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보슈, 나그네 양반.”
패거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천우를 불렀다. 얼굴 반쪽이 곰보로 뒤덮여 남 보기에 흉측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거 보아하니, 과거 치르기 전에 미리 올라와 숙식하려는 서생이신거 같은데 여기서 붓 한번 못 잡아보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소?”
천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을 굴리며 패거리의 위치, 무기, 그리고 퇴로를 확인할 뿐이었다.
“골방에 박혀 책만 뒤적이던 분이라 너무 순진하셨소.”
곰보가 이어 말했다.
“계집년들 분냄새에 아랫도리가 뜨끈뜨끈하시던가? 겁도 없이 들치기 하는 놈을 쫓아오다니 말이오.”
그러면서 자기 옆을 기웃거리는데, 아까 복주머니를 채어 달아나던 사내가 낄낄 웃고 있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기생들과 들치기, 곰보 모두가 한패였다.
완전히 당했다.
“맛난 것도 급히 먹으면 체하는 게 세상 이치요, 서생 양반.”
곰보가 살벌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리는 식성이 워낙 좋은 천것들이라서. 사람이고 양반이고 다 잡아먹는다고.”
“원하는 게 뭔가?”
천우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생들 앞에서 어리바리하던 때와는 달리 상당히 결기가 어려 있었다.
“가진 거 다 내놓으시오.”
곰보가 중얼거렸다.
“그럼 포청에 신고 못하게 혀만 자르고 보내드리지.”
“못하겠다면?”
“그럼 죽어야지.”
곰보가 양옆을 돌아보며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낫을 든 두 패거리가 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의(仁義)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사냥하기에 바쁜 짐승의 눈을 한 채였다.
패거리가 천우의 이마를 향해 낫을 찍었다.
그리고 동시에, 천우의 지팡이가 허공을 갈랐다.
금속에 비친 햇빛이 일순간 번쩍 광채를 뿜었다.
“으아아악!”
패거리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어느새 잘려나간 그의 손목이 낫과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분수처럼 쏟아지는 반쪽 팔을 감싼 채, 패거리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아마 팔이 잘린 격통(激痛)에 의식을 잃은 것이리라.
모두가 말을 잃었다. 천우는 그 틈을 타 다른 패거리의 앞쪽으로 파고들었다. 패거리가 함부로 낫을 휘둘렀고, 가볍게 피한 천우는 이번에는 패거리의 무릎 위를 노렸다.
쐐액- 가늘고 긴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창포검(菖蒲劒). 지팡이로 위장한 도검이었다. 천우와 그의 부친이 직접 쇠붙이를 녹여내고 제련해 만든 것이었다.
예리한 검끝이 어김없이 패거리의 다리에 깊은 상처를 냈다.
핏줄기가 쏟아졌다.
“으헉!”
순식간에 둘이 쓰러지자 나머지도 당황한 것 같았다. 곰보도 일이 이렇게 될지 몰랐던지 범 발견한 토끼눈이 되어 허둥거렸다.
“야! 다 같이 덤벼!”
남은 4명은 모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래봤자 대장간에서 쌀 몇 되 주고 대충 벼려낸, 칼이라기보다는 날이 선 톱에 가까웠다.
곰보를 제외한 셋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조급하게 찌르고, 베고, 휘두르는 칼날이 성급하게 공기를 갈랐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몸짓……. 혼자서도 능히 감당해낼 수 있는 작자들이었다.
천우는 우선 비렁뱅이부터 잘라냈다. 삽시간에 놈의 귀가 떨어져나갔다.
“끄어어어!”
비렁뱅이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감싸며 칼을 떨어뜨렸다.
곧이어 같은 패거리의 칼이 비렁뱅이의 목줄기를 관통했다. 천우를 노리고 찌른 것이 빗나간 것이었다. 비렁뱅이는 그대로 절명했고, 천우는 당황한 패거리의 텅 빈 명치를 향해 힘껏 정권(正拳)을 날렸다.
우둑-
갈빗대 두어 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패거리가 침과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빠른 발, 뛰어난 검술,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강한 완력. 3박자가 모두 어우러진 천우의 싸움 실력은 뒷골목 왈패들이 감당할 겨를이 없었다.
남은 하나는 이미 질겁하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쳐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데 얼굴에 공포가 그득했다.
그러다 천우의 등을 벨 기세로 칼을 크게 쳐들었다.
푹-!
이미 천우의 창포검이 아랫배를 찌른 뒤였다. 패거리가 뒤를 노릴 것을 예감한 천우가 자기 옆구리 밑으로 역수로 쥔 칼을 쑤셔 넣은 것이었다.
배에 구멍이 난 패거리가 한마디 신음과 함께 주저앉았다.
천우는 숨을 고르며 칼을 거둬들였다. 몸에서 더운 열기가 솟았다.
이제 살아있는 패거리는 곰보 단 한명 뿐이었다.
곰보가 곱게 죽지는 않겠다는 듯 자기 칼을 빼들었다.
“이 개 같은…….”
곰보가 덮쳐왔다. 상박(上膊)을 옆구리에 붙이고 크게 반달 모양으로 베어내는 자세였다. 그러나 천우는 곰보가 속임수를 쓰고 있음을 간파했다.
맞붙는 순간에 좌완을 비틀어 칼날이 겨드랑이를 수평으로 베어내도록 수를 쓸 것이다.
‘다 보인다.’
들어맞았다. 곰보의 칼이 천우를 반으로 가를 기세로 날아왔다.
천우는 얼른 창포검을 반대 손으로 바꾸어 쥐었다.
쨍강-!
십(十)자로 부딪힌 두 칼이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두 남자는 서로의 목을 향해 칼을 겨눈 채 목숨을 건 힘겨루기를 했다.
곰보는 다른 놈들과는 달랐다. 한 합(合)이나 일격에 제압하기는 힘들었다.
제 아무리 별 것 없는 뒷골목 왈패라 할지라도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라 이건가.
하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 곰보는 점점 중심을 잃고 있었다.
‘얼굴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게 뭔 힘이 이렇게 세…….’
안간힘을 쓰던 곰보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몸을 뺄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흘끗 천우의 목에 걸려있던 뭔가를 발견하고 일순간 야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자기 곰보가 남은 손으로 천우의 목을 할퀴었다.
삼베끈을 꼬아 만든 목걸이 줄에 연결된 비취(翡翠)장신구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놀란 천우가 목걸이를 회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곰보가 천우의 검을 흘려 넘김과 동시에 빙그르르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목걸이를 탈취해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다.
“서라!”
천우가 고함을 지르며 뒤따라갔다.
“뭐야, 이거……”정맹차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그러다 벽에 등을 부딪히고 경악에 겨운 얼굴로 어리를 올려다보았다.“너…… 너 뭐야? 뭐하는 년……”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없이 정맹차를 향해 스르르- 다가갈 뿐이었다.탁-!어리가 정맹차의 앞섬을 붙들었다.그리고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멱살 붙잡은 듯 끌어올렸다.“으헉……”“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놔, 놔라……”“그저 돈벌이에 미쳐 취하려 들었다는 것이냐. 어리석은 것. 한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도 오직 탐욕만 부리는구나. 너희 인간들은.”“미친…… 숨 막…… 힘이 왜 이리…… 세……”“너희가 이러하기에.”어리가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는 너희를 굽어살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놓으라…… 고…… 끄윽……”“내가 어째서 이런 것들 때문에 감추고, 숨고, 아프고, 슬퍼해야 한다는 말이더냐. 대체 왜? 내가 무슨 이유로. 왜? 도대체 왜?”어리는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는 듯했다.그건 그렇고, 정맹차의 얼굴이 보랏빛이 되는 것이 금방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그, 그만 하시지요!”천우가 얼른 일어나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바로 반치 앞에 서 있는데도, 어리의 몸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내는 것처럼 접근하기 힘들었다.“낭자. 낭자!”“……”“이러다 사람 죽겠습니다! 얼른 손을 놓으세요!”천우가 애원하며 어리의 손목을 붙들었다.뜨거웠다. 마치 불에 달군 쇠꼬챙이 같았다.기이하게도, 이처럼 뜨거운데도 옷자락 하나 타지 않고 있었다.탁-어리가 손을 놓았다.붙들려있던 정맹차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끄억…… 캐액……”정맹차가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하며 끈적한 침을 토해냈다.그러다 갑자기 방밖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쳤다.“아무도 없냐! 아무도 없어?!!!!”그와 동시에, 왈칵 방문이 열렸다.지척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맹차의 역사(力士)들이었다.모두 한손에 칼이며 둔기 따
"모르지."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애초에 거기 모인 장사꾼들이 전부 보통내기가 아니외다.처음에 그 목걸이를 가져온 놈도 한성바닥에서 굴러먹던 놈팡이인데,얼굴에 곰보자국이 가득할 만큼 끔찍하게 살아온 부류라더군.그치들은 대군마마고 포도대장이고 눈에 뵈는 게 없지.목숨을 걸고 장사하는 놈들이고,그렇게 벌어들인 눈앞의 쌀과 엽전이 더 중한 일이기에.”“동무께서 보통 상인이 아니신 듯 합니다.”“포교 나으리 듣고 계셔서 대놓고 말은 못 하겠네.하지만 떳떳하게 좌판이나 가게 열어놓고 장사하는 부류는 아니라고 생각해주시오.”“암시장에 종사하는 분이란 말씀입니까?”“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소.”정맹차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흘겼다.어리도 거기까지는 깊게 캐 물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잠시 입을 다물었다.적막이 흘렀다.“암시장에서 거래된 옥패 달린 특이한 목걸이.그리고 그 목걸이를 가져간 손님은 다름 아닌 대군마마.”어리가 가만히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그리고 정맹차를 지긋이 바라보는데,조금 전까지의 요염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싸늘하게 변한 것이,사람이 아닌 한(恨)을 품은 귀신을 보는 듯했다.“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그 목걸이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텐데
정맹차의 시선이 어리에게로 향했다.“낭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정맹차가 냉랭한 투로 중얼거렸다.“제3자가 끼어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소.그것이 반촌의.정맹차와의 거래에서 지켜야 할 법칙이니.”“정맹차와 백포교님.그리고 저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듣고,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를 제3자라고 홀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어리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화가 난 것도,불쾌한 것도 아니었다.그저 차분하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피는 듯한 어투인데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도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구석이 있었다.“흠.”정맹차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어리는 그 앞에서 조용히 응답을 기다렸다.“그럼 낭자께서도.”정맹차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와 거래해보지 않으시겠소?”“무엇을 거래한단 말씀입니까?”“내가 그 목걸이를 원하는 이유.그것을 말해드리지.”“단순한 일문답도 거래로 취급하시다니.악독하십니다.”“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어야 직성에 풀리기에.어떠신가?거래해보시겠나?”“그렇다고 제가 정맹차께 따로 드릴
“사건이라.”정맹차가 조금 자세를 고쳐 앉았다.허리를 쭉- 펴고 팔짱을 거만하게 끼는 것이, 주도권을 가져갔다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렇다면 내 관리 하에 있는 마용은. 반촌 노비는. 백씨 포교께서 바라시는 중요한 정보 소유자라는 말씀이군.”“그러합니다만……”“말인즉슨, 내 허락이 없으면 마용은 백씨 포교께 인도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반촌 노비의 일은 포교가 아니라, 포도대장이 와도 함부로 손에 쥘 수 없는 일이지. 따라서 백씨 포교께서는 내 협조가 없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고.”정맹차가 눈을 반짝이며 살짝 고개를 천우 쪽으로 수그렸다.“그럼 거래하시겠나?”“거래요?”“이곳의 법도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걸맞은 무언가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마귀굴인 까닭이기에.”정맹차가 탐욕스럽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어떤가? 마용의 행방을 알려줄 테니, 그쪽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아볼텐가?”맹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자비한,예측불허의 사내와 대뜸 거래를 하다니.어느 쪽이든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했다.그러나 여기에서 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어쨌거나 사람들의
“뭐라?”정맹차가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지금 포청 포교라고 하셨소?”“네.”어리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단호함으로 대답했다.정작 당사자인 천우는 가만히 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이 살벌하게 각을 세우니 난감했다.“허허, 이거야 원……”정맹차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여인을 향한 탐욕으로 번뜩이던 눈이, 어느새 매서운 반촌 뒷골목의 우두머리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어이. 백씨 포교.”정맹차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우를 불렀다.“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옆구리에 칼 찬 포청 포교가 이 몸과 독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천우를 공자라고 높여 부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나는 물론이고, 밖에서 대기 중인 저놈들도 포청이라면 좋아할 이유가 없거든. 돈이든 힘이든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기에. 그나마 나와 안면이 있는 낭자께서 동행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여기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을 거다.”“이해합니다.”천우가 태연하게 대답했다.“맹차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뭐 하나만을 여쭤보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푹 삶은 수육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운데,천우와 어리 두 사람에게 사발 그릇이 하나씩 쥐어졌다.정맹차가 술병을 들어 탁주를 따르는데 끅끅-술잔 채워지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자,드십시다.”정맹차가 권하는 대로,세 사람이 잔을 비웠다.어떻게 담근 술인지는 몰라도,제법 강렬하고 거친 것이 한 잔만 마셔도 열기가 훅 올라오는 듯했다.“술 맛이 어떻습니까?”정맹차가 무도하게도 맨손으로 고기를 집어 들며 물었다.“손님들에게만 대접하는 나름 귀한 술이외다.좋은 물에 찹쌀을 넣고 칡뿌리에 각종 약초를 더한 것이지.아마 바깥에서 이런 술 맛보기는 쉽지 않을 거요.반촌에서만 특별히 담그는 술이기에.”“마시기 좋은 듯합니다.”천우가 인사치레로 허허-웃으며 대답했다.그 옆에서 어리는 조용히 술잔을 입술에 댔다 떼기를 반복 중이었다.“그건 그렇고……”정맹차가 고기조각에 새우젓을 듬뿍 찍으며 운을 띄었다.“두 분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신 참이오?”정맹차의 시선이 문득 천우의 도포 아래쪽으로 향했다.“소매 아래에 칼까지 차시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