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주용화가 이번에 단아 그룹을 상대로 벌인 일은 사실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좋은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손해만 컸다.남에게 자그마한 상처를 입히려고 자기 쪽에서 큰 살을 베어버리는 셈이었다.이렇게까지 가성비 없는 짓은 그래서 더더욱 아무나 하지 않는다.사업가일수록 득실 계산에 밝은 법이니까 설령 이익이 안 남더라도 이렇게까지 밑지는 선택은 잘 하지 않는다.유소린은 말을 이었다.“더구나 화야 씨가 거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우리가 이제 와서 손 떼 버리면 그 돈은 다 허공에 날아가는 거잖아요. 화야 씨가 돈이 많은 건 맞지만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에요. 돈을 그렇게 막 쓰면 안 돼요.”함우민은 감정이 치밀어 오른 듯 목소리를 높였다.“주용화의 돈이 좀 날아가면 어때서요? 어차피 그건 주용화가 지율 씨한테 진 빚이잖아요. 주용화는 지율 씨를 그렇게까지 망가뜨렸어요. 전 재산을 다 쏟아붓는다 해도 절대 다 못 갚아요.”그 말이 떨어지자 공기가 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하지율과 유소린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함우민을 바라봤다.함우민도 자신이 감정을 너무 드러냈다는 걸 깨닫고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서둘러 표정과 말투를 가라앉혔다.함우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는 그냥 지율 씨가 주용화에게 너무 많은 걸 빚지게 되는 게 싫어요. 지율 씨가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랑 지후도 얼마든지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요. 어쨌든 주용화는 지율 씨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잖아요. 상처가 조금 아문 것 같다고 아팠던 걸 다 잊어버리면 안 돼. 분명 우리를 아프게 만든 건 주용화인데 마지막에는 오히려 주용화가 생색내며 사람 마음까지 가져가게 둘 수는 없잖아요.”함우민은 유소린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살 수는 있어도 최소한 자존심과 존엄까지 버리면 안 돼요.”유소린은 정말 욕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함우민 씨,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우민 씨가 한 말은 틀린 건 아니에요. 화야 씨
함우민은 하지율을 바라보며 진심이라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주용화 같은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구를 돕겠어요? 분명 또 다른 함정을 파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함우민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거운 눈빛으로 유소린을 바라봤다.“만약 주용화가 단보현이랑 손을 잡는다면 그땐 지율 씨가 위험해져요.”평소에도 자기 사람 일에는 유난히 예민한 유소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확 굳었다.“함우민 씨,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화야 씨가 정말 지율이를 해칠 생각이었다면 왜 이제 와서 그래? 지율이가 연씨 가문에 막 돌아와서 아직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았을 때 손썼으면 그때가 훨씬 쉬웠겠죠.”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유소린은 비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예전에 화야 씨가 지율이한테 10조를 넣어 줘서 박원 그룹의 지분도 사들일 수 있게 해 준 건 벌써 잊었어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 함우민 씨의 회사는 손형원한테 공격받고 있었고 지율이는 남은 돈까지 전부 우민 씨의 회사에 넣어서 상황 정리하게 도와줬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남한테 도움은 도움대로 받아 놓고 고맙다는 말까지는 안 하더라도 최소한 뒤에서 험담까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어요. 그때 그 10조는 함우민 씨가 투자한 것도 아니면서 왜 제대로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까지 전부 착각하게 했잖아요.”함우민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함우민이 겨우 입을 열었다.“맞아요. 저는 주용화가 정말 싫어요. 지난번 일에도 제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나는 맹세할 수 있어요. 단 한 번도 지율 씨한테 해가 되는 일은 한 적 없어요.”유소린은 짜증이 난다는 듯 말을 잘라 버렸다.“정말 그렇다면 지율이랑 화야 씨 일에 더는 끼어들지 마세요. 화야 씨가 지율이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게 왜 나쁜 일인데요? 지율이의 주변에는 적이 한둘이 아니에요.
결국 그런 상처들은 언젠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도 몰랐다.그래서 주용화의 선택은 옳았다.주용화가 떠난 뒤에는 유소린조차 마음 한쪽이 휑한 기분이 들었다.하물며 날마다 주용화와 함께 지내 온 하지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율과 인사를 나눈 뒤 유소린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침대에 누운 유소린은 문득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주용화가 정말 아무것도 챙겨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방 안에 있던 예전에 하지율이 주용화에게 선물했던 생일 선물들이 사라졌다.만약 주용화가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다시 그 방에 들어오지 않은 거라면 그 선물들을 미리 챙겨 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떠날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주용화는 원래도 가끔 하지율의 일을 처리하러 밖에 나가고는 했기에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동안 유소린도 손여준의 곁에 있으면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지만은 않았다.유소린은 틈틈이 경영과 사업 쪽 지식을 배우고 있었고 모르는 게 생기면 강병주에게 물어보기도 했다.아주 복잡한 일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업무 정도는 이제 유소린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그날도 유소린은 하지율과 함께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들어오세요.”하지율이 말하자 문이 열리며 길고 반듯한 그림자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함우민은 늘 그렇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지율 씨, 소린 씨, 일은 다 끝났어요? 곧 점심시간인데 밥이나 함께 먹을까요? 제가 살게요.”유소린은 원래도 감정을 숨기는 편이 아니었다.함우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유소린은 무심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괜찮아요. 우민 씨, 저랑 지율아는 이미 점심을 주문해 뒀어요.”예전의 유소린은 함우민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하지만 함우민이 거의 주용화를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함우민에게 품었던
유소린은 하지율의 말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 손여준이 일부러 나한테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겠다고 말이야. 애초에 내가 손여준의 곁에 들어간 것도 그 사람이 손형원이랑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손여준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손형원의 편에 설 사람은 아니잖아. 기회만 생기면 손형원을 끌어내리고 싶어 할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어. 내가 정말 그걸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더라도 손여준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는 없는 거니까. 나한테 한 번 기회를 주는 편이 가능성이 전혀 없기보다는 1퍼센트라도 있다고 생각했겠지. 나라도 한 번쯤은 걸어 봤을 거야. 설령 들통나더라도 나 하나 내치면 그만이니까... 손여준의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손여준이 내 정체를 알아챘는지 아닌지는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었어. 나는 손여준을 접근한 목적이 처음부터 손형원을 상대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지.”하지율은 그동안 유소린이 아무것도 모른 채 휘둘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유소린은 이 상황을 누구보다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그리고 유소린은 실제로 그걸 해냈다.유소린이 만들어 준 기회가 있었기에 하지율의 일행도 손형원에게 제대로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유소린은 하지율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지율아, 일단 들어가서 쉬어. 참, 예전에 네가 나 쓰라고 남겨 준 방이 아직 있지? 오늘부터는 내가 화야 씨 대신 네 곁에 남아서 같이 있어 줄게.”하지율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유소린을 바라봤다.유소린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내가 화야 씨만큼 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진짜 열심히 해 볼게.”하지율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그렇게 둘이 함께 홀 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한 저택 안에 남녀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유소린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지율아, 누가 싸우고 있는 거야?”하지율은
유소린은 솔직히 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다시 구석구석 뒤져 보고 싶었다.하지만 하지율의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걸 보니 유소린도 이 일은 그렇게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율에게는 무엇보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유소린은 하지율을 보며 말했다.“지율아, 우리 이제 돌아가자.”그러자 하지율이 짧게 대답했다.“좋아.”밖에는 이미 비가 그쳤지만 공기는 여전히 축축하고 차가웠다.차에 올라탄 하지율은 저도 모르게 몸을 한 번 떨었다.유소린은 곧바로 히터를 켰다.“지율아, 추워? 겉옷이라도 걸쳐줄까?”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안 추워.”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몸이 생각보다 훨씬 지쳐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가 잔잔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하지율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하지율은 꿈을 꾸었다.꿈속에서는 하지율과 주용화가 처음 만났던 날이 다시 떠올랐다.그날 주용화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하지율의 차 앞에 나타났다.하지율은 그때 주용화의 정체를 의심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단지 하지율에게 접근하려고 일부러 차에 몸을 던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목숨을 내놓은 짓처럼 느껴졌다.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하지율은 결국 주용화를 곁에 두었다.목숨까지 걸어가며 일부러 하지율에게 다가온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그 뒤로 하지율은 오랫동안 주용화를 경계했다.주용화가 하지율과 함께 M국까지 따라왔을 때도 하지율은 주용화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오히려 주용화는 머리가 비상했고 상황 판단도 빨라서 중요한 순간마다 몇 번이고 하지율을 도와주었다.“지율아, 일어나. 다 왔어.”유소린의 목소리에 하지율은 천천히 눈을 떴다.눈앞에 보인 건 익숙한 연씨 별장이었다.유소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하지율에게 말했다.“지율아, 화야 씨도 이미 떠났고 지금 네 곁에는 일손도 부족하잖아. 그래서 내가 다시 네 옆에서 일하려고 해. 요즘 손형원은 손씨 가
뒤로 갈수록 유소린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임채아를 갖고 논 건, 솔직히 임채아가 자초한 일이었다.하지만 하지율은 이 일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었다.그리고 진짜 원흉은 다른 사람이었다.임채아는 이제 욕하는 것도 지겨울 지경이었다.고지후 역시 예전에는 정말 임채아한테 홀린 사람처럼 굴긴 했다.하지만 고지후의 곁에는 장하준이나 함우민 같은 절친도 있었고, 최혜은 역시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렇게 사방에서 흔들어 대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어느 정도 세뇌당한 것도 아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물론 가장 중요한 건, 고지후가 임채아의 본모습을 알게 된 뒤의 태도였다.적어도 그 뒤로 고지후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얼마 전에 주용화의 이야기를 꺼낼 때도 쓸데없이 말을 보태거나 과장하지 않았고 자기 감정을 섞어 주용화를 일부러 깎아내리려 하지도 않았다.그 점 때문에 유소린은 고지후에 대한 인상이 아주 조금은 좋아졌다.그렇다고 해서 주용화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면 유소린은 차마 그를 더 몰아붙일 수가 없었다.나쁜 사람이라고 하자니 누군가에게 잘해 주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그런데 또 좋은 사람이라고 하자니 재미를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아마 하지율을 위해서도 주용화는 적지 않은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그 사람들은 하지율과는 원한이 있었을지 몰라도 주용화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예전의 하지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주용화가 하지율을 위해 걸림돌을 치워 버린 일은 본질적으로 보면 손형원이 연정미를 위해 하지율의 손을 망가뜨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피해자의 처지에서 보면 주용화 역시 용서 못 할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주용화가 모두에게 다 잘해 주는 사람이라면 그건 또 지나치게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란 뜻이 된다.그래서 유소린도 마음이 복잡했다.하지율을 설득하려 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반면 하지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율은 최근 정시온의 몸에 상처가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정시온에게 물을 때마다 그는 실수로 다쳤다거나 체육 시간에 다쳤다는 등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하지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정시온이 낮에 유치원에 있을 때 하지율은 유소린에게 이 일을 말했다.유소린은 무심코 말했다.“다른 아이들과 싸운 건 아니야?”하지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시온이는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어. 선생님들도 칭찬할 정도로 말을 잘 듣는 아이야. 싸우지는 않을 거야.”유소린이 말했다.“시온이는 싸움질하는 아이는 아니야. 선생님한테는 물어봤어
“... 지후야, 괜찮아. 내가 실수했어. 내 잘못이야.”고지후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어차피 깨진 컵이야. 주울 필요 없어.”“하지만 윤택이가 직접 만든 거잖아. 이렇게 부서지다니... 너무 아까워서 그래.”임채아는 여전히 주우려는 듯 손을 뻗으며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어쩌면 복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고지후가 그녀를 말렸다.“줍지 마. 또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이 컵이 마음에 든다면 윤택이더러 다시 만들라고 하면 돼.”임채아는 아쉬운 척하며 계속 주우려 했지만 고지후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젠장! 이 미친 여자가 감히 우리한테 도전하려 들다니!”장하준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후야, 계속 올려! 내가 보기엔 저 여자가 널 이길 수 있을 리 없어!”하지율이 말했다.“제 예산은 1,600억이에요. 고 대표님이 1,600억 이상 부르신다면 이 목걸이는 고 대표님의 것이죠. 하지만 예산이 저보다 적으시다면 저와 경쟁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네요.”하지율은 고지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어차피 당신은 나 못 이겨요.”“1,600억?!”장하준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했
그 기자가 불쑥 말했다.“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죠.”하지율이 말했다.“제가 돈을 좋아한다고요? 돈을 좋아했으면 왜 기부했을까요? 내가 인생을 두 번 살더라도 이렇게 많은 돈을 다 쓸 수 없는데 왜 제가 직접 쓰지 않고 기부했을까요?”그 기자는 멍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다. 그녀가 정말 돈을 원했다면 이렇게 많은 돈을 혼자 쓰면 될 텐데 왜 기부했을까?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일을 했다는 논리에는 큰 허점이 있었다.그 기자는 할 말을 잃었지만, 또 다른 연예 기자가 하지율을 공격했다.“하지율 씨, 제가 알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