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순진하긴.”손형원은 하지율을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연씨 가문이 협력을 중단하면 위약금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 네 손을 못 쓰게 만든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설령 널 죽였다 해도 이 협력은 계속되었겠지. 그 정도도 모르는 모자란 게 감히 연경 그룹에서 일할 생각을 하다니.”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여유롭게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통쾌한 듯한 웃음이었다. “몇 년 더 공부하고 오는 게 낫겠어.”“...”그의 도발에도 하지율은 담담하기만 했다. 분노의 기색조차 없었다.그녀는 부드럽게 되물었다.“그럼... 이 계약 자체가 손형원 씨가 절 가지고 놀려고 만든 거였군요?”“맞아.”진상이 모두 드러난 뒤라, 손형원은 위선적인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난 그저 널 가지고 놀았을 뿐이야. 네가 그걸 진짜로 믿을 줄은 몰랐지만.”그가 코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화가 나면 날 고소해도 돼. 얼마나 한가해야 법원이 이런 유치한 장난에 시간을 써줄지... 나도 궁금하네.”‘나는 지킬 생각이 없는데 어쩔 거냐, 라는 거군.’손형원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하기만 했다. 하지율은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볼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연태훈과 연재영, 다른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여러분도 같은 생각이신가요?”연태훈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지율아, 아버지가 방법을 찾아볼게. 얼마를 잃든 널 다치게 한 이 자식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마.”가만히 듣고 있던 주용화가 그를 비웃으며 끼어들었다. “입으로만 그럴싸한 말 하지 마시고 행동으로도 좀 보여주시죠. 손형원 씨가 연씨 가문 땅에서 이렇게 설치고 있는데 한 번쯤 단단히 손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합시다. 하지율 씨 손을 망가뜨렸으니, 공평하게 그쪽도 손을 부러뜨리는 겁니다. 그 정도면, 최소한의 균형은 맞춘 셈이겠죠?”손형원은 이 와중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그는 자기 집 소파에 기대앉은 사람처럼 뻔뻔하게 코웃음 쳤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연태훈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손씨 가문과의 모든 협력을 취소할 거다. 주주총회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하마. 너는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걱정하지 말거라, 어떤 대가를 치르든, 손씨 가문과의 관계는 반드시 끊을 테니.”온화한 목소리였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교활함은 연재영 삼 형제보다 훨씬 깊고 교묘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의 말만 듣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큰 결단도 서슴지 않는 아버지’ 라며 감동했을지도 모른다.앞서 연재영과 연상진은 협력을 취소하려면 막대한 대가가 따른다며 머뭇거렸지만, 연태훈은 마치 못을 박듯 대가가 얼마나 크든 취소하겠다고 단정적으로 선언했으니.그러나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율은 더 이상 가족의 온기에 목매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연태훈이 보여주는 모든 표정과 뉘앙스는 그녀에게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겨보려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율은 잔잔히 웃었다.“저도 회사 내부 일이 복잡하다는 건 알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저도 굳이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우리 연씨 가문이 먼저 외부에 공식 성명을 내요. 손씨 가문과의 모든 협력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으로요. 그다음 절차는 천천히 논의해도 충분하겠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나긋나긋한 말 속에 담긴 내용은 협약대로 하라는 압박이 담겨 있었다.“손현원 씨가 제 손을 이렇게 만든 상황에... 설마 아직도 손씨 가문과 협력을 이어가고 싶으신 건 아니죠?”하지율의 물음에 연태훈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그럴 리가! 저런 인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말을 마친 그는 곧장 고개를 돌려 손형원을 노려보았다.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 속에는 감춰지지 않는 혐오가 서려 있었다.“손형원... 끝까지 발뺌하더니... 할 말도 없는 건가!?”“?”갑작스러운 연태훈의 말에 유소린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그의 행위는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오만을 넘어선 건방짐 그 자체였다.분노에 치밀어 당장이라도 손형원에게 달려들려는 연태훈을 연재영이 급히 붙잡았다.“아버지, 제발... 지금은 진정하셔야 합니다.”하지만 연태훈의 얼굴은 분노에 붉게 달아올랐고 가슴은 거친 숨을 들이쉼에 따라 격렬하게 들썩였다.“진정!? 저 자식이 지율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어!!! 당장이라도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진정해!!!”그러나 하지율의 얼굴에 흔들림이라고는 엿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눈빛의 그녀는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갈기갈기 찢을 필요는 없어요. 계약대로 하면 되니까요. 지금 당장 손씨 가문과의 협력을 전부 취소하시면 됩니다.”주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연태훈 씨가 이렇게까지 분노하시는 건 결국 처음에 친딸의 말을 믿지 않고 외부인을 더 신뢰한 일 때문이겠죠. 연재영 씨도 방금 하지율 씨가 손형원 씨를 모함하고 도망치려 했다하지 않았습니까.”그 불난 집에 기름 붓는 듯한 말에 연씨 가문 삼 형제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물들었다. 반박한 여지도 없었지만 부정하자니 체면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명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완벽히 짓밟힌 거나 다름없었다. 이 모든 게 손형원 때문이었다. 연재영은 고개를 돌려 하지율을 바라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 속에 희미한 후회가 떠올랐다. “... 미안하다, 하지율. 우리가 너를 오해했어. 내 잘못이야. 손형원 씨 문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 우리는 네 의견에 따를게.”하지율은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는 굳이 복수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계약대로 하시면 됩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에서 늘 갖고 다니던 계약서를 꺼내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서류를 넘기는 손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이 계약서, 아버지를 포함해서 연씨 가문의 모두가 동의한 내용 맞죠.”그리고 고개를 살짝 틀어 유소린을 불렀다.“소린아, 다시 읽어줘. 아버지랑 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은 모두 손형원의 악랄한 수법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장면은 상상보다 훨씬 더 끔찍했고, 더 깊은 혐오를 끌어올렸다.게다가 그가 손댄 상대가 자기 가족이라는 사실은, 순식간에 공기의 온도를 뒤틀어 놓았다.연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은 동시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모두 영상을 보기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연정미는 화면 속 처참한 장면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불쌍하다는 감정이 스쳤는지, 그녀는 곧 고개를 돌려 화면을 외면했다.오직 손형서만이 눈을 똑바로 뜬 채 화면을 응시했다.그녀의 입가에는 끔찍하게도, 통쾌해하는 기척이 희미하게 번졌다.다시 끔찍한 그날의 기억을 마주한 유소린은 분노에 눈가를 붉혔다. 손형원에 대한 증오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뛰쳐나가 그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가까스로 감정을 억눌렀다. 시간은 더없이 빠르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끔찍하게 더디게 흘러갔다.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마침내 화면의 재생이 멈추고 영상실은 순식간에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겼다.그때, 맑고 투명한 남자의 목소리가 고요를 깨고 울렸다.“여러분은 아직도 하지율 씨가 손형원 씨를 모함했다고 생각하십니까?”“...”“...”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정적은 공기마저 굳혀버릴 듯 무겁고도 차가웠다.연씨 가문 사람들은 충격과 불신, 분노와 혼란이 뒤엉킨 기묘한 표정으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나 주용화는 그들의 반응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차분히 입을 열었다.“협약에 따라 오늘부로 연씨 가문과 손씨 가문의 모든 협력은 즉시 중단됩니다. 손형원, 당신이 졌습니다. 더 할 말 있습니까?”손형원의 얼굴은 소름 끼칠 만큼 음흉하게 찌그러졌다. 그는 주용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이 영상...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그는 순간 하지율의 손을 망가뜨린 날의 일을 떠올렸다. 어렴풋이 단보현이
“우리가 증거를 못 내놓으면... 오늘은 이 문을 살아서 나가기 힘들겠네요.”연재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체면이 무너지는 티가 역력했지만 그는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말도 안 돼. 지율이는 우리 가족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다치게 둘 리가 없죠.”그 말에 주용화가 이제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하, 그래서 하지율 씨를 그렇게 아끼셨던 거군요. 아까 하지율 씨가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쫓겼으니... 당연히 직접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주시겠죠? 친오빠로서.”그는 일부러 연재영의 말을 끊고 연상진을 쳐다보았다. “연상진 씨, 방금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 안다고 하셨죠.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면 저희에게만 알려주셔도 됩니다. 복수는 못 해도 적어도 조심할 수는 있을 테니까요.”주용화의 은근한 압박에 연재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차마 그 추격자들이 자기 수하들이란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때, 손형원이 옆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이 사방을 도망 다니느라 허비한 시간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계속 장황하게 둘러대는 걸 보니 화제를 돌리려는 모양이군.”주용화는 아무 반응 없이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연재영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먼저 당신 문제부터 정리합시다. 연재영 씨, 이 저택에 빔프로젝터쯤은 있겠지요?”연재영은 마지못해 주용화를 미디어룸으로 안내했다.거실에 있던 모두가 연재영을 따라 미디어룸으로 향했다. 작은 영화관처럼 꾸며진 공간이었다.모두가 자리에 앉자 연상진이 먼저 입을 열어 빈정거렸다. “아무 영상이나 짜깁기해서 우릴 속일 생각은 아니겠지?”하지율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되려 주용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연상진 씨가 원하는 결과가 아닌가요? 그래야 원시 주식을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무, 뭐?”연상진이 낯을 굳힌 채 코웃음 쳤다.“나누긴 뭘 나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그에 주용화는 못 박듯 말했다.“그렇다면 원시 주식이 목
연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빛이 일제히 굳어갔다.하지율이 이렇게 뻔뻔하게, 피해자처럼 큰소리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었다.그 당당함은 기이할 정도였고, 동시에 집안의 균형을 교묘하게 흔드는 데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성격이 급한 연상진이 가장 먼저 폭발했다. 그는 하지율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율, 계속 그렇게 연기할 생각이야?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가 모를 줄 알아?”하지율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자리에 멈춰 섰다. “보아하니 연상진 씨는 누가 이번 일을 주도했는지 알고 있나 보네요.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저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를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는데요?”그녀는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질문하는 태도조차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묘하게 여유로웠다.“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연상진 씨가 생각하기에 내가 저렇게 죽을 뻔한 추격을 받을 만큼 천인공노할 짓을 한 게 대체 뭐죠?”연상진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너 아까 분명...”하지만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입이 닫혔다. 이내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본인이 하지율이 만들어 둔 ‘피해자 프레임’ 그대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추격, 죽을 뻔한 추격, 원한... 하나하나가 듣기만 해도 무서운 단어였지만 더 무서운 건... 그 단어들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점이다.연상진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맞은 듯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는 속으로 연상준을 맹렬히 원망했다.‘그러게 왜 쓸데없이 일을 키워서!!!’연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뒤틀렸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연태훈이 애써 분위기를 수습하러 나섰다.“그래, 공항에 갔다고? 친구 배웅하러?”하지율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친구가 오늘 비행기로 출국했거든요.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올 거예요.”그녀가 시선을 연재영에게 옮기며 말을 이었다. “연재영 씨는 아까 내가 도망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