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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죽은 아내의 마지막 방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2 21:13:15

다향원의 봉한 월문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회유는 열쇠를 들고도 문을 열지 못했다. 난정이 빼앗듯 받아 자물쇠에 꽂았다. 녹이 슨 쇠가 끼익 울고, 네 해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안쪽의 눅눅한 공기를 밀어냈다.

회유와 난정, 문혜, 정윤이 먼저 들어갔다. 소의와 경연은 관청 증인으로 문턱에 섰다. 홍 유모는 끝내 뜰에 남았다.

문을 열자 작은 거미들이 장롱 뒤로 흩어졌다. 비가 샌 천장 아래에는 놋대야가 놓여 있었고, 문혜가 갈아 둔 물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방은 봉해졌으나 누군가는 계절마다 들어와 창을 열고 이불을 말렸다.

창가 찻상에는 금이 간 잔 두 개가 놓였고, 침상 곁에는 반쯤 읽은 시집이 엎어져 있었다. 옷장 문을 열자 장뇌 냄새가 확 퍼졌다. 철마다 문혜가 꺼내 바람을 쐰 덕에 옷에는 곰팡이 하나 없었다.

“손대지 말게.”

회유가 난정에게 말했다.

“정안은 물건 자리가 바뀌는 것을 싫어했어.”

난정이 붉은 치마를 꺼냈다.

“언니는 이 색을 싫어했어요. 형부 앞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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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혼서   185화. 돌아오지 않은 명패

    소의는 바로 서려 했지만 옆구리가 당겼다.경연이 팔을 놓지 않았다.“어디에 부딪쳤소?”“수레요. 잠깐만 있으면…….”그는 옆집에서 내온 걸상을 발로 가까이 당겼다. 소의가 앉고 나서야 손을 뗐다.포졸이 골목 사람 둘을 데려왔다. 한 사람은 문틈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은 물을 버리러 나왔다가 총관이 내민 명패에 물러섰다. 두 사람의 말은 장정이 노인을 들고 나온 데서 맞았고, 소의가 언제 달려왔는지는 달랐다.경연은 같은 말을 시키지 않았다. 각자 선 자리를 짚게 하고 기록을 나눴다.허온이 방에서 나왔다.“아버지를 맡긴 적 없습니다.”총관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포졸이 팔을 막았다.“추천장은 받았네. 그것도 말해야지.”허온이 종이를 내놓았다. 경연은 봉투를 펼쳐 기록 서리에게 건넸다.“받은 까닭은 따로 조사한다. 지금은 부친을 데려가도 된다고 했는지 묻는 것이다.”“안 했습니다.”경연이 총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명패.”총관은 망설이다 품에서 꺼냈다.“낭중 대인께서 아시면…….”“이 명패를 보이고 사람을 물리쳤다지. 함께 보관한다.”포졸이 총관과 장정들을 결박했다. 마부가 수레를 빼려 하자 바퀴 앞에 섰던 윤채가 고삐를 움켜쥐었다.“이 사람도요.”경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말을 움직이라 한 자까지 적어라.”총관이 끌려나가며 소의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허온이 받아 간 추천장은 그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명패도 돌려주지 않았다.*혼적청에 도착했을 때 현도언은 뜰에 서 있었다.경연은 노인의 진료를 확인하고 왔다. 소의는 가마를 부르겠다는 말을 거절하고 마부 옆자리에 앉아 따라왔다. 내릴 때 경연이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잡았다.도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남의 집 사람부터 묶고 다니시오?”경연은 예부의 인계문을 폈다. 소의의 전갈을 받은 뒤 미리 청한 결재였다.“허 서리 부친을 강제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조사 뒤 형부에도 알리겠습니다.”“좋은 의원을 보이려 했소.”“직접 명하셨습

  • 붉은 혼서   184화. 끌려가지 않는 사람

    윤채의 손등 위로 신발이 내려왔다.소의가 어깨로 사내를 밀었다. 발이 비껴갔지만 이번에는 소의가 담에 등을 부딪쳤다. 숨이 턱 막혔다. 사내가 그녀의 팔을 비틀자 상처를 감싼 천이 풀렸다.“놔요!”총관이 다가왔다.“소란 피우지 말고 안으로 들어갑시다.”소의는 끌려가며 수레를 보았다. 윤채는 바퀴에 매달려 있었고, 노인은 장정의 팔에서 반쯤 미끄러져 있었다. 마부가 채찍을 들었다.“어르신부터 내려놔요. 그러면 들어갈게요.”총관이 손짓했다. 노인이 마당에 내려앉자 윤채가 기어가 등을 받쳤다.소의는 그제야 팔에 힘을 뺐다.방 안에는 허온이 돌아와 있었다. 허리띠가 삐뚤어져 있었고 숨을 몰아쉬었다. 현도언은 유씨 자매의 기록을 폐기 창고로 옮기라 했고, 허온은 책을 인계함에 잠근 뒤 집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총관이 소의를 끌고 들어오자 그가 일어섰다.“이분은 왜…….”“아버님 모시는 것을 막았네. 자네가 설명해.”허온은 바깥을 보았다. 아버지의 기침이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총관이 종이를 폈다.“진소의가 시켜 관청 책을 숨겼다고 적게. 그러면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허온이 굳었다.“그런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자네가 혼자 했으면 자네 죄지. 아내는 누가 먹여 살리나?”소의가 허온의 손을 보았다. 주먹 사이로 열쇠 끝이 나와 있었다.“책을 옮겼어요?”허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없애지는 않았고요?”“인계함에…….”총관이 탁자를 쳤다.“시키는 말만 적어!”소의가 종이 위에 손을 놓았다.“제가 시켰다고 쓰지 마세요.”총관이 손등을 치려 하자 그녀가 먼저 종이를 끌어당겼다.“이분이 한 일까지 없었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하지 않은 일은 인정 못 해요.”허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잠깐 소의를 원망하듯 보았다. 소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마당에서 윤채가 남편을 불렀다.“아버님 숨이 이상해!”허온이 뛰쳐나가려 하자 총관이 문을 막았다.“적고 가.”소의는 일어서며 식은 물그릇을 집었다. 총관이 손을

  • 붉은 혼서   183화. 약값을 치른 사람

    허온이 대문을 닫았다.윤채가 다시 열었다. 골목 끝으로 수레 한 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어디로 모셔?”“의원에…….”“어느 의원.”허온은 약봉지 끈을 만졌다. 윤채가 그것을 빼앗아 문밖에 놓았다.“모르는 약 안 달여.”그날 밤 허온은 거의 눕지 못했다. 새벽에 아버지가 물을 찾자 먼저 일어나 그릇을 가져갔다. 노인이 손등을 두드리며 왜 이리 차냐고 물었다.아침상에는 보리밥과 절인 무가 올랐다. 아버지는 찬장 위 엿을 꺼내 세 조각으로 나눴다. 제 것은 물에 넣고 부부 앞에는 하나씩 밀었다.“둘이 싸웠어도 밥은 먹어.”윤채가 무를 작게 잘라드렸다. 허온은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해가 들자 총관이 왔다.추천장과 약재전 영수패를 함께 내놓았다. 허온이 봉투를 밀자 총관은 되밀지 않고 밥상 옆에 두었다.“낭중 대인께서 혼적청으로 오셨네. 자매 기록을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하시다네.”“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직접 가서 듣게.”안방에서 아버지가 기침했다. 총관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돌아올 때는 의원으로 오고. 부친은 우리가 모시겠네.”허온은 봉투를 집었다. 윤채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거절하러 가는 거야?”그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소의는 혼적청 계단에서 허온을 만났다. 그는 품 안의 추천장을 감추려다 떨어뜨렸다.소의가 줍기 전에 허온이 먼저 집었다.“받기만 했습니다.”“무슨 일을 시켰어요?”“아직…….”안에서 총관이 그를 불렀다. 허온은 계단을 올랐다. 소의가 따라가려 하자 문지기가 길을 막았다.“오늘은 대기하랍니다.”소의는 계단 아래로 돌아와 호위 포졸에게 말했다.“경연 대인께 알려주세요. 현씨 집에서 허 서리에게 추천장을 줬어요. 저는 집에 가볼게요.”“혼자 가시면—”“길은 알아요. 집 앞에서 기다릴 테니 사람을 보내주세요.”문적방 뒤 골목에 이르렀을 때 윤채는 약재전 주인과 다투고 있었다.“돈 드린다니까요. 늘 먹던 것만 주세요.”“외상을 현씨 집에서 갚았

  • 붉은 혼서   182화. 잠들지 못한 집

    “저도 가겠습니다.”소의가 일어나자 경연은 손에 남은 피를 보았다.“포졸을 보내면 되오.”“이름이 둘이에요. 누가 살아 있는지 또 잘못 옮기면 안 됩니다.”그는 소의가 내민 자매의 접수지를 읽고 돌려주었다.“호위와 함께 가시오. 나는 의원으로 가겠소.”소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연이 일어나면서도 손수건 끝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 번 더 보았다.혼적청 옆문에는 젊은 서리가 빗장을 걸고 있었다.“끝났습니다.”“사망 신고가 오면 확인부터 해주세요. 유씨 자매 두 분 다 살아 있습니다.”서리의 손이 멎었다. 소의가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안으로 들어가 인계첩 한 권을 가져왔다. 포졸이 대리시의 전갈을 건네는 동안 소의는 두 줄을 확인했다.언니는 죽었고, 동생은 다른 고을로 떠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이전 신고네요.”“새로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그럼 오늘도 없었다고 남겨주세요.”서리는 날짜를 적었다. 소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전에 창고 열어주신 분이죠?”“허온입니다.”그가 책을 덮으며 몸을 돌렸다. 허리띠에 끼워둔 열쇠가 돌바닥에 떨어졌다.때마침 식함을 들고 온 윤채가 그것을 주웠다.허온이 손을 뻗다가 멈췄다.“그리 줘.”윤채는 열쇠를 보았다. 남편에게 내밀 때 손가락이 조금 굳었다. 소의는 그 손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어느 창고 것입니까?”“폐기할 책을 잠시 두는 곳입니다.”소의는 위치와 담당자만 받아 적었다. 허온은 더 물을 줄 알고 기다리다가 그녀가 떠나자 뒤늦게 책을 안으로 옮겼다.*집에 돌아오니 약이 넘쳐 화롯불이 죽어 있었다.윤채는 식함을 내려놓고 젖은 재부터 퍼냈다. 안방에서 시아버지가 기침했다. 허온이 부축하려 하자 노인은 손을 저었다.“불이나 살려라.”남편이 부채질을 너무 세게 해 재가 날렸다. 윤채는 약솥을 옮기고 마른 장작을 골랐다.“문 열어. 연기 안 빠져.”그가 문을 열자 찬바람에 요 귀퉁이가 들렸다. 허온의 손에서 열쇠가 떨어졌다.윤채는 장작을 넣던 손을 멈췄다.“그때 것

  • 붉은 혼서   181화. 불길 밖의 사람

    “팔 말고! 겨드랑이 밑을 잡아!”복례가 만복의 타는 소매에 젖은 천을 덮었다. 치익, 김이 솟았다. 만복이 벌떡 일어나려다 검은 침을 토했다. 복례는 무릎으로 그의 다리를 누르고 천을 더 끌어당겼다.“가만있어. 좀 가만있으라고!”누군가 물동이를 들이밀었다. 그녀가 고개도 들지 않고 받아 불붙은 수레채에 끼얹었다. 만복의 발목에 걸린 고삐가 끊어지자 장정 둘이 그를 끌어냈다.“교대하러 온 놈은…….”“살았어. 포졸 데리러 갔어.”그제야 만복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복례는 그것을 주울 생각도 못 했다. 남편의 어깨를 싸맨 천 아래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같은 시각, 정례헌 서쪽 물품문이 안에서 닫혔다.소의는 혜란의 짐을 받으려던 손을 뻗어 문짝을 붙잡았다. 틈으로 자온의 얼굴이 보였다.“어머니 신이 벗겨졌어요!”문 안쪽에서 하인 둘이 혜란을 끌고 있었다. 늙은 시비가 신발을 들고 따라가다가 밀쳐졌다. 소의가 문을 세게 당겼지만 안에서 미는 힘이 더 컸다.“손 빼시오. 다칩니다.”“그럼 문을 놓으세요!”나무가 손바닥을 긁었다. 소의는 발끝을 문지방에 걸쳤다. 뒤에서 약재 수레를 지키던 마부가 달려와 함께 문을 당겼다.“사람 좀 불러주세요!”자온이 하인의 팔을 물었다. 사내가 아이를 떼어내려 손을 들자 혜란이 몸으로 막았다. 퍽, 등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소의는 수레의 짐받침을 집어 문 아래에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그 틈으로 자온이 빠져나왔다.“돌아가지 말고 저 아저씨 곁에 있어.”“어머니가—”“내가 갈게.”소의가 옆으로 몸을 넣었다. 혜란은 돌계단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하인이 팔을 잡아 일으키자 소의가 그 사이로 들어가 혜란을 안았다.“비키시오!”“일어날 수 있어요?”혜란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소의는 한쪽 팔을 제 어깨에 걸쳤다. 무거웠다. 두 걸음도 못 가 함께 휘청거렸다.하인이 소의의 뒷덜미를 잡았다.“누구 허락으로 남의 안채에—”그 손이 갑자기 떨어졌다. 마부의 고함을 듣고

  • 붉은 혼서   180화. 갈라진 수레

    자온은 옥패를 줍지 않았다.혜란도 아이에게 돌려주라고 하지 않았다. 보호방에서 나온 뒤 옥패를 밟지 않도록 옆으로 지나갔다.“정례헌에 가겠습니다.”경연이 회랑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허락할 수 없소.”“허락을 받으러 말한 게 아닙니다.”혜란은 침방 약장 뒤의 달력과 처방, 서쪽 물품문 열쇠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자온도 자기 책과 옷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혜진은 한 수레에 같이 타겠다고 나섰다. 혜란이 거절했다.“내가 옆에 있으면 무엇이 달라져?”“언니는 내가 멈추면 끌고 갈 거야.”“혼자 가다 또 문이 닫히면?”“그래서 만날 곳을 정하는 거야.”혜진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같이 있는 것과 버리지 않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짚은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는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오지 마.”“남겨두고 가지 말라며.”“다시 만날 곳을 정하고 가자는 뜻이었어.”자매는 백류나루 검량장 앞에서 해 질 무렵 만나기로 했다. 혜진은 명산과 아완을 데리고 먼저 나루로 가고, 혜란은 정례헌을 거쳐 뒤따르기로 했다.“해가 져도 안 오면?” 혜진이 물었다.“두 각만 기다려.”“그 뒤에는?”“대리시에 알리고 와. 혼자 찾으러 들어가지 말고.”혜진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약조를 억지로 삼켰다. 혜란도 언니가 약조를 지킬지 믿지 못해 자온에게 같은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경연은 군졸 여섯과 봉쇄패부터 불렀다. 소의가 그의 말을 끊었다.“군졸이 정문을 막으면 혜란 부인은 다시 안채에 갇힙니다.”“현도언 쪽에서 이미 사람을 붙였소.”“그러니 본인에게 방법을 설명하고 고르게 하세요.”두 사람 목소리가 동시에 낮아졌다. 강 위에서 미끼 수레를 두고 다투던 날과 같은 얼굴이었다.“또 사람을 미끼에 태울 생각입니까?” 소의가 물었다.“빈 수레를 보낼 것이오.”“그 말을 먼저 하셨어야죠.”경연은 반박하지 않았다. 소의가 지도 위에 몸을 숙이자 흐트러진 소매 끝만 접어주었다. 전 같으면 지도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을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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