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사람이 알을 낳았다.
강씨 노인은 몇 번이나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틀림없었다. 알이었다.
피와 양수로 젖은 여인의 아랫도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파의 노숙(老熟)한 양손이 가늘게 떨렸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백은 넘는 핏덩이들을 받아왔던 조선 팔도 최고의 산파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치를 떨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모골이 송연했다.
세상천지 또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당최…….’
강씨 노인은 깨끗한 광목천에 싸여있던 그것을 동그래진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노인의 팔에 들린 것은 방금 여인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왔고, 하혈(下血)의 비린내를 풍겼고, 갓 태어난 것들만의 온기를 지닌, 틀림없는 핏덩이였다.
그러나 팔다리가 없었다. 눈귀가 달려있는 것도 아니었다. 머리도, 배도, 성기도 없었다.
오로지 둥그런 껍데기만, 놀랍도록 따뜻하고 미약한 태동이 느껴지는 알 하나만이 안겨있을 뿐이었다. 얄궂게도 신생아의 머리와 똑같은 크기를 가진.
‘약초를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태기(胎氣)에 마가 깃든 것인가?’
어쩌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산모의 속곳 속으로 침범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별별 상상이 다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강씨 노인은 홀린 듯한 눈으로 알을 내려다보았다. 유약 바른 백자처럼 하얀 빛깔에 뭉게구름을 연상케 하는 잿빛 무늬가 오묘한 것이 동지 날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는 듯했다.
완만하게 둥글지는 않고 아래위가 약간 길어진, 뱀알 형태의 덩어리였다. 여덟 달 동안 있다 나온 미숙아 정도의 무게였고, 표면은 비온 뒤 기왓장처럼 제법 거칠거칠했다.
“허…….”
강씨 노인은 한숨을 푹 쉬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3평 남짓한 공간. 구운 진흙으로 덮어 바른 벽과 바닥. 금방이라도 꺼질 듯 일렁이는 호롱불 등 전형적인 초가삼간 밤께의 풍경이었다.
한 집의 대를 이을 자손이 태어난, 고요하고 기쁜 여름날 야밤이 되었을 터였다. 원래 같으면. 그러나 이집에는 아이 대신 알이 나왔다.
강씨 노인의 옆에는 방금 산고를 마친 산모기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단정하게 쪽진 머리는 윤기가 흘렀고, 이마는 위왕산 봉우리처럼 완만한데 속눈썹은 가을 버들가지처럼 길었다.
코가 오뚝하고 핏기 없는 입술은 그런대로 남심을 홀릴 만큼 도톰하고 야들야들했다. 그 아래로 유연하게 뻗은 목선과 둥그스름한 어깨, 옷고름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 보이는 젖가슴이 볼록이 솟아있었다.
여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치르고도 미색(美色)이 조금도 덜하지 않은, 참으로 보기 드문 산모였다. 아마 이런 시골 촌구석이 아니라 한양 여염집에서 나고 자랐다면, 어쩌면 궁궐에서 데려갔을지도 모를…….
“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헐떡이던 산모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강씨 노인의 팔에 안겨있던 포대기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뱃속에 품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미는 자기 자식을 본능적으로 찾는 법이다.
“내 아기…….”
여인이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 말했다. 강씨 노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이걸 보여주는 것이 맞을까? 안게 해주는 것이 맞을까?
필시 여인은 당황했을 것이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격통을 견디어 아이를 낳았건만, 그 아이가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있으니 말이다.
유산(遺産)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사람 잡고 싶지 않거든 여인이 낳은 알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하다네.”
강씨 노인은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포대기를 내밀었다. 무슨 까닭에 그리 말하였는지는 강씨 노인 본인도 알지 못했다.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여인이 그녀가 낳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순간 굳은 표정이 되어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질 않았다.
“그러네요.”
여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게 놀라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이 이렇게 되었구나……. 인정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도저히 사람의 아이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을 소중하게 안아드는 여인의 몸짓에서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사명감마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강씨 노인은 저도 모르게 전율했다.
‘자기 자식은 자식이라 이건가.’
난생 처음으로 사람도 알을 낳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거……”정맹차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그러다 벽에 등을 부딪히고 경악에 겨운 얼굴로 어리를 올려다보았다.“너…… 너 뭐야? 뭐하는 년……”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없이 정맹차를 향해 스르르- 다가갈 뿐이었다.탁-!어리가 정맹차의 앞섬을 붙들었다.그리고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멱살 붙잡은 듯 끌어올렸다.“으헉……”“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놔, 놔라……”“그저 돈벌이에 미쳐 취하려 들었다는 것이냐. 어리석은 것. 한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도 오직 탐욕만 부리는구나. 너희 인간들은.”“미친…… 숨 막…… 힘이 왜 이리…… 세……”“너희가 이러하기에.”어리가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는 너희를 굽어살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놓으라…… 고…… 끄윽……”“내가 어째서 이런 것들 때문에 감추고, 숨고, 아프고, 슬퍼해야 한다는 말이더냐. 대체 왜? 내가 무슨 이유로. 왜? 도대체 왜?”어리는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는 듯했다.그건 그렇고, 정맹차의 얼굴이 보랏빛이 되는 것이 금방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 그만 하시지요!”천우가 얼른 일어나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바로 반치 앞에 서 있는데도, 어리의 몸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내는 것처럼 접근하기 힘들었다.“낭자. 낭자!”“……”“이러다 사람 죽겠습니다! 얼른 손을 놓으세요!”천우가 애원하며 어리의 손목을 붙들었다.뜨거웠다. 마치 불에 달군 쇠꼬챙이 같았다.기이하게도, 이처럼 뜨거운데도 옷자락 하나 타지 않고 있었다.탁-어리가 손을 놓았다.붙들려있던 정맹차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끄억…… 캐액……”정맹차가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하며 끈적한 침을 토해냈다.그러다 갑자기 방밖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쳤다.“아무도 없냐! 아무도 없어?!!!!”그와 동시에, 왈칵 방문이 열렸다.지척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맹차의 역사(力士)들이었다.모두 한손에 칼이며 둔기 따
"모르지."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애초에 거기 모인 장사꾼들이 전부 보통내기가 아니외다.처음에 그 목걸이를 가져온 놈도 한성바닥에서 굴러먹던 놈팡이인데,얼굴에 곰보자국이 가득할 만큼 끔찍하게 살아온 부류라더군.그치들은 대군마마고 포도대장이고 눈에 뵈는 게 없지.목숨을 걸고 장사하는 놈들이고,그렇게 벌어들인 눈앞의 쌀과 엽전이 더 중한 일이기에.”“동무께서 보통 상인이 아니신 듯 합니다.”“포교 나으리 듣고 계셔서 대놓고 말은 못 하겠네.하지만 떳떳하게 좌판이나 가게 열어놓고 장사하는 부류는 아니라고 생각해주시오.”“암시장에 종사하는 분이란 말씀입니까?”“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소.”정맹차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흘겼다.어리도 거기까지는 깊게 캐 물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잠시 입을 다물었다.적막이 흘렀다.“암시장에서 거래된 옥패 달린 특이한 목걸이.그리고 그 목걸이를 가져간 손님은 다름 아닌 대군마마.”어리가 가만히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그리고 정맹차를 지긋이 바라보는데,조금 전까지의 요염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싸늘하게 변한 것이,사람이 아닌 한(恨)을 품은 귀신을 보는 듯했다.“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그 목걸이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텐데
정맹차의 시선이 어리에게로 향했다.“낭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정맹차가 냉랭한 투로 중얼거렸다.“제3자가 끼어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소.그것이 반촌의.정맹차와의 거래에서 지켜야 할 법칙이니.”“정맹차와 백포교님.그리고 저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듣고,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를 제3자라고 홀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어리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화가 난 것도,불쾌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차분하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피는 듯한 어투인데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도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구석이 있었다.“흠.”정맹차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어리는 그 앞에서 조용히 응답을 기다렸다.“그럼 낭자께서도.”정맹차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와 거래해보지 않으시겠소?”“무엇을 거래한단 말씀입니까?”“내가 그 목걸이를 원하는 이유.그것을 말해드리지.”“단순한 일문답도 거래로 취급하시다니.악독하십니다.”“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어야 직성에 풀리기에.어떠신가?거래해보시겠나?”“그렇다고 제가 정맹차께 따로 드릴
“사건이라.”정맹차가 조금 자세를 고쳐 앉았다.허리를 쭉- 펴고 팔짱을 거만하게 끼는 것이,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렇다면 내 관리 하에 있는 마용은. 반촌 노비는. 백씨 포교께서 바라시는 중요한 정보 소유자라는 말씀이군.”“그러합니다만……”“말인즉슨, 내 허락이 없으면 마용은 백씨 포교께 인도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반촌 노비의 일은 포교가 아니라, 포도대장이 와도 함부로 손에 쥘 수 없는 일이지. 따라서 백씨 포교께서는 내 협조가 없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고.”정맹차가 눈을 반짝이며 살짝 고개를 천우 쪽으로 수그렸다.“그럼 거래하시겠나?”“거래요?”“이곳의 법도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걸맞은 무언가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마귀굴인 까닭이기에.”정맹차가 탐욕스럽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어떤가? 마용의 행방을 알려줄 테니, 그쪽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아볼텐가?”맹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자비한,예측불허의 사내와 대뜸 거래를 하다니.어느 쪽이든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했다.그러나 여기에서 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어쨌거나 사람들의
“뭐라?”정맹차가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지금 포청 포교라고 하셨소?”“네.”어리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단호함으로 대답했다.정작 당사자인 천우는 가만히 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이 살벌하게 각을 세우니 난감했다.“허허, 이거야 원……”정맹차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여인을 향한 탐욕으로 번뜩이던 눈이, 어느새 매서운 반촌 뒷골목의 우두머리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어이. 백씨 포교.”정맹차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우를 불렀다.“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옆구리에 칼 찬 포청 포교가 이 몸과 독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천우를 공자라고 높여 부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나는 물론이고, 밖에서 대기 중인 저놈들도 포청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거든. 돈이든 힘이든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기에. 그나마 나와 안면이 있는 낭자께서 동행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여기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을 거다.”“이해합니다.”천우가 태연하게 대답했다.“맹차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뭐 하나만을 여쭤보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푹 삶은 수육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운데,천우와 어리 두 사람에게 사발 그릇이 하나씩 쥐어졌다.정맹차가 술병을 들어 탁주를 따르는데 끅끅-술잔 채워지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자,드십시다.”정맹차가 권하는 대로,세 사람이 잔을 비웠다.어떻게 담근 술인지는 몰라도,제법 강렬하고 거친 것이 한 잔만 마셔도 열기가 훅 올라오는 듯했다.“술 맛이 어떻습니까?”정맹차가 무도하게도 맨손으로 고기를 집어 들며 물었다.“손님들에게만 대접하는 나름 귀한 술이외다.좋은 물에 찹쌀을 넣고 칡뿌리에 각종 약초를 더한 것이지.아마 바깥에서 이런 술 맛보기는 쉽지 않을 거요.반촌에서만 특별히 담그는 술이기에.”“마시기 좋은 듯합니다.”천우가 인사치레로 허허-웃으며 대답했다.그 옆에서 어리는 조용히 술잔을 입술에 댔다 떼기를 반복 중이었다.“그건 그렇고……”정맹차가 고기조각에 새우젓을 듬뿍 찍으며 운을 띄었다.“두 분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신 참이오?”정맹차의 시선이 문득 천우의 도포 아래쪽으로 향했다.“소매 아래에 칼까지 차시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