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유소린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지율아, 화야 씨... 무슨 얘기예요? 설마 린이 누군지 아시는 거예요?”하지율은 한순간 말이 막혔다.린이 손형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그녀는 시선을 떨군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냥 우연일 수도 있어요.”주용화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우연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죠.”그는 하지율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덧붙였다.“전화를 걸어보시죠. 아니면 영상통화도 좋고요. 상대가 누구인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게 지율 씨에게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하지율은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직은 린과 서로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꼈었다.그동안 나눈 대화도 대부분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화풍, 기법, 거장들의 스타일, 린은 고리타분하다고 느끼기는커녕 매번 진심으로 즐겼다.그래서 더더욱 그 사람이 손형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하지만 주용화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린의 정체를 확인하는 일은 결국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잠시 후 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어 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적어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조금 전까지 메시지를 주고받던 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음만 길게 이어지다 결국 시간초과로 끊어졌다.잠시 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지금 통화가 어려워요. 혹시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말씀해 주세요.]하지율은 무의식적으로 주용화를 바라봤다.주용화는 가볍게 웃고 있었다.놀란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이 상황에서 영상통화를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 보였다.옆에 있던 유소린이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듯 눈을 크게 떴다.“잠깐만요...”시선을 번갈아 옮기며 말을 이었다.“손형원이 고
하지율이 담담하게 답했다.“예전에 제 그림 사셨던 분께 보냈어요.”“그림 사셨던 분이요?”주용화가 하지율을 그윽하게 바라봤다.“그때, 따로 그림 보내셨던 분이요?”하지율은 그의 기억력에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주용화가 이어서 물었다.“그분이 여자라고는 어떻게 판단하신 거죠? 직접 만난 적 있어요? 아니면 통화라도 해봤어요?”그 질문에 하지율과 유소린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그제야 하지율은 문득 떠올랐다. 린은 스스로를 여자라고 밝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그저 어린 여성분일 것 같다는 말에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을 뿐...’하지율은 상대를 자연스럽게 여자로 받아들였다.‘아니라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맞다는 건 아니잖아.’하지율의 표정이 미묘하게 흐려졌다.“통화한 적도 없고 직접 만난 적도 없어요. 이름도 몰라요.”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렇게 중요한가요?”주용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지율 씨, 손형원 씨가 어떻게 지율 씨를 찾아냈는지, 기억하시죠.”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심다희 씨까지 찾아낸 사람입니다. 지율 씨 신상을 파악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유소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끼어들었다.“지율이 신상은 전에 한 번 털린 적 있잖아요. 린 씨도 계속 지율이한테서 그림을 샀었으니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주용화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렇다면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유소린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알고 있었으면 뭐 해요. 어차피 얼굴 본 적도 없고 가끔 문자로만 연락하는 사이인걸요.”주용화의 시선이 유소린에게로 옮겨갔다.“그래도 궁금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유소린이 어깨를 으쓱했다.“저는 좀 궁금하긴 한데... 지율이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요.”그러다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화야 씨, 혹시 그 사람... 남자일 것 같아요?”하지
연재영은 연태훈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애초에 그는 손형원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것을.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손형원이 장애를 안게 된 이상, 연정미를 그에게 맡길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연상준이 입을 열었다.“정미는 M국에 없을 가능성이 커. 손형원이 저렇게 뒤집어엎듯 찾고 있어도 헛수고일 거라고.”연재영이 고개를 저었다.“그럴 가능성은 크지. 그래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어. 일부러 시선 끌려고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으니까.”그는 연태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아버지, 손형원이 M국을 샅샅이 뒤져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연태훈이 말을 이었다.“레일 국왕이랑 몇 번이나 얘기해 봤는데, 끝까지 발뺌하더라. 그래도 D국 쪽에는 사람을 붙여놨다. 정미가 거기서 포착되기만 하면...”눈빛이 서서히 식었다.“재영아.”그는 아들을 곧게 바라봤다.“뭐라도 나오면 단씨 가문, 손씨 가문, 심씨 가문, 서둘러 세 가문에 연락 돌려. 레일 국왕한테 제대로 따질 거다!”...D국.레일 국왕은 부하로부터 연정미를 무사히 생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폐하, 이후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비밀리에 D국으로 이송할까요?”연정미를 향한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지만 레일 국왕은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연씨 가문이 눈에 불을 켠 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확실한 증거가 잡히는 순간, 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압박해 올 터였다.‘반대로 증거만 없다면 설령 의심을 받더라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레일 국왕은 그런 손해를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케빈, 연정미랑 체형이 비슷한 여자 몇 명 골라서 D국으로 보내.”담담한 어조였지만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시선을 끌어서 시간 좀 벌어. 연정미는...”그러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곧이어 나지막하게 명령이 떨어졌다.“삼각지대로 넘겨서 유흥가에 팔아버려. 저 정도 재벌가
손형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의 음침하고 까다로운 성격이었기에 연재영 일행도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형원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그는 화면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뒤, 짜증을 눌러 담으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에서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오빠, 큰일 났어! 그 길고양이 도망갔어!”손형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도망가다니? 어쩌다가!”손형서가 울먹이며 대답했다.“배달받고 들어오면서 문을 제대로 안 닫았나 봐... 밥 먹고 고양이 찾으러 갔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어... 그리고 고양이가 사라졌어...”손형원이 집을 비울 때마다 길고양이를 맡기는 사람은 늘 손형서였다.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싫다며 무조건 손형서를 불러들였다.손형서는 오빠가 그 고양이를 아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문제는 그 고양이의 앙칼진 성격이었다.손형원에게만 얌전할 뿐, 손형서에게는 늘 날을 세웠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기 일쑤였다.한 번은 얼굴을 긁힐 뻔해 흉터가 남을 뻔한 적도 있었다.그런데도 때리고 훈육하기는커녕, 욕 한마디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괜히 투덜거렸다가 손형원에게 한번 호되게 혼난 뒤로는 더더욱 그랬다.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무조건 손형서에게 직접 돌보라고 했다.결국 손형원이 집을 비운 동안 손형서는 거의 상전 모시듯 그 고양이를 떠받들어야 했다.고양이 전담 집사나 다름없는 처지였다.이쯤 되자, 손형서는 진심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손형원이 일부러 자신을 괴롭히려고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하고.그 고양이가 하지율이 선물한 고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손형서의 짜증은 더 치솟았다.‘그래도 난 재벌가 딸인데... 서열이 고작 짐승 하나한테 밀린다고? 말이 돼?’손형원은 경쟁자를 처리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가차 없이 정리해 버렸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길고양이 한 마리 앞에서는 지나
‘하지율이면 어쩔 거고, 아니면 또 어쩔 건데. 설마 진짜로 책임이라도 물을 생각인가.’지금의 하지율은 연경 그룹 지분 절반을 쥐고 있는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게다가 여기에 랜스 가문과 주씨 가문과의 협력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그러니 더는 연씨 가문이 마음먹는다고 해서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애초에 하지율을 이 자리에 부른 것도, 연정미 납치에 관여했는지 떠보려는 의도에 가까웠다.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연상준은 더 이상 주용화와 하지율을 몰아붙일 수 없다는 걸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하지율 역시 이 자리에 큰 의미를 두고 온 것은 아니었다.그저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레일 국왕이 왜 연정미를 이토록 집요하게 노리는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설령 연정미가 레일 공주를 구해냈던 일이 자작극이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일 이유는 없었다.응접실 안에서는 저마다 의견이 오갔고 심수현도 몇 마디 거들었다.그 속에서 하지율과 주용화는 한발 물러선 채, 마치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처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그리고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은 손형원도 있었다.한참 이야기를 듣던 하지율은 슬며시 지루함을 느끼고 주용화에게 속삭였다.“화야 씨, 아직 몸도 다 회복 안 되셨는데... 잠깐 밖에 나가서 쉬실래요? 공기도 좀 쐬고요.”애초에 주용화는 연정미를 구하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이 자리에 온 것도, 하지율이 불편한 상황에 놓일까 봐 따라온 것이었으니까.별다른 일 없이 상황이 흘러가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율은 연태훈에게 짧게 양해를 구한 뒤, 주용화와 함께 응접실을 나섰다.두 사람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도 다른 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애초에 두 사람에게 연정미를 구출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으니, 오히려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보는 분위기였다.손형원은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런 말은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율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유도 없이 가슴 한쪽이 콕 찔린 듯 저릿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 곳곳에 멍이 든 연상진이 모습을 드러냈다.눈빛은 퀭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와 정리되지 않은 옷차림까지, 전체적으로 지쳐 보였다.이미 소아린에게 휘둘리느라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었던 그는 연정미가 실종됐다는 소식에도 따로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게다가 이용당하다시피 하며 주식을 하지율에게 빼앗긴 이후로, 연재영 일행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지금의 연상진은 연경 그룹 내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앞으로도 이름만 걸쳐둔 채, 별다른 역할 없이 뒤로 물러나게 될 가능성이 컸다.이미 마음이 식어있었기에 더는 하지율과 무엇을 두고 다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어차피 손에 넣어도 제 것이 될 수 없다면 굳이 애써 싸울 이유도 없었다.결국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니까.잠시 후, 연태훈과 연재영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다.연재영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여러분... 레일 국왕이 연정미 납치 사실을 부인했어요.”곁에 있던 연상진이 곧장 끼어들었다.“당연히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하겠지. 제정신이면 누가 그런 걸 인정해? 스스로 약점 넘겨주는 꼴인데.”연재영은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이미 사람을 D국에 보내 잠복하게 했습니다.”그는 단보현과 손형원, 심수현을 차례로 바라봤다.“연씨 가문 인력만으로는 D국에서 잠입 수사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곳까지 동시에 수색하기는 어렵습니다. 세 분께서도 인원을 조금 지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그 정도 요청은 단보현과 심수현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반면 손형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연씨 가문 사람들은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당연히 협조할 것이라 여겼다.수색 계획에 대한 논의가
손형서에게 손화 그룹의 기밀문서를 훔치게 하여 손형원에게 복수하려 했던 일은 함우민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기에 회사 내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비밀이었다.그렇기에 일이 틀어진 지금 곁에 있는 비서와 보좌진들은 그저 자금줄에 문제가 생겨 위기가 닥친 줄로만 알고 있었다.실상은 그가 손형원이 파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양재혁 역시 육진 그룹이 하지율 때문에 휘말려 고초를 겪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함우민은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으나 막상 입술을 떼려니 묘한 욕심이 앞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만약..
‘손화 그룹이 곧 손형원이라면...’하지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손화 그룹이 왜 갑자기 육진 그룹을 공격한 거죠?”하지율은 손형원이 단순히 함우민이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육진 그룹을 공격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손형원이 잔인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지언정 결코 무모하거나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그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무런 명분 없이 함우민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함우민보다 고지후나 정기석이 자신을 도운 적이 훨씬 많았으니 손형원이 고지후를 제쳐두고 함우민을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른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하지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안내해 주세요. 직접 가서 봐야겠어요.”양재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감사합니다, 하 대표님.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집무실 안, 함우민은 피로로 가득한 미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잘생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권태로움과 지친 기색이 서려 있었다.그때, 비서 연유나가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입니다.”“음.”나직하게 대답하며 서류를 받아 든 함우민은 바로 자료를 살
박태규는 연정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분명 예쁘긴 했지만, 하지율만큼 여성적인 끌림은 느껴지지 않았다.눈앞의 얼굴은 맑고도 청아했다. 동시에 화사하고 요염했지만 흐트러짐이 없었다.아름다움은 농밀했으나 속되지 않았고 타고난 요물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박태규는 지금껏 온갖 유형의 미녀를 상대해 왔다. 그러나 하지율 같은 여자는 처음이었다.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았고, 매혹적이지만 요사스럽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근질거렸고, 이유 없이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쳤다.그 순간, 박태규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