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사로 돌아온 하지율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러자 린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summer님, 전에 당신도 인생에서 큰 바닥을 친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물어봐도 될까요?]하지율은 답장을 보냈다.[저는 운이 좋았어요. 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 사람이 저를 붙잡아 줬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린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그 사람은 당신에게 많이 중요한 사람인가요?]그 문장을 본 하지율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린은 원래 이렇게 사적인 질문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하지만 하지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답했다.[중요한 사람인 건 맞아요. 하지만 남녀 간의 감정은 아니에요.]린이 다시 물었다.[그 사람이 당신의 어둠 속 한 줄기 빛이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summer님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하지율은 천천히 답장을 적었다.[감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저를 도와줬고, 저는 그게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감사와 구원이 곧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그러자 린은 곧바로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summer님의 말은 구원이 꼭 사랑은 아니라는 뜻인가요?]하지율은 바로 답장했다.[감정은 사람마다 다르죠. 적어도 저에게는 감사와 구원이 곧 사랑은 아니에요.]린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그럼 감사와 구원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하지만 하지율 역시 연애 경험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보고 한참 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그러다 문득, 하지율은 이렇게 되물었다.[린 씨,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나요?]휴대폰을 보고 있던 손형원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곧바로 하지율의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감정이라는 건 참 단순하기도 하고, 또 복잡하기도 해요. 한 번 눈길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또 오랜 시간 함께 지내고,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야
손형원은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하지율과 주용화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자 손형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분은 아직도 저한테 할 말이 남았어요?”하지율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주용화도 역시 더는 손형원을 상대하지 않고 다시 하지율의 맞은편에 앉았다.주용화의 시선이 하지율을 단단히 붙들었다.“지율 씨, 손형원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하지만 하지율은 주용화를 오래 봐 왔다.그래서 하지율은 알 수 있었다.지금의 주용화는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긴장하고 있었다.하지율이 말했다.“연정미가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들었어요. 손형원은 그게 제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마 그 일로 저한테 따지러 온 거겠죠.”그러자 주용화의 어두운 눈빛이 아주 잠깐 가라앉았다.“지율 씨.”주용화가 낮게 물었다.“오늘 손형원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정말 그 이유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오늘의 손형원도 이상했지만 오늘의 주용화 역시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하지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물었다.“화야 씨, 왜 그러세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주용화가 시선을 내리깔면서 평소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닙니다.”하지만 하지율은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화야 씨, 저한테 숨기는 거 있으세요?”주용화는 마치 농담처럼 말했다.“그건 너무 많죠. 지율 씨는 그중 어떤 걸 알고 싶어요?”그러자 하지율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제가 묻기만 하면 정말 다 말해 주실 거예요?”주용화가 말했다.“네. 지율 씨가 묻는다면 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릴 겁니다.”하지율은 알고 있었다.주용화의 신분은 절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주용화에게는 감춰 둔 일도 말하지 않은 사정도 많았다.하지율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주용화가 말하지 않은 건, 곧 주용화가 말하고 싶지
손형원은 하지율이 이토록 경계하는 모습을 보자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그러더니 곧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심하세요. 지금은 지율 씨의 손에 관심 없어요.”하지율은 눈을 들어 손형원과 시선을 마주쳤다.“지금은 제 손에 관심이 없다고요? 그럼 지금은 뭐에 관심이 있는데요?”손형원의 깊고 어두운 시선이 하지율에게 머물렀다.손형원은 얇은 입술을 살짝 열더니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다.“요즘은 지율 씨라는 사람 자체가 좀 흥미롭더군요.”그 말에 대한 하지율의 반응은 딱 한 마디였다.“미쳤네요.”손형원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지난번에 병원에서 지율 씨가 화판을 들고 있는 걸 봤어요. 지율 씨의 손은... 그림 그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것 같던데요.”손형원이 몇 번이고 자기 손 이야기를 꺼내자 하지율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손형원 씨,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손형원은 summer가 하지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뒤부터, 온갖 단서를 하나하나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summer의 SNS 기록은 물론이고 얼마 전까지 주고받았던 메일까지 전부 다시 훑어봤다.하지만 대화만으로는 summer가 하지율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대신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예전에 summer가 오랫동안 메일 답장을 하지 않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그때 하지율이 주용화와 함께 외부 출장을 나가 있었다.그리고 며칠 전, summer가 요즘 바빠서 한동안 연락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시기도 그때 하지율은 바로 지분 문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손형원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머릿속에는 summer와 관련된 생각만 가득 맴돌았다.사실 손형원은 자신도 왜 이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조금 전에 손형원은 집에서 하지율과 주용화가 함께 내려와 식사하러 가는 모습을 봤다.무슨 마음에서였는지 손형원 역시 뒤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됐다.손형원은 원래 우물쭈물하는
손형원은 시선을 내리깔고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만 손형원의 눈빛은 어딘가 이상했다.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까지 뒤섞여 있었다.마치 한 번도 하지율을 제대로 본 적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먹고 그녀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런 시선이 하지율에게는 몹시 낯설고 불편했다.하지율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손형원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세요?”하지율의 눈빛은 차갑고 단단했다.주용화를 마주할 때의 느슨함과 신뢰가 섞인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손형원이 직접 두 장면을 모두 본 적이 없었다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손형원은 어쩐지 또다시 summer가 떠올랐다.summer 역시 손형원에게 늘 인내심 있고 다정했다.마치 하지율이 주용화를 대할 때처럼 말이다.‘summer가 정말 하지율일까?’하지율은 손형원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만 바라보자 점점 더 불쾌해졌다.그러자 하지율이 차갑게 말했다.“손형원 씨, 무슨 일인지 말씀하시죠.”손형원은 입술을 달싹였다.원래는 하지율에게 summer가 맞는지 물어보려 했다.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연정미는 지율 씨가 사람 시켜서 때린 거예요?”‘연정미...’하지율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연정미가 맞았다고요?”하지율은 진심으로 믿기지 않았다.‘M국에서 감히 연정미를 때릴 사람이 있다니.’연정미를 좋아하는 남자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누가 연정미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면 곧바로 남자들이 몰려들어 대신 복수해 줄 정도였다.‘연정미가 맞기까지 했다니 대체 누가 그런 배짱을 부린 걸까?’하지율이 머릿속으로 범인을 가늠하고 있을 때, 손형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지율 씨가 아니에요?”하지율은 비웃듯 말했다.“연정미 씨는 손형원 씨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여자를 때리는 건 고사하고 온라인에서 몇 마디 떠드는 것만으로도 손형원 씨는 사람 손부터 망가뜨리던 분 아니었어요?”
이상하게도 손형원은 그 순간만큼은 차마 묻지 못했다.자신도 모순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한편으로는 하지율이 summer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자기가 그토록 높이 평가해 온 화가이자 그동안 그렇게 오래 연락을 주고받았던 summer가 하필 자신의 숙적인 하지율이라니.상대가 남자였어도, 나이 든 여자였어도, 지금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다음 날.레스토랑 안, 하지율과 주용화가 마주 앉아 있었다.주문을 마친 뒤,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화야 씨, 이번 일은 정말 화야 씨 덕분에 넘길 수 있었어요. 괜히 고생만 시켜 드린 것 같네요.”주용화는 옅게 웃었다.“지율 씨가 저를 믿어 주시고 끝까지 맞춰 주시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그는 하지율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사실 저도 이번엔 도박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잘못됐으면 우리 둘 다 한 번에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저는 기반도 없고 숨겨 둔 카드도 없어요. 이기려면 결국 걸어 봐야 하잖아요.”하지율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사람이 결과만 원하고 위험은 외면하면 안 되죠. 투자도 마찬가지잖아요. 수익률이 높을수록 위험도 커지는 거예요. 이번에 베팅하지 않았으면 판을 이렇게까지 뒤집는 것도 어려웠을 거예요.”주용화가 물었다.“제가 멋대로 움직였다고 원망하지는 않아요?”하지율은 웃었다.“결국 저를 이기게 해 주셨잖아요. 좋은 건 다 얻어 놓고 이제 와서 괜히 점잖은 척하고 싶지는 않아요.”그 말을 듣는 순간, 주용화의 눈빛 아래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잔잔하게 출렁였다.한참 뒤에야 주용화는 입을 열었다.“지율 씨는 점점 더 윗자리에 설 사람 같은 아우라가 짙어지고 있습니다.”주용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진심이 깔려 있었다.“사람이 스스로 기꺼이 목숨까지 걸게 만들고도 오히려 지율 씨에게 믿음
그림과 거의 같은 각도가 나오는 병실은 두 군데였다.그중 한 곳이 바로 하지율과 주용화가 함께 있었던 병실이었다.‘이게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그 순간만큼은 손형원도 확신할 수 없었다....표서준의 정체가 드러나고 주주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내통자 몇 명까지 찾아낸 뒤에야 지분을 둘러싼 소란은 겨우 끝났다.하지율도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표서준은 회사 기밀 유출 혐의로 결국 감옥에 들어갔다.관련 금액이 워낙 컸던 탓에 아마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주주들 쪽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그들은 직접 기밀을 빼돌린 건 아니었고 일이 터졌을 때 옆에서 판만 키우고 불만 지핀 정도였다.그래서 법적으로 손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물론 그 부분까지 하지율이 직접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만성휘와 이 이사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다.한바탕 버티고 물어뜯고 난 뒤, 연상진도 결국 4퍼센트의 지분 보상받아 가는 선에서 체념했다.이제는 더 이상 난동을 피우지도 않았다.다만 요즘 연상진은 회사에는 신경도 못 쓰고 매일 소아린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하지율이 연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마다 멀리서 두 사람이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그리고 하지율이 공짜로 챙긴 10퍼센트 지분에 대해서는 연씨 가문 사람들도 정말 되찾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결국 손을 떼는 수밖에 없었다.하지율은 가끔 자기 가족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그렇게 큰 이득을 자기한테 빼앗기고도 겉으로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연태훈이나 연재영도 하지율을 볼 때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말을 걸어 왔다.하지율은 문득 생각했다.‘어쩌면 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아무리 큰 이득을 가져갔다 해도 나중에는 결국 전부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지분이든 뭐든 잠시 하지율의 손에 맡겨 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태연할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어쨌든 이번 일을 이렇게
임채아는 하지율을 슬쩍 쳐다보며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을 내뿜었다.“나는 얻는 게 없더라도 이 살인범을 그냥 둘 수 없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거야!”고지후의 눈썹이 무의식적으로 찌푸려졌다.“채아야, 진정해.”“네가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진정해!”임채아의 눈동자가 붉어지며 제법 진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채아야...”고지후가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뭐라고 말하려는데 감정이 격해진 임채아가 말을 가로챘다.임채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후야, 스튜디오는 다시 찾으면 되고 작곡가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어쩌면 누군가는 하지율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 좋을 것이다.하지만 연정미는 달랐다.연정미는 야심 있고, 목표가 있는 여자였다.연정미는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그리고 연태훈의 모든 요구를 다 잘 해낼 자신도 있었다.지금 사회는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사실 평등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여자로서, 연경 그룹에 들어간다면 다른 명문가들의 후계자한테 무시를 당할 것이다.하지만 다른 명문가 아가씨들과 교류하기는 더욱 쉬워질 것이다.예전에 들은 바에 따르면, 연태훈이 기억을 잃은 그 몇 년 동안, 연경
하지율과의 이혼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은 아픈 탓인지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지후야, 지후야, 내 말을 듣고 있어?”임채아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방해하자 정신을 차린 고지후는 마음속의 이상한 감정도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율에게 전화해서 당장 여기 오라고 해.”임채아는 고지후가 하지율에게 따져 물으려는 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고지후의 전화를 받은 하지율은 아침을 먹고 나서야 느긋하게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안에서
‘지후가 나서서 강병주에게 손을 쓴 거구나. 하긴, 지금 하지율을 건드릴 순 없으니 주변 사람들을 건드려서 혼내주는 것도 채아를 위해 복수하는 방법이니까.’임채아는 두 눈에 담긴 기쁨을 감추며 나지막이 말했다.“지후야, 하지율 씨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그만두는 게 어때?”하지율이 피식 웃었다.“이렇게 쉽게 그만둘 거면 그 고생을 하면서 내게 강요하진 않았겠죠.”고지후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지율을 바라보았다.“하지율, 너는 지금 나와 협상할 자격이 없다는 걸 명심해.”하지율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일어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