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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빛미르
붉빛미르
Autor: 이온

서막

Autor: 이온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3-11 23:57:55

“정녕 저를 막을 작정이십니까?”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에 쥐고 있던 환도(環刀)를 천천히 뽑을 뿐이었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바람이, 대지가, 마음이.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정지한 채로 살피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가.

이렇게 될 줄 몰랐던가.

어느 쪽이라도 상관 없었다. 결국 일은 저질러졌다. 결코 섞여서도, 결코 섞일수도 없는 둘이 이렇게 마주했으니 남은 것이라곤 이제 한쪽이 지고, 한쪽이 일어나는 일일 뿐.

스릉-

남자의 칼날이 서늘한 쇳소리와 함께 광채를 뿜었다.

칼끝에 물방울과 서리가 맺혀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듯했다.

“끄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대의 세상을.”

남자의 목소리는 슬프나, 또한 담담하였다.

마치 정인(情人)을 떠나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잡고 싶으나 잡을 수 없고, 잡을 수 있다하나 잡아서는 안 되는 그런 정인을.

여자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고운 눈가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자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망울은 눈물로 반짝이고 있었다.

“태우겠습니다.”

여자가 소매 밑으로 손을 뻗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담담하나, 또한 슬펐다.

“그대의 세상을.”

여자의 손끝에 붉은 불길이 일렁였다.

산과 들을, 사람을, 심장까지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 법한 불길이었다.

세종 10년.

1428년 7월 7일.

물과 불이, 그렇게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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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운이 물었다.“서촌 말씀이십니까?”“이왕 여기까지 나온 김에 그동안 하늘 보는 거 어디까지 되었나 살펴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학사들 은자(銀子)라도 좀 챙겨줘야 닭백숙이라도 고아 먹으면서 일하지 않겠습니까?”“전하의 은덕이 하해와 같으십니다.”그렇게 4명의 사내는 순식간에 다음 행보를 정하고는 곧바로 서촌으로 옮겨갔다.“저, 전하!”어김없이 장영실이 나와 맞이했다.지난 기억보다 조금 더 피곤하지만, 눈의 생기만큼은 곱절은 더한 장영실이었다.장영실뿐 아니라, 다른 학사들도 여럿이 한자리에 있었다.밤중에 오직 장영실 혼자만 일하던 기억 때문일까. 학사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이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어, 어인 일로 옥체를 직접 행차하셨습니까?”“잠깐 볼일이 있어 암행을 나왔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번 와 보았다. 자, 일단 이것들 좀 받고.”이도가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옆에 있던 학사에게로 건넸다.천문 연구에 지친 사기(士氣)를 채워줄 묵직한 은자 덩어리였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은자를 받아든 학사가 전원이 허리를 굽히며 감사했다.장영실이 그 학사를 가만히 불렀다.“이여립. 자네는 얼른 그것을 가지고 장터에 나가 좋은 술과 포(脯)를 사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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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천문 살피기 (4)

    “윽…….”뒤로 날아간 천우가 바닥에 둔탁하게 착지했다.물 보호막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갈빗대 두어 개는 나갔을 법한 강한 충격이었다.그나저나…….“이포교?”천우가 앞을 주시하며 천천이 이포교를 불렀다.말이 되질 않았다.

  • 붉빛미르   천문 살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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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천문 살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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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천문 살피기 (1)

    서촌까지 다다르는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질 않았다.저자를 통과하는 사이에 혹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지 않나, 뒤를 밟는 발걸음이 있지 않나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렸지만 딱히 수상한 움직임은 포착되질 않았다.한시름 놓였지만, 반대로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차라리 일이 터질 것이면 가급적이면 빨리 터졌으면 하는 기분이었다.“이런…….&r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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