเมื่อครู่นี้
ภาษา: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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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조선, 남원. 현대의 수의사 견우성은 정체불명의 힘에 휘말려 과거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베를 짜며 살아가는 관기 이연서를 만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신분, 삶의 방식 속에서 충돌하던 두 사람은 상처를 치료하고 위기를 함께 넘기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나 우성에게는 돌아가야 할 현대가 있고, 연서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춘향전에 견우직녀 설화를 수놓은, 사랑과 선택 그리고 이별을 넘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시간여행 로맨스. 조선과 현대를 가르는 은하수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운명을 바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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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 1

1-01 시작은 끝으로부터

째깍-

째깍-

시곗바늘이 날카롭게 베는 소리가 진한 블랙 체리 냄새와 섞여 어두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우성은 구석으로 밀려난 채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허공 속에서 발버둥쳤다.

띠, 띠띠-띠.

갑자기 들려오는 도어록 소리와 함께 소연이 들어왔다. 또각거리던 그녀의 신발이 현관에 가지런히 놓이고, 적갈색 손가방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법도 한데, 소연은 마치 제 집인 양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우성을 찾아낸 그녀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돌았다.

“아이 참, 또 왜 이러고 있어-”

소연의 목소리에 우성이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화려한 눈화장과 생기 넘쳐 보이는 입술, 반짝이는 눈동자가 어둠을 밝게 비췄다. 우성의 앞에 쪼그려 앉은 소연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살짝 숙이며 말했다.

“밥 또 안 먹었지? ...가만있어 봐, 내가 뭐 좀 해 줄게.”

“...왜 또 왔어?”

우성의 갈라진 목소리가 부엌으로 향하는 소연에게 겨우 닿았지만 금세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소연은 일어나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지며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아 맞다, 오빠. 그거 알아? 오늘이 우리 헤어진 지 벌써 100일째더라. 시간 진짜 금방 가지?”

아무렇지 않게 뱉는 그녀의 물음에 우성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무심한 소연이 새삼 얄미워졌다.

‘...100일.’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싶어 우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말하면 좀 대꾸를 해 줘야지. 말하는 사람이 무안하잖아.”

“...그만하고 가. 어차피 안 먹어.”

우성의 차가운 말투에 소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안 먹기는 왜 안 먹어. 굶어 죽게? 차려 놓고 갈 테니까 꼭 먹어.”

“...”

우성은 소연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헤어지자고 했던 건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우성은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런 그를 잠깐 지켜보던 소연은 정적 속에서 요리를 계속했다.

그녀가 우성이 좋아하던 음식을 다 만들었을 무렵, 핸드폰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연은 가볍게 수건으로 손을 닦고 가방 속의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응... 이제 나가... 응.”

그녀와 대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와 우성의 신경을 건드렸다. 소연은 통화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며 우성을 향해 말했다.

“...식기 전에 꼭 먹어! 나 갈게.”

우성은 그녀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방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오지 마.”

짐짓 단호한 우성의 목소리에 소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또 올게.”

쿵-

띠리리-

현관문이 닫히자 우성은 다시 어둠 속에 갇혔다.

---

거친 말발굽 소리가 북문을 지나 곧장 관아 쪽으로 이어졌다. 안쪽 문을 지키던 포졸들은 다급한 전령의 모습에 긴장한 표정으로 그가 말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흙먼지와 땀이 뒤섞여 얼굴과 옷에 묻은 모습은 그가 먼 길을 급하게 달려왔음을 짐작하게 했다.

“경중에서 급보요. 사또께 바로 올리시오.”

그가 숨을 헐떡이며 품 안에서 꺼낸 조금 젖은 봉문은 곧장 사령의 손에 들려 남원부사 성안의에게로 향했다. 부사는 급히 육방의 아전들과 관리들을 부른 후 봉문을 뜯기 시작했다.

大行大王 升遐

[대행대왕 승하]

부사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의 사또답지 않은 모습에 방 안의 숨들도 함께 멎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바로잡은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지금부터 국휼이니, 각 고을은 백성에게 효유하고 계령을 시행하라. 혼례와 음악, 잔치와 도살을 일절 금하고 모든 이가 상복을 갖추게 하라.”

이 무거운 소식은 곧장 기녀들의 분 냄새를 흩으며 교방으로 들어왔다. 동기(童妓)들을 가르치던 연서는 소식을 들은 즉시 얼굴의 화장기를 모두 없애고 소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불러들여 상복을 입히기 시작했다.

“스승님, 국휼이 뭐예요?”

한 아이가 묻자 너도나도 궁금하여 연서 곁으로 조금씩 몰려들었다. 연서는 그런 아이들이 귀여웠으나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라의 아버지이신 전하께서 돌아가셨단다. 매우 슬픈 일이니 너희는 웃음기를 보이지 말고, 배우던 악기도 잘 닦아서 넣어 놓거라.”

“예, 스승님-”

아이들의 대답에 연서가 남몰래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흘린 옷가지들을 주우며 정돈을 시작했다. 그러다 대문 밖에서 사람을 찾는 소리가 나자 움직임을 멈췄다.

“안에 누구 있느냐! 아전 나리의 명이시다.”

그 소리를 들은 연서는 직접 나가서 아전이 보낸 사령을 만났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명을 받드는 연서의 소복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령은 연서의 얼굴을 아는 듯, 그녀에게 곧장 명을 전하며 말했다.

“부사 나리께서 너를 찾으시니, 동헌으로 즉시 오라는 명이시다. 속히 준비하여 오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녀가 몸을 숙여 인사하자, 사령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

지잉- 지잉-

핸드폰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울어대는 소리에 우성이 번쩍 눈을 떴다.

[엄마]

그는 폐인처럼 지내는 자기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부끄러웠다. 우성이 잠깐의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잘 지내고 있니?]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차분하고 가라앉아 있었다. 우성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네, 뭐... 그냥 있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으응,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아...”

우성은 잠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자 정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너무 갑자기 가셔서 우리도 마지막을 못 지켜드렸어... 놀랐지? 미안해.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연락한 거야. 일단은... 여기 근처 장례식장 잡았으니까, 준비해서 내려와.]

“네... 지금 바로 갈게요.”

[그래, 조심해서 와. 주소 찍어 줄게.]

“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침묵하던 우성이 마침내 결심한 듯 고요함을 흩으며 일어났다. 그는 가장 좋은 모습으로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깨끗이 씻고 면도하기 시작했다.

우성이 길어져 버린 앞머리를 뒤로 완전히 넘기자,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빗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부고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우성은 망설이던 끝에 핸드폰을 들어 잊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찾아냈다.

[천호]

---

성 부사는 예방 아전과 함께 연서를 기다렸다. 그래도 처음 파발을 맞이했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 부사의 얼굴을 보며 아전이 말했다.

“그래도 망곡례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지 않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이게 다 아전 덕이 아니겠소? 예방에서 이리 신속하게 처리를 하니 내 마음이 이리 든든하오.”

“그것은 과찬이시옵니다, 나리. 전패와 향로는 이미 내려오던 것이 있사옵고, 백포 역시 춘향이가 계속 쌓아 두었으니, 저의 공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춘향의 공을 치하하심이 옳은 줄로 아룁니다.”

아전이 손사래를 치며 공을 연서에게로 돌리자마자, 그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부르신 교방의 춘향이 왔습니다.”

연서에게 명을 전하러 갔던 사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연서는 툇마루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사또의 허락을 기다렸다.

“어서 들여보내라.”

안의의 허락에 연서는 집무실로 들어섰다.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나는 끼익 소리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그녀의 방문을 환영했다. 연서는 그녀를 반기는 부사와 아전을 향해 인사를 올려 예를 갖추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나리.”

“예방에서 네 칭찬이 멈추질 않아 내가 직접 불러 치하하고자 하니,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보거라. 예식이 끝나는 대로 들어주겠다.”

연서는 더욱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리의 말씀이 너무나 과분하시니, 소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 뿐이고, 아직 관아에는 포목이 부족하니 제게 공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성 부사는 그녀의 겸손한 대답에 흡족한 마음이 들어 아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방의 인물들이 이토록 의로우니,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다. 네 정녕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겠느냐?”

연서는 부사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시려거든 교방 사람들 모두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모두가 준비한 것이니, 저만 받는다면 분명 제게도, 그리고 나리들께도 원망이 일게 될 것입니다.”

똑 부러지는 그녀의 말에 아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정 그렇다니 내가 다른 방도로 교방에 하사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이만 물러가도 좋다.”

성 부사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연서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다시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리고 방에서 되돌아 나왔다.

연서가 동헌을 나서자 저 멀리 관아 바깥문 근처에서 기생 몇 명과 말다툼하는 아이가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는 동기 중 하나인가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내 그 아이가 그녀의 동생 어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겉모습은 껍데기일 뿐,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언니들께서는 알지 못하십니까?”

당찬 어진의 말이 연서의 귀에 들려왔다. 홍란이 비웃으며 대답했다.

“내실이 좋으면 겉으로도 드러나는 법이다. 자고로 세상에는 생김새로 쓰임새가 나뉘는 것이니, 약초나 캐는 것이 너희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치졸함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너의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구나.”

연서가 낮은 목소리로 홍란의 말에 반박하며 다가왔다. 홍란은 기다렸다는 듯 연서를 훑어보며 물었다.

“부사 나리께서 집이라도 하사하신답니까? 길쌈 좀 한다고 총애가 너무 심하시니, 기생들 사이에서 말이 자꾸 오가는 것입니다.”

홍란의 말에 그녀를 따르는 기생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기 어린 말에 연서는 대꾸하지 않고 어진의 손을 잡아 이끌며 걸어 나갔다. 기생 하나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리 못난 얼굴로 대체 어떻게 사또 나리와 아전 나리를 꼬셨을까요?”

그녀의 선을 넘는 말에 어진이 몸을 휙 돌렸지만, 이내 연서가 팔을 잡아 다시 당겨 데려갔다. 어진은 분한지 씩씩거리며 연서에게 말했다.

“언니는 분하지도 않아요? 어떻게 저런 모욕을 당하며 살아요?”

“...”

연서는 자꾸만 발에 치이는 작은 돌들과 먼지를 유심히 보기만 할 뿐 어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진은 속상함이 가시지 않는지 계속해서 울분을 토해냈다.

“저라면 이렇게는 못 살아요.”

그녀의 말에 연서가 가볍게 실소했다.

“못 살면 어쩌겠니? ...죽을 수도 없지 않니.”

“아니이... 그런 말이 아니라...”

어진은 연서의 물음에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연서는 그런 어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관아에서 식구들 몫까지 나오잖아.”

연서의 타이르는 말에 어진이 ‘누가 사기 아니랄까 봐 되게 진지하네’라며 구시렁거렸다. 연서는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둘은 초봄의 따스한 햇빛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계속 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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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시작은 끝으로부터
째깍-째깍-시곗바늘이 날카롭게 베는 소리가 진한 블랙 체리 냄새와 섞여 어두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우성은 구석으로 밀려난 채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허공 속에서 발버둥쳤다.띠, 띠띠-띠.갑자기 들려오는 도어록 소리와 함께 소연이 들어왔다. 또각거리던 그녀의 신발이 현관에 가지런히 놓이고, 적갈색 손가방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졌다.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법도 한데, 소연은 마치 제 집인 양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우성을 찾아낸 그녀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돌았다.“아이 참, 또 왜 이러고 있어-”소연의 목소리에 우성이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화려한 눈화장과 생기 넘쳐 보이는 입술, 반짝이는 눈동자가 어둠을 밝게 비췄다. 우성의 앞에 쪼그려 앉은 소연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살짝 숙이며 말했다.“밥 또 안 먹었지? ...가만있어 봐, 내가 뭐 좀 해 줄게.”“...왜 또 왔어?”우성의 갈라진 목소리가 부엌으로 향하는 소연에게 겨우 닿았지만 금세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소연은 일어나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지며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아 맞다, 오빠. 그거 알아? 오늘이 우리 헤어진 지 벌써 100일째더라. 시간 진짜 금방 가지?”아무렇지 않게 뱉는 그녀의 물음에 우성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무심한 소연이 새삼 얄미워졌다.‘...100일.’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싶어 우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사람이 말하면 좀 대꾸를 해 줘야지. 말하는 사람이 무안하잖아.”“...그만하고 가. 어차피 안 먹어.”우성의 차가운 말투에 소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안 먹기는 왜 안 먹어. 굶어 죽게? 차려 놓고 갈 테니까 꼭 먹어.”“...”우성은 소연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헤어지자고 했던 건 다름 아닌 소연이었다. 우성은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런 그를 잠깐 지켜보던 소연은 정적 속에서 요리를 계속했다.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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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같은 향, 다른 시대
향 냄새가 장례식장 안을 침울하게 메웠다. 부모 곁에서 조문객을 맞던 우성은 친구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초겨울이 스며든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천호가 그대로 멈추어 우성의 눈을 마주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코트 차림의 예진도 토트백을 두 손으로 가만히 쥐고서 그의 옆에 멈추어 섰다.짧은 침묵이 흐른 후, 천호가 조심스럽게 우성에게로 걸어갔다. 그동안의 공백을 서둘러 채우려는 듯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안았다. 우성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삼키고 입을 열었다.“...와 줘서 고맙다.”초췌한 우성의 모습을 본 예진은 눈물이 났지만, 괜스레 퉁명스러운 말부터 꺼냈다.“연락하고 사는 게 어렵냐? 이럴 때만 부르고 있어...”“그러지 마. 이럴 때라도 부른 게 어디야. 난 얘 어떻게 된 줄 알았어.”천호와 예진의 타박에 우성이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정희가 손님들과 대화를 끝내고 천호와 예진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꾸벅 목례하며 말했다.“많이 힘드시죠?”천호의 다정한 말에 정희가 대답했다.“아니에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이니?”그녀가 우성의 팔을 슬쩍 잡으며 물었다. 우성이 그녀에게 친구들을 소개했다.“아, 여기는 제가 다니던 병원의 원장 옥천호, 그리고 여기는 그 앞에서 카페를 하는 도예진이에요. 둘 다 대학교 때부터 친구예요.”“그렇군요, 늘 얘기만 듣다가 이제야 보네요. 먼 길 와 줘서 고마워요. 식사는 했어요? 얼른 저기 가서 식사부터 해요.”정희가 우성과 친구들을 살갑게 챙기며 말했다. 천호와 예진은 얼떨결에 정희의 손에 끌려가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우성이 너도 얼른 와서 같이 밥 먹어. 계속 서 있었잖아.”정희의 말에 우성도 그들 뒤를 따라갔다. 세 사람은 어쩐지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쳤다. 천호가 테이블 위에 수저를 나누어 놓으며 우성에게 물었다.“그... 물어봐도 돼?”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천호에게 우성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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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베 짜는 여인
아침 해가 미처 뜨기도 전, 연서는 저도 모르게 눈이 떠져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는 밤새 식지 않은 아랫목의 온기가 옅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누웠던 자리를 돌아보며 이불과 요를 차례로 개어 한쪽에 가지런히 밀어 두었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방문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연서는 빗을 들어 긴 머리를 쓸어내렸다. 빗살 사이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빗어질 때마다, 엉켜 있던 생각들도 가지런히 정리되는 듯했다. 그녀는 늘 하던 대로 단정히 머리를 매만지고 소복을 챙겨 입었다. 흰 옷고름을 여미는 손길이 빠르고 능숙했다.바깥으로 나온 연서는 아직 희미한 어둠이 남은 마당을 한 번 바라보며 기지개를 쭉 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상쾌한 아침 이슬 냄새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부엌으로 가서 쌀을 헤아리고 물을 맞추어 솥에 안치기 시작했다. 작은 물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연서가 불씨를 살려 아궁이에 넣고 입김을 불어넣자, 이내 잔불이 빨갛게 타올랐다.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진이 아직 눈도 다 뜨지 못한 얼굴로 부엌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품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연기 냄새를 맡자마자 말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연서의 옆으로 다가왔다.“...벌써 일어났어요?”연서는 대꾸 대신 물 한 바가지를 건네주었다. 어진은 한 손으로 바가지를 받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크하- 소리를 내며 숨을 내뱉었다.“오늘은 나 데리러 안 와도 돼.”연서가 불길을 살피며 말했다. 어진은 여전히 졸음이 묻은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예? 왜요?”“응, 언제 끝날지 몰라서. 국휼 이후 첫 일과잖아?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안 정해져서, 언제 마칠지도 몰라.”어진은 못마땅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손끝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긁적이던 그녀가 이내 투덜대듯 말했다.“그럼 저는 계속 어머니랑 일해야 돼요? 관아 가는 길이 유일한 쉬는 시간인데...”어진의 서운한 말투에 연서는 그녀를 슬쩍 보며 미소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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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서쪽으로 간 목동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린 예성이 말없이 집 안으로 휙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마당을 울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우성은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안전벨트를 풀었다.차에서 내린 우성은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에서 볼 때보다 훨씬 많은 별이 검푸른 밤 위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선명한데도, 어쩐지 더 멀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그때, 웬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새 발치까지 다가와 있었다. 달빛을 받은 털은 밤공기 속에서 묘하게 푸른빛을 내는 것 같았다.고양이는 우성과 눈이 마주치자 태연한 걸음으로 다가와 우성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는 그대로 쪼그려 앉으며 조심스레 고양이의 얼굴에 손을 내밀었다. 우성의 손끝이 고양이의 정수리를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온기가 차가운 우성의 손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고양이를 만지던 그가 중얼거렸다.“춥겠다...”그의 손길을 받던 고양이는 이내 몸을 슥 빼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한쪽 발이 아픈지 절뚝거리며 집 뒤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가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꼭 따라오라는 것만 같았다. 우성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그 뒤를 따랐다.집 뒤쪽은 가로등이 없어 훨씬 어두웠다. 쓰지 않는 농기구며 장작 더미, 오래된 광주리 같은 것들이 밤 그림자에 묻혀 희미한 윤곽만 남기고 있었다. 그 익숙한 어둠을 지나자, 약간 경사진 작은 언덕 위에 주변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낯선 기계였다.사람의 앉은키를 조금 넘을 듯한 크기였고, 무광의 쇠로 된 표면은 묘한 패턴으로 뒤틀리듯 맞물려 있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모양새였다.‘...아버지가 새로 산 정미기곈가?’우성은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더 다가갔다. 희미한 빛의 정체는 기계에 표시된 디지털 숫자였다. 가까이 다가간 우성은 4와 46, 그리고 415.071800이라는 기묘한 숫자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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