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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초향
하지율은 고지후의 뒤에 서 있는 고윤택을 돌아보았다.

지금 하지율에게 말하고 있지만 걱정스러운 시선은 줄곧 임채아에게 향해 있었다.

전에 임채아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고지후와 고윤택은 몹시 긴장했다.

한번은 그들 네 명이 함께 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임채아가 더위를 먹은 건지 아니면 병이 발작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갑자기 쓰러지려 했다.

그 순간 고지후와 고윤택은 동시에 임채아에게 달려갔다.

다급한 나머지 고지후가 하지율을 밀어 넘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나중에 고지후가 그녀의 손에 붕대가 감긴 것을 보고 어쩌다가 다쳤냐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가냘픈 목소리가 하지율의 생각을 끊었다.

“윤택아, 내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해서 그런 거지, 네 엄마 탓이 아니야.”

임채아는 고윤택에게 고개를 저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몸이 너무 약해서 그래...”

고윤택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봤어요. 엄마가 채아 이모를 밀어 넘어뜨리는 걸요.”

그러고는 하지율을 돌아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잘못을 했으면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잖아요. 엄마는 어른이니까... 말 바꿀 리는 없겠죠?”

하지율은 고윤택의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일상적인 학습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고윤택은 세 개 국어에 능통했고 말솜씨가 뛰어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말문이 막히게 할 때도 있었다.

고지후의 어머니는 고윤택의 영리함이 고지후가 어릴 때와 똑 닮았다고 했다.

지금 고윤택은 예쁜 누나를 위해 그녀에게 대들었다. 어른이자 고윤택의 엄마로서 당연히 모범을 보여야 했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아이에게 지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를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하지율은 임채아 주변에 있는 고지후와 고윤택을 쳐다보았다. 문득 자신보다 그들이 더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미 이 부자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고윤택의 태도를 본 순간 하지율은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그녀는 고윤택의 눈을 빤히 보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잘못을 했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하지율은 멈칫했다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해?”

예전 같았다면 하지율은 분명 고윤택을 위해 타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고윤택이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엄마가 채아 이모를 밀어버리는 걸 봤단 말이에요.”

하지율은 변명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엄마가 밀었다고 해서 꼭 엄마 잘못이라고 누가 그래?”

“엄마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거라고 했잖아요...”

하지율이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지만 괴롭힘을 가만히 당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고 했어. 만약 어떤 사람이 계속 선을 넘으면서 널 괴롭힌다면... 절대 봐주지 마.”

고윤택이 영특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일 뿐이었다.

하지율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바람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그때 강병주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윤택아,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강병주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고지후와 고윤택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다. 그제야 강병주가 있었다는 걸 안 듯했다.

고윤택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병주 아저씨?”

고지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병주 씨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강병주는 하지율의 선배이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다. 고지후도 그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고 하지율에게서도 그에 대해 들었었다.

하지율은 강병주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 강병주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강병주 혼자 남게 되었다.

마침 그때 하지율의 어머니가 강병주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제자로 삼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강병주는 늘 침울했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율이 무려 3년이나 노력한 끝에 강병주는 그녀를 후배이자 친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지후는 강병주를 만난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그를 몹시 싫어했다.

“지후 씨는 전 여친도 만나는데 지율이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선배랑 밥을 먹으면 안 되나요?”

강병주의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고 조롱도 가득했다. 그리고 고지후와 임채아의 파렴치한 관계를 들춰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잘생긴 얼굴도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하지율, 집에 가자.”

그런데 하지율이 덤덤하게 거절했다.

“싫어. 아직 선배랑 식사 다 하지 못했어.”

고지후의 목소리에 차가움이 감돌았다.

“하지율,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할게. 집에 가자.”

하지율은 지금 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계속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단순히 냉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무조건 다른 방법을 써서 그녀를 굴복시킬 것이다.

그녀는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밤을 영원히 잊지 못했다. 온몸이 젖은 채 고지후의 발아래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고윤택을 돌려달라고 애원했었다.

고지후는 하지율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그녀의 눈물은 빗방울처럼 바닥에 떨어졌고 임채아가 물에 빠진 것에 대해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상 그녀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생각에 하지율은 소리 없이 웃으며 붉은 입술로 두 글자를 내뱉었다.

“싫어.”

고지후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율, 결과가 어떨지 잘 생각해.”

“지후 씨가 무슨 방법을 쓰든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그녀의 약점은 고윤택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고윤택도 포기했기에 고지후는 더 이상 그녀를 협박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율이 강병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배, 여기 공기가 안 좋네요. 다른 곳에 가서 밥 먹을까요?”

강병주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율은 더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가방을 챙기고는 떠나려 했다.

뒤에서 고윤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정말 채아 이모한테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율은 발걸음을 잠깐 멈췄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고지후의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 고윤택도 하지율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예쁜 얼굴에 약간의 당혹감이 떠올랐다.

‘엄마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임채아는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하지율에게 향한 걸 본 순간 얼굴에 싸늘한 기색이 스치더니 갑자기 낮은 신음을 냈다.

“으악.”

고지후와 고윤택의 시선이 다시 임채아에게 쏠렸다.

창백한 얼굴에 서 있기도 힘든 듯 몸을 비틀거렸는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지후의 눈빛이 살짝 변했고 망설임 없이 임채아를 안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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