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태비가 한마디 했다. “그 왕씨 가문의 여인이 참 불쌍하구나.”그러자 시만자가 냉소를 지었다.“불쌍? 모두 한 종속들 아니겠습니까? 아마 모르시겠지만, 석석이와 장군님이 혼인할 때 그자도 장군부로 시집을 갔습니다. 당시 사사건건 송석석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여간 애를 쓴 게 아니였습니다. 심지어 시중드는 하녀에게 석석이의 혼수가 초라하다는 둥 지껄이기까지 했더랬죠. 그러다 많은 혼수를 보태주는 것을 보더니 그자의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 모릅니다.”“그런 일이 있었느냐?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제 사람들이 조사해 낸 것입니다. 왕씨 가문이 그저 그런 집안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하인들 입단속도 형편이 없지요. 어쨌든 왕청여는 송석석을 여간 못마땅해한 게 아닙니다.” 시만자는 내심 송석석 이사제가 소개한 사람이 일 처리가 명확하다며 뿌듯해하고 있었다.송석석은 왕청여와 두 번 만났었다. 첫 번째 만남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살짝 적대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어차피 왕래도 하지 않을 텐데 마음껏 미워하라고 하세요.”혜태비도 혀를 찼다.“분수를 모르는구나.”그러다 그녀의 뇌리에 순간 아들의 군권이 왕씨 가문에 넘어간 것이 떠올랐다. “불쌍한 사람에게는 미운 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 아들의 군권까지 낚아챘으니 집안 전체가 질이 좋지….”“어머니!” 사여묵의 얼굴이 확 굳어져 말을 끊어버렸다.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깜짝 놀란 혜태비는 서둘러 송석석의 팔을 잡았다. 잔뜩 겁먹은 새색시 같았다. 그녀는 아들이 안쓰러워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아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그때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어머니, 이런 말은 아무 데서나 하시면 안 됩니다. 이는 황제의 결정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하셔도 안 됩니다.”그제야 혜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다.”송석석은 사여묵을 타일렀다.“방금 목소리가 너무
사여묵이 송석석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언젠간 송석석이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그들에게 남은 날들이 많으니 이렇게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다음 날, 송석석은 두 손 무겁게 들고 시만자와 홍작과 함께 승은백부로 향했다.승은백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나와 맞이했다.량소는 장남이면서도 백부세자였다. 훌륭한 집안, 잘생긴 외모, 게다가 이름도 떨쳤으니, 여자들의 사모할 수밖세 없었다.송석석은 왕비 신분이었기에 승은백부의 정중란 대접을 받았다.승은백은 첩이 많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방, 삼방, 사방의 부인들이 여식과 함께 나왔다.승은백 부인은 마흔 살 정도로 보였고 약간 통통한 몸매에 한 집안의 주인다운 재치와 섬세함이 있었다.승은백 집안의 자녀들은 모두 나와 인사를 올렸고 송석석이 직접 선물을 전달하며 친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승은백 부인이 그들을 돌려보냈다.그제야 송석석의 시선이 마침내 란이의 얼굴에 닿을 수 있었다. 아직 임신한 티가 나지 않는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앉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여윈 모습이었다.그녀를 바라보는 송석석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이를 본 승은백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임신한 후로 잘 먹지 못하더니 입덧도 심해져 모두 토하다가 최근에야 좀 나아졌습니다.”송석석도 임신 중인 여성의 힘듦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체와 정서 모든 방면에서 배로 열심히 신경써야 했다.송석석은 똑똑해 보이는 승은백 부인은 며느리를 잡는 악독한 시어머니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란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너무나 따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위장일 수도 있었다.그때 둘째 부인, 정순이 웃으며 말했다. “란이가 임신한 이후로는 양고기를 금하고 있습니다. 양고기 냄새를 맡으면 토해버려서요.”정순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집안의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인이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안으로 들어섰다.그 여자는 해당 무늬를 수놓은 홍색 비단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는 여우 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송석석이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에 아치형 눈썹,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정교한 오관까지 그야 말로 완벽한 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상투에 백옥 비녀를 꽂고 그 옆에 꽃장식을 했다. 귀에는 홍옥 귀걸이를 걸고 있었고 가는 허리는 움직일 때마다 우아한 교태를 뽐내고 있어 매력적이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승은백 부인이 이마를 찌푸렸다. ‘가만히 방에 있으면될텐데 왜 여기까지 와서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것이지.’화청에 들어선 그녀는 주위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승은백 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귀빈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화청에 들여보내지 않으셔서 이렇게 직접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응당 갖춰야 할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줄곧 말이 없던 란이는 건방지게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사촌 언니도 안중에 없었다.“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당장 물러가거라!”“제가 뵈면 안 되는 분이라도 됩니까? 태아가 놀랄 수도 있으니, 화는 가라앉히시지요. 아니면 또 제 잘못이 될 테니깐요.”“너!” 승은백 부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지만, 북명왕비 앞이라 화를 낼 수 없었다.“말이 너무 많구나. 어서 왕비께 인사부터 드리거라.”그러자 송석석과 시만자를 바라보던 연유는 송석석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면서 내심 자신과 비교하면 어떨지 궁금해 담담하게 말했다. “진성에 있는 많은 왕비중 대체 어떤 왕비인지요?”그녀의 말에 부인들의 매서운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어 그녀는 대충 인사 하기로 했다.“누구든, 왕비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시만자는 그녀를 무시한 채 승은백 부인만 바라보았다.“우리 시씨 가문에서는 이렇게 버릇없는 년은 즉시 엄벌하지요. 승은백에도 규
송석석과 함께 방을 나선 란이는 마침 시만자에게 머리채를 잡혀있는 연유를 보고 놀랐다. 그녀에게는 이젠 더 이상 거만하거나 날카로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양쪽 뺨에는 손바닥으로 맞은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고 얼굴도 잔뜩 부어있었다. 한 눈에 봐도 시만자가 얼마나 호되게 때렸는지 알 수 있었다.둘을 본 시만자는 이내 그녀를 밀어버렸다.“꺼져라!”겨우 몸을 지탱하면서 여전히 뺨을 움켜쥐고 있는 그녀가 란을 쳐다보았다. “세자 부인 손님들은 참으로 야만적이군요. 덕분에 세자가 저를 더욱 소중히 여길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하녀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떠났다.란의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졌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송석석은 그녀의 거처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리도 너를 짓밟는 것이냐? 란이야, 네가 군주다!”란이는 흐느끼며 말했다. “군주가 뭐가 소용 있습니까? 그는 저의 부모님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부모님께서 그의 출세를 돕고 싶어 하지만 그 또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실권이 없는 친왕은 경영에도 서툴러 손에 여유 자금도 없어 녹봉에 의해서만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수많은 첩들과 후궁들을 두었다. 그들도 모두 좋은 음식과 옷, 좋은 집에서 지내야 했기에 란이를 돌 볼 여유가 없었다.“줄곧 이렇게 무례하게 대했느냐?” 송석석이 물었다.“차를 올리던 중 제 신발에 그만 차가 쏟아졌습니다. 제가 몇 마디 하자 남편이 저를 마구 꾸짖더군요.”눈물을 흠친 란이는 절망어린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언니,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저에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임신한 저를 두고 기녀를 맞아들였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기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그러자 시만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승은백이 어찌 귀족 가문이냐? 만약 탐화랑 선생이 아니었다면 이미 몰락했을 것이다.”란
듣고 있던 시만자와 송석석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문연의 돈으로 원하던 사람을 맞아들였으면서 그 불여시 한마디에 손찌검까찌 했다는 것은 너무 양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송석석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너도 때렸느냐?”란이는 억울하다며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지금은 아무 일 없더라도 장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 기생은 오늘 나를 앞에 두고도 저리도 대담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를 도발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홍루 출신에 어리다지만 수법이 많을 것이다.”송석석은 란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물었다.“함께 온 이는 몇 명이냐? 그들이 너를 지킬 수 있겠느냐?”“시녀 네 명과 하녀 한 명입니다.”송석석은 몽동이와 상의하여 여제자 둘에게 란이를 지켜줄 수 없는지부터 물어보기로 했다.그런데 그의 사부님이 허락하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분은 여제자 하산해 생계를 도모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었다.단 몇 개월 동안만이라도 안 될까 싶은 마음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나면 돌려보낼 테니 몽동이의 사부님이 제발 허락해 주길 바랐다. 이 문제는 란이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상황이 확정되면 사람을 보내면 된다.승은백 집을 떠나 마차에 올라타자, 홍작이 말했다. “왕비님, 사실 란이 아가씨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걱정하고 슬퍼하면 아이를 지키는 보약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문제지만, 심각하면 몸져누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얼마 전까지 기침을 한 것 같은데 기침은 초기 삼 개월 동안 태기에게 가장 해롭습니다. 폐경과 심경이 과도하게 막혀있는 상태여서 마음을 넓게 먹어야 합니다.”홍작의 말에 송석석은 더욱 걱정이 짙어졌다. 마음을 넓게 먹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란이는 씩씩한 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곤난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매번 울기만 했었다. 군주라 하지만 회왕 부부의 나약함으로 인해 더 연약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편이었다.게다가 그녀
민지 공주는 막무가내로 쳐들어 온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조금도 화내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하게 맞이했다. 송석석은 사죄하며 말했다. “찾아뵙는다고 미리 소식을 전해야 했는데 급한 일이라 이렇게 무작정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그러자 민지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지 않느냐? 마침 미우 공주도 여기 손님으로 와 있다.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난 것인지 지금 화장실에 갔으니 곧 만나게 될 것이다.”“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다니요? “송석석이 걱정되어 묻자 때 미우 공주가 하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언니 말씀은 그냥 넘겨도 된다.”그녀는 배를 감싸 쥐고 있었으며, 여전히 불편해 보였지만 민지 공주에게 대꾸할 때만은 단호했다.“푸하하! 석석이가 여기 있으니 이젠 발뺌해도 소용없다. 너는 먹성이 좋고 한녕도 그런 너를 꼭 닮았지 않았느냐!”송석석은 시만자와 홍작과 함께 미우공주에게 예의를 갖추었다.“미우 공주께 인사드리옵니다.”미우 공주도 예의를 갖추었다.“다들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거라. 그런데 석석아, 왜 얼굴이 이렇게 창백한 거냐?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이냐?”자리에 앉은 송석석은 승은백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시만자가 그 기녀를 때린 일까지도 빠짐없이 말했다.그러자 미우 공주도 시만자에게 칭찬의 눈길을 보냈다. “잘했다!”그리고 나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더니 덧붙였다.“천한 주제에 감히 주모에게 도발을 해?! 왕비를 눈앞에 두고도 안하무인이라니! 네 동생이 거기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개 짐작이 가는구나. 아이를 임신했는데도 남편이 애정을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민지 공주는 그제야 송석석이 급하게 방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차를 천천히 마시는 그녀의 눈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어사대감이여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했다.차를 마시던 민지 공주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미우야
민지 공주가 말했다.“내 시아버지는 어사대를 맡고 계시는 주관이다. 얼마 전 돌아와서 식사할 때 관료들의 풍기를 정화하고 어사대 규범을 재건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 그러면서 모든 관료가 청렴결백해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한창 사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텐데 량소가 딱 이 시기에 꼬리가 밟힌 게로구나.”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그 기녀가 맞았으니 량소는 마음이 몹시 아플 겁니다.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저를 무척 경멸하였습니다. 아마 찾아와 따지려 할 테니 왕비를 모욕하는 것이 죄목에 해당하는지 궁급합니다.”그러자 민지 공주는 답했다.“들으려니 량소는 스스로 신통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 하더군. 황제께서 직접 명한 탐화랑이자 황제의 제자라던데, 그러면 더더욱 행실을 올바르게 하고 모법을 보여야 할 터인데 지금 내실이 혼란스럽고 홍등가를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기녀를 첩으로 들이다니, 게다가 본처를 소홀히 하고 더 나아가 왕비까지 모욕하려 했으니, 어사대가 이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민지 공주의 말에 송석석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량소를 때리는 것은 그의 복수심만 채울 것이고 란이에게도 더욱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사관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데 감히 건방지게 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변함없이 오만을 떤다면 그녀에게 이제 미래는 없을 것이다.화가 나 씩씩거리던 미우 공주도 란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란이는 너무 나약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군주 출신인데 어찌 그런 모욕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숙부님이 어떤 분인지 다들 알고 계시지 않느냐?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어떻게 강인할 수 있겠느냐?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군주가 아니라 그저 세가의 여인이라도 감히 이렇게 대우하겠느냐?”시만자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란이가 량소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떤 점이 좋다고 하는
황실로 돌아간 후, 송석석이 몽동이에게 물으려고 하자 몽동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 줄 건가?” 송석석은 쉽게 초대할 수 없다는 상대임을 알기에 금전적으로 많이 줘야 몽동이의 사부님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서 만삭이 되기까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으니 두 명에게 천 냥씩 주는 건 어떠냐?” 몽동이는 답답한듯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난 바로 편지를 쓰러 가야 해. 황실에 편지 배달원 있지? 지금 바로 우리 사부님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어서 편지 쓰러 가. 천 냥이면 적은 돈은 아닌데 말이야..”몽동이의 사부는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걸 반대했다. 왜냐하면 부잣집의 여호위가 되어 봤 자 기껏해야 한 달에 은자 2 냥 밖에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모욕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주를 보호하면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모욕을 당할 일도 없으니 그의 사부님께서도 분명히 흔들릴 거야. 군주를 다치지 않게 보호만 하고 내 태아보호약만 잘 지키기만 하면 몇 개월만 해도 두 명이서 천 냥을 얻을 수 있는데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딨겠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다음 날, 승은백의 세자 량소가 두 명의 사내를 데리고 집으로 와 송석석을 만나려고 했다. 사여묵이 외출한 틈을 타서 온 것으로 봐서는 그가 아주 겁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재혼한 송석석을 만만하게 여겼던 것 같았다. 다만 문간은 그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보고 그의 신분을 즉시 염 선생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염 선생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낮으면서도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꺼지겠습니까? 아님 맞고 꺼지겠습니까?”염 선생의 뒤에는 시위가 몇 명이 있었는데 모두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량소가 겁에 질려 송석석을 만나기도 전에 풀이 죽은 채 도망가버렸다. 시만
시만자는 그제야 송석석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 부인이 사람을 데리고 왕 씨 저택으로 가서 추태를 부렸으니, 당연히 사죄도 왕 씨 저택으로 가서 해야한다. 이렇게 소 세자의 일로 약점을 잡고 있으면 지아가 시집을 가더라도 감히 박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에게는 이제 후원자도 있고 소 씨 가문의 약점도 쥔 셈이 되었다. 하시만 시만자는 오늘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일 뿐, 소 부인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쉽게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명 등 인이 모두 떠난 후에야 소 부인에게 말했다. “안백작부가 명망가라니, 정말 뻔뻔하군요.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 양첩을 유괴하고 다른 가문으로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어요? 오늘 원래는 당신들의 가면을 모두 뜯어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민이 진심으로 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두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참았습니다. 하지만 지아가 당한 억울함을 계속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키운 아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볼 순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부를 믿고 작위가 없는 왕 씨 가문을 괴롭혔으니, 다른 이가 같은 방식으로 갚아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고작 백작부 따위, 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소 세자가 고주의 용서를 빌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지아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면 일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의 보귀한 작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소 부인은 시만자의 말에 얼굴이 금새 붉어졌지만,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시만자는 진성에 오래 머물며 문제가 생기면 이치를 따지는 성향이었으나, 상대가 막무가내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소 세자의 양첩 유괴는 사실이었고, 이미 경위부에 압송된 상태라 시만자가 이를 빌미로 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소 부인도 알았다. 그러자 소 부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안 백작만 계속 사죄하며 두 아이가 원래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며, 소 부인이 다른 사람의 헛소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