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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아이에게 주지 말라는 뜻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3 23:14:51

소의는 다향원 창을 모두 열게 했다.

오래 갇혔던 장뇌와 약 냄새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정윤은 침상 끝에 앉아 있었고, 문혜는 한 걸음 떨어진 방석에 앉았다. 누구도 아이를 상석으로 옮기거나 어른 앞에 무릎 꿇게 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세 장의 문서가 놓였다.

정안을 양모로 올린 양자 문서, 그보다 석 달 늦게 만들어진 생첩, 그리고 죽기 전날 쓴 유언이었다.

“먼저 입양되고 나중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소의가 정윤에게 말했다.

“그 전에는 관청에 네 출생을 증명할 기록이 없었어. 누가 낳았는지 모르는 아이를 후부의 양자로 만들려고, 진문재가 생첩까지 뒤늦게 꾸민 것이다.”

“누이가 시킨 겁니까?”

“처음에는 살 곳을 주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차밭 상속인으로 올리는 데에는 반대했다.”

정 노부인이 눈을 감았다. 정안이 죽어 가는 사이, 그녀는 작위를 지키려면 후사가 필요하다며 양자 문서를 완성하게 했다. 아이 이름으로 차밭을 붙들어 두면 후부의 식솔도 살릴 수 있다고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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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혼서   185화. 돌아오지 않은 명패

    소의는 바로 서려 했지만 옆구리가 당겼다.경연이 팔을 놓지 않았다.“어디에 부딪쳤소?”“수레요. 잠깐만 있으면…….”그는 옆집에서 내온 걸상을 발로 가까이 당겼다. 소의가 앉고 나서야 손을 뗐다.포졸이 골목 사람 둘을 데려왔다. 한 사람은 문틈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은 물을 버리러 나왔다가 총관이 내민 명패에 물러섰다. 두 사람의 말은 장정이 노인을 들고 나온 데서 맞았고, 소의가 언제 달려왔는지는 달랐다.경연은 같은 말을 시키지 않았다. 각자 선 자리를 짚게 하고 기록을 나눴다.허온이 방에서 나왔다.“아버지를 맡긴 적 없습니다.”총관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포졸이 팔을 막았다.“추천장은 받았네. 그것도 말해야지.”허온이 종이를 내놓았다. 경연은 봉투를 펼쳐 기록 서리에게 건넸다.“받은 까닭은 따로 조사한다. 지금은 부친을 데려가도 된다고 했는지 묻는 것이다.”“안 했습니다.”경연이 총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명패.”총관은 망설이다 품에서 꺼냈다.“낭중 대인께서 아시면…….”“이 명패를 보이고 사람을 물리쳤다지. 함께 보관한다.”포졸이 총관과 장정들을 결박했다. 마부가 수레를 빼려 하자 바퀴 앞에 섰던 윤채가 고삐를 움켜쥐었다.“이 사람도요.”경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말을 움직이라 한 자까지 적어라.”총관이 끌려나가며 소의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허온이 받아 간 추천장은 그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명패도 돌려주지 않았다.*혼적청에 도착했을 때 현도언은 뜰에 서 있었다.경연은 노인의 진료를 확인하고 왔다. 소의는 가마를 부르겠다는 말을 거절하고 마부 옆자리에 앉아 따라왔다. 내릴 때 경연이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잡았다.도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남의 집 사람부터 묶고 다니시오?”경연은 예부의 인계문을 폈다. 소의의 전갈을 받은 뒤 미리 청한 결재였다.“허 서리 부친을 강제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조사 뒤 형부에도 알리겠습니다.”“좋은 의원을 보이려 했소.”“직접 명하셨습

  • 붉은 혼서   184화. 지워진 두 줄

    허온이 추천장을 주웠다.“아직 쓰지 않았습니다.”“왜 받았는지 물었어요.”문지기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허온은 봉투를 접어 품에 넣었다.“안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자 현도언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부낭중의 관복을 입은 그는 접수대에 조회 공문을 놓고 서리들에게 차를 사오라 했다.옆자리 서리가 허온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형부에서 데려간다며? 내 야간 당직부터 맡아주고 가.”허온은 웃지 못했다.도언이 소의를 보았다.“민간 필사인이 서고까지 드나들게 되었나?”소의는 접수패를 내놓았다.“어제 신청한 대조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기다리는 자리는 바깥이오.”허온은 소의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도 붙잡지 않았다. 그녀는 나가기 전 어제 받아둔 접수지를 당직 책임자에게 보여주었다.“이 두 이름의 인계첩이 대조 중이라는 사실은 남겨주세요.”도언의 손가락이 찻잔 뚜껑 위에서 멎었다.서고 안은 밤새 닫아둔 습기로 눅눅했다. 허온이 동쪽 책궤를 열자 도언이 조회 공문 옆에 별지를 폈다.유혜진 사망. 유혜란 전출.“같은 집에서 중복으로 올라온 것이오. 이 두 줄이 든 인계 책을 폐기 대기분으로 옮기시오.”허온은 별지 아래를 보았다. 형부의 조회 인은 있었으나 예부의 이관 결재는 없었다.“혼적청 책은 저희 주사 결재가 있어야 합니다.”“그건 내가 받아오겠소.”“먼저 받으시면…….”도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허 서리 부친은 밤에 기침이 심하다지.”허온의 입이 닫혔다.“조용한 곳으로 옮겨 드리면 좋겠소. 의원도 가까운 곳으로.”도언은 아침에 보냈던 추천장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허온은 책궤 뚜껑만 만졌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다.“옮긴 뒤 어디로 인계합니까?”“그건 총관이 알려줄 것이오.”밖에서 서리 하나가 새 혼서를 들고 뛰어왔다. 도언을 보고 허리를 굽힌 뒤 허온에게 몰래 눈짓했다.“좋은 자리 가기 전에 이것도 끝내게. 신랑 쪽이 아까부터 난리야.”허온은 책을 안고 나왔다.폐기 대기 창고는 뒤뜰

  • 붉은 혼서   183화. 네 해짜리 엿

    허온은 ‘부친을 데려가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적었다.윤채는 그의 어깨 너머로 읽었다. 그 아래로 붓이 내려가자 물그릇을 옮겼다. 허온은 창고 문을 연 시각, 수레가 들어온 쪽문, 짐꾼 수를 차례로 적었다.관직을 주겠다는 말을 처음 들은 날은 쓰지 않았다.“여기까지면 되겠지.”윤채는 대답하지 않았다.“기억나는 건 다 썼어.”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다가 등잔에 기름을 조금 더 부었다. 허온은 종이를 접지 못했다.날이 밝자 아버지가 안방 문을 밀고 나왔다. 허온이 서둘러 일어섰으나 노인은 부축을 물리쳤다.“밤새 둘이 책을 썼나.”윤채가 씻은 그릇을 꺼냈다. 보리밥은 어제보다 묽었다. 허온은 두 숟갈을 뜨고 진술서 쪽으로 눈을 돌렸다.아버지가 찬장 위의 엿봉지를 집었다.“이게 아직 있네.”“딱딱해요. 드시지 마세요.”“이가 없다고 입까지 없는 건 아니다.”노인은 칼등으로 엿을 내리쳤다. 탁, 두 번 치자 세 조각이 났다. 가장 자잘한 것을 제 물그릇에 넣고 나머지를 부부 앞에 밀었다.허온은 제 몫을 윤채 쪽으로 옮겼다. 윤채가 그대로 돌려놓았다.아버지는 못 본 척 장기판을 폈다. 모서리가 닳은 졸 하나가 없어 한참 찾다가 밥상 다리 밑에서 꺼냈다.“누가 이걸로 상을 괴었어?”“아버님이요. 그저께.”“그랬나.”윤채가 웃다가 그릇을 들었다. 허온은 그 짧은 웃음을 보고 엿을 입에 넣었다. 너무 굳어 볼 안쪽이 아팠다.문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현씨 집 총관이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허온의 낡은 신발부터 내려다봤다.“밤일이 고되겠네.”허온은 뒤로 문을 당겼다. 윤채가 밥상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끝까지 닫지 못했다.총관은 얇은 봉투를 내밀었다.“낭중 대인께서 실무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시다네. 형부 쪽 자리가 나면 자네 이름을 올리시겠다고.”“저는 예부 사람입니다.”“그러니 추천이 필요하지.”허온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총관은 그 위에 약재전의 외상 내역을 얹었다. 윤채가 어젯밤 대추를 깎던 바로 그

  • 붉은 혼서   182화. 요 위의 열쇠

    윤채가 허리를 굽히자 허온의 손이 먼저 나갔다.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허온이 손을 거두었다.“제가 가져가겠습니다.”그는 소의를 향해 말했지만 윤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소의가 열쇠를 집어 접수대 위에 놓았다.“어느 문 열쇠입니까?”“옛 인계 창고입니다. 지금 쓰는 서고 말고, 폐기할 책을 잠시 두는 곳.”“혼적청 안에 있습니까?”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의는 창고 위치와 그의 이름을 접수지에 적었다. 열쇠를 빼앗을 권한은 없었다.“내일 조사관이 오면 같은 말을 해주세요.”윤채가 식함을 들었다. 허온은 쏟아진 밥을 치우지도 않고 뒤따랐다.문적방 뒤편 살림방까지 가는 동안 부부는 말하지 않았다. 윤채는 약재전 앞에서 멎어 말린 대추를 샀다. 두 알을 덜어내고 값을 깎는 사이 허온은 식함 손잡이를 받아들려다 말았다.집에 돌아오니 늙은 부친이 방 사이의 얇은 문을 열어놓고 앉아 있었다.“약이 넘친다.”윤채가 달려가 솥을 들었다. 허온은 아버지를 부축하려 했으나 노인은 먼저 벽을 짚고 안방으로 들어갔다.“둘이 나가면 누가 불을 보나.”“죄송해요. 물 더 붓겠습니다.”윤채는 타버린 약재를 건져냈다. 허온이 부채를 들자 그녀가 손에서 가져갔다.“창문 열어. 연기부터 빼게.”밤바람이 들어와 이불 귀퉁이를 들췄다. 허온의 허리띠에 감춰져 있던 열쇠가 이번에는 요 위에 놓였다.윤채는 약함 아래에서 바느질 삯을 꺼냈다. 다시 지을 약값을 세고 남은 돈을 넣었다.“그 열쇠, 아직도 갖고 있었어?”“반납할 곳이 없었어. 담당자가 바뀌어서.”“네 해 동안?”허온은 대답 대신 열쇠에 묶인 낡은 끈을 풀었다. 매듭이 단단했다. 손톱으로 파다가 끈만 보풀이 일었다.네 해 전에도 윤채는 그 매듭을 만졌다. 늦게 들어온 남편의 옷을 털다 열쇠를 찾아냈고, 묻는 순간 손목이 요에 눌렸다. 아침에는 바늘을 잡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허온이 고개를 들었다.“당신까지 알면 위험할까 봐 그랬어.”윤채는 문틈을 보았다. 안방에서 숟가락이 약그릇

  • 붉은 혼서   181화. 혼적청의 밤문

    “팔 잡지 마! 겨드랑이 밑으로!”복례가 물동이를 걷어차며 달려들었다. 만복의 오른쪽 소매가 불에 붙은 채였다. 젖은 어깨받이 천을 덮자 치익 소리가 났다. 만복은 비명을 지르려다 검은 침을 토했다.“내리라 했잖아.”그는 골목 건너를 가리켰다. 교대 마부가 포졸 둘을 데리고 뛰어오고 있었다.“저놈까지…… 잡힐까 봐.”복례는 더 묻지 않았다. 만복이 일어나려 하자 무릎으로 그의 다리를 눌렀다.“이번에는 가만있어. 제발.”말끝이 갈라졌다. 만복이 멀쩡한 손을 내밀었지만 복례는 붕대를 자르느라 잡아주지 못했다.소의가 소식을 받은 곳은 정례헌 서쪽 물품문 앞이었다.혜란과 자온은 이미 나와 있었다. 약재 수레 바닥에 싸놓은 것은 달력 두 장과 약봉지, 아이의 책 보퉁이였다. 부엌에서 따라 나온 늙은 시비가 물품문을 닫으려 하자 혜란이 손바닥으로 막았다.“안에서 잠그지는 마.”시비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손을 뗐다.소의는 두 사람이 백류나루로 가는 것을 확인한 뒤 대리시로 돌아갔다. 경연은 포졸이 그린 골목 그림을 펴놓고 있었다. 불을 붙인 자들은 놓쳤고 만복은 의원에게 옮겼다는 말에, 소의가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빈 수레면 다치지 않을 줄 알았어요.”경연은 접었던 수색 명령을 다시 폈다.“내가 교대할 골목을 정했소.”소의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연도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젖은 신발 자국이 책상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그때 백류나루에서 돌아온 포졸이 문밖에 섰다.“자매가 만났습니다. 아이들도 무사합니다.”소의가 그제야 책상에서 손을 뗐다.*혼적청 정문은 닫혔고 옆문 아래로만 불빛이 샜다. 밤 접수대에는 반쯤 먹다 만 보리밥과 식은 찻잔이 놓여 있었다.젊은 서리가 소의의 서류를 받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혼적 대조는 내일 오셔야 합니다.”“접수만 해주세요. 곡우의 호적 조회는 호부로 넘길 인계도 필요하고요.”“호부 쪽은 동쪽 담을 돌아서…….”“밤에는 이곳에서 받는다고 들었습니다.”서리가 서류를 다시 쌓았다. 유혜진과

  • 붉은 혼서   180화. 갈라진 수레

    자온은 옥패를 줍지 않았다.혜란도 아이에게 돌려주라고 하지 않았다. 보호방에서 나온 뒤 옥패를 밟지 않도록 옆으로 지나갔다.“정례헌에 가겠습니다.”경연이 회랑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허락할 수 없소.”“허락을 받으러 말한 게 아닙니다.”혜란은 침방 약장 뒤의 달력과 처방, 서쪽 물품문 열쇠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자온도 자기 책과 옷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혜진은 한 수레에 같이 타겠다고 나섰다. 혜란이 거절했다.“내가 옆에 있으면 무엇이 달라져?”“언니는 내가 멈추면 끌고 갈 거야.”“혼자 가다 또 문이 닫히면?”“그래서 만날 곳을 정하는 거야.”혜진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같이 있는 것과 버리지 않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짚은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는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오지 마.”“남겨두고 가지 말라며.”“다시 만날 곳을 정하고 가자는 뜻이었어.”자매는 백류나루 검량장 앞에서 해 질 무렵 만나기로 했다. 혜진은 명산과 아완을 데리고 먼저 나루로 가고, 혜란은 정례헌을 거쳐 뒤따르기로 했다.“해가 져도 안 오면?” 혜진이 물었다.“두 각만 기다려.”“그 뒤에는?”“대리시에 알리고 와. 혼자 찾으러 들어가지 말고.”혜진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약조를 억지로 삼켰다. 혜란도 언니가 약조를 지킬지 믿지 못해 자온에게 같은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경연은 군졸 여섯과 봉쇄패부터 불렀다. 소의가 그의 말을 끊었다.“군졸이 정문을 막으면 혜란 부인은 다시 안채에 갇힙니다.”“현도언 쪽에서 이미 사람을 붙였소.”“그러니 본인에게 방법을 설명하고 고르게 하세요.”두 사람 목소리가 동시에 낮아졌다. 강 위에서 미끼 수레를 두고 다투던 날과 같은 얼굴이었다.“또 사람을 미끼에 태울 생각입니까?” 소의가 물었다.“빈 수레를 보낼 것이오.”“그 말을 먼저 하셨어야죠.”경연은 반박하지 않았다. 소의가 지도 위에 몸을 숙이자 흐트러진 소매 끝만 접어주었다. 전 같으면 지도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을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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