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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Author: 정대천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가슴이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아려 오는 것 같았다.

신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병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문 앞에 이르자, 다시 한번 예를 갖추어 윤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병문은 누이에게서 분명한 해명을 들은 덕에 셋째 아우의 일은 큰 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걱정으로 불안해하던 그는 그제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연회 자리에서는 윤서원이 매형의 신분으로 직접 나설 수 없어 윤수혁이 대신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집을 떠나 강호를 떠돌며 지낸 인물이었다. 신병문 또한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하며 세상일을 두루 겪은 터라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고 대화는 시종 즐거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늦게 만난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신수빈의 기억 속에서 윤수혁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큰 오라버니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많지도 적지도 않게 매번 꼭 들어맞는 말로 응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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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9화

    신수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순간 이도현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날카로우며 검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 속에는 제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압박감이 번뜩였었다. 확실히 그는 결코 속이기 쉬운 인물은 아니었다. 이전의 몇 차례 대치에서도 그는 언제나 미묘한 이상을 짚어냈으니 말이다.신수빈은 다시 한 번 양피 두루마리를 바라본 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린 이 배치도는 원본과 표기 하나까지도 다르지 않거든. 그가 설마 나를 의심하겠느냐? 이게 원본이 아니라 한들, 누가 도둑이 원본을 훔친 뒤 여러 장을 베껴 퍼뜨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느냐? 게다가 나는 일부러 평소 쓰지 않는 필체로 그렸다. 그러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은보는 그제야 완전히 깨달았다. 마님의 진짜 목표는 태후 뒤에 선 장 가였다. 그녀는 그저 셋째 도련님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닌 최 씨 가문과 장 가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겉으로는 두 집안이 여전히 왕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전과 같은 관계는 아니었다.그녀는 이제 장 가와 서 가의 혼맥마저 끊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 일이 터질 경우, 장 가가 서 씨를 감싸면 필연적으로 수면 위로 끌려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조정 안팎 모두가 장 가가 얼마나 냉혹한 집안인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장 가와 혼인으로 얽힌 다른 명문가들 또한 자연스럽게 마음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터. 사람의 마음이란 가장 건드리기 쉽지만, 한 번 돌아서면 다시 돌리기 어려웠다.마님의 수는 정확했다.다만 은보는 이도현이 이 의도를 알아차릴까 두려웠다. 그의 성정으로 보아 만약 그 지점까지 이르게 된다면...은보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부디, 마님이 왕야를 평생 속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이틀째 성문이 굳게 닫힌 탓에 백성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맴돌았다. 거리의 상점들 역시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8화

    “이 일들은 네 어머니께는 알리지 말거라. 세상 물정을 많이 겪지 않으신 분이니 알아도 걱정만 늘 것이다.”“알겠습니다.”신병문은 고개를 숙여 물러난 뒤, 뒤뜰로 가 가족들의 짐 정리를 거들었다.한편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어서도 신수빈은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큰형수와 어머니가 반달 넘게 길 위에서 고생했음을 알기에 더는 붙잡지 않고 푹 쉬시라 인사를 건넨 뒤 먼저 돌아섰다.신 가를 나설 때, 대문 밖에는 갑옷을 갖춘 병사 한 대열이 대기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도지휘사가 남겨 둔 이들이었다.신수빈은 낮은 목소리로 금자에게 한마디 당부한 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윤 가로 돌아갔다.그들은 모두 이도현의 친위병이었다. 금자와 은보 또한 예전에 그의 휘하에 있었던 적이 있어 그중 몇 명을 알아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호위병들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다만 병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매우 중요한 물건이 사라졌기에 도둑이 성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전면 통제가 내려졌다는 말뿐이었다. 금자가 왕야가 어디로 향했는지 물어도, 그들 또한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윤 가에 도착한 뒤, 금자가 전해 들은 이야기를 신수빈에게 전하자 그녀는 잠시 미간을 좁히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병부에서 도난이라니...이도현이 그토록 급히 말을 몰아 나간 것을 보면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혹시 군사 배치도가 도난당한 것은 아닐까?이도현이 직접 출성할 만큼의 사건이라면 결코 사소할 리 없었고, 병부와 관련되었다면 더욱 그러했다.신수빈은 도둑 맞은 물건은 서남 방면의 군사 배치도일 것이라고 완전 확신했다. 이도현이 서둘러 떠난 것은 도둑보다 먼저 서남 지역의 방어를 새로 정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훔쳐 간 것은 그저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된다.그녀는 예전에 이도현의 서재에서 보았던 대주 왕조의 군사 지도를 떠올렸다.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도현은 아마도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7화

    신병호는 장남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동안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게 물었다.“그럼... 빈이의 뱃속 아이가, 바로 섭정왕의 혈육이라는 말이냐?”“그렇습니다.”“그렇다면 우리 신 가가 받은 이 후작 작위도 그가 모자에게 준 보상인 셈인 것이냐?”신병호의 마음은 복잡하게 뒤엉켰다.“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로서도 섭정왕의 속내를 모두 알지는 못하니까요. 다만 그분은 아직도 빈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윤서원의 아이인 줄로 알고 계십니다. 빈이가 그분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모르고 계시지요. 다만 이 작위가 빈이 때문에 내려온 것만은 분명합니다.”“섭정왕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그럼 왜 말하지 않았단 말이냐? 윤 가에서 그런 패륜한 짓을 저질렀다면 화이하고 나오는 게 옳았지 않느냐? 섭정왕과 이미 사사로운 관계가 있다면 화이 후 왕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떳떳한 일이다. 이렇게 몰래 관계를 이어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신병문은 고개를 저었다.“빈이는 이미 계산을 마쳤습니다. 지금 윤서원은 병상에 누워 말조차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니, 빈이가 품은 아이는 후부에서 명백한 적장자, 장손가 될 겁니다. 게속 윤 가에 남는다면 당연히 후계자가 되겠지요. 이전에 아무리 왕부로 들어간다 해도 빈이는 첩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섭정왕이 신 가의 위상을 끌어올린 것을 보면 정식으로 혼인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허나 빈이는 그에게 마음이 없는데다가, 섭정왕비라는 자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복도 아니잖습니까. 섭정왕은 행보가 워낙 거칠어서 황실이든 조정이든 가리지 않고 원한을 산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의 곁에서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르는지 아버지께서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에게는 백일의 영화가 없고 꽃도 백일 붉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섭정왕이 권세의 정점에 올라 개혁을 밀어붙이며 기세가 등등하지만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6화

    문간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마땅한 곳이 아니었기에 신병문은 가족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신병호는 마차에서 내린 뒤로 줄곧 말이 없었다. 자식들이 기쁨에 들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져 있었다.조금 전 성 밖에서, 장남이 은전을 써서 길을 열어보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막내딸의 신분으로 평양 후부의 이름을 내세워도 소용이 없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수문장의 얼굴에서 미소 한 점조차 얻지 못했다.아이들은 아직 젊고 세상 물정을 다 알지 못하기에, 굳게 닫혀 있던 그 성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넘볼 수 없는 권력이었다. 그리고 이어 섭정왕이 모습을 드러낸 뒤에야 길이 열렸다.그는 처음엔 섭정왕이 신 가의 체면을 봐서 통행을 허락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장수가 막내딸의 마차 앞을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따라붙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섭정왕과 이전에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인물은 언제나 높고 멀었고 신 가는 그 발치에서 보호를 구하는 상인 집안에 불과했다. 은전과 군량을 바쳤고 난세에 신 가를 보전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런데 어찌하여 저토록 빈이를 감싼단 말인가?더구나 이 후작 작위 또한 석연치 않았다. 부친은 마음이 맑은 사람이었다. 경성에는 분명 그들이 알지 못하는 변고가 있으리라 짐작했고 이 작위가 복인지 화인지 알 수 없기에 그저 길을 재촉했을 뿐이다.그래서 일단 신병문의 세 명의 적자는 신 가의 큰 어르신과 함께 항주에 남겨 두었다. 그런데 막상 입경하자마자 신병호은 공기부터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잠시 후, 그들은 저택에 들어갔다. 신수빈은 어머니와 큰형수와 함께 후택으로 가 짐을 정리했고 신병문은 따라가 도우려다 부친에게 붙잡혔다. 사람이 모두 물러난 뒤, 신병호은 어려서부터 함께 장사를 다니며 강하게 키운 장남을 향해 입을 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냐?”“아버지께서는 무엇을 물으시는지요?”“모든 것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5화

    “장군께 여쭙겠습니다. 성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부장은 공손하게 답했다.“말단 장수로서는 알지 못합니다.”이처럼 살벌한 기운이 도는 걸 보아 분명 작은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서 더 묻는 것도 무의미하리라.신수빈은 조용히 차렴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려 정 씨가 보내는 탐색 어린 시선과 마주했다.“윤 가와 섭정왕의 교분이 그리 깊은 것입니까? 그분의 부하가 수빈에게 저렇게까지 예를 갖추다니요.”신수빈은 순간 미묘하게 굳어졌다.신병문 역시 미간을 좁힌 채, 부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정 씨는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누이와 남편의 표정만 보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음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곧 화제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수빈아, 지금 몇 개월이 되었느냐?”“곧 여덟 달이에요.”그러자 정 씨는 후의 몸조리와 주의할 점들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아이를 넷이나 낳은 사람답게 첫아이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신수빈은 미소를 지은 채 그 말을 듣고 있었지만 문득 정신이 멀어지며 다른 생각에 잠겼다.신병문은 본래 가족들을 천일각으로 모시려 했으나 며칠 전 섭정왕이 하사한 저택 하나가 있었고 공부에서 손을 대어 새로 단장까지 마친 터였다. 이미 신 씨 가문이 입경한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면 굳이 그곳을 피하는 것도 도리어 모양이 좋지 않았다.신병문은 미리 호원과 하인들을 배치해 두었기에 항주에서 데려온 사람들까지 더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부모님이 마차에서 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신수빈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로 인해 신병문과 정 씨는 한참동안 그녀를 달래주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그때, 누군가가 신수빈의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그녀는 흠칫 놀랐고 흐느끼던 숨도 멎었다.“네 눈에는 부모님이랑 큰형님만 보이고 넷째 오라버니는 전혀 안 보이나 보구나. 이렇게까지 마음에 없을 줄 몰랐네.” 신수빈은 그제야 돌아서서 신태안을 보았다. 전생의 단편적인 기억 속에서 그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04화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신병문이 마차 밖을 향해 묻자 마부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사유는 알 수 없으나 정오 무렵부터 갑자기 성문을 닫고 출입을 금했습니다.”신수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오늘 무슨 큰일이 있을 리가 있나?신수빈은 자신의 마부를 보내 평양후의 명호를 밝히게 했다. 그러자 성루 위에서 귀찮다는 듯한 고함이 떨어졌다.“상부의 명령 없이는 출입 금지라 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그때, 성문을 지키던 노병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예전에 사가에서 신 씨 가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자였다. 그는 신 씨 쪽에서 건넨 은전을 받아 쥐고는 목소리를 낮춰 귀띔했다.“사대부님, 오늘 성 안에서 사건 수사가 있어 오늘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분간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해 지기 전이니 성 밖 별장에서 며칠 머무르시지요. 삼오일 안에는 성문이 다시 열릴 겁니다.”신병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신 씨 집안의 위상이 아직은 미미한 이상 성문을 지키는 장수가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관의 일을 그가 좌우할 수는 없는 노릇.“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마침 경교에 신 씨 가문의 별장이 있었기에 일행은 우선 그곳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가족을 맞이하는 기쁜 길이 이렇게 막힐 줄은 몰랐지만 조정의 일 앞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이 방향을 돌리려는 순간, 성루 위에서 갑작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열어라!”주홍빛 동못이 박힌 거대한 성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자 성 안에서 차가운 철갑을 두른 기병 한 기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길 양옆에 서 있던 군졸들이 성문 앞에 몰려 있던 백성들을 급히 몰아냈고 신 씨 가문의 마차들 역시 한쪽으로 밀려났다.말발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체구가 크고 갑주가 서늘한 철기병들이 호랑이 울음 같은 기세로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선두에서 달리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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