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천우 자네는 진정 그 여인을 직접 마주하고도 느껴지는 바가 없단 말인가?”
“아름답고 고운 여인이었어. 그럼 된 것 아닌가?”
“이 친구야. 방금 그 여인이 그 유명한 어리란 말일세!”
“유명하다고?”
천우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름이 알려진 여인이란 말인가?”
“세상에! 자네 진심인가? 정말로 들어보지 못하였단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평생을 산골짜기에서…….”
“그렇다면 말을 말게. 조선 팔도 제일의 미색! 선녀가 지상에 강림하였다는 여인일세!”
이포교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며
‘미인이다.’어리라는 여인과 처음으로 마주보고 섰을 때, 대뜸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하늘 아래 그 누구도 이 여인을 가리켜 아름답다 하지 않을 리 없었다.깊은 숲속에 홀로 고고하게 피어난 백일홍.가장 좋은 실과 기름으로 짜낸 비단.수백 년을 견뎌온 질 좋은 원석을 최고의 장인이 목숨처럼 벼려낸 보석…….어떤 미사여구라도 눈앞의 여인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었다.왕이라고 해도 이 여인의 마음에 들려 눈치를 살피지 아니할리 없었고, 도를 닦은 승려조차도 이 여인에게는 흑심을 품고 달려들었으리라.치명적인 미색의 여인이었다.그러나 천우에게는…….‘그뿐이다.’희한한 일이었다.천우 앞에 서 있는 여인은 분명 천하를 뒤흔들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하지만 천우에게는 그저 이름난 절경(絶景)을 보는 듯한 기분만 들게 하였다.높은 폭포, 굽이치는 강, 쭉 뻗은 산을 보고 감탄은 하되, 그것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 것처럼.한양에 처음 도달한 날, 흔한 기녀들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천우였다.그치들과 비교도 안 되는 양갓집의 규수가 바로 앞에서 속삭이고 있음에도 마음속에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으니, 실로 기묘한 일이었다.너무나 압도적인 미(美)와 만난 탓일까.살아있는 것과 마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he
‘내 어머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항상 비밀을 감춘 듯 보이셨다.’새삼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하게 살아가던 그때가.‘그리고 나는 물을 다룰 줄 안다.’모호한 유년기의 기억.은둔하며 살아가던 아버지.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마술.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얄궂게도 말이다.‘그렇다고 해도…….’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마음으로는 믿음이 가질 않았다.‘내가 용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니,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답을 내려주실 분은 오직 한분뿐.’잘 알고 있었다.안개 낀 것처럼 뿌연 머릿속을 단번에 일깨워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리고 사람이라면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아버님.’백사성. 아마 하늘 아래 천우를 가장 잘 알고 있을 한 사람.아버지의 확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그렇기에 갑작스러운 포교로서의 전직도 냉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던가.‘부디 네 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주상께서 남기신 마지막 당부였다.모든 일은 백사성의 소재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셨다.
‘내 어머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항상 비밀을 감춘 듯 보이셨다.’새삼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하게 살아가던 그때가.‘그리고 나는 물을 다룰 줄 안다.’모호한 유년기의 기억.은둔하며 살아가던 아버지.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마술.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얄궂게도 말이다.‘그렇다고 해도…….’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마음으로는 믿음이 가질 않았다.‘내가 용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니,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답을 내려주실 분은 오직 한분뿐.’잘 알고 있었다.안개 낀 것처럼 뿌연 머릿속을 단번에 일깨워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리고 사람이라면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아버님.’백사성. 아마 하늘 아래 천우를 가장 잘 알고 있을 한 사람.아버지의 확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그렇기에 갑작스러운 포교로서의 전직도 냉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던가.‘부디 네 아버지를 찾을 단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주상께서 남기신 마지막 당부였다.모든 일은 백사성의 소재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셨다.
드르렁- 드르렁-두 식경쯤 지났을까.천우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옆에서 무슨 제례(祭禮)치를 때의 태평소 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다름아닌 이포교의 코고는 소리였다.뜨끈뜨끈한 아랫목에 폭신한 이부자리가 더해지니 제 아무리 밤잠 없는 사람이라도 곯아떨어질 만 했으나,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어리를 볼 거다.’‘어떻게 해서든 볼 거다.’‘진짜다.’동이 트면 어리라는 여인을 한번이라도 더 보겠다며 잠이 들 때까지 찬탄을 늘어놓더니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한 모양이었다.혼절한 이포교가 부족한 호흡을 쩌렁쩌렁한 비음(鼻音)으로 보충하고 있는 중이었다.저러다 숨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목청도 크더니, 코고는 소리도 장난 아니군.’천우는 창호지라도 뚫을 듯 드르렁대는 이포교를 흘겨보았다.세상 편하게 자고 있던 그의 얼굴이 순간 우스꽝스럽게 실룩거렸다.자기를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바람이나 쐬어야겠다.’이대로라면 뜬눈으로 밤을 새울 것이 뻔했다.일부러라도 몸을 움직여 마음을 주저앉힌 뒤에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스윽-천우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천우 자네는 진정 그 여인을 직접 마주하고도 느껴지는 바가 없단 말인가?”“아름답고 고운 여인이었어. 그럼 된 것 아닌가?”“이 친구야. 방금 그 여인이 그 유명한 어리란 말일세!”“유명하다고?”천우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이름이 알려진 여인이란 말인가?”“세상에! 자네 진심인가? 정말로 들어보지 못하였단 말인가?”“다시 말하지만, 나는 일평생을 산골짜기에서…….”“그렇다면 말을 말게. 조선 팔도 제일의 미색! 선녀가 지상에 강림하였다는 여인일세!”이포교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며 우는 소리를 했다.“아아, 이럴 줄 알았다면 향유(香油)라도 좀 바르고 올걸 그랬어. 이 나라 왕손의, 대군마마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라 나 같은 포교 따위가 절대 마주칠 리 없다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정말 황홀해서 미치는 줄 알았네. 으으…….”말마따나 이포교는 이미 어리의 미(美)에 빠져든 모양이었다.얼굴이 붉고,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도 거친 것이 어리라는 술에 흠뻑 취한 듯 보이기도 했다.한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어리.’천우는 속으로 조용히 그 이름을 되뇌었다.들어본 적도, 말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입에 붙을 리 없었고,
“하지만 밤늦게 찾아온 빈객을 환대하는 것 또한 유자(儒者)의 도리가 아니겠느냐.”양녕이 어리를 달래는 투로 이어 말했다.“실로 오랜만에 이곳을 바라고 찾아온 손님들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네가 조금만 양보해 주려무나.”“대감…….”“이 얘기는 그만 하도록 하자. 포교님들도 피곤하실 텐데 어서 안으로 모셔야지.”양녕이 김초시를 향해 눈짓을 했다.그러자 김초시가 얼른 이쪽으로 걸어와 두 포교를 끌고갔다.“두 사람은 날 따라오게.”김초시에 이끌려 두 사람은 저쪽으로 떨어진 별채 쪽으로 갔다.천우가 슬쩍 돌아보았을 때, 양녕대군과 어리는 아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무어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폐세자의 정인(情人)이라…….’문득 저 두 사람이 아련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을 사귀는 것이 자유롭지 않을 신분이니, 그 와중에 찾아낸 꽃줄기 하나는 또 얼마나 애틋할까 싶었다. * * *별채는 본관의 반절 정도 되는 크기였다.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는 김초시의 말대로, 마루로 올라서는 댓돌 위에 푸른 이끼가 짙게 깔려 있었다.“두 사람한테 경고하겠는데.”별채 문을 열던 김초시가 갑자기 차게 식은 목소리가 되어 말했다.“여기에서 보고 들은 일은 바깥에 대고 떠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식객의 예이자 왕손을 대하는 아랫사람의 예이니.”“당연한 말씀입니다.”이포교가 손까지 내저으며 말했다.“결코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 공무를 보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지요.”“제발 그래주었으면 좋겠군.”김초시가 푹 한숨을 쉬었다.“두 사람도 이미 보았겠지만, 대감마님께서는 워낙 거침이 없는 분이시라……. 전에 있던 식객들 사이에서도 쓸데없는 얘기가 들려오곤 했지.”“호걸이라는 풍문이 돌던데, 과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내가 아는 한, 조선 땅에서 가장 사내대장부다운 분일세. 가끔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만, 의리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