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eite / 판타지 / 붉빛미르 / 사람이 알을 낳았다 (1)

Teilen

사람이 알을 낳았다 (1)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1.03.2026 23:58:06

사람이 알을 낳았다.

강씨 노인은 몇 번이나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틀림없었다. 알이었다.

피와 양수로 젖은 여인의 아랫도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파의 노숙(老熟)한 양손이 가늘게 떨렸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백은 넘는 핏덩이들을 받아왔던 조선 팔도 최고의 산파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치를 떨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모골이 송연했다.

세상천지 또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당최…….’

강씨 노인은 깨끗한 광목천에 싸여있던 그것을 동그래진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노인의 팔에 들린 것은 방금 여인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왔고, 하혈(下血)의 비린내를 풍겼고, 갓 태어난 것들만의 온기를 지닌, 틀림없는 핏덩이였다.

그러나 팔다리가 없었다. 눈귀가 달려있는 것도 아니었다. 머리도, 배도, 성기도 없었다.

오로지 둥그런 껍데기만, 놀랍도록 따뜻하고 미약한 태동이 느껴지는 알 하나만이 안겨있을 뿐이었다. 얄궂게도 신생아의 머리와 똑같은 크기를 가진.

‘약초를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태기(胎氣)에 마가 깃든 것인가?’

어쩌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산모의 속곳 속으로 침범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별별 상상이 다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강씨 노인은 홀린 듯한 눈으로 알을 내려다보았다. 유약 바른 백자처럼 하얀 빛깔에 뭉게구름을 연상케 하는 잿빛 무늬가 오묘한 것이 동지 날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보는 듯했다.

완만하게 둥글지는 않고 아래위가 약간 길어진, 뱀알 형태의 덩어리였다. 여덟 달 동안 있다 나온 미숙아 정도의 무게였고, 표면은 비온 뒤 기왓장처럼 제법 거칠거칠했다.

“허…….”

강씨 노인은 한숨을 푹 쉬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3평 남짓한 공간. 구운 진흙으로 덮어 바른 벽과 바닥. 금방이라도 꺼질 듯 일렁이는 호롱불 등 전형적인 초가삼간 밤께의 풍경이었다.

한 집의 대를 이을 자손이 태어난, 고요하고 기쁜 여름날 야밤이 되었을 터였다. 원래 같으면. 그러나 이집에는 아이 대신 알이 나왔다.

강씨 노인의 옆에는 방금 산고를 마친 산모기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단정하게 쪽진 머리는 윤기가 흘렀고, 이마는 위왕산 봉우리처럼 완만한데 속눈썹은 가을 버들가지처럼 길었다.

코가 오뚝하고 핏기 없는 입술은 그런대로 남심을 홀릴 만큼 도톰하고 야들야들했다. 그 아래로 유연하게 뻗은 목선과 둥그스름한 어깨, 옷고름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 보이는 젖가슴이 볼록이 솟아있었다.

여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치르고도 미색(美色)이 조금도 덜하지 않은, 참으로 보기 드문 산모였다. 아마 이런 시골 촌구석이 아니라 한양 여염집에서 나고 자랐다면, 어쩌면 궁궐에서 데려갔을지도 모를…….

“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헐떡이던 산모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강씨 노인의 팔에 안겨있던 포대기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뱃속에 품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미는 자기 자식을 본능적으로 찾는 법이다.

“내 아기…….”

여인이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 말했다. 강씨 노인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이걸 보여주는 것이 맞을까? 안게 해주는 것이 맞을까?

필시 여인은 당황했을 것이다. 하복부가 찢어지는 격통을 견디어 아이를 낳았건만, 그 아이가 울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있으니 말이다.

유산(遺産)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하는 수 없었다. 사람 잡고 싶지 않거든 여인이 낳은 알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하다네.”

강씨 노인은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포대기를 내밀었다. 무슨 까닭에 그리 말하였는지는 강씨 노인 본인도 알지 못했다.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여인이 그녀가 낳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일순간 굳은 표정이 되어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질 않았다.

“그러네요.”

여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게 놀라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이 이렇게 되었구나……. 인정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도저히 사람의 아이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을 소중하게 안아드는 여인의 몸짓에서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사명감마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 앞에서, 강씨 노인은 저도 모르게 전율했다.

‘자기 자식은 자식이라 이건가.’

난생 처음으로 사람도 알을 낳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ies dieses Buch weiterhin kostenlos
Code scannen, um die App herunterzuladen

Aktuellstes Kapitel

  • 붉빛미르   작별 인사 (4)

    “갑자기 세상에 나와 너만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을 때, 그냥 아무런 생각도 안 나더구나. 몸은 여기 있는데 영혼은 어딘가로 떠나버린 기분. 그래. 그랬었다.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지.”“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나질 않습니다.”“그럴 수밖에. 네가 젖을 떼자마자 가버렸으니.”“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아름다웠다.”백사성이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현명하고 헌신적이며, 또 누구라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예뻤지. 사람이 아닌 미르조차 그 미색(美色)에 반해버렸으니 말이다.”“아버님께서도……. 혹시 사모하셨습니까?”“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왜 기우사를 떠나 용의 알을 밴 사람을 따라갔겠느냐?”백사성의 얼굴에 시원섭섭한 빛이 어렸다.“그래도 좋았다.”백사성이 말을 이었다.“내 몸 하나 바쳐 사모하는 여인을, 그리고 조선의 하늘을 수호할 물빛미르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그것이 사람이다. 어리석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기 뜻하는 대로 살아가는 생물이지. 어찌 보면 붉빛미르는 사람을 증오하면서도 더욱 사람과 가까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백사성이 거기까지 말하곤 술 한 잔을 홀짝 비웠다.천우가 얼른 부친의 빈 잔을 채워넣었다.

  • 붉빛미르   작별 인사 (3)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이도가 못내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옆에 함께 서 있던 백사성, 지운도 눈을 반짝이며 답을 채근하고 있었다.“그렇게 안고 난 뒤에 말입니다.”이도가 조바심을 냈다.“그렇게 그냥 끝났습니까? 붉빛미르가 그냥 끝을 냈습니까?”“그러하였습니다. 전하.”천우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붉빛미르는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포옹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말입니다.”“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껴안고 있던 중에 붉빛미르가 사라졌습니다.”“물빛께서 안고 계시던 품에서 말입니까?”“네. 마치 연기처럼.”천우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웅얼거렸다.“이 팔에 안겨있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거늘…….”아쉬운 것인지, 꿈을 걷는 것 같은 몽롱함에서 벗어나려는 것인지는 몰랐다.그러나 품안 가득 다가왔던 온기, 촉감, 부드러움은 방금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천우 네 말은.”잠자코 듣고 있던 백사성이 나서 말했다.“붉빛미르가 나타났고, 하늘로 돌아가겠다며 작별을 고했고,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달라고 했고

  • 붉빛미르   작별 인사 (2)

    붉빛미르가 이어 말했다.“우리 두 미르는 사람들의 지혜가 늘어나 천문을 읽게 되는 순간, 더 이상의 쓸모가 없어 하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알고 있소.”“저는 그것이 싫어 불로 저항했던 것입니다. 왜 사람의 행보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요. 하지만 물빛미르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만을 바라보셨지요. 사람과 섞여 사셨고요.”머리칼을 가만히 넘기는 기척이었다.“저 또한 그것이 어떤 삶일지 궁금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여인의 모습으로 지내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사람보다는 미르에 가까운 넋이었습니다. 더욱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사람은 여전히 어리석고 폭력적인 생물이지요. 그렇지만 미르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생명이기도 하고요.”“…….”“물빛미르와 여러 번 싸우면서 겨우 깨달았습니다. 나와 같은 미르가, 이토록 사력을 다해 사람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미르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 붉빛미르가 일으킨 사단은 항상 울음소리와 피만을 불러왔지요.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언제부턴가 의심이 들더군요. 그래도 인정 못하고 마지막 발악으로 내가 당신을 가장 미워하던 때로 시간을 돌려 싸워보기도 하였고요.”“이포교를 숙주로 삼았을 때의 말이로군.”“네. 그리고 결국 물빛께서 저와 대등하게 맞서셨지요. 그리고 천지신명께서도 직접 답을 주셨고요.”붉빛미르의 고개가 올라갔다.

  • 붉빛미르   작별 인사 (1)

    “역시 당신이었군.”천우가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붉빛미르 쪽에서 어둠 속에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여보였다.“언젠간 찾아올 것이라고 짐작했소.”천우의 칼 쥔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당신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생각했지.”“똑똑하시네요.”“이렇게 나타나주어 고맙소. 마음 졸이며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끝을 내는 것이 나을 것이오. 나한테든, 당신에게든.”천우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산속에 잠든 물 전체가 우르릉- 대는 소리와 함께 진동했다.천우의 명에 맞추어 움직이겠다며 한껏 예기(銳氣)를 다듬는 듯했다.붉빛미르는 가만히 이쪽을 살피기만 할뿐, 손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불길이라도 내밀 줄 알았는데, 별일이었다.“어떠셨습니까?”불쑥, 붉빛미르가 그리 물었다.“뭐를 말이오?”천우가 되물었다.“붉빛미르가 나타나지 않은 지금의 조선 땅 말입니다. 물빛께서 보시기에는 이쪽의 삶이 만족스러우십니까?”“갑자기 무슨…….”“이쪽의 삶은, 시간은, 붉빛미르가 나타나지 않은 세계. 천지신명의 뜻을 받든 붉빛미르가 세상을 침범하지 않고, 천문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놔두기로 결심한 세계.

  • 붉빛미르   바라면 다시 만나니 (6)

    지운이 물었다.“서촌 말씀이십니까?”“이왕 여기까지 나온 김에 그동안 하늘 보는 거 어디까지 되었나 살펴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학사들 은자(銀子)라도 좀 챙겨줘야 닭백숙이라도 고아 먹으면서 일하지 않겠습니까?”“전하의 은덕이 하해와 같으십니다.”그렇게 4명의 사내는 순식간에 다음 행보를 정하고는 곧바로 서촌으로 옮겨갔다.“저, 전하!”어김없이 장영실이 나와 맞이했다.지난 기억보다 조금 더 피곤하지만, 눈의 생기만큼은 곱절은 더한 장영실이었다.장영실뿐 아니라, 다른 학사들도 여럿이 한자리에 있었다.밤중에 오직 장영실 혼자만 일하던 기억 때문일까. 학사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이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어, 어인 일로 옥체를 직접 행차하셨습니까?”“잠깐 볼일이 있어 암행을 나왔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번 와 보았다. 자, 일단 이것들 좀 받고.”이도가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옆에 있던 학사에게로 건넸다.천문 연구에 지친 사기(士氣)를 채워줄 묵직한 은자 덩어리였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은자를 받아든 학사가 전원이 허리를 굽히며 감사했다.장영실이 그 학사를 가만히 불렀다.“이여립. 자네는 얼른 그것을 가지고 장터에 나가 좋은 술과 포(脯)를 사오게.”“

  • 붉빛미르   바라면 다시 만나니 (5)

    “뉘십니까?”맑은 목소리가 들렸다.여인의 목소리였다.“지나가던 길손인데, 말씀 좀 묻겠소.”천우가 의아함을 숨긴 채로 대답했다.끼익-문이 열렸다.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엇…….”놀란 천우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냈다.어리였다.틀림없는 어리였다.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자태로 문을 열고 나와 이쪽을 보는데,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붉빛?”천우가 부지불식중에 그리 불렀다.“네?”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외람되지만, 선비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빙긋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서는 어리였다.그 바람에 천우는 뒤로 물러서며 물의 힘을 끌어올렸다. 여차하면 물보라를 일으켜 다시금 물과 불의 다툼을 재현할 작정이었다.“나, 나는…….”천우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백……. 백천우라고 하는데&he

  • 붉빛미르   군왕과 대군 (3)

    “전하?”양녕이 크게 놀란 얼굴이 되어 이도를, 그리고 천우를 바라보았다.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빛마저 공포에 질려 흔들릴 정도였다.“붉빛미르라니요? 그게 무슨…….”“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형님께서 사모하시는 그 여인, 어리가 붉빛미르라면 형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전하! 외부인이 듣고 있습니다! 미르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면 아니되옵니다!”양녕이 목청을 높이며 천우를 실쭉한 눈으로 노려보았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광기(狂氣)가 서린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송구

  • 붉빛미르   군왕과 대군 (1)

    “제가 사람을 부르겠습니다.”천우가 문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전하께서는 조금 뒤로 물러나시어 거리를…….”“이리 오너라!”그러나 그게 무어냐 하는 투로 문 쪽으로 외치는 이도였다.천우는 그런 이도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 붉빛미르   대책 (3)

    이도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고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로 가버렸다.그리고 뒤에 남은 천우와 장영실이 함께 주변에 널린 기계며 천문 자료 따위를 어색하게 뒤적이고 있을 때, 색다른 모습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저, 전하.”장영실이 황망해하며 말했다.“전혀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어떠하냐?”이도가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로 양소매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선비의 모습이었다.용포를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로 갈아입은 후에 높은 갓을 빈틈없이 눌러쓴 것이 저명한 학사를 방불케 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학문적 성취를

  • 붉빛미르   별을 보는 자들 (6)

    “그럼 그렇게 하라.”이도가 선선히 대답했다.그러면서 조용히 들고 있던 물조리개를 텃밭에 뿌리는데, 숙련된 농사꾼이 하는 것마냥 고랑마다 피어있는 덩이줄기들이 골고루 젖어들었다.“전하. 정말로…….”천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별좌께서 밖에 계셔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Weitere Kapitel
Entdecke und lies gute Romane kostenlos
Kostenloser Zugriff auf zahlreiche Romane in der GoodNovel-App. Lade deine Lieblingsbücher herunter und lies jederzeit und überall.
Bücher in der App kostenlos lesen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